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 청소년 권장도서로 종종 등장하는 로빈슨크루소는 어떤 책일까?
아이들을 위해 출판된 책이 아닌 각색 없는 번역된 책을 읽어본 한국인 몇명이나 될까? 아마도 이 책을 읽었다는 사람들, 내용을 안다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정말 잘 읽고 내용을 제대로 알까?
급히 이 책을 구입하여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읽었던 이유는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라는 미셸 트루니에의 소설을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5년전 읽었지만, 모체가 되었던 <로빈슨 크루소>를 읽지 않고 대충 알았던 내용을 기반으로 <방드르디>를 만났을 적, 그 심오한 내용을 이해하기 벅찼었다. 그래서 이제 <방드르디>의 신화인 <로빈슨 크루소>를 찾았다.
첫만남, 당황스러울 정도로 문체는 간결하고, 사실적이며, 속도감 있게 읽어진다. 신나는 모험 혹은 도전정신의 이미지보다는 그냥 모험과 도전정신, 개척정신, 생존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읽을수록 내가 알던 <로빈슨 크루소>가 아님을 느꼈다.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책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책이다.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1) 방랑벽 있는 로빈슨은 중산층 부모님의 설득과 강권을 무시하고, 갈망해왔던 배를 탄다. 배가 난파되었지만, 구조되었고, 이후 아프리카 노예무역을 하는 기니노예선을 타고, 이에 관여함으로 얼마의 돈도 번다. 다시 또 배를 탔다가, 무어인들의 해적선에 나포되어, 포로생활을 하다가 탈출에 성공. 이후 탈출보트에 탄 로빈슨은 포루투갈선에 구조된다.
2)이 배를 타고 브라질까지 갔으며, 브라질에서 농장과 제당공장을 경영하는 백인들이 돈을 빨리 모으는 것을 보고, 자신도 얼마의 돈으로 농장을 매입하여 운영한다. 농장(사탕수수, 담배 등)운영을 통해 부의 증식도 있었으나, 다른 농장주들의 부탁으로 노예를 사올 목적을 갖고 다시 배를 탔다가 카리브해에 난파되어 28년 넘게 무인도에 표류되어 살게 된다.
3) 무인도에서의 삶은 처음엔 두려움에 떨었지만, 몇일이 지나면서 생존을 위해 텐트를 치고, 나무벽을 세우고, 야생염소를 길들이며, 곡식을 재배하면서 야만의 상징과 같은 무인도에 문명화된 영국령을 세운다. 날짜도 기록하면서 유럽의 달력과 맞춰나간다.
4) 끊임없이 타자의 존재를 갈망하고, 무인도에서 탈출하고 싶어 카누도 만들어보고 여러차례 섬을 정찰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엔 타자의 존재로 인해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백인의 배가 난파되고, 생존자가 없음을 확인한 순간부터는 타자의 존재(기독교인, 백인)을 갈망한다. 이후 다른 섬의 원주민이라도 와서 자신의 노예가 되어주길 바란다. 몇년 후 식인종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처한 원주민 소년의 도주를 본 후 이를 구해주고, 이름을 프라이데이로 명한다.
5) 프라이데이는 온순하고, 자신의 구원자인 로빈슨에게 복종하고 존경하며 사랑한다. 로빈슨은 성경을 통해 프라이데이의 야만성을 문명인으로 교화시키고, 기독교(개신교, 청교도)로 개종시킨다. 프라이데이는 반항 한번 없이 로빈슨을 잘 따른다. 또한번 식인종에게 포로된 백인과 프라이데이의 아버지를 구한다. 백인과 프라이데이의 아버지는 본섬으로 돌아가 그곳의 남은 16명의 백인들(스페인인들)과 함께 로빈슨에게 와서 백성처럼 순종하며 같이 배를 만들어 무인도를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6) 하지만17명의 스페인인들이 오기 전, 로빈슨의 섬에 보트를 타고 도착한 백인들을 발견한다. 이들은 배를 빼앗긴 선장과 항해사, 승객으로 이들을 이끌고 온자드른 배를 빼앗은 자들 중 일부이다. 선장과 항해사, 승객을 구해준 로빈슨은 이들의 사연을 듣고 3명의 피해자와 프라이데이와 함께 다시 배를 빼앗는데 성공한다. 선장은 로빈슨을 총독이라 부르며, 존경하고 은혜를 갚고자 로빈슨과 프라이데이를 영국까지 태우준다. 물론 영국에서의 에피소드 또한 있다. 여기까지가 <로빈슨 크루소>의 짧게 정리한 내용이다.
어떤 이유에서 명문대학들이 추천한 도서에 <로빈슨 크루소>가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이렇다.
1. 깊은 감동과 여운을 주며, 문장과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큰 깨달음을 주는 책
2. 책의 내용들이 그 시대를 잘 담아내고 있는 책.
3. 인물의 심리와 심오힌 사상이 유려하게 표현된 책.
4. 많은 토론의 주제를 던져주는 책.
5. 새로운 사조를 창조해내는 책.
로빈슨크루소는 2. 4. 5.에 해당하는 책이라고 본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1독을 한 나는 너무 깨달음이 부족했는지 1.과 3.은 취약하다 못해 찾아보기 힘들었다.
<로빈슨 크루소> 대항해시대 열강들의 식민지정책. 정확히는 영국의 식민지정책과 자본주의 노동을 가치있게 여기는 청교도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 시대에선 너무나 당연한 그들의 모습과 정신과 의식이었기에 나름의 자부심과 자연스러운 표현이었을 것이다. 작품으로서의 비난보다는 이를 통해 그 시대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었다. 물론 주인공을 처음엔 응원도 했지만, 150쪽부터는 주인공을 응원하기보다, 비판적 자세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문명과 야만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야만의 표본이며, 비인간적인 행위의 근본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전에 알던 로빈슨은 내가 응원했던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이 뛰어난 모험가이자 인간성을 지켜낸 자였다면, 이제 내가 보게 된 로빈슨은 비인간적이고, 사물과 타자에 대하여 도구로 바라보는 개인주의적, 자본주의적 표본이다.
그가 표류했던 섬은 소설 속에 문명화된 모습의 표상을 나타낼지 몰라도, 이는 영국식민정책의 축약된 모습이라 본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른 해석과 비판이 있다는 점에서는 아주 훌륭한 책이다. 작가는 정말로 재미있는 모험 소설을 썼을지 몰라도 오늘날 <로빈슨 크루소>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해 쓰여진 책이 아닌 이 소설의 참 모습과 그 시대의 참 모습, 그리고 이 소설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생각해 나갈 거인지 이것이 내 자녀들의 숙제인듯 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끊임없이 생각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