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에 [시라노 : 연애조작단]이라는 영화 개봉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연애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대행사를 만들어 사랑으로 이어준다는 내용이었는데, 내용보다는 오히려 '시라노'라는 제목에 더욱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라노 에이전시'는 도대체 어디에서 착안하여 그러한 이름을 붙인 것이었을까? 이러한 의문은 우연히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중 하나인 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를 통하여 비로소 해소될 수 있었다. 과연 그렇다면 [시라노]는 과연 어떤 부분 때문에 영화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뮤지컬 또는 연극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책 표지의 인물을 바라보면 곧바로 그의 코가 비정상적으로 크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게 된다. 마치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해서 코가 길어진 것과 같은 이 모습은 이 작품의 주인공인 시라노를 형상화한 것이다. 뛰어난 문학적인 재능과 더불어 훌륭한 칼솜씨를 동시에 지닌 이 남자 시라노는 아쉽게도 코가 유난히 컸기 때문에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던 여자에게 고백을 하지 못한다. 저자 에드몽 로스탕은 17세기 프랑스의 실존인물이었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라는 인물을 그의 작품에서 모티브로 삼았는데, 실제 모든 방면에서 완벽했던 그에게 엄청난 코를 선사함으로써 이 작품은 시라노의 실제 삶과 비슷하면서도 또다른 이야기로 탄생된 것이다. 사실 이 실존인물은 알렉산드르 뒤마의 그 유명한 [삼총사]의 주인공인 달타냥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더구나 [시라노]에서는 달타냥과의 짧은 만남도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1640년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5막으로 구성된 희곡이다. 대략 루이 13세 후반의 치세이며 30년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점이기에 [시라노]는 그러한 시기의 생활상은 물론 정치, 사회적인 면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져볼 수 있다. 더구나 주인공인 시라노는 비롯 비정상적인 코로 인하여 추남처럼 보이지만, 글과 검술에 모두 능하다는 점은 이 작품이 그러한 복합적인 상황을 모두 보여주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로도 느껴질 수 있게 된다. 사실 이 작품의 플롯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자신의 사촌인 록산에 대해 사랑을 느끼지만, 자신의 외모에 한계를 갖고 있는 시라노와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크리스티앙의 뛰어난 외모를 보고 한 눈에 반하는 록산, 역시나 록산의 아름다움에 반하지만, 정작 그녀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문학적 기질은 전무한 크리스티앙. 이들의 삼각관계가 바로 이 작품의 주요 플롯이다.
하지만 통상의 삼각관계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시라노]는 기존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와 유쾌함을 추가로 전해준다.
크리스티앙 : (절망에 빠져) 나에겐 능변이 필요해
시라노 : (느닷없이) 내가 빌려 주지! 자넨 나에게 정복자의 신체적 매력을 빌려 주게. 우리 둘이 함께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보세!
(중략)
시라노 : 록산은 결코 실망하지 않을 걸세! 말해 보게. 우리 둘이 함께 그녀를 유혹한다면? 내가 불어넣는 영혼이 내 물소가죽 저고리에서 수놓인 자네의 저고리로 지나가는 것을 느껴 보게나!
- p. 109 中에서 -
당시 귀족들의 연애는 문학적인 기질과 더불어 사랑을 속삭이는 말솜씨가 필수였는데, 크리스티앙은 그러한 것을 전혀 갖추지 못하였기에 록산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반대로 시라노는 그러한 재능을 차고 넘칠 정도로 갖고 있었지만, 정작 외모로 인하여 아예 사촌인 록산에게 사랑을 표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로 연적(戀敵)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라노는 서로의 부족분을 채우면서 록사에 대한 사랑을 쟁취하고자 하였기에 이 작품은 독특한 매력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자신이 직접 다가갈 수 없지만, 크리스티앙의 얼굴을 매개로 하여 록산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사랑에 대한 깊은 열의로 느껴지게 된다. 크리스티앙 역시 록산이 자신에게 반하여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시라노의 재능을 활용하여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이 둘은 기묘한 협력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또한 록산을 사랑하는 리슐리외의 조카이자 대귀족인 드 기슈로 인하여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질 수 밖에 없고, 실제 시라노의 기지를 통하여 크리스티앙과 록산은 결혼을 하게 된다. 물론 결혼과 동시에 드 기슈의 음모로 인하여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은 곧바로 아라스 포위전에 참여하게 되지만 말이다. 생사의 갈림길인 전장 속에서도 시라노는 록산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하여 크리스티앙을 보호해야 할 처지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날마다 전장을 가로질러 크리스티앙의 이름으로 록산에게 편지를 보내고, 록산 역시 그 편지에 감동하여 크리스티앙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하지만 연애에 있어서 대부분의 삼각관계는 해피엔딩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서 한 여성을 두고 경쟁하던 두 남자가 결국 셋이 사랑하기로 합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던 것처럼 [시라노]의 인물들 역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크리스티앙은 전장에서 전사를 하고, 록산은 그러한 크리스티앙을 잊지 못하여 수도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난 이후 15년 동안 수도원을 방문하여 세상 소식을 전하는 시라노는 정작 여전히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록산이 그가 쓴 편지를 크리스티앙이 쓴 것으로 생각하는 상황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물론 이러한 방관은 단순히 애틋함의 발로는 아니었다.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에 대한 의리와 우정을 져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크리스티앙은 비록 록산과 결혼을 하여 그녀의 사랑을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전장을 방문한 록산이 처음에는 크리스티앙의 외모 때문에 반했으나 이제는 그의 편지(시라노가 쓴)를 통하여 진실된 마음에 더욱 사랑을 느꼈다는 고백으로 인하여 충격을 받고, 결국 전장에서 무모한 죽음을 택하였던 것이다.
