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을 읽히는 책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90년대 베스트셀러 중에 지금도 팔고 있는 책이 몇 개나 되나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순수문학이라 불리는 책이 아니라 장르(추리, sf 등)소설을 썼는데 고전으로 오십 년 백 년을동안 버텨낸다면 대단한 작품이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조지 웰스는 우주전쟁, 타임머신, 그리고 이 책 투명인간으로 그 일을 여러 번 해냈다.
소싯적에 어린이문고로 읽고 이십 년만에 다시 읽는다. 오래 읽히는 책에는 힘이 있기 마련이다. 웰스가 투명인간이라는 개념과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낸 후 많은 사람이 그걸 따라했지만 (누군가 투명인간이 되는 방법을 찾아낸다 -> 처음에는 남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하지만 차츰 어둠의 길로 빠져든다) 이 책이 제일 흥미롭고.... 뒤에 따라한 아류작/유사작보다 더욱 전복적이다.
내 모습이 만약 보이지 않는다면? 다들 한 번쯤은 상상해본 적 있지 않으신가요? ‘투명 인간’이 된다는 상상이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고, 내가 무얼 해도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없는 투명 인간! 나이가 들어서는 투명 인간에 대한 상상을 많이 해보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에는 분명 꿈꿔왔던 상상입니다. 그때는 투명 인간이 되는 상상이 무척이나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상상들이 그렇게 건전한 것은 아니었음을 고백합니다. 투명 인간이 되어 누군가를 돕거나 하는 상상보다는 몰래 장난을 친다는 등의 짓궂은 상상들을 했었지요. 개중에는 다소 야한 상상들도 있었겠지만, 뭐 어디까지나 어린 시절의 상상 일뿐이니까요. 저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투명 인간 혹은 투명해지게 만드는 기술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현실화되기는 좀 이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여전히 우리는 상상만 해봅니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광학미채를 사용하는 주인공역을 맡기도 했지요. 사실 개발된다고 하여도 일상용보다는 군사용으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H.G. 웰스의 『투명 인간(The Invisible Man)』입니다. 작가 H.G. 웰스는 지난번에 다른 작품 『타임머신』으로 먼저 소개한 바가 있죠. 역시나 지난 서평에서 말한 것처럼 『투명 인간』도 『타임머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웰스가 살던 시대의 과학기술의 발달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이 작품에서도 ‘투명 인간’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명확하게 제시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실험의 결과로 투명 인간이 되었고,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죠.
이야기는 한 낯선 남자가 ‘아이핑’이라는 마을에 도착하여 ‘마차와 말’이라는 여인숙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합니다. 여주인 홀 부인은 매우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기에 아이핑에서 숙박하는 손님은 매우 드물고, 더구나 비싼 숙박료를 흥정 없이 바로 지불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들어와서도 눈에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코트를 벗지도 않고 있었지요.
그는 장갑 낀 손을 등 뒤에서 맞잡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홀 부인은 아직도 그의 어깨 위에 흩뿌려진 눈이 녹아서 카펫에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모자와 외투를 부엌에서 뽀송뽀송하게 말려 드릴까요 」 홀 부인이 물었다.
「아니, 괜찮소.」 손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홀 부인은 손님의 대답을 들었는지 확실치 않아서, 질문을 되풀이하려고 했다.
그때 손님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입고 있는 게 더 좋소.」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홀 부인은 그가 곁창이 달린 커다란 푸른색 안경을 쓰고 외투 깃을 덮는 텁수룩한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어서 두 볼만이 아니라 얼굴 전체가 완전히 가려진 것을 알아차렸다.
