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세계문학 중 "상상병 환자"에 이어 읽게 되었다. 몰리에르는 자신의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만 했어도 평생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을 것인데도 17세기 당시에 상류층으로부터 한 급 아래의 문화로 취급받던 연극에 일생을 투신하기로 한다. 그리고 적당히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작품을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귀족과 성직자를 까대는 희극을 주로 쓰다보니 공연이 금지되는 등 온갖 고초를 다 겪었단다.
본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도 예외는 아니어서 종교라는 가면을 쓰고 현실감각을 잃은 귀족에 사기를 치는 인물이 결국에는 국왕에 의해 잡혀가고(타르튀프), 이 여자 저 여자에 찝쩍대기만 하는 귀족이 결국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벌을 받고(돈 쥐앙),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이성적이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행동하지만 결국에는 자신과는 반대의 성향을 지닌 여성에게 상처받고(인간혐오자)... 이런 캐릭터에 해당하는 그 당시 상류층 들이 봤을 때 당황스러웠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몰리에르의 작품에서는 항상 귀족들보다 지위가 낮은 이들이 현실적으로 냉철하게, 현명하게 판단하여 사건을 풀어갈 뿐 아니라 자신의 상전인 귀족들을 살살 약올리기까지 한다. 위선으로 꽉 찬 귀족을 신랄하게 관객들에게 "까대고" 있는 것이다.
본 작품집에서 주목할 작품은 "인간혐오자"이다. 주인공은 스스로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이라 생각하고 자기 외의 모든 사람들은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덕도 갖추지 못한 존재로 지극히 혐오하는 캐릭터다. 그러나 실상 본인도 온갖 추문에 휩싸여 여러 남자들과 염문을 뿌려대는 여성을 사랑하고 있다. 주위에서 아무리 그를 정신차리게 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결국에는 다 알게되어 사건이 끝나기는 하지만, 어찌보면 주인공의 모습이 나만 알고 타자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나를 제일 이성적인 존재로 여기고 위선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17세기를 살던 작가가 21세기를 사는 나에게 너는 얼마나 잘났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