록산 : 그러니 행복을 만끽하세요. 오로지 잠시 머무는 외모 때문에 사랑받는 것은 고귀한 사랑의 마음을 고문에 빠뜨릴 테니까요. 하지만 그 소중한 마음이 얼굴을 지워 버렸어요. 처음에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당신의 아름다움은 내가 더 잘 볼 수 있게 된 지금......더는 보이지 않아요!
크리스티앙 : ......오!
- p. 197 中에서 -
전장에서 만난 록산의 고백을 통하여 결국 진정한 사랑은 외모가 아닌 마음이라는 점은 사실 크리스티앙의 가슴을 후벼 판 것만큼이나 쓰리게 작용했던 것이었다. 록산을 감동시킨 글과 편지는 모두 크리스티앙의 이름을 빌려 시라노가 쓴 것이었으니. 또한 시라노의 글과 편지 역시 록산과 크리스티앙의 사랑을 위하여 시라노의 선의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그 쓰라림과 충격은 결국 전장의 죽음으로 밖에 대신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은 록산과 시라노 역시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화 [시라노 : 연애조작단]과는 너무나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크리스티앙이 죽은 후 1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된 록산이라든지 그 사랑을 눈앞에 두고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시라노를 과연 누가 행복한 결말이라 말할 수 있을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는 [시라노]는 자칫 진부하게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여러 요소에 유쾌하면서도 희극적인 부분을 통하여 그러한 비극을 비극이 아닌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 가치가 있다. 작품 곳곳에서 등장하는 언어적 유희는 물론 사랑에 대한 심각한 싸움 대신 시라노의 기발한 생각이 빚어낸 록산의 심리 변화를 통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이 작품이 발표된지 수 백년이 흐른 지금에서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쾌함에 젖어 웃다가도 그 안에 담긴 사랑에 대한 헌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의 비극적인 결말에 다다르는 과정들은 이 작품에 인간의 희노애락을 모두 담아냈음을 어렵지 않게 깨닫고 또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국 영화 「시라노 ; 연애조작단」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시라노 에이전시라는 곳에서 연애에 서투른 사람들을 대신해 사랑을 이루게 해준다는 영화였다. 가장 보편적인 러브 스토리의 영화였지만 영화속 삽입곡이었던 아그네스 발챠의 Aspri Mera Ke Ya Mas(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되었네)라는 곡이 좋아 음악이 닳도록 들었었다. 아그네스 발챠의 곡이 좋아 영화까지도 훨씬 더 감동적이게 다가왔었다. 이 영화가 프랑스 소설 『시라노』라는 작품을 모티프로 해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나는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았고 이 작품을 읽어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이제야 이 책을 읽었다.
소설인줄 알았던 『시라노』는 연극 무대에 올리는 희곡이었고, 대사만 보고 재미없으면 어떻게 하나 생각했었던 나의 우려를 말끔히 없애 주었다. 희곡의 새로운 맛을 들였달까. 간단한 설명과 무대를 비춰주는 불빛, 출연자들의 이름들. 소설과는 약간 달라 생소했지만 대사가 살아 있어 대사 속의 감정들을 살피는 즐거움을 주었다.
