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살아간는 사람들. 그저 보통 사람들 이라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말인가.
다복한 가정속에서 건강한 부모님의 사랑을 담뿍받고, 크게 부족함없이 먹고 배우고 자랐고, 적당한 시기에 결혼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둘과 함께 우리의 집을 마련해서 뜨신밥 뜨신국 이렇게 나열해대는 이 모든것으로 난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라고 할수있을까?
다 거기서 거기인것 같은 삶속에서도 들여다 보면 각자의 사연들이 시리즈 소설책으로 무한히 발행될만큼이나 다양하다.
하루하루가 시트콤이고, 하루하루가 멜로였다가, 쎄드 무비가 되기도하고, 살벌한 스릴러 수준으로 부부싸움을 하기도하는 우리네 삶이다.
그런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눈물이 마구 흐르던 날들도 지나고, 아이들의 까르륵거림의 날들도 지나간다.
그런 하루하루가 나의 삶을 가득 채워나간다.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여기 책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_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에는 여러개의 단편이 실려있는터라, 인물 하나하나 소개하긴 어렵겠지만, 지금 이시대와는 다른 1800년대 후반 그 시대를 아우러는 보통 사람들. _그들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네 이야기와 뭐가 다를까? 여전히 삶을 고민하고, 행복을 찾아야하고, 신념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로맨스가 있고, 이별과 배신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늘 가까이 있는 사랑은, 행복은 잘 눈치채기 힘든가보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나의 곁을 스쳐 지나갔고, 꾀꼬리가 노래를 불렀고, 건초 냄새가 났다. 기억 속에서는 사랑스럽고 멋진 이 모든 것들이,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나에게도 흔적도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안개처럼 아무런 가칟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것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
"사실 그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우연에 의해서 무(無)에서 이세상으로 불려 나온 것입니다. 왜? 그는 자기 존재의 의의와 목적을 알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말해 주지 않고 혹시 말해 준다 하더라도 그저 무의미할 따름입니다. 그가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고, 죽음만 찾아옵니다. 그것도 역시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17편이나 실린 이 책에서 단연 오래도록 페이지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었던 이야기 <6호병동>을 조금 소개한다.
정신병원에 환자들의 소개되고, 그들을 관리하는 간호사와 병원관계자들 그리고 이 병원의 의사로 시작되는 한사람 안드레이 에피미치가 전지적 시점에서 이야기된다.
병원의 의사로 시작되는 안드레이가 갈구하던건, 그저 시시껄껄한 의사놀이가 아닌 지성에 대한 갈굼아니였을까?
병동에 갇힌 이반 드미뜨리치. 피해 망상이있음을 본인 스스로가 잘알고, 환영과 현실을 구분지을수 있던 사람.
사상을 가지고 있고, 생각이라는걸 할수있던 이성적인 사람. 안드레이는 그런 이반과의대화가 이곳의 유일한 지성적 대화라 즐겁기만하다.
그들의 대화가 책속에 쓰여진 부분이 실제 어느 정신병자가 아닌 높은 수준의 학자들의 대화라 해도 믿겨질만큼 삶에 대한 태도를 논하기도하고, 서로를 설득시켜나가는, 각자의 신념을 이야기 하는 또하나의 이야기로 재미지기도했다. 그렇게 즐겁게 대화에 푹 빠지던 안드레이가 그 병원의 환자로 갇히게되는 과정이 시작되면서는 그게 또 그렇게 억지가 아닌 그를 바라보는 다른이들의 시각에서 끄덕여졌던 부분이여서 충격이 또한번온다.
이야기의 흐름이 반대로 굽이쳐 흐르는데.. 그게또 억지로 퍼서 넘기는게 아니라 하나의 물줄기로 굽이굽이 자연스레 흘러간다.