기묘하죠. 실내에선 당연히 모자와 외투를 벗는 것이 예의이면서 상식이지만, 이 낯선 남자는 그러지 않으니까요. 또한 객실에 들어선 이 남자는 햇빛을 극도로 싫어하고, 가능한 방해받지 않았으면 한다는 뉘앙스를 내비칩니다. 게다가 곧 그 남자 앞으로 도착한 수많은 유리병은 이 남자에 대한 소문을 증폭시킵니다. 넓은 도시에서야 누가 오고 누가 가건 신경도 쓰지 않지만, 아이핑은 매우 작은 마을이었고,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남자의 여러 면모가 매우 낯설기 때문이었죠.
그렇지만 홀 부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 낯선 남자가 이름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말이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가 돈을 제때에 잘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비용만 잘 지불한다면 홀 부인은 그가 누구든 방 안에서 뭘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지요.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좀 다릅니다. 마을 주민들이 보기에 이 남자는 매우 비사교적이고, 특히 꽁꽁 싸매고 다니는 모습은 뭔가 불쾌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소문이 돌기 시작하지요. 먼저 가장 흔한 추리. 범죄자일 것이라는 의견. 혹은 피부가 흑백이 어우러진 사람이라는 의견. 아니면 그냥 이 낯선 사내는 무해한 미치광이라는 의견까지 다양한 소문이 나돕니다. 물론 대부분의 소문이라는 게 그렇듯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은 없지요. 이 낯선 남자와 면담을 가진 커스가 창백해진 얼굴로 사제관에 달려와 번팅 씨에게 이상한 점을 이야기해도 번팅 씨는 믿지 않습니다. 그게 너무나 터무니없는 소리였으니까요.
「내가 소맷부리를 때렸을 때……. 분명히 말하지만, 그건 팔을 때렸을 때의 느낌과 똑같았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팔이 없었단 말입니다! 팔은커녕 팔의 그림자도 없었다고요!」
번팅 씨는 그 말을 곰곰 생각했다. 그러고는 미심쩍은 눈으로 커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놀라운 이야기군요.」 그는 매우 신중하고 진지해 보였다. 번팅 씨는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처럼 힘주어 말했다. 「정말로 놀라운 이야기예요.」
당연히 믿기 힘들지만 이 낯선 남자는 정말 투명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투명 인간이라 하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지요. 이 낯선 남자가 돈이 떨어져 방세를 내지 못하기 전까지요. 그리고 얼마 안 가 사제관에 도둑이 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돈이 없다던 남자는 갑자기 돈을 지불하지요. 의심이 갈만한 상황입니다. 순경이 들이닥치자 낯선 남자는 결국 자신이 투명 인간임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순순히 끌려가지는 않습니다. 옷을 죄다 벗어 버리고 투명 인간이 되어 달아나버리죠.
남자는 무사히 도망을 쳤지만, 문제는 그대로 달아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투명 인간의 비밀이 담긴 자신의 비망록이 그대로 숙소에 남아있었기 때문이죠. 다른 것은 몰라도 비망록만큼은 확보해야 했습니다. 일단 상황이 진정되도록 도망친 투명 인간은 2.5킬로미터쯤 떨어진 도랑에 있는 마블이라는 사람을 발견하고, 이 사람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멈추었어. 나는 말했지. <여기에 나처럼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가 있구나. 이자야말로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돌아서서 너에게 다가갔어. 그리고…….」
「맙소사! 하지만 나는 지금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어.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거지? 투명 인간!」
「옷과 거처를 구해야 하는데, 그걸 도와주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다른 물건들도. 내 물건들은 아주 먼 곳에 놔두고 왔거든. 네가 도와주지 않겠다면…… 좋아! 하지만 도와줄 거야. 도와주어야 돼!」
거의 협박입니다. 투명 인간은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마블 씨에게 해코지할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이러니 일이 매끄럽게 흘러갈 리가 없죠. 처음에 마블 씨는 두려움에 투명 인간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지만, 언제나 도망갈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결국 투명 인간을 따돌리고 순경들에게 도움을 구하죠. 이에 투명 인간은 격분합니다. 마블 씨가 자신의 소중한 비망록까지 들고 갔으니까요. 그리고 투명 인간은 마블 씨를 좇는 동안 순경들과 부딪히고 부상을 당합니다. 아무리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도 맨몸인 투명 인간이 여러 명을 상대하여 무사할 수는 없었죠.
