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읽어감에 있어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되었고, 그 때문에 오기가 발동하게 되었다. 소설 작품 읽기가 이렇게나 고될 수도 있구나 함을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까다로운 작품을 어떤 계기로 읽게 되었을까. '밀란 쿤데라'의 [커튼]을 읽으면서 접하게 되었고, 그 안에 작품을 읽게 된 동기부여의 요소가 있었다. [커튼]은 소설과 관련하여 '밀란 쿤데라'가 소설의 장막(커튼)을 걷어보자 하는 의미로 그 부제는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 이다.
[커튼]
'3부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기' 중에서 '상황들'이란 소제목을 가진 장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 이 3부작 장편소설...... 이 세 소설을 하나의 작품으로 묶는 것은 상황의 동일성이며, 브로흐가 "가치 붕괴"라고 일컬은, 역사 진화 과정의 초개인적 상황이다. 주인공들은 각각 이러한 역사의 발전에 대면하여 자기 나름의 태도를 취한다. 먼저 파제노는 눈앞에서 사라져 가려 하는 가치들을 충실하게 지킨다. 15년 후 에슈는 가치의 필요에 강박적으로 사로잡히지만 그것들을 어떻게 분별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후게나우는 가치가 사라진 세상을 전적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 ([커튼], p.92)
소제목 '생각하는 소설' 장에서는 [몽유병자들] 안에 삽입된 에세이의 역할에 대해 언급한다.
(...) [몽유병자들] 안에 삽입된 에세이인 '가치의 붕괴' ...... 바로 이 에세이가 세 주인공의 운명을 부서뜨리는 벽을 비춰주는 동시에 세 소설을 하나로 묶기 때문이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지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사색을 소설 속에 통합하는 것, 그리고 아름답고 음악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작품의 필수 요소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현대 예술의 시대에 소설가가 감행할 수 있는 가장 대담한 혁신 중 하나다. (...) ([커튼], p.98~99)
그리고 '4부 소설가란 무엇인가' 중에서 '이해하려면 비교해야 한다' 장에서는 비교와 관련하여 인용을 한다.
(...) 이에 브로흐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현상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브로흐는 반역자를 범죄자와 비교한다. 범죄자란 무엇인가? 자신이 저지르는 온갖 도둑질과 사기 행각을 시민이라면 갖추어야 할 하나의 직업으로 간주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질서에 자리 잡고 기대어 사는 보수주의자가 바로 범죄자다. 반대로 반역자는 기성 질서에 맞선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그 질서를 휘두르고 싶어 한다. 에슈는 범죄자가 아니다. 에슈는 반역자다. (...) ([커튼], p.119)
마지막으로 '7부 소설, 기억, 망각' 중, 소제목 '세기와 대륙을 가로지르는 여행으로서의 소설' 장에서는 시대적인 소설 구성 기법의 변환의 측면에서 언급하고 있다.
(...) [몽유병자들] ...... 이소설에서 헤르만 브로흐는 '가치들의 타락'이라는 격류에 휘말린 유럽인들의 삶을 보여 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서로 떨어져 있는 역사의 세 시기를 선택한다. 다시 말해서 유럽이 자신의 문화와 존재 이유의 붕괴를 향해 볼락해 가는 세 계단을 선택한 것이다. 브로흐는 소설 형식에 새 길을 열었다. (...) ([커튼], p.222)
이렇게 '밀란 쿤데라'는 [커튼]을 통해 [몽유병자들]을 읽어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작품을 읽는 것이 생각했던 것 만큼 수월한 과정이 아니었지만, 그런 '밀란 쿤데라'의 간접적인 추천이 있었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나서 [커튼]에 인용된 글들과 역자가 남긴 글을 보면서 마치 퍼즐을 풀어나가는 듯함 인상을 받았다. 도무지 풀릴 것 같지 않던 퍼즐 조각이 하나 하나 맞추어 지는 듯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와, 어떻게 그렇게 풀어낼 수 있었을까' 하는 감탄을 할 뿐이었다.
읽는 과정이 조금 고된면이 있었지만, 이런 작품을 읽는 그 고된 맛도 나름 맛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스트리아의 뒤늦은 소설가로서 그의 늦은 작가이력과 달리 20세기 초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소설가이다. 아직 나에게는 많이 어렵고 버거웠지만 의미있는 독서... 라고 믿는다.
시대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우리는 어째서 여전히 고전을, 그것도 지난 사조에 뒤늦게 발굴되어 출간되는 작품을 읽는 걸까?
읽으면서 카프카가 떠오른 작품. 어쩌면 카프카가 브로흐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