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에는 소설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작품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이 점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가끔 지금이라는 시간을 벗어나 이야기에 취하고 싶을 때가 있다. 제목에 끌렸다. 마지막 혹은 최후라는 단어가 품고있는, 더 이상은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게되는 공허, 신호 없음이라는 무언의 여운에 대한 향수였을까? 하나의 종족이 세계에서 사라지는, 아니 사라지게 하는 작용이란 것에 대한 분노도 한몫했던 것 같다.
'모히칸'은 북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하나의 명칭이다. 오늘날 허드슨강 유역에서 북동부 호수지역으로 이어지는 광대한 수림영역을 생활지로 하였던, 17세기부터 시작된 침입자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인들에 의해 레니 레나페, 델라웨어, 와파나츠키 등으로 불렸던 가장 먼저 이들에게 자신의 근거지를 빼앗긴 부족이다. 소설은 1750년대를 전후한 영국과 프랑스의 북아메리카 식민지 각축전이 한창이던, 그리고 이들의 전술적 희생양으로서 대리전 양상을 띠던 원주민 부족간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전으로 그들의 오랜 터전이 불모의 대지가 되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은 다분히 정복자인 백인의 시선, 소위 북아메리카, 오늘의 미국을 위한 '개척 시대'라는 인식의 토대위에 서 있다. 폭력과 약탈, 생할의 근거지를 상실하고 죽음에 내몰리는 현상을 '개척'이라 부르는 터무니없음에 어느 원주민이 동의할 수 있을까마는 역사란 승자의 기술(記述)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의 1826년 초판에 붙인 머리글의 원주민 부족 분류에 대한 장황한 설명과 식민지 지배 쟁탈전에 대한 역사 인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나름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작가적 노력의 흔적도 읽을 수 있다.
Ⅰ. 가죽 스타킹(Leather-stocking) 이야기
이 소설은 작가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가 쓴 5편으로 구성된 레더스타킹 시리즈 - 개척자들(The Pioneers), 모히칸족의 최후(The Last of the Mohicans), 대평원(The Prairie), 길잡이(The Pathfinder), 사슴 사냥꾼(The Deer-slayer) - 의 두 번째 작품이다. 가죽 스타킹(leather-stockings)이란 북아메리카 개척시대의 남성들이 신던 것으로, 아마도 그네들의 사전적 주석처럼 '문명에서 벗어나 야생에서 살기 위해 생존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 『모히칸족의 최후(The Last of the Mohicans)』에서도 일명 '호크아이' 로 불리는 원주민의 습속으로 무장된 백인이 등장하는데, 그가 소설의 서사를 끌고가는 주역이라 할 수 있다. 모히칸의 언어를 말할 수 있으며, 낙엽과 나뭇가지, 바람, 곤충과 새들의 움직임에서조차 방향과 적의의 기운을 감지 할 수 있는 인물이며, 자연의 힘에 대한 경외와 인간에 대한 넓은 포용력과 연민을 지니고 있는 야만과 문명을 잇는 가교자이기도 하다. 여기서 나름 소설의 선명한 색채를 읽을 수 있게 된다. 가죽스타킹은 서구 백인의 원주민에 대한 문명적 우월성이 아니라 원주민의 반문명성이 지닌 고귀한 정신적 가치와의 조화와 균형을 찾는 존재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Ⅱ. 이야기 속으로
1) '윌리엄 헨리' 요새로
전략적 요충지인 것 같은데 숲의 통로에 위치한 요새 '윌리엄 헨리'에는 영국군 사령관인 먼로 대령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고, 프랑스 군은 막대한 병력으로 이를 점령하여 식민지 지배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기위해 진군하고 있다. 사실 오늘의 소설이라면 발생할 수 없는 사건이 이야기를 여는데, 이러한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야생의 숲으로 이루어진 알지 못하는 행로를 통해 먼로의 두 딸인 코라와 앨리스, 수행자인 헤이워드 덩컨 소령이 인디언 전령사의 길 안내에 의존하여 아버지가 있는 요새로 떠나는 모험이라 부를 수 밖에 없는 길을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불안한 여정은 안내자인 인디언의 배신으로 영국군에 대한 적의로 가득찬 원주민들의 숲에 버려지고, 마지막 모히칸 추장인 칭가치국과 그의 아들 웅카스, 그리고 레더스타킹인 호크아이로 구성된 3인의 헌신적 보호와 안내 속에 온갖 위기를 극복하며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것이 소설의 절반인 한 축을 이룬다. 여기에 양념처럼 더해진 찬송가를 부르며 신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외에는 무심한 한 남자가 동행하며, 서구 정신의 무용함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가 부르는 노래의 무용성이 야만의 현장에서 생존케 하는 것은 어떤 천박성을 보는 것 같은 내키지 않는 수용을 강요당하는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한다.
소설의 서사는 이처럼 단순하다. 그럼에도 이야기로서의 매력을 잃고 있지 않는 것은 "정수리에 꽂은 가벼운 깃털을 휘날리며 걷고 있었다."는 마지막 모히칸인 젊은 인디언 웅카스가 발산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기상, 그려질 듯한 당당한 위풍의 묘사, 그리고 이들이 주고받는 자연을 닮은 언어들의 우아함이다.
"웅카스, 고귀한 나무줄기의 가장 꼭대기에서 자라는 가지야, 비겁자들에게 서두르라고 해라."
