알베르 카뮈는 1913년 11월 7일, 그의 아버지가 군인으로 복무하고 있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프랑스계 알제리 이민자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아버지가 마른 전투에서 전사하자, 귀머거리인 어머니와 카뮈의 어린 시절 위에 철저히 군림하는 할머니와 함께 빈곤 속에서 성장한다. 초등교육 시절 제르맹 선생님을 만나 큰 영향을 받았고,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서는 평생의 스승이 된 그르니에를 만난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 신문기자가 되었다. 소설 속에서는 베르나르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초고인 덕분에) 중간 부분에 제르맹 선생님이라는 실명을 밝힌 부분도 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카뮈의 문장은, 한 번 시작하면 끝날 줄 모르게 숨 가쁘게 이어져 가는 문장의 호흡 속에서 분출하는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이는 감당할 길 없는 뜨거운 상상력의 질주일 것이다. 카뮈는 알제리의 가난한 거리에서 자란 열일곱 살 소년이 어떻게 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를 설명한다. 앙드레 드 리쇼의 책 한 권으로 말미암아 창작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진실된 어조로 서투름을 인정하고 발표한 최초의 산문집 <안과 겉>이 발표된다. 카뮈는 소설 속에서 가난 속에 보냈던 어린시절을 꽤나 유쾌하게 서술했다. 말쑥한 옷차림은 모자람이 없어보였고, 얼굴에는 낙관적인 마음이 쓰여 있었으니 그를 세심하게 관찰한 제르맹 선생도 가정 형편을 짐작조차 못했다고 부록으로 실린 편지에 쓰고 있다.
알베르 카뮈는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고 나서, 최초의 본격적 장편소설 『최초의 인간』을 집필하기 시작했던 1960년 1월 4일 상스에서 파리로 가는 국도 7번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다. 원래는 기차를 타고 갈 예정이었으나 절친한 친구 미셸 갈리마르 부부의 자동차에 동승하게 되면서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인도된다. 자동차가 가로수와 충돌한 순간 튕겨 나간 검은 색의 작은 가방 속에 담긴 육필 원고가 바로 『최초의 인간』이다. 프랑신 카뮈 부인이 육필 원고를 바탕으로 타자본을 완성하여 카뮈의 가까운 지인들에게 출판 여부를 묻지만 모두 출판하지 않는 쪽으로 충고했다. ‘미완성 원고’도 아닌 ‘초고’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34년 동안 출판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전적인 내용이 전혀 여과되지 않은 상태로 실명 그대로를 노출한 점을 미루어보면 초고임을 짐작할 수 있다. 프랑신 카뮈 부인이 사망하고, 문학 교사 출신인 딸 카트린이 부친의 전 작품을 관리하게 되면서 카뮈의 작품 관리에만 몰두하기에 이른다.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의 공격 대상이 되곤 했던 카뮈의 사상을 옳게 생각하는 다수의 움직임에 힘입어 최적의 시점임을 알고 1994년 4월 13일에 『최초의 인간』을 출간한다. 출판된 책은, 아무런 정치권 공격도 받지 않았고 카뮈가 쓴 미완의 고백을 여러 매체에서 대서특필하고 열광하기에 이른다.
『최초의 인간』은,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아버지 찾기'라는 모티브로 출발한다. 자크 코르므리는, 스물아홉 살에 사망한 아버지의 묘비 앞에서 마흔 살이 된 아들인 자신보다 훨씬 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은 정다움과 연민의 물결로 채워지고, 억울하게 죽은 어린아이 앞에서 다 큰 어른이 느끼는 기막힌 연민의 감정이 된다. 그리하여 그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사람들을 찾아 알제리로 향한다. 그러나 그가 찾아낸 것은 아버지의 철저한 부재와 어머니의 침묵뿐이었다. 가난과 고통, 무지와 기억 상실, 무관심의 세계였고, 無의 세계였다. 그래서 부재와 침묵 속에 서 있는 카뮈 자신이 <최초의 인간>이 된다. 아버지를 모르고,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혼자 삶을 개척해야 했던 카뮈 자신과 그의 소설 속 인물인 자크 코르므리가 최초의 인간인 것이다. 프랑스계의 알제리 이민, 혹은 식민이었던 자크 코르므리의 조상들 역시 뿌리 뽑힌 채 황무지뿐인 척박한 땅에 처음으로 발 디딘 최초의 인간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추적할 수 있는 역사도 기억도 문헌도 없는 최초의 인간이었다. 따라서 최초의 인간은, 아버지 없이 자란 카뮈 자신이며, 소설 속 주인공 자크 코르므리이며, 너무 젊은 나이에 죽음과 마주한 아버지이며, 그 모든 조상들이며, 역사도 전통도 재산도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없는 가난을 짊어진 모든 사람들이기도 하다.
