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빼고서는 서양에서 문학에 대해 논할 수 없다. 성경, 그리스로마신화 등과 함께 꼭 읽어야하는 책이 바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다. 대부분 햄릿, 맥베스, 오셀로, 리어왕, 한여름 밤의 꿈, 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희곡은 많이 읽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소네트집(Sonnets 연작시집)을 읽은 사람들은 많지 않을 거라 본다. 우선 연작 시집인 만큼 시적인 표현법이 많이 쓰이고 숨겨진 의미나 중의적 의미도 곳곳에 숨어 있어 희곡처럼 술술 읽기가 쉽지 않다.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면 독서의 흐름이 끊기지 않는 수준에서 '각주'를 수시로 찾아봐야 이해가 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집>은 총 154편의 소네트로 이루어진 연작 시집으로 시인, 귀족 청년, 검은 여인으로 나타나는 궁정 인물들을 둘러싼 사랑과 갈등을 그린 내용으로 되어 있다. 성관계에 대한 노골적인 암시와 내용의 부도덕성으로 당시엔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걸작으로 손꼽힌다.
'소네트'라는 단어가 낯선 사람들도 있을텐데 소네트란 이탈리아어 소네토sonneto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래는 '작은 노래'를 뜻하는 의미였다고 한다. 이 소네트의 역사와 영국에서의 유행과정, 소네트로 유명한 다른 작가의 작품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 함축된 의미들 등에 대해서는 역자 해설에서 자세히 나와 있으니 꼭 함께 읽기를 바란다. 영문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이 부분을 제외하고 읽기가 힘들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당대의 다른 작가들과 달리 비밀에 싸여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영화나 다른 소설 등에서 다양한 인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셰익스피어는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는데도 그의 작품들은 아름다운 언어와 예술적인 감각으로 찬사를 받는다. <소네트집>의 헌사에 보면 W.H.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연구자들에게 지금까지도 수수께끼라고 한다. Mr.라고 당시 평민에게 붙이는 칭호가 붙었기 때문에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W.S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오식이라 보기도 한다는데 언젠가 이 비밀이 풀릴지 모르겠다.
<소네트집>에 나오는 표현은 아름답지만 아무래도 번역하다 보니 문학적으로 어색한 느낌이 종종 든다. content라는 영어 표현은 <그대가 스스로 안에 품고 있는 것>이고 자위행위라는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그런데 한글로 번역하다 보니 '정자'라고 되어 있다. 한국어에도 여러 의미를 동시에 표현하는 단어들이 있고 특히 시에서는 시적 허용과 함축, 중의적 의미 등이 쓰인다. 그러나 외국어 번역을 하면 1-1대응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생긴다. 한국 고시를 영문으로 해석한다면 얼마나 어려울까? 반대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소네트집>에서도 번역으로 인해 피할 수 없는 한계들이 있고 오래된 영어는 더더욱 그런 측면이 있다고 추측된다. 특히 번역된 시를 읽을 때, 영어와 영문학을 좀 더 공부해서 영어 원문을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하는 이유다. 그런 피치못한 한계를 감안했을 때 열린책들의 <소네트집>은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역자의 설명이 상세할 뿐 아니라 각주도 잘 되어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극작품들은 여러번 읽기도 했고 뮤지컬이나 연극 같은 형식으로도 많이 접했기 때문에 비교적 익숙했는데 소네트는 사실 거의 접해본 적이 없어서 구매를 좀 망설인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호기심이 더 강해서 구매했는데 다행히 윌리엄 셰익스피어 유명작 외에는 영문학에 대해 무지하다시피한 저 같은 독자들이 읽기에도 나쁘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번역도 그렇고 꼼꼼하게 주가 달려있어서 모르겠다 싶으면 보고 이해하고 이런 식이었어요. 숙련된 독자님들한테는 오히려 가독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저는 좋았습니다.
프롤로그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20번을 소개합니다.
"저기, 있잖아..." 옛날에 한 양성애자 국문학도 선배님께서 말을 건네왔습니다.
무슨 일이냐는 제 말에, 선배는 남성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을 더 많이 보고싶다면서 제게 도움을 요청하셨지요.
그때 머리가 어떻게 파바박 돌아갔는지, 저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가운데서 남성 동성애를 다룬 소네트가 있음을 바로 떠올리고는 문제의 20번 소네트를 보여줬습니다. 그러자 그 국문학도 선배님께서 동성애와 여성스러움을 엮었던 옛날 발상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소네트였다고 말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배경지식 - 소네트(A sonnet)란?
소네트는 '작은 노래'란 뜻을 지닌 이탈리아어 단어 소네토(Sonnetto)에서 유래한 영단어입니다. 지금의 이탈리아 지방에서 처음 생겨난 소네트는 서정시의 일종인데, 처음 생겨날때만해도 소규모의 서정시를 아우르던 소네트는 점차 남자와 여자의 낭만적인 사랑(특히 궁정 연애), 여성을 향한 남성의 찬사, 여자에게 배반당하고 멸시당하는 남자의 좌절과 분노등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잠시 문학 이론을 꺼내자면, 소네트는 정형시의 일종으로 엄격한 형식과 각운(각 행 끝에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놓아 운율등을 자아내는 기법)을 지켜가며 쓰는 시였습니다. 페트라르칸, 즉 이탈리아식 소네트의 경우는 총 14줄로써 4-4-3-3의 연으로 나눠지며, 각 행 끝마다 발음이 비슷하거나 같은 단어에 알파벳을 매기자면, abba abba cde cde의 각운을 띄었습니다. 하지만 이 페트라르칸 소네트가 영국에 전해졌을때, 영어는 이탈리아어와 많은 차이가 있던 언어였던만큼 형식이 바뀌게 되는데, 종래의 14줄 형식은 지켜졌지만 행이 4-4-4-2행으로 나뉘어졌으며 각운은 abab cdcd efef gg를 띄게 됩니다. 이를 셰익스피어리언 소네트라 부르며, 나머지 2행은 지금까지 노래한것을 정리하거나 예상치못한 함정반전카드를 꺼내고, 읽는 이들에게 기분좋은 통수를 치는데 할애됩니다.
