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최소의 소설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물론 댈러웨이 부인 같은 소설도 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좋고
이것도 너무 좋다.
요즘 고전을 많이 읽는데
단연 버지니아 울프는 마음속 순위 상위권이다.
지금 읽어도 촌스럽지 않은
세련된 느낌
현대에 버지니아 울프가 다시 태어나 소설을 쓴다면 어떤 글을 쓸까
무척 궁금해진다.
등대로는 제목에서 이미 반을 설명한 듯하다.
그러나 빤한 결말도 무서운 반전도 없다.
그냥 버지니아 울프의 표현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느끼면 된다.
좋다.
너무 좋다.
스포일러 전혀 없음
프랑스어 전공자가 영문학 작품을 번역하여서 좀 의아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였으나 좋은 번역을 하셨다.
한 개만 예를 들면 이 저명한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I had have my vision. 인데, 네 분의 번역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1. <나는 드디어 이상향을 보았다>
제임스 조이스 / 버지니아 울프, {젊은 예술가의 초상 / 등대로}, 김종운(金鍾云) 옮김, 삼성판(三省版) 세계문학전집 45, 1976.07.20.
2. <나는 드디어 통찰력을 획득했다고>
박희진 옮김, 솔출판사, Virginia Woolf 전집 1, 개정판 2003.04.22.
3. <바로 이거야.>
최애리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212, 2013.06.10.
4. <이제 그것을 보았어.>
이미애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6, 2014.02.07.
(이상 번역 책 출간 순)
난 최애리님의 번역이 제일 맘에 든다. 그 이유는 문맥을 자세히 설명해야 하지만 생략한다. 최애리님의 영문학 번역, 믿고 볼 수 있다.
또한 역자의 작품 해설 부분이 4권 중 가장 충실하다는 점도 빼어난 장점이다.
등대로-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쉽게 읽히지 않고 어려운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버지니아 울프는 잘 읽히는 작가다. 어려운 부분도 있고 쉽게 읽히는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잘 읽힌다. 왜 그런 것일까? 명확하게 이유를 알 수 없다. 그저 버지니아 울프와 어려움 없이 잘 어울리는 것일 뿐. <댈라웨어 부인>,<보통의 독자>,<자기만의 방>에 이어 <등대로>도 나는 잘 읽어나갔다. 등대에 가고 싶어하는 자식의 의지와는 달리 등대에 가지 않으려는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하지만 가장인 아버지의 의견을 묵묵히 수용하는 어머니와 그외의 그들의 가족과 지인들의 이야기를 몇 십 년의 시간에 걸쳐 전해주는 이 소설은, 일반적인 서사 구조를 거부하고 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시간에 따라 구분하여 전해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파편성. <등대로>는 부분이 응집되어 한 작품을 완성하는 소설이 아니다. <등대로>의 부분들은 파편화되어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가진다. 전체를 구성하는 부품으로서의 부분이 아니라, 부분 그 자체가 독자적으로 전체가 되는 방식의 소설. 수많은 전체들이 각자 생명력을 가진 채 모여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이 작품 특유의 형식이 가능한 건, 아마도 버지니아 울프 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의 흐름' 기법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나에게 이 작품은 수많은 별들이 모여 있는 밤하늘 같은 느낌의 소설처럼 남을 것이다. 무수하게 빛나는 별들이 각자의 별자리로서 밤하늘을 완성하는 것처럼.
버지니아 울프는 블룸즈버리 그룹이었는데 그 그룹에는 소설가 E. M. 포스터, 전기작가 리턴 스트레이치, 미술평론가 클라이브 벨, 화가 버네서 벨과 던컨 그랜트,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페이비언 회원인 작가이며 그녀의 남편 레오나드 울프등이 참여했다. 그밖의 구성원으로는 데스먼드 매카시, 아서 웨일리, 색슨 시드니 터너, 로버트 트레블리언, 프랜시스 비렐, J. T. 셰퍼드(나중에 킹스 칼리지의 학장이 된다), 옥스퍼드대학 출신인 비평가 레이먼드 모티머와 조각가 스티븐 톰린이 있었다. 그 구성원들이 특정한 사상과 가치관을 공유하기는 했지만, 일정한 학파를 형성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맴버들 중에서 특별나게 눈에 뛰는 부분은 울프 외에는 여성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다. 이 그룹이 공식적인 그룹으로 인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리스트는 잘 알지는 못하나 울프만큼 뛰어난 여성 멤버는 없었던 것 같다. 울프는 그만큼 남성들 사회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데 그녀의 소설의 데뷔부터도 엄청난 센세이션이었다.
