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하) ④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선물도서입니다.
다리는 요란한 파열음과 함께 파도처럼 공중으로 솟아올랐습니다. 파편의 소낙비가 지난뒤 다리 폭파와 함께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고 자신이 살아있음을 그제서야 잠시 느겼고 노여움과 허망함과 증오심이 로버트 조던을 엄습했습니다. 그러나 다리가 사라지고 안젤모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부상을 입은 조던은 일행을 조금이라도 멀리 떠나 보내야 하기 때문에 적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조던은 용기와 비겁이라는 인간의 양면성을 고민하다가 용기를 택하네요. 부상의 고통으로 죽고 싶지만 마지막까지 맡은바 임무를 다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조던과 마리아의 사랑, 파블로와 게릴라의 관계, 골스와 까르꼬프 등 작품은 세 갈래의 구도로 스페인 내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책의 하권 표지에서 느꼈듯이 철교는 끊어져 있습니다. 다리가 폭파되는 순간 조던과 마리아의 사랑도 끝나고 전쟁의 참혹한 결말을 맞습니다. 파시스트들은 1939년 3월28일 모든 공화파 부대를 격파하여 해산시키고 마드리드에 입성함으로써 스페인 내전을 승리로 이끕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조가 되는 중요한 일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하)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펴냄)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내가 함께 가는 거야.
우리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살아 있으면 그건 둘 다 살아 있는 거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하) 본문 중에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되도록이면 원작 소설을 먼저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감독의 재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 있기에 작가의 의도를 먼저 알고 싶은 이유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존 던의 시를 제목으로 쓰여진 헤밍웨이의 소설이다.
17세기 런던의 마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교회종을 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소설에서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렸을까?
언제 죽을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전쟁에서도 사랑이 가능한가? 마리아와 로버트 조던의 짧지만 진한 사랑을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전쟁이라고는 하지만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이 아닌 스페인 공화국과 반란군 파시스트 사이의 내전이다. 공화국은 유럽 각국과 미국의 국제 여단의 지원을 받았고 반란군은 보수주의자, 파시스트, 이탈리아 나치 독일의 지원을 받았다. 스페인을 위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지원국들의 감추어진 속내가 한 나라를 더욱 더 내전으로 몰고가진 않았을까? 우리의 6.25처럼 말이다. 정치인들이 아니었다면 조국은 분단이 아닌 통일을 맞이했을거란 여운형 선생의 말이 줄곳 떠올랐다.
로버트 조던의 지시를 받아 공화국의 골스에게 편지를 전하러 떠난 안드레스가 무정부주의자의 무지와 장교들의 고집, 불필요한 절차로 번번이 통행이 저지되는 것을 보면서 어리석은 지도부는 어느 전쟁, 어느 시대에나 꼭 있구나 싶었다. 이들 중 신념을 가지고 전장에 나선 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로버트 조던은 자신이 죽인 나바라의 타파야 출신 기병대 젊은이의 편지를 읽고 생각에 잠긴다. 자신이 죽인 사람들 중에 확실한 파시스트는 몇명이었는지, '죽이지 말아야겠다'와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야' 사이에서 괴로워 한다. 살인은 분명 범죄이지만 더 큰 불행을 막기 위함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아도 그런다고 해서 괴로움이 덜해지지 않는다.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마리아와 로버트 조던의 사랑이 큰 줄기로 이야기가 흐르지 않았을까 싶다. 소설에서는 사랑에 못지 않은 무게로 내전의 참혹함과 상처, 게릴라들의 동료애를 보여주었다. 로버트 조던은 나흘을 함께 보낸 필라르의 일당들에게 형제애를 느꼈다. 서로에게 목숨을 맡겨야 하는 것은 절대적인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 번 배신했다가 돌아온 파블로에게 마리아를 부탁해야 하는 예상치 못한 변수도 생겼지만. 삶은 늘 예상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으니.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로버트와 아이를 낳아 파시스트와 맞서게 하고 싶다는 마리아. 부모의 죽음과 겁탈이라는 상처를 지닌채 순종적이고 사랑밖에 난 몰라를 표현하는 마리아에게서 잡초와도 같은 생명력을 보았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마리아를 보내기 위해 로버트가 한 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존 던'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마지막 구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지 알기 위해 사람을 보내지는 말지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므로."
결국은 모두에게 울릴 종이 아닌가.
329.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그건 모두 쓸데없는 가정에 불과해.