『시라노』의 이야기는 못생기고 코가 큰 시라노라는 남자가 있었다. 시라노는 자신의 아름다운 사촌 록산을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외모때문에 혼자만의 짝사랑을 하고 있던 즈음, 크리스티앙이라는 남자가 록산을 사랑한다고 했다. 크리스티앙은 문장을 만드는 재주는 없었지만 잘생긴 외모로 록산의 사랑을 받았다. 크리스티앙의 마음을 대신해 편지를 쓰는 시라노는 자신의 온 마음을 편지에 담았다. 록산은 처음엔 크리스티앙의 외모에 반했지만 점점 그가 보낸 편지의 문장들에 반했다. 크리스티앙과 만나면서도 그에게 아름다운 문장을 들려달라고 했고, 문장을 만드는 실력이 없는 크리스티앙은 또다시 시라노의 도움을 받아 떠듬떠듬 말했다.
하지만 록산을 짝사랑하는 드 발베르 자작의 음모로 크리스티앙은 전쟁터로 떠나게 되고, 록산은 시라노에게 크리스티앙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록산을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했던 시라노는 전쟁터로 향했다. 록산이 사랑한 것은 이제 크리스티앙의 외모가 아니었다. 전쟁터에서 매일 두 통씩 편지를 쓸 정도로 열렬한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던 문장들이었다. 시라노의 문장들이 록산을 사로잡았다.
록산의 한 말 중에서 이제는 크리스티앙의 외모도 필요치 않다고 했다. 그의 지성을 알 수 있는 그가 말하는 문장이 좋다고 했다. 얼굴이 추남이어도 상관없고 그의 문장을 열렬히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외모가 아름다우면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고 사랑하겠금 만드는 효과가 있지만 살다보면 외모가 다가 아니라는 걸을 우리가 일깨우는 것처럼 록산도 외모와는 상관없이 외모보다 더 중요한 사랑하는 마음, 즉 사랑하는 마음이 배어있는 문장을 사랑했던 것이다.
사랑이란 것은 어쩌면 이렇게 아이러니한지. 록산이 크리스티앙을 사랑했고, 시라노는 록산을 사랑했지만, 록산이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시라노의 마음이 배어있는 문장이었지만 록산은 그것을 몰랐다. 자신이 추남이라며, 록산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시라노는 몇 번의 좌절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크리스티앙의 록산을 향한 사랑은 또 어떠한가. 자신을 열렬히 사랑한다던 록산이 그가 보낸 편지속 문장들을 사랑한다고 했을때의 좌절감이란. 록산이 사랑한 것은 크리스티앙이 아니라 시라노의 마음, 즉 시라노의 영혼이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서로 함께 바라보는 사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삶 속에서 서로 마주보는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등을 바라보기도 하는 것. 뒤돌아보지 않는 등을 향해 있는 시선은 얼마나 안타까울까. 사람은 자신이 바라보는 것만 바라보느라 누군가 나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수도 있다. 오랜시간 록산의 곁에 있었던 시라노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던 록산처럼.
영화 「시라노 ; 연애조작단」장면 중에서 아그네스 발챠의 곡 (네이버에서 퍼옴)
평생을 자신의 기형적인 외모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외사랑을 했던 시라노. 죽음을 앞둔 순간에야 자신의 진심이 그녀에게 전해질 수 있었던 불운한 사내.
[시라노]는 17세기 프랑스의 실존 인물인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파란만장한 삶을 모티브로 한 운문 희곡이다. 또한 그의 자유분방한 삶은 저 유명한 [삼총사]의 주인공(달타냥)의 모델이 된 인물이라고 한다.
자신의 기형적으로 거대한 코 때문에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촌 록산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한 주인공 시라노는 평생을 록산을 좋아하는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인 크리스티앙의 연애편지를 대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록산에게 편지를 쓰는 사람은 크리스티앙이지만, 그 편지에 쓰인 내용은 시라노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으로 점점 연서 쓰기에 깊이 빠지게 된다. 크리스티앙의 낭만적인 사랑의 편지에 록산은 점점 더 깊은 사랑을 하게 되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시라노의 마음은 아픔으로 뒤덮여 지게 된다. 시인 답게 시라노는 자신의 록산에 대한 사랑을 크리스티앙을 대신해서 쓰는 연서에 아낌없이 표현하게 되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 아파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크리스티앙이 시라노의 마음을 알게 되고 솔직하게 고백하라고 하지만, 자신의 외모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시라노의 슬픈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 왔다.
이 희곡에서 가장 슬픈 부분은 크리스티앙이 전쟁터에서 죽게 되고도 시라노는 록산에서 자신의 마음을 15년이나 숨기고 살아갔다는 것이다.