소설은 자크의 현재와 유년시절을 교체로 보여주지만 어린시절에 비중을 더 많이 두고 있다. 어머니는 글을 읽을 줄 모를 뿐만 아니라 반귀머거리였고, 오늘날까지도 그녀의 생활엔 오락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 가슴 설레이는 대상이 잠시 등장한다. 에르네스트(자크 외삼촌)와 막연히 아는 사이인 앙투안 씨라는 사람이 저녁식사 전마다 규칙적으로 집에 찾아오곤 했었는데, 어느 날 돌연 머리를 자르고서 더 젊고 신선해진 모습의 어머니였으니, 할머니는 모두가 있는 그 자리에서 어머니를 갈보 같은 꼴이 되었다고 말하는 통에 어머니는 부엌을 뛰쳐나가 슬퍼했고,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오랫동안 말도 걸지 않았다. 옹색하고 잔혹한 궁핍의 대표자인 할머니는 가족들을 두루 아프게 했다. 자크는, 할머니 자신이 인색하기 때문이 아니라 궁핍이 가져온 소산일거라 그녀의 채찍질과 성냄을 속 깊게 이해했다. 하지만 자크의 외삼촌인 반벙어리인 에밀 삼촌에게만큼은(소설에서 에티엔(에르네스트)로 소개하고 있다) 언제나 약했던 것 같다. 하지만 카뮈는 이러한 편애조차 삼촌이 가진 불구 때문이며, 잘 차려입은 대단한 미남자였기에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린 것이라며 너그러이 넘어간다.
책을 선택할 때나 읽을 때 ‘제목’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제목’과 ‘지은이’로 읽을 책을 선택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 제목의 의미를 찾게 되니까요. 대체로 제목이 책 내용이나 의미를 함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런데 ‘알베르 카뮈’의 《최초의 인간(2009.12.20. 열린책들)》은 제목만으로는 책 내용이나 의미를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최초의 인간이란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요?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의 소설 《최초의 인간》은 주인공 ‘자크 코르므리’가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프랑스에 있는 아버지 앙리의 묘소를 찾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자크는 묘소에서 만난 아버지의 나이가 자신보다 11살이나 어린 29살이라는 사실에 연민의 감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자크의 나이 겨우 한 살 때 헤어졌고 마흔이 되도록 인지하지 않고 살아온 시간 탓에 아버지를 향한 연민의 감정은 무척 낯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자크는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조차 흐릿해져버린, 가난한 사내인 아버지를 상상해 보려고 노력하기로 합니다.
《최초의 인간》은 과거와 현재 사이를 비규칙적으로 오가며 자크의 기억 속 책장을 넘나듭니다. 자크는 자식교육에서만큼은 고집스러운 자신만의 철칙을 갖고 있는 외할머니와 어린 시절 앓았던 병 탓에 귀가 먹고 말도 잘 못하게 된 엄마와 함께 성장합니다. 일요일에 외삼촌이 직장동료들과 함께 가는 사냥에 동행하면서 사내들끼리 어울리는 시간을 경험합니다. 자크는 외할머니의 결정대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견습공으로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등교육 수료반 담임선생님인 베르나르 씨의 설득으로 가난한 집 손자이자 아들인 자크가 중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자크는 누구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도움을 준 선생님과의 이별에서 고통과 불안을 느낍니다. 그리고 곧 마주친 더 큰 세상에서 자신이 외톨이 혹은 이방인이 된 듯 느끼지만 학교에서 놀이와 공부하며 지내는 생활과 어머니 곁에서 지내는 가난한 동네에서의 가난한 삶과 구분지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합니다.
