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칸은 영국 식민지 당국에 의해 온 가족이 몰살당하고 왕좌를 빼앗긴 후, 말레이시아 해의 해적으로 활약하며 약자와 원주민을 돕고 영국, 스페인 등 강대국 함대를 괴롭혀 명성과 권력, 부를 얻어 왔다. 베일에 가려진 '라부안의 진주'라고 불리는 아가씨를 만나기 위해 허리케인을 무릅쓰고 감행한 항해에서 배도 부하도 잃고 부상을 당하지만, 기적처럼 영국 해군 대령에게 구조되어 치료를 받고 조카딸인 '라부안의 진주' 마리안나를 만나 말레이 왕자 행세로 위기를 모면한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산도칸은 정체가 탄로나자 부하들을 이끌고 구하러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탈출한다.
'몸프라쳄의 호랑이'라는 명성으로 강대국 함대와 술탄까지 공포에 떨게 하는 해적이면서 원주민과 부하들에게 무한한 충성과 신뢰를 얻는 지도자인 산도칸이 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칭찬을 받는 천사를 아내로 쟁취(?)하는 모험담인 이 책은 산도칸과 절친 야네스, 해적들이 육지와 바다에서 겪는 다양한 위기와 사건, 그걸 극복하는 용기와 기지, 계략을 다채롭게 보여주며 자칫 단순할 수 있는 스토리를 풍성하게 만든다.
산도칸의 사랑 찾기가 결국은 해적단의 해체로 이어질 위기를 불러오지만, 그의 탓을 하기는커녕 해적이든 아니든 산도칸과 그의 아내와 함께하길 원하며 어떤 상황에서든 산도칸의 결정을 수용하고 기꺼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친구 야네스와 그 부하들의 의리에 놀라게 된다.
힘들게 복수해 온 세월과 명성, 권력을 내려놓으려는 산도칸에게 아무도 고작 사랑 때문에 이러냐는 얘기를 하지 않는 것도 신선하다면 신선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아무래도 작가가 가진 낭만적인 면모가 드러난 부분이 아닌가 싶었다. 수많은 모험 소설을 쓴 작가 에밀리오 살가리는 원래 선장 양성 학교를 다니다가 성적 부진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만두기는 했지만 그가 한 공부가 작품을 위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 루이스 세풀베다 등의 유명 작가부터 체 게바라까지 애독했다는 그의 작품과는 별개로 살가리는 평생 가난과 빚에 시달리다가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복잡하거나 알듯 말듯 미묘한 심리 묘사나 갈등 없이 결정하면 진격하고 행동하는 등장인물들과 사건을 중심으로 막힘없이 진행되는 스타일 탓에 쭉쭉 읽어갈 수 있는데 그 덕에 미흡하고 교육적인 측면을 소홀히 했다고 평론가와 교육자들의 외면을 받았다고 한다. 작품이라고 하는 것에는 정답이 없는 법인데 소위 공신력 있는 사람들의 평가로 인해 작가가 겪었을 고통이 안쓰러웠다.
지금은 소수의 평가자들보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온라인 환경이 있어서 정말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할 수 있는 거 같다. 물론 여전히 공신력 있는 평가자들은 존재하고 있지만, 그 평가에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이 보고 싶은, 끌리는 작품을 고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죽은 다음에 작품이 재조명되고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져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지만 그 덕에 나도 이렇게 이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나름 다행인 걸로... 산도칸 시리즈는 총 11편이 있다고 한다. 『산도칸 몸프라쳄의 호랑이들』은 두 번째로 발표한 작품이다. 산도칸이 등장하지 않은 해적 시리즈들도 있으니 고뇌하는 주인공보다 행동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모험소설을 읽고 싶다면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