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뜨루가츠끼 형제가 20세기 러시아 최고의 SF작가라는 설명이 없었다면 나는 이 책을 감시와 지배하의 소련 사회를 풍자한 소설쯤으로 여겼을 지도 모른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우주선도 없고 휘황찬란한 첨단 과학도 등장하지 않는다. 2백 년 만에 찾아온 폭염 속 레닌그라드의 한 아파트 안에서 5층과 8층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할 뿐이다. 물론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수학자, 언어학자, 물리학자, 공학자, 생물학자, 천문학자들이니 그들의 연구 주제에 대해 깊숙이 들어간다면 아마도 우주선이 휙휙 날아다니고 황당한 외계생물이 튀어나오는 SF쪽으로 도망가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다행히 깊숙하게 파고 들어가지 않고 다만 지금 그들의 연구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발표를 앞두고 있으며 그 연구의 결과물은 10억 년쯤 후에는 다른 연구들과 결합하여 지구의 종말에 영향을 끼칠 지도 모를 엄청난 발견에 해당된다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으면 된다.
폭염으로 도시 전체가 이글거리는 레닌그라드의 한 아파트에서 천문학자 말랴노프는 자신의 연구 과제의 결정적인 공식 하나가 명료하게 떠오른다. 차분하게 이 공식을 정리해 보고자 하지만 그 순간부터 전화벨은 쉴새없이 울려대고 식료품점에서는 주문하지도 않은 물건들이 배달되어 오고 아내의 친구라는 매력적인 여성도 짐가방을 들고 쳐들어와 은근하게 유혹하고 이웃집 남자 스네고보이도 방문해서 함께 어울려 술파티를 벌이게 된다. 이튿날 아침, 며칠 머물 예정이라던 아내의 친구는 흔적없이 사라져 버렸고 지난밤 말랴노프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하던 물리학자 스네고보이는 시체로 발견되고 수사관들은 말랴노프에게 살인의 혐의를 추궁하기 위해 방문을 한다. 일이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가는 상황에서 오랜 친구인 생물학자 바인가르텐과 정밀 공학자 자하르가 말랴노프의 아파트를 찾아온다. 이들의 친구이면서 지적이고 이성적인 8층에 사는 수학자 베체로프스키와 의문의 언어학자 글루호프, 이렇게 모여서 이들은 각자의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이들 모두는 심지어 냉철하고 차분해 보이는 베체로프스키 마저도 지금 알 수없는 존재들에게서 협박과 회유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노벨상을 안겨줄 일생일대의 업적이 될 수 있을 연구부터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 연구까지 이들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업을 중지하라는 협박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 높은 지위와 경제적인 안위를 약속하기도 하고 예전에 사귀던 여자들이 한꺼번에 나타나기도 하고 연구과제에 손을 대기만 하면 끔찍한 두통에 시달리기도 하고 말랴노프처럼 살인자로 추궁을 당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스네고보이 또한 이들의 특별관리 대상 명단에 있던 학자였으니 분명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권총자살을 했을 거라는 결론을 내린다. 자, 이들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학자로서의 자존심을 지킬 것이냐 아니면 굴복하고 치욕스럽게 비굴하게 살아가느냐.
그럼 이들을 위협하는 이 전지전능한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이 존재는 인류의 모든 과학적 업적을 감시하고 과학기술의 진보가 파괴의 목적에 이용되지 못하도록 통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 당장은 위험해 보이지 않는 말랴노프를 비롯한 이 학자들의 연구를 중단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전지전능한 존재에 ‘항상성(恒常性) 우주’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미지의 4차원 문명’ 우주가 자기방어 또는 자정장치를 작동시키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의 연구가 가져올 진보를 통제하기로 결정한 항상성 우주의 절대적인 힘 앞에 굴복할 것인가 학문의 미래를 위해 저항할 것인가.
잘 풀리던 일에 갑자기 제동이 걸린다거나 열정적으로 매달리던 것에 이유 없이 흥미를 잃게 되는 것처럼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어긋나는 모든 일의 해답을 ‘항상성 우주’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리뷰를 쓰는 동안 우리 집을 찾아온 많은 방문객들과 한시도 쉬지 않고 종알거리는 아들을 보면서 ‘항상성 우주’의 방해를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내 리뷰가 우주의 종말에 영향을 끼칠 만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걸까? 그래도 리뷰를 마쳤으니 그 위험성이 사라진걸까?^^
1980년대 청소년 추천도서라고 쓰여있다. 그런데 읽어보면,, 읽어도 도대체 몰입하기가 힘들긴 한데, 대체 무슨내용인지 파악하기 힘든 작품.
참 당시 80년대 청소년들은 이렇게 수준이 높았나? 생각이 들정도.
처음부터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이 있고, 처음엔 힘들지만 어느정도 속도가 붙으면 재미있게 읽어낼
수 있는 책도 있고, 처음엔 재미있었는데 갈수록 흐리멍덩해지는 책도 있고,
이 책처럼 처음부터 집중하기 힘들고 후반으로 갈수록 던져버리고 싶은 책도 있다.
마치 예전에 '귄터 그라스'의 '넙치'를 읽었을때나 '지그프리드 렌츠'의 '독일어 수업' 을 읽을때의 기분
과 흡사할만큼 읽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