외모가 아무리 기형적으로 생겨도 한 번쯤은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도 있을텐데, 끝까지 자신의 마음을 숨긴 시라노가 안타깝지만, 사랑에 있어서도 외모를 우선으로 택하게 되는 모습에 씁쓸함도 함께 왔다.
록산에게 마음을 전했다면, 어쩌면 록산은 처음엔 크리스티앙의 외모에 반했지만, 점점 그가 썼다고 생각되는 편지의 구절에 더 마음이 끌렸던 것을 보더라도 시라노를 택했을 것 같다. 늘 사랑에 있어서 한 발씩 늦어짐이 안타까울 뿐이다.
크리스티앙이 죽고 15년 이라는 세월을 그를 그리며 사는 록산에게 시라노는 왜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을까? 마지막 시라노가 죽기 전에 록산이 그러한 사실을 알았을 때,
"난 단 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를 두 번씩이나 잃는구나!" 라고 탄식을 하는 모습을 통해 충분히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졌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만약, 시라노가 그러한 용기를 냈더라면 죽음을 앞두고,
"내 삶은 몰래 할 말을 일러 주고는 곧 잊히는 사람의 것이었어!" (p233)
라는 후회어린 탄식은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기형적인 외모로 외사랑만 한 시라노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름답다고 해야 할지, 너무나도 바보같은 행동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겉으로 드러나는 면모를 더 높이 치는 오늘날에 비춰보면 그러한 시라노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소중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어떠한 조건이라도 한번쯤 부딪혀보는 용기도 필요한 게 아닐까.
비록 비극으로 끝을 맺지만, 오랜만에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읽게 되어 좋았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된건 지난 9월에 개봉한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 때문이었다 영화제목 때문에 한번쯤은 읽고 싶었다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프랑스 인이다 그래서 그런지 발음하기가 좀 힘들다
그는 실존 인물이다 이 책을 쓴 작가가 실존 인물을 모델로 삼은 극작품이다
그래서 이 책의 구성은 희곡으로 되어 있다
지문과 대사가 함께 있어 읽는데 조금은 힘들었다
학교 다닐때 빼고는 희곡으로 읽을 일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시라노는 17세기 프랑스의 실존 인물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모티브로 한 5막 운문 희곡이다 자유분방한 철학자이자 뛰어난 풍자 작가이며 당대 최고의 검술가였던 그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의 주인공 달타냥의 모델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시라노는 문무의 재능을 겸비한 호쾌한 귀족이다
그는 아름답고 재기 넘치는 자신의 사촌 록산을 마음속 깊이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기형적으로 생기 거대한 코를 가진 추남이라서 자신은 사랑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감정을 록산에게 제대로 선뜻 전하지 못한다
록산은 시라노의 부대에 배속된 잘생긴 젊은 귀족 크리스티앙과 사랑에 빠지고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을 대신해 록산에게 열정적인 연애편지를 쓰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그것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연애편지를 쓰게 되는데... 숨겨왔던 자신의 감정으로 모두 쏟아 낸 그의 편지 덕택에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지고 어느 날밤 록산의 발코니에서 열정적인 키스를 나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연애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쏟아낸 시라노 참으로 안타까운 사랑이다 본인이 자신의 기형적인 코때문에 추남이라 생각하여 직접적으로 고백을 하지 못하고 편지를 쓰지만 그것도 자신이 보낸게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보내는 그 심정은 아마도 말로는 다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는 그녀에게 온갖 정성과 자신의 마음을 다한 편지를 쓴다 그리고 끝내 크리스티앙 대신 편지를 썼다는 걸 침묵한다 시라노는 록산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그녀가 사랑하는 크리스티앙과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침묵으로 일관했던 게 아닐까 한다 하지만 록산을 짝사랑하는 드 발베르 자작의 음모로 크리스티앙은 전쟁터로 끌려가게 되고 사랑하는 록산으로부터 그녀의 연인을 지켜 달라는 부탁을 받은 시라노는 크리스티앙과 함께 전쟁터로 나선다 시라노는 전쟁터까지 가서 크리스티앙을 지키는 노릇을 하게 되지만 록산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록산을 위해서 그녀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었다 그는 록산을 위해서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까지 지켜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일까 그 장면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도 록산에 대한 사랑을 잊지 못하는 두 남자는 결국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한 남자는 잘생긴 외모가 아니라 편지 속에 담긴 시라노의 영혼임을 알게 된다...