투명 인간은 몰래 어떤 집에 들어갑니다. 상처를 치료하고, 먹고 잘 곳을 구하기 위해서였죠. 우연히도 이 집은 켐프 박사의 집으로, 켐프와 투명 인간은 대학 동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투명 인간은 자신의 정체를 켐프에게 밝힙니다. 다소 거친 방법이지만요.
「소리 지르면 얼굴을 때리겠어.」 투명 인간이 박사의 입에서 시트를 빼내면서 말했다. 「나는 투명 인간이야. 어리석은 장난도 아니고 마술도 아니야. 나는 정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이란 말이야. 그리고 자네 도움이 필요해. 자네를 해치고 싶지는 않지만, 자네가 미친 촌뜨기처럼 나오면 해칠 수밖에 없어.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나, 켐프?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그리핀을 」
투명 인간의 이름은 그리핀입니다. 그는 빛에 매료되었었고, 투명 인간에 대한 연구를 했었죠. 그리핀은 켐프에게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을 말합니다. 어떻게 연구를 했었고, 어쩌다가 자신이 투명 인간이 되고 말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켐프는 처음에 그리핀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자신의 침실을 내어줍니다. 그리고 그리핀의 이야기를 들어주죠. 하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가관입니다. 그리핀이 저지른 일들은 방화, 강도, 도둑질 등이었으니까요.
「그놈은 눈에 보이지 않아!」 그는 중얼거렸다. 「기사를 보면 분노가 광기로 악화되는 것 같아! 놈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무슨 짓을 저지를지! 그런데 그놈이 지금 위층에 있어. 공기처럼 자유롭게.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건 배신행위가 될까? 예를 들어 내가……. 아, 아니야.」
그리핀의 행동과 그 안에 담긴 광기를 보며 켐프는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이후 켐프의 선택으로 그리핀은 극심한 분노에 휩싸이고 상황은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켐프의 선택이 너무 섣부른 판단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리핀이 이후에 하는 말들을 보면 더욱 그렇죠.
「그런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살인이야, 켐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살인이라고 」 켐프가 되풀이했다. 「이봐, 그리핀. 나는 자네의 계획을 듣고 있을 뿐, 동의하는 건 아니야. 그 점을 명심하게. 그런데 왜 살인을 해야 하지 」
「악의적이고 무자비한 살인이 아니라, 현명하고 신중한 살해일세. 문제는 투명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그 투명 인간은 지금 <공포 정치>를 확립해야 해. 그래, 물론 깜짝 놀랄만한 일이지.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공포 정치. 투명 인간은 버독 같은 도시를 점령해서 사람들을 겁먹게 하고 지배해야 돼. 그리고 명령을 내려야 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은 수천 가지나 되지. 종이쪽지를 문 밑으로 밀어 넣기만 해도 충분할 거야. 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조리 죽여야 해. 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보호하려 하는 자도 모조리 죽여야 해.」
자. 이제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갈까요? 결말은 여기서 밝히지 않겠습니다. 혹여나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말이지요.