<등대로>는 그녀의 나이 45세 때 여성의 나이가 황혼기에 접했을 때쯤에 쓰인 소설이다. 첫 문장은
“”그럼, 물론이지, 내일 날씨만 좋다면 말이야,” 램지 부인은 말했다. “하지만 꼭두새벽에 일어나야 할 걸”“
이 대사들은 그녀의 상징 의식적 흐름의 서사의 첫 부분이다. 울프는 화자를 등장시켜 내레이션의 방법으로 내면의 감정을 건조하게 묘사한다.
그런데 그 의식의 흐름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를 테면 소설가에게 편리한 기법 영화에서 사용하는 플래식백의 문법을 차용한다. 그 시간에 벌어지는 광경을 자신의 관점으로 세밀하게 혹은 자세하게 그려 내가고 있는데 그 중간 중간의 나오는 대사들은 한박자 쉬고 가는 휴게소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날씨는 좋지 않겠는데“
나오기 까지 화자는 사물의 정취와 느낌에 대해서 고스란히 발화한다. 긴 의식적인 내면의 독백이 끝나고 다시
”하지만 좋을 수도 있어요.-좋아질 것예요“
말하는 화자의 공간은 화자의 시선이 담겨져 있다.
이 첫 장에서 이 소설의 제목 등대로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날이면 날마다 지겹도록 똑같은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는 것이나 바라보면서, 그러다가는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닥쳐와 창유리가 물보라로 뒤덮이고, 새들이 등대를 스칠 듯이 가까이 날아가고“
라는 대목에서 등대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인데 그녀의 세부묘사가 얼마나 민감한지를 잘 보여주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성구별을 하는 것을 부정하는 위치에서 말하게 되면 곤란한 입장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감정의 흐름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여성이 어떤 개념을 받아들이는 상황은 남성하고는 전혀 다르다. 하나의 사물을 보고도 그 수백만 가지의 차별점을 서로 구분되어 진다는 점이다. 그 구분법의 예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매혹되어 꼼짝할 수 없는 채로 불빛을 바라보면서, 마치 그것이 그 은빛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릿속에 밀봉되어 있는 어떤 것을 쓰다듬기나 하는 듯한, 그 어떤 것이 터지기만 하면 기쁨으로 넘쳐흐를 듯 한 기분으로, 자신은 행복을, 절묘한 행복, 강렬한 행복을 맛보았었다고 생각했다. 날빛이 시들어 바다에서 푸른빛이 빠져나가자, 불빛은 거친 파도를 조금 더 밝은 은빛으로 물들였고, 순수한 레몬빛 파도 속에 뒹굴었다. 파도가 휘어지며 부풀어 해변에서 부서지자, 그녀의 눈 속에서도 황홀감이 터졌고 순수한 기쁨의 파도가 그녀 정신의 바닥을 질주했다. 이걸로 충분해! 이걸로 충분해! 하는 느낌이었다.“
라는 문장은 남성이 터치하기에는 여간 어려운 필체일 수밖에 없다. 불빛, 행복, 순수, 황홀등 이러한 말들은 남성의 기분으로 잘 내뱉는 단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여성의 영역이 점점 더 확대하고 있다. 그 만큼 사회의 진화는 여성이 얼마나 근로자로서 이 사회에 대해서 역할을 잘 하느냐에 달려있다. 예전에 울프의 시대하고는 다르게 말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은 쉽게 진도가 나가지는 않지만 읽고 나면 마음 한가득 무언가가 쌓여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 책도 역시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이 등장하는 다른 책들에 비교하면 더디게 읽게 되지만 그 페이지에 머무르며 차곡차곡 이미지와 감정과 생각을 쌓아가게 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아마도 소설이라는 매체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치를 활용한 작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어떤 매체로도 이 책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