배경지식 2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집
셰익스피어는 극작가이자 배우로서 열심히 활동하지만, 중간에 자신이 소속된 극장이 문을 닫는 참사가 벌어집니다. 그의 154편짜리 소네트집은 이때 쓰였으며, 이 소네트집에는 사실 두 가지 떡밥이 있습니다.
1. 이 소네트들의 유일한 아버지인 Mr. W.H는 누구인가?(어떤 평민이거나 Mr. W.S의 오자로 추정됨)
2. 시에 나오는 궁정 시인, 후원자이자 동성 애인인 젊은 귀족, 그리고 무엇보다 검은 여인은 누구인가?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셰익스피어 자신이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로 결론지어지는 상태입니다.)
떡밥 문제는 여기서 접고, 셰익스피어가 소네트를 쓰던 당시에는 자본주의가 막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시대의 변화가 일던 때였습니다. 소네트는 이제 일종의 '실험도구'가 되었으며, 셰익스피어는 사랑하는 여인을 여신처럼 비유하던 종래의 시풍을 비웃기도하고(소네트 130번) 심지어는 20번에서와같이 동성애까지 다루는, 그 당시로서는 정말 파격적인 소네트들을 써냈습니다. 당연히 이 소네트집은 셰익스피어 생전에는 큰 호응을 얻지도 못했고 인정을 받지도 못했지만, 셰익스피어 사후 재평가되면서 현대에 이르러 '뛰어난 감각의 성찬'이라는 평가까지 얻습니다. 이제 문제의 셰익스피어 소네트 20번을 소개합니다.
본문 1 - 원문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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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 읽으실때는 4-4-4-2로 끊어 읽으시면 됩니다. 시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성이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던 아주 불평등한 시절에, 남성이자 한 궁정 시인이 있었습니다. 이 시인을 후원하는 젊은 남성 귀족이 있었는데, 시인과 귀족은 서로 애인사이입니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정체를 알 길 없는 검은 여인을 흠모하는 양성애 기질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소네트 20번은 이 궁정 시인이 자신의 후원자이자 애인인 젊은 귀족에게 바치는 소네트입니다. 본문 2 - 20번 소네트 분석 - 여기서 으뜸가는 연인 그대는, 물론 자신을 후원하는 젊은 남성 귀족이요, 자신의 동성 애인입니다. 자연이 그 손으로 치장한 여인의 얼굴을 지녔다는것은, 그가 화장으로 여인처럼 꾸몄다는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여성스런 용모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대 빚어내던 자연이 그대에게 매료되어 한 가지 더했다는 부분은, 자연이 자신의 창조물에 반하여, 특혜를 베풀어 남성의 성기를 덧붙여줬다는 뜻입니다. 정리하자면, 마치 여성스런 용모와 마음으로, 그러나 남자로 태어나서 남자와 여자를 모두 놀라게 하고 반하게 하는 자신의 후원자이자 애인에게 찬사를 바치면서 시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만약 자연이 자신의 후원자에게 반하여 특혜를 베풀어서 남성의 성기를 덧붙이지 않았더라면 여인으로 태어나 자신과 정식으로 맺어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나머지 두 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차피 후원자는 시인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여인들과도 관계를 가질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관계는 어디까지나 사랑 없는 관계이며, 사랑이 부재하는 즐거움만이 존재할뿐입니다. 지금 이 후원자의 마음이자 사랑을 차지하고있는 사람은 결국 이 시를 쓰는 궁정 시인 자신입니다. 결론과 정리 이번 리뷰에서 저는 남성 동성애를 다룬 셰익스피어 소네트 20번이자 유명 작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다뤘습니다. 소네트는 작은 노래를 뜻하는 이탈리아단어 소네토에서 유래한 영단어이며, 처음에는 소규모 서정시 전반을 아우르다 상류층들의 궁정 연애, 여성을 향한 남성의 찬사, 배반당하고 버려진 남자의 좌절등을 다루는 시를 뜻하게 되었지만, 후에는 '형식이자 장치'의 일종으로서 점차 다양한 내용을 다루기 시작합니다. 이때 셰익스피어는 소네트 형식을 통해 여인을 향한 찬사가 아닌 악담을 퍼붓기도하고(130번), 그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주제인 남성 동성애(이 문제의 20번)를 다루기도 했습니다. 시에서 남자인 궁정 시인은 자신을 후원해주는 젊은 남자 귀족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이 남자 귀족은 아름답고 여성스런 용모와 마음씨로 남자와 여자를 모두 놀라게하며,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애인이 여자로 태어났으면 정식으로 맺어졌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지만, 어차피 그의 마음과 사랑은 자신의 것이고 그가 여인들과 관계를 갖는다한들 남는것은 사랑이 부재하는 관계와 즐거움뿐이라는 문구로 자신을 달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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