항상 무의식적으로 투명 인간이 된다는 상상은 언제나 즐겁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웰스의 『투명 인간』을 읽고 나니 생각이 바뀌더군요. 투명 인간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외로운지 그리핀의 이야기는 몸서리를 치게 만듭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투명 인간이 돼어 해보고 싶은 일들 대부분은 범죄 가능성이 높네요.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도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제가 악한 인간이기에 그런 것은 아닌데 말이죠. 이래저래 유쾌하고 행복한 투명 인간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떠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 혹 생각이 나신다면 제게도 조금 귀띔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역시나 『투명 인간』에서도 웰스의 상상력은 놀랍기만 합니다. 막연한 상상을 그럴듯하게 현실에 적용해보고 생각해보게 만들지요. 물론 투명 인간에 대해 다르게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핀은 확실히 너무 성질이 변덕스럽고 극단적인 면모가 있지요. 다른 과정, 다른 결말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래도 이렇게 한번 가정해본다는 것, 그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여러분이 투명 인간이 된다면 어떨까요? 재미있을까요? 아니면 정말 힘들까요? 잠깐 한번 상상해보세요. 뜬금없지만 이런 상상을 서로 나눠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되지 않을까요
어린 시절 한 번쯤 생각해봤을 '투명 인간'. '투명 인간'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내 머리를 스친 것은 학창시절의 수업시간이었다. 지금은 어떤 과목의 무슨 수업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내가 투명 인간이라면?'에 대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내용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여러 의견들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던 것은 '은행에 가서 돈을 가지고 나온다.'와 '여탕에 들어가 훔쳐본다.'였다. 나도 '은행에서 돈을 가지고 나온다.'라는 의견을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우리는 비현실적인 '투명 인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점만을 생각하고 너도 나도 의견을 내느라 바빴다. '투명 인간'한테는 어떠한 약점도 없었고 불가시성이 가져다줄 힘과 자유는 상상만으로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투명 인간』은 이러한 행복과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인격의 분열과 이중인격 문제를 다룬다는『투명 인간』. 만약 그 때 내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투명 인간』을 이미 읽었더라면 다른 의견을 냈을까? 글쎄...어떤 대답을 했을까?
투명 인간은 원래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가난한 과학자였던 그리핀은 초라하고 가난한 생활에서 벗어나 명성을 얻을 생각으로 자신의 연구를 비밀에 부치고 혼자 연구를 진행한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면서 연구비 때문에 아버지의 돈을 훔쳐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럼에도 그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슬픔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 후에 연구를 위해 고양이한테 생체실험을 한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도 투명 인간으로 만들어버리고 자신의 연구가 노출될 것을 걱정해 연구를 진행했던 하숙집에 불을 지르고 거리로 나선다. 그의 만행은 점점 강도가 높아지면서 협박과 폭행에서 머무르지 않고 살인을 하기까지 이르고 공포 정치를 시작하려 한다. 이러한 말도 안되는 계획은 투명 인간이 동업자로 생각한 켐프와 마을사람들한테 저지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항상 주인공들의 연애에 중점을 맞추거나, 주인공을 내게 대입시켜 읽는다.『투명 인간』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투명 인간이 마을 사람들의 관심에 정체가 들통날까 전전긍긍하던 모습도, 과학자 그리핀이 자신의 연구를 다른 이들과 공적을 나눠갖고 싶어하지 않았던 마음도, 서둘러 연구를 완성해서 투명 인간에서 인간 그리핀으로 돌아가려 애쓰는 것도 이해할 수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그의 인생을 동정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마음을 의지할 부모도 친구도 없었고, 재산도, 사회적 지위도 없었다. 붕대로 머리부터 얼굴까지 온몸을 꽁꽁 싸맨 미스터리한 남자의 등장에 홀부인을 시작으로 많은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갖는다. 별난 외모를 보고 의심을 품고 관찰하려 한다.『투명 인간』을 통해 소외되고 핍박받는 <소수자>를 바라보는 우리 모두의 잔인성을 들여다본다는 평처럼 '투명 인간'이라는 연구를 통해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었을 사내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고 야망을 키운게 한건 사람들의 공포와 혐오가 만들어냈던 건 아니었을까?
마을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투명 인간'이 죽음으로서 모든 이야기가 막을 내린 듯하다. 하지만 끊임없이 비망록을 찾아다니고 있는 켐프와 비망록에 대해 열심히 캐묻고 다니는 애다이, 지금은 포트스트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여인숙의 주인으로 있는 마블 씨가 몰래 비밀을 캐내고 있는 장면은 '투명 인간'의 공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투명 인간'은 죽었지만 또 다른 '투명 인간'이 곧 나타날 것이다.