소설 《최초의 인간》을 읽으며 ‘알베르 카뮈’의 삶과 비슷한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자크의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난 이듬해인 1914년 마른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어 전사합니다. 카뮈의 아버지 역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사망합니다. 자크와 카뮈 모두 귀머거리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빈곤한 가정에서 성장합니다. 그리고 자크와 베르나르 선생님의 만남이 운명적이었듯, 카뮈 역시 제르맹 선생님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카뮈가 사망하던 날 그가 지니고 있던 가방 속에서 발견된 이 소설은 혹시 카뮈 자신의 역사를 써내려갔던 건 아닐까요. 그래서 소설의 제목에서 지칭하는 인물은 자크의 아버지 혹은 카뮈의 아버지라고 추정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장을 덮었을 때 《최초의 인간》이란 자크가 알지 못하는 아버지의 존재뿐 아니라 자크 혹은 카뮈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는 바가 거의 없으며(p.32) 어머니에게서 조차 아버지를 상상해 볼 만한 기억도 찾지 못한 채 완벽하게 아버지의 부재 상태에서 성장한 자크는 아버지 묘소 앞에서 실제로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억지로 지어낼 수는 없는 노릇(p.31) 이라고 말하지만, 자크의 속마음은 그와 반대로 줄곧 보호받고 사랑받기를 원했으니까요.
아이란 그 자신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부모가 그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는 부모에 의하여 규정된다. 즉, 세상 사람들의 눈에 규정되는 것이다. 바로 그 부모를 통해서 아이는 진짜로 자신이 판정된다는 것을, 돌이킬 수 없이 판정된다는 것을 느낀다. p.212
어쩌면 알베르 카뮈는 양육자의 지지와 사랑이 충분하지 못했고, 그래서 성장기 내내 아버지의 부재를 더 크게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설 속 자크처럼요. 카뮈는 자크에게 자신을 투영시켜서 어린 시절 느꼈던 슬픔과 외로움을 치유하려했던 건 아닐까요.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건 읽는 이의 몫이지만 이번처럼 모호한 경우는 처음이라서 답답하고 갑갑합니다.
부록으로 수록된 ‘구상 노트’ 등을 보면서 카뮈가 ‘이 작품을 완성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무런 소용없는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카뮈가 심혈을 기울여 여러 차례 다듬은 뒤 출간되었다면 지금처럼 짐작만 하고 있진 않았을 텐데 말이지요. 앞으로 알베르 카뮈를 떠올리면 안타까운 마음에 뭉클해질 것만 같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글은 인간에 대한 실존적 질문들 던지는 철학적인 문장들로 인해 깊이있게 읽을 수 있다. 아마도 그가 살아온 삶이 작품으로 투영된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열린책들을 통해 국내 최초로 번역된 알베르 카뮈의 유작인 <최초의 인간>은 자신의 자전적인 얘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죽기 전까지 집필했다고 하는 작품인데 책을 넘기다가 보면 알베르 카뮈가 흘려쓴 원고, 역주를 통해 보강된 내용들을 읽을 수 있다. 미완성작이기 때문에 가다듬지 못한 부분이 보인다. 이 작품을 죽음의 순간이 찾아들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완성하려고 한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가 작품을 통해 전해주려고 한 메세지는 무엇이었을까? <최초의 인간>을 읽다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보이고 자신을 향한 성찰에 큰 감명을 받게 된다. 역시 알베르 카뮈라는 작가의 명성답게 문장들마다 나에게 질문을 되묻곤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자크 코르므리는 1살 때 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였고, 그 후로 40년이 흘러 자신의 아버지(앙리 코르므리)의 묘지를 찾아간다. 이제는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어렸을 때(29살) 전사한 아버지의 무덤을 보면서 회상에 잠긴다. 홀로 가장이 된 어머니는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할머니는 자크의 양육을 도와준 덕분에 이렇게 온전히 성장할 수 있었다. 전쟁 중 낡고 허름한 주택에서 태어난 자크를 통해 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묻고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불안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는 피부로 와닿지 않을 수 있겠지만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듯 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또렷하게 그 당시의 기억을 갖고 있다. 더더군다나 소중한 가족을 잃은 나머지 가족들의 삶에 짓눌린 무게와 고통스러운 시간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버지없이 자란 자크도 그 나이 또래라면 상처와 아픔을 겪었을 때지만 가족끼리 서로 사랑으로 보듬으면서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었기 때문에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최초의 인간>은 알베르 카뮈의 마지막 유작이라는 상징성을 제쳐두고서라도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자크를 통해 알베르 카뮈가 말하고 싶은 것을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었고, 자신이 경험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충분히 묘사되었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알베르 카뮈의 글은 지나치리만큼 현실적인 묘사에 집착한다. 그래서 때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현실 속에서 참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게도 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최초의 인간>을 읽으면서 내 마음의 크기가 커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알베르 카뮈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책이다.