만약에 파블로가 폭파기를 버리지만 않았어도, 만약에 눈만 오지 않았더라도, 만약에 안셀모 영감이 죽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소도르가 죽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안드레스가 제때에 골스에게 도착했더라면,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수많은 만약이 일어났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적의 파병을 막기 위한 다리 폭파 작전의 주된 임무를 가진 로버트 조던. 1편에서의 오직 자신의 임무만을 수행해 내야 한다는 편협된 군인의 자세에서 조금은 현재의 상황에 처한 자신을 돌아 볼 줄 아는 모습이 보인다.
적군 내 정찰병이 죽은 후 그가 가진 일기와 편지를 읽고 조던은 많은 생각에 잠긴다. 죽은 정찰병 역시 한 가정의 아들이고 형제이며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내고 어떠한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삶을 살아내던 한 사람에 불과하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잘못된 일이기는 하지만 전시라는 상황이 그 동기를 정당화 하고 있음에 고통스러운 살인이 자신에게 있어 결코 불가분한 임무였음을 스스로 세뇌하며 인지하고자 노력한다.
너는 아직도 네 행동의 동기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있나?
그렇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옳다.
PAGE 93
로버트 조던은 왜 자신의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철교폭파의 임무를 수행하려고 했을까? 자신에게 있어 72시간 동안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한 마리아와의 미래는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파시스트에게 부모님 두분을 모두 잃고 자신도 성적 학대를 당한 뒤 고통스러운 가운데 게릴라의 도움 아래 자신의 삶을 유지해 나가는 마리아가 어떻게 보면 가장 멘탈이 강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조던을 만나면서 그 회복력이 사랑의 힘으로 더욱 빨라져 조던과 결혼하여 파시스트에 대항할 자식을 두고 싶어하는 큰 그림이 용맹스럽기 까지 하다.
전 당신의 딸이나 아들을 낳고 싶어요.
그리고 파시스트들과 맞서 싸울
우리의 아들이나 딸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겠어요?
page177
로버트 조던이 폭파 재료를 들고 도망친 파블로를 원망하고 거의 잠을 못 자며 다리 폭파 작전을 생각하는 동안, 그의 보고서를 상부에 전달하러 간 안드레스는 내적갈등을 보인다.
우린 참으로 힘든 시기에 태어났어.
인간은 고통을 당하는 만큼
그 고통에 저항할 수 있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실은 생각만큼 그렇게 심하게
고생하는 것은 아니야.
page199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무척 서둘러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보고는 더디고 진행은 느렸다. 상황이 잘 이해되어 보고가 진행되나 싶다가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며 애가 타게 만든다. 여러 사람의 목숨이 달린 그리고 그들의 미래가 달린 상황도 원칙과 위계질서를 앞세우며 지휘관들은 위급한 작전과 관련된 사람들의 목숨보다는 사소한 자신들의 감정 만을 중요시 한다.
드디어 교량 폭파의 날! 폭파재료를 들고 도망갔던 파블로가 돌아오고 로베르토와 대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더한다. 교량을 향해 나아가는 탱크를 저지하는 파블로와 라파엘, 동료 라파엘의 죽음을 목격한 파블로는 그간 감춰두었던 전투력을 상승시키고 온 힘을 다해 싸운다. 안타깝게 안셀모가 떠났고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폭파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로버트는 게릴라 대원들에게 진정한 형제애를 느꼈다.
폭파의 임무를 마치고 전쟁터를 벗어나 마리아와 함께 일상으로 돌아가 옷을 사고 편안한 호텔에 머무는 자신의 모습을 소박하게 꿈꾸던 로버트 조던 .책을 읽는 동안 전시 교량 폭파라는 주제보다 그 와중에 보여진 마리아와 조던의 애틋한 사랑에 그 축이 더 기울었다. 한쪽에서는 목숨을 잃고 파괴되는 일이 벌어지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사랑이라는 반대의 축이 생성한다.
특히 72시간을 살아도 72년을 산 사람보다 더 강렬하게 살수 있다.는 말처럼 조던과 마리아의 사랑은 참으로 강렬하고 또 감동적이며 슬프고 애틋하다. 전쟁이 가져다 주는 비정함 , 죽음을 앞 둔 상황에서 인간이 겪는 용기와 비겁함 .결국 종은 타인을 위해 울림을 갖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울리는 것으로 읽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