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알 수 없는 중앙아시아의 노란 스텝 지대 사리-오제끼 위를 낙타에 앉은 한 남자와 두 대의 덜컹거리는 트랙터, 녹슨 빛깔의 털을 가진 개 한 마리로 이루어진, 작은 행렬이 지나고 있다. 이야기는 거기에서 시작된다. 부란니 예지게이는 일생의 은인이자 친구였던 까잔갑을 잃고 그를 묻기 위해 길을 나선다. 까잔갑의 유언대로 아나-베이뜨 묘지에 돌려보내기 위해 아끼는 낙타인 까라나르와 사막을 가로지르는 동안 예지게이는 그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삶이 산산이 부서지기 직전의 상이군인이었던 그가 어떻게 까잔갑을 만나 간이역 기술자로 살아갈 수 있었고 까라나르를 얻을 수 있었는지, 좋은 친구였던 아부딸리브 가족과의 행복했던 한때와 그를 잃은 후의 상처까지 예지게이의 전 생애가 그가 가로지르는 사막 위에 담담하게 펼쳐진다.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와 노인, 그 황량하고 메마른 풍경은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아름다움이란 건 분명 근사한 비율과 조화의 부합처럼 딱 떨어지는 무엇임이 분명한데 그 사막을 떠올리는 순간 난 아름다움을 느꼈던 것 같다. ‘미’라는 것이 예쁘거나 그럴듯하지 않아도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마주 보고 서려면 자기 영혼의 강도를 걸어야 할 만큼 광대한 사막과 그 사막에 어울리는 극한의 기후는 어딘지 모르게 숭고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경외심이나 전율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숭고미는 메마르고 척박한 사막만큼이나 화려한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서 결국 예지게이는 까잔갑을 아나-베이뜨에 묻지 못한다. 아나-베이뜨로 가는 길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채로 막혀 있고 예지게이는 아나-베이뜨가 철폐되고 새로운 소도시가 건설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루 동안 낙타를 타고 온 게 모두 헛수고가 되고 예지게이는 절망한다. 아나-베이뜨가 아니라 말라꿈지샵 한가운데에서 까잔갑을 묻으면서 흘리는 예지게이는 눈물은 그래서 처량하고 먹먹했다. 망연한 채로 철조망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예지게이의 뒷모습이 헛헛했지만 이게 이 사리-오제끼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마음이 놓였다. 까잔갑을 묻고 돌아오는 길에 예지게이는 사비찬에게 함께 아나-베이뜨 묘지를 지키자고 권유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한다. 그러자 그는 조용히 낙타를 돌려 홀로 아나-베이뜨로 돌아간다. <백년보다 긴 하루>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숭고미는 이 지점에서 절정에 이른다. 사막의 넓이에서 시작된 이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결국은 예지게이의 성실한 삶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건 예지게이가 만꾸르뜨 전설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하는 전통적 가치의 수호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평생을 걸쳐 보여주는 그의 고집스러운 우직함, 그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 때문이다. 머리가 하얗게 탈색될 때까지 햇빛 아래에서 일을 하고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지만 고백도 못한 채로 떠나보내고 속으로 울부짖는 고지식함, 죽은 아부딸리브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며 까잔갑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결국 아나-베이뜨로 돌아가는 진실함은 사리-오제끼의 사막만큼이나 압도적이었다.
묘하게도 책을 읽는 내내 이러한 숭고미에 압도당하는 동시에 위로받았다. 마치 타인의 엄청난 불행 앞에서 내 사소한 고민이 말을 꺼내기도 쑥스러운, 별 것 아닌 것으로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예지게이와 까라나르의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사막을 밟아 나가다보니 어느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땅을 디디는 내 발자국 소리와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을 때 보이는 별빛이 고요하고 따뜻했다. 그렇게 한없이 걸어 나가다 보니 아무도 위로해주거나 토닥여주지 않았는데도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지녀온 온갖 굴곡이 그들의 평온한 발걸음으로 차츰 평평하게 골라지고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백년보다 긴 하루>는 책장에 꽂혀 있지만 사막, 그리고 노인과 낙타는 사라지지 않았다.
내 마음 속 광대한 불모지, 사리-오제끼 위에는 한 줄기 가는 철도가 끝없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곳에 아마도 예지게이와 까라나르가 별을 친구 삼아 언제까지나 묵묵히 뚜벅 뚜벅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중앙아시아를 다룬 작품은 처음 읽어본다.
-여기서 기차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간다..
철길 양편에는 널따랗게 펼쳐진 광대한 불모지-중앙아시아의 노란 스테 지대, 사리-오제끼가 놓여있다.
여기서는 모든 거리가 철도로 재어진다. 그리니치 본초 자오선으로부터 경도가 정해지듯..
그리고 기차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