역시 알베르 카뮈였다. 이방인과 시지프의 신화에서 받은 충격은 젊은 시절 참으로 어마어마했었는데. 이토록 시간이 흐른 뒤 만나도 어쩜, 카뮈는 한 장면으로 읽는 이를 압도해 버린다.
주인공 자크 코르므리는 어머니의 당부로 자신이 1살 때이자, 동시에 29살 나이에 전사한 아버지의 묘비 앞에 서게 된다. 마음에 어떤 감정도, 어떤 미동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로 서 있던 그는 아버지의 출생연도를 읽고 몸 속 깊이에까지 동요를 느끼게 된다. 현재 자신의 나이 사십 세, 저 묘석 아래 묻힌 그의 아버지는 스물아홉. 그의 아버지이지만 자신보다 더 젊은 고인에 대한 정다움과 연민의 물결이 그의 마음에 채워지고, 그의 주위에서 시간의 연속성들이 부서지며 옛날에 아버지였던 수많은 어린아이들로 뒤덮인 묘지의 땅바닥에 서서 자신도 전혀 아는 바 없는 저 목표를 지향하고 있는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게 되고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알제리로 가게 된다.
이 장면이 주는 미묘하고도 모순된 감정에 소름 끼치게 압도당하고 난 뒤에는 아주 술술 읽게 된 소설이다. 사실 알제리 출신의 카뮈가 정작 알제리에서는 그렇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했던 어떤 인터뷰를 읽고 놀란 적이 있었다. 카뮈가 알제리 태생이었지만 알제리를 식민지로 하고 있었던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 알제리 독립전쟁에 반대를 했고 당시 알제리에서는 카뮈가 자본주의적인 작가로 여겨져 알제리적 정체성을 강하게 내세울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프랑스계 알제리의 이민자여서 일까, 텅 비어있고, 어디에도 발 붙일 것 없어 보이는 아버지 없는 아이이자 빈 공간과 망각의 땅에서는 모두가 그렇다고 외치는 ‘최초의 인간’ 은 더할나위 없는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카뮈 자신을 대입시킨 자크는 귀머거리 어머니의 침묵과 그 어떤 것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삶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너무나 궁핍했고, 무지했으며, 그 와중에 외삼촌은 장애인이었고, 할머니는 그들을 핍박하고 아프게 했다. 소설 속에서 자크 코르므리의 현재의 모습과 어린 시절이 교체로 등장하는데 알베르 카뮈의 자전적 소설이자 유작이라고 알려진 ‘최초의 인간’은 그가 갑작스런 자동차 사고로 죽게 되면서 남긴 육필 원고를 어렵사리 출판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버지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하고 난 후 어머니와 함께 산 그의 유년 시절을 만나볼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최초의 인간은 카뮈 자신이기도 하기에 소년 카뮈의 일상과 삶은 가슴을 아련하게 하고, 아리게 한다. 이상하게도 내게는 아버지의 부재보다는 카뮈가 그토록 애정과 열정을 표출하고 싶어했던, 곁에서 침묵하며 사랑했던 어머니의 존재가 더 와 닿았던 소설, ‘최초의 인간’ 은 미완성이어서 안타깝지만, 미완성이란 말이 무색하리만치...아름답운 최고의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보면 더 깊이있게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은 배경같은 소설이고, 작가수첩의 메모와 그의 여러 글을 만나볼 수 있기에 카뮈를 사랑하는 모두에게 강추다.
