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간 스위스 산 중 눈 속에 파 묻혀 있다 온 기분입니다. 마지막 권 까지 다 읽으니 비로소 토마스 만이 왜 이야기 꾼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요양소에서의 7년의 지루한 생활은 책의 흐름을 따라 읽다 보면 어느 새 나의 생활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지루하게 상세히 묘사된 통찰의 술래잡기 과정은 제가 깨닫고 함께 통찰하기에 오히려 맞는 지루함이었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읽어야 하는 책임은 틀림없습니다. 결코 가볍게 읽어 내릴 수는 없지만 그만큼 얻음도 크다고 생각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완독했다.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게 읽었다. 읽느라 힘들었지만 다 읽고나니 뿌듯하다.
작품 전반에 걸쳐, 아이러니가 눈에 띈다. 중편 눈보라속에서 한스 카스트로프에게 번뜩이는 통찰을 준 꿈은 오래오래 기억되어 한스 카스트로프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줄 알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깨달음은 고립에서 벗어나 베르크호프로 돌아와 따뜻한 저녁 식사를 하자마자 기억에서 희미해지기 시작하더니 곧 완전히 잊혔다.
사촌 요하힘 침센은 군인을 꿈꿨다. 길어지는 투병 생활과 따라주지 않는 육체에 차차 인내심을 잃고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요양원을 떠나 평지로 내려간다. 그는 입대하여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소위로 임관한다. 그토록 원하던 장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병세가 악화되고 요양원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호전되는 듯 하더니 이내 결핵이 전이되어 죽는다. 요하임은 소위 임관과 목숨을 맞바꾼 셈이다. 그에 반해 한스 카스트로프는 요양원에서 떠나는 것을 싫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7년이나 취생몽사에 빠져 세월을 허송한 뒤에, 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징집된다. 군인이 되어 전쟁터로 끌려간다.
나프타는 예수회 일원으로 스콜라 학파, 종교 원리주의자, 보수주의자이다. 그는 육체는 자연이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정신과 대립한다고 주장하는 이원론자이다. 전쟁과 테러에 대해 긍정적이다. 그런 그는 인문주의자와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세템브리니와 사사건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어느 날, 논쟁이 최고조로 치달아 둘은 결투를 하게 되었는데, 전쟁과 테러를 긍정하는 이 호전적인 사내 나프타는 상대의 머리가 아닌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쏘고 자살한다.
페퍼코른은 선이 굵고 제왕적인 외모를 지닌 디오니소스 적인 인물이다. 건강과 삶을 긍정하는 그는 세템브리니와 나프타를 대뇌적 인간으로 왜소하게 만들었다. 이런 페퍼코른은 한스 카스트로프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쳐 그를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정작 역설적이게도 페퍼코른 자신은 한스 카스트로프와 그의 정부 쇼샤 부인의 에로틱한 관계를 눈치채고, 자신의 성적 무기력을 비관하여 자살한다.
방대한 소설을 관통하는 삶과 죽음의 관계는 대표적인 아이러니다. 죽음의 공간,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삶의 중요성은 빛을 발한다.
점점 책의 스토리에 빠져들어갔다. 처음에는 요아힘의 죽음에 놀랐고 마지막에는 나프타의 죽음에 너무 놀랐다.. 그리고 마지막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 정말 궁금했는데, 이렇게 끝나게 될 줄은 몰랐다. 여러 주제를 통해 시간과 사랑, 신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처음 시작은 상실의 시대에서 하루키가 좋아하는 소설이었으나, 지금은 기억속에 한스를 남겨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