이 에필로그가 나한테는『투명 인간』에서 가장 무서운 장면이었다.
마지막으로 세계문학, 고전소설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보통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그만큼 널리 읽히고 있고 몇 년에 걸쳐 인정받아 온 소설이라는 점에서는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나한테는 어쩐지 재미없고 어렵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한 선입견으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접했던 세계문학과 고전소설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이번에 읽은『투명 인간』도 그 중 하나이다. 세계문학이라는 이유로 책을 들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막상 첫 페이지를 넘기고보니 걱정과 달리 흥미롭게 읽어나갔지만 아마 선입견을 없애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다. 그래도 이번에 세계문학 중에도 재미있는 소설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 이 리뷰는 땡스기브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그 낯선 사내는 2월 어느 겨울날 아침 일찍, 살을 에는 바람과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도착했다. 그것은 그해의 마지막 눈이었다. 사내는 두꺼운 장갑을 낀 손에 작은 검정색 여행 가방을 들고 브램블허스트 역에서 걸어서 언덕을 넘어왔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꽁꽁 싸맸고, 부드러운 펠트 모자의 챙은 반짝이는 코끝만 빼고는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어깨와 가슴팍에는 눈이 쌓였고, 들고 있는 가방에도 하얀 눈이 얼룩져 있었다.
첫 문장은 그 소설을 계속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첫번째 관문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그 다음 문장을, 다음 페이지를 반드시 읽게 만드는 첫 문장은 모든 작가가 고심하는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1897년에 출간되어 2015년 기준으로 118년이 되는 본서 <투명 인간>의 첫 문장은 현대 스릴러 소설의 첫 문장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하데스의 투명 투구가 등장할 정도로 '투명 인간'은 아마 세상에 자리 잡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간을 매혹시키는 소재였다. 지금도 만약 투명 인간이 된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은 여기저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얘깃거리가 아닌가. 하지만 실제 투명 인간이 된다면 이만저만한 불편이 아니다.
그래서 지난 1월 눈보라가 시작되었을 때, 춥고 지치고 아프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한 나는,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네. 나는 비바람을 피할 집도 없고, 실험 기구도 없고,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믿을 만한 사람도 없었지. (중략) 내 유일한 목적은 눈보라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 몸을 감싸서 따뜻하게 보호하는 것이었어. 그러고 나면 뭔가 계획을 세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투명 인간인 나에게도 런던의 집들은 빗장과 자물쇠가 채워진 난공불락의 요새였다네.
실제로 투명 인간이 된다면 망막까지도 투명해지기 때문에 장님이 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저자 조지 웰스는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쓰기 보다는 '투명 인간'이 된 사람에게 일어나는 타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폴 버호겐 감독의 2000년 작 영화 "Hollow Man"이나 만화 <데스노트>와 동일한 질문을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들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조지 웰스도 그렇고 이 소재를 다룬 많은 소설과 영화들은 결국 범죄로 빠져들 것이라는 입장에 서는데, 억눌린 분노와 스트레스가 넘쳐 나는 나라에서라면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라는 암울한 상상도 해본다.
악의적이고 무자비한 살인이 아니라, 현명하고 신중한 살해일세. 문제는 투명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그 투명 인간은 지금 <공포 정치>를 확립해야 해. 그래, 물론 깜짝 놀랄만한 일이지.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공포 정치. 투명 인간은 버독 같은 도시를 점령해서 사람들을 겁먹게 하고 지배해야 돼. 그리고 명령을 내려야 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은 수천 가지나 되지. 종이쪽지를 문 밑으로 밀어 넣기만 해도 충분할 거야. 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조리 죽여야 해. 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보호하려 하는 자도 모조리 죽여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