마지막 5막에서 시라노는 15년의 세월이 지난후 록산으로부터 편지를 쓴 사람이 시라노가 아니냐는 얘기를 듣게 된다 하지만 시라노는 아니라고 부정한다 크리스티앙 대신 쓴 편지에 대해서 알게 된 록산은 자신을 사랑한건 바로 시라노였다고 주장하지만 시라노는 끝까지 부정을 한다 그는 크리스티앙과 록산의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시라노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비참한 최후를 당당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자유의 정신을 실현한다 시라노는 임종의 순간 칼을 빼들고 온갖 망령들과 싸우다 결국 단하나 장식 깃털 즉 기사로서의 기개만 가지고 저세상으로 가져가겠노라고 외친다 그 장면을 보면 시라노가 정말 안타까웠다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지킨 사랑 침묵과 헌신으로서 록산의 사랑을 지킨것이다
비록 자신의 마음을 록산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으나 살아있는 동안 시라노는 편지를 대신 쓰면서도 행복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 록산에게 편지로나마 물론 자신의 이름이 아닌 크리스티앙의 이름으로 보냈으나 온갖 정성과 마음을 다 표현했으니까 말이다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에는 많은 책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그가운데 유독<시라노>가 읽고 싶었던 건,얌보 노인의 첫사랑 릴리에 관한 이야기를 <시라노>의 록산이란 인물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불러왔기 때문이다.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그러한 이유로 <시라노>를 검색해 본 결과, 17세기 실존 인물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를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인물이 '시라노' 라고 했다. 외모 가운데,코는 다소 특이했고,나머지는 엄친아 수준의 결정판이었다니,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기에는 충분했을 것 같다. 뒤마의 소설<삼총사>등장하는 달타냥의 모델이기도 했다니까.
오랫동안,<시라노>를 어떤 이름과 착각을 했던 것인지,내내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러나 5막으로 구성된 희곡 작품이였다. 에코소설에서 집중 언급된 부분을 보면,작품에서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극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 같지만,그렇지도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속도감은 때로 산만하게,때로는 신나게,그래서,록산과 시라노의 사랑은 굉장히 집중해야한다. 시라노의 감정이 텍스트로 설명이 전부 되어진 탓에,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기란 녹록지 않았다.결과적으로 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이유도 되겠다.(변명하자면.) 얌보노인의 시점에서 보자면 짝사랑이 크게 보일수 밖에 없는 이유도 분명해 보였다.그런 이유로 나 역시 <시라노> 전쟁에 관한 주제보다,사랑에 관한 주제,그리고 짝사랑에 관한 이야기 시선으로 작품을 읽었다.다른 시점을 하나 더 들여 놓자면 록산이란 여성을 두고,세 남자(시라노,드 기슈,크리스티앙)가 사랑하는 방법의 차이가 보였다고 해야할까..그런 까닭에,나는 시라노가 록산을 향한 짝사랑,얌보 노인의 표현대로라면,누군가의 뒷모습만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가..와 같은 감정선이 아니라,세 남자의 아이러니,특히 시라노의 마음이,그 감정이 다소 너무 나간건 아닐까..록산의 사랑이 기만당했다는 시점으로 읽혔다.자신이 좋아하는 크리스티앙이 외모만큼이나,영혼도 아름답다고 생각한,추호의 의심도 없는 그녀의 마음이..두 남자의 합작(?)으로 인해 배신당했고,그것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된 크리스티앙이 할 수 있었던 선택은 비극이었으니...만약이란 가정은 무의미하지만,시라노는 그녀에게 크리스티앙인 척 편지를 쓰면 안되는 거였다.그럼에도 시간이 흘러 록산은 시라노가 자신을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것에 대해 후회의 눈물을 흘리다니..그런데 내가 시라노라는 인물이 멋진 면도 있으면서도 몰입이 격하게 되지 않은 까닭은,당당함과 자신감 사이사이 보이는 그의 오만함이 불편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그가 정말 외모에 관한 ....로 인해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면,크리스티앙을 대신해 편지를 쓰는 것 조차도 안쓰럽게 바라보지는 않았을까 싶어서..무튼 인물에 대한 몰입도가 크지 않아,그가 가진 많은 능력에도 불구하고 외모로 인한 컴플렉스에 힘겨워 하는 모습에 공감하기는 힘들었지만..연극으로 보게 된다면 재미있게 볼 요소들이 많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은 받았다.(단 너무 전형적인 시라노 모습으로 캐릭터를 만들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