태어나자마자 내 삶에서 사라져버린 아버지. 그의 인생에서 아버지가 차지하는 자리는 없었고 그것은 당연했다. 한데 1914년 전몰장병들의 묘소를 찾아가 자신의 아버지<앙리 코르므리>가 현재 마흔인 자신의 나이보다 더 젊어서(29세) 죽었다는 사실에 갑작스런 감흥이 인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심함을 떨치고 그에 대한 연민과 그를 알아보고싶은 욕구가 인다. 나보다 더 젊은 아버지라니...
하지만 자크의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서 해 줄 말이 거의 없다. 단지 살아가는 일이 더 중요한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거나 할 여지가 없이 오직 현재에 밀착하여 살아간다. 그녀는 가는 귀가 먹었고, 글도 읽을 줄 모르고, 사용하는 단어가 고작 400여개에 불과한데 그 만큼 그녀의 삶은 단순하고 순종적이며, 그래서 더욱 순수하고 신비롭고 아름답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어울리지 않게 자크는 지적으로 뛰어났고 그가 접할 수 있는 글로 된 세계를 탐닉한다. 현실을 벗어나 그의 세계를 확장해주는 그 세계의 매혹을 만끽하며. 하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그의 삶이 비참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삶을 온 몸으로 살아가며 나름 자신만의 아름다운 세계를 구축하고 있던 삼촌이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생생한 삶이 있었다. 나중에 할머니가 방학동안 더 이상 빈둥거릴 수 없다고 판단하여 자크에게 일 자리를 구해주는데 사무실에서 하는 그 일이야말로 자크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권태를 느끼게 한다.
어머니와 자크의 세계는 완전히 다르지만 두 사람은 사랑으로 확고하게 이어져있다.자크가 무엇을 하든 그를 인정하고 대견해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느끼는 자크. 그리고 둘 사이에 할머니가 있다. 엄마와는 다르게 이 세상에 확고하게 발을 딛고 무엇을 해야하고 해선 안되는지 모든게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자크가 상급학교에 진학하고나서는 자신이 속한 세계와 다른 학생들의 세계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을 알고 자신의 처지를 수치스럽게 느낀다. 가족과 국가와 자신들만의 전통과 문화가 있는 사람들. 그들의 삶은 앞에서 살아간 사람들을 본받아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만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어떤 힌트도 얻을 수 없는 그로서는 매 순간 자신이 최초의 인간이 되어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지적인 자크와 언어가 생략된 어머니의 세계는 대조를 이룬다. 언어로 분절되지 않은 어머니의 세계인식은 통째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상의 여지가 없이 매 순간을 살아간다. 이유같은 것을 따지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순종한다. 삶에 대한 헛된 기대나 분노, 좌절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에 비해 지식을 빨아들인 자크는 세상에 대해 비판하게 되고 자신이 누리지 못한 것들에 결핍을 느끼고 냉소적으로 되어간다. 지식인의 함정이다. 알수록 세상은 점점 더 불가해한 것으로 변한다. 타협할 수 있는 성품이라면 다행이지만 격정적인 성품으로는 파국으로 치닫을 운명인 것이다. 작품이 완성되지 않아 구체적인 언급이 없지만 자크를 괴물로 설정한 것이 그렇다. 어린 시절의 총명하고 사랑스런 아이는 어디로 간 걸까?
알제리에 대한 생생한 묘사, 뜨거운 태양, 변덕스런 날씨, 빗줄기, 그런 끔찍한 날에 더 이상 참을수 없어 일어나는 광기어린 행동. 이방인을 쓴 작가 카뮈를 아주 가까이 느낄 수 있다. 작가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며, 이방인에서 보였던 간결한 문체와는 달리 길고 때로는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놓아 장황하기도 하다. 작가가 살아서 완성했더라면 결코 보이지 않았을 것들도 날것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작가의 작업실을 여과없이 보고있는 느낌은 아주 새롭고 흥미진진하며 글을 읽는 동안 나 역시 작가와 비슷한 그 무엇을 생각하며 내 나름의 세계를 그려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