- 본문 113쪽에서
야만의 전투에서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두 명의 어린 여성, 야생에서는 쓸모없는 군사기술을 가진 영국군 소령, 찬송가만 목청 높여 부를 줄 아는 비쩍 마른 백인 남자, 이들을 뒤쫓는 모히칸과 적대하는 휴런, 멩위, 마쿠아, 밍고, 이로쿼이로 불리는 프랑스군에 협조하며 자신들의 안위를 이어가는 여섯 부족 연합의 잔인한 공격에 맞선 일진일퇴의 여정이 숨가쁘게 진행된다. 위 문장은 호크아이가 웅카스에게 이들의 머리가죽을 얻으려는 배신한 인디언 마구아 일행의 공격을 조롱하며, 자신들의 항전 의지를 높이기위해 하는 말이다. 상대의 존엄함을 예우하며 적의 비루함을 말하는 언어, 문장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이 소설의 백미라 할 것이다. 그들 일행은 마침내 "원주민의 지혜로만 알아볼 수 있는 흔적의 도움을 받아 정확한 본능과 새와 같은 방향 감각으로" 먼로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2) 피비린내 나는 대학살
도착한 곳은 이미 몽캄 장군이 이끄는 프랑스 군의 공격에 의해 괴멸 직전이다. 웹 장군이 지휘하는 영국군으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게 되었음을 알게 된 먼로는 몽캄에게 윌리엄 헨리 요새를 비우고 여인네와 아이들을 포함한 일천오백의 사람들이 무사히 떠날 수 있도록 한다는 조건 하에 항복한다. 그러나 퇴각시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영국인 집단에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휴런의 추장 마구아의 공격을 몽캄이 묵인함으로써 그야말로 잔혹한 만행, 대학살로 감행된다.
이것은 1757년 8월 10일, 미국의 식민지 역사에 "윌리엄 헨리의 학살'이라고 기록된 사건이다. 이 소설이 실증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는 일종의 역사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학살의 주역인 마구아는 코라와 앨리스를 포획하여 자신의 연합 부족이 있는 근거지로 은밀하게 이동한다.
마구아는 시종 자기 동족을 살해한 영국인, 그리고 이에 협조한 호크아이와 두 모히칸 추장에 대한 복수는 부족의 명예가 걸린 존중되어야 할 행위임을, 그 정당성을 강변한다. 이러한 외형적 표방에도 불구하고 마구아의 난폭한 살상 행위는 여인 코라에 대한 야욕의 은폐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탐욕과 악의를 가리고 부족의 명예라는 공익을 앞세울 줄 아는 교활한 인물이다.
"가을 바람이 피비린내를 날려 보내기 전에 휴런이 이 일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
- 본문 258쪽에서
소설의 한축은 이 대학살을 분기점으로 하여 포획된 두 여성, 코라와 앨리를 구출하기 위한 먼로와 덩컨, 이들을 돕는 호크아이와 웅카스, 칭가치국 일행의 곡절(曲折) 많은 여정으로 축을 옮긴다. 여기서 두 여성의 출생에 깃든 비밀이 먼로의 고백으로 발설되는데, 장녀인 코라는 원주민 여성과의 사이에 낳은 뮬라토이며, 둘째인 앨리스는 영국에서 정혼한 백인 여인이 낳은 전형적인 금발의 백인 여성이다. 소설은 곳곳에서 덩컨 소령이나 먼로 대령이 앨리스의 구출에 더 적극적이며 이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급기야는 마구아를 비롯한 휴런 일족과의 최후의 전투에서 웅카스의 자신을 돌보지 않는 희생에도 불구하고 코라가 살해되고 마침내 마구아까지 호크아이의 장총에 맞아 죽음으로써 앨리스의 구출이라는 성과만으로 종료되는 것은 식민지 개척이라는 말과 같이 여전히 인종적 차별, 백인 우월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 작품이라는 비판의 여지를 남겨준다.
정오의 햇빛 보다 밝은, 숲 속 태양의 시간같은 삶을 살며 인간의 유대를, 겸허 속에서 용기를 발휘할 줄 알던 마지막 모히칸은 이렇게 백인 이데올로기 속에서 사라진다. 문명이 야만이라 부르는 자연과 그 자체로 또하나의 자연이었던 모히칸족, 북아메리카 원주민이 문명의 폭력성에 의해 파괴되는 인간의 역사를 무엇이라 명명해야 할지 그 언어를 찾아내지 못하고 책을 덮는다. 선(禪)의 언어 같은 대화의 문장들, 원시 수림으로 덮힌 18세기 미지의 장소와 시대를 거니는 이야기의 재미가 결코 동시대의 에밀졸라만 못하지 않다.(終)
이 책을 알게된 것은 이언 보스트리치의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책을 통해서 였다
슈베르트의 짧은 생애의 끝자락엔 겨울나그네 스물넷의 연가곡, 그리고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5개 작품(모히칸족의최후, 스파이, 키잡이, 대평원, 붉은 해적선)이 있었다. 투병중 정신이 맑지 못한 때에도 재미 있다며 손에서 이 책들을 놓지 못하겠다고 친구에게 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어떤 책인지 이 작가의 모든 책을 읽어 봐야 겠다는 생각에 늘 다니던 도서관에서 열람을 해보았다. 그런데 이책을 찾는 사람이 적었나 보다. 보존서고에 있는 책이라며 흙색으로 변한 책을 자기 잘못도 아닌데 사서는 미안한듯 상태가 이런데 괜찮냐고 내밀었다. 그냥 돌아와 여기 예스24 e-Book으로 만나고 있다. 슈베르트와 함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