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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왜 자꾸 죽는다는 말씀을 하십니까? 살아야 합니다. 끝까지 한번 잘 살아야지요!
맞아, 내가 왜 자꾸 그런 소리를 되풀이하는 거지? 인생이 왜 그렇게 짧은 건지 나는 정말 모르겠어. 아마 권태를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겠지. 인생이란 것도 역시 창조주의 예술 작품의 하나여서, 뿌쉬낀의 시처럼 흠잡을 데 없는 절대적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야. 아무튼 간결하다는 것은 예술의 첫째 조건이지. 그렇지만 권태를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는 좀 더 살게 해주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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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당한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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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하는 것인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가 이 사람은 왜 만났는가 저기는 또 왜 가는가
뭐하는 것인가 왜 이러는 것인가 이 사람은 또 누구인가 아까 그 사람은 어디갔는가
혼돈의 미성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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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시대, 이것은 인류의 꿈 중에서도 가장 실현 불가능한 꿈이지. 하지만 사람들은 바로 그 꿈을 위해서 온 생애와 모든 열정을 바쳐 왔고, 또한 그것을 위해 예언자들은 기꺼이 죽었고 계속해서 죽음을 당했다. 인간은 그런 이념 없이 살기를 원치 않았고, 또 그대로 죽을 수도 없었지! 나는 그런 모든 인식을 그 꿈속에서 직접 체험했다. 꿈에서 깨어나 눈물에 젖은 눈을 떴을 때, 바위와 바다, 그리고 사라져 가는 태양의 여명, 그러한 모든 것이 마치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때 느꼈던 그 벅찬 감동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 지금까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이 내 가슴 한쪽을 뚫고 지나가, 서늘한 아픔이 느껴질 정도였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 아무 것도 모르고 덜컥 집어들어서 읽은 책이었고,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물을 얻은 책이다. 특히 입체적인 드라마가 돋보인다.
처음 볼 때에는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장황할 정도의 긴 문장과 어려운 러시아 이름 때문에 조금 적응하기 함들다. 하지만 막상 읽다 보면 어려워 보이던 부분을 어느새 저절로 적응해서 읽어나가게 되는 책이다. 명작이라는 말 정도로는 오히려 부족할 정도로, 더없이 멋진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