아이고 맙소사..하면서 앞장에 앞장에 앞장을 다시 읽게되더라. 그리고 이이야기의 결말은 또 어떠한가? 스포가 될것 같아 더 적진 못하지만.. 심히 큰 충격이였다. 짧은 단편의 이야기에 심장이 쿵. 그리고 또 쿵. . 또 마지막에서 쿠궁 하고 떨어져나가는 이야기라니..
소설, 즉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실화같거나. 혹은 현실에서도 별반 차이없이 벌어질법한 이야기. 그리고 1800년 그시절이나 지금이나. 아.. 변함 없이 반복되는 "사람" 이야기.
순간에 찰나에 갈채와 박수를 받던 지식인이 허무하게 정신병자로 몰리기가 어찌 비단 안드레이만의 이야기일까?
내 의도가 순수했더라도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모두가 그러하지않다 하면, 과연 나는 순수했던걸까? 아닌걸까?
진심은 결국 통한다생각하며 뚝심있게 우뚝서있는다면, 그건 자존감이 높은걸까? 고집이센걸까?
모든이들의 맘속에는 내가 모르는 혹은 나도 잘 알지만 드러내기 싫은 그러한 내면이 존재한다면 현실속으로 검은수사처럼 등장한다면 과연 나는 인정할수있을까? 끝까지 부정해야할까?
모든 사람의 불륜이라 말하지만 나만큼은 이제야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는건? 안타까운일일까? 그저 그런 3류 이야기일까?
이 어찌 200년전 이야기지? 바로 어제 내옆에서도 벌어지는 일들인데말이다.
이야기들의 결론들이 심히 흥미로와 처음엔 시트콤보듯 읽어내려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읽고 또다시 읽어내려가면서 의미를 곱씹게되었던, 재미있지지만 가볍지않게 마음을 눌러주던 안똔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또 읽고 싶어 질것 같다.
그때에는 또다른 물음에 보태 부디 조금은 명료한 답을 해낼수 있길 바래본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은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열일곱 편을 수록하였다. 지인 중에 체호프의 작품을 유난스럽게 좋아하는 이가 있는데 그는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고 체호프의 희곡 작품으로 올리는 연극을 보러 다녔다. 대체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으면 대답을 잘 못하는 게 재미있어서 연극을 보고 왔다고 하면 항상 물었다. 체호프가 왜 좋아요? 라고.
이 책은 체호프의 단편소설 중에서도 표제작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읽기 위해 구입했다. ‘개’와 ‘부인’이 함께 겪는 이야기일 거라 상상했는데 예상을 벗어난 ‘불륜’을 다룬 이야기여서 놀랐다. 불륜소설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와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가 떠오르는데 주인공이 목숨을 잃는 것으로 끝나는 두 작품은 사랑의 본질, 삶과 운명 등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불륜으로 사랑을 찾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불륜은 말 그대로 불륜일 뿐인데 그것이 사랑이 될 수 있을까?
‘드미뜨리 드미뜨리치 구로프’는 얄따에서 바닷가를 지나가는 젊은 부인을 보았다. 그녀는 ‘키가 그리 크지 않은 금발의 여자로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뒤에는 하얀 스피츠가 따라가고 있(p.315)’어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라고 불렀다. 구로프는 이미 결혼했지만 자신보다 더 늙어 보이고 ‘드미뜨리’가 아니라 ‘지미뜨리’라 부르는 아내를 ‘천박하고 속 좁으며 촌스럽다고 여기고 꺼려해서 집에 있기를 싫어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는 바람을 피우기 시작(p.316)’했는데 얄따에서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과의 로맨스를 기대했다. 구로프는 안나 세르게예브나를 유혹해서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안나가 집으로 돌아오라는 남편의 편지를 받고 얄따를 떠나자 그도 모스크바의 집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얄따를 떠나는 것으로 끝나는 듯 보였다. 그런데 모스크바로 돌아간 구로프는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여자와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했어도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아무 문제없었지만 안나의 부재는 삶의 의미를 퇴색시켜 버릴 정도로 구로프를 흔들어놓았다. 구로프는 안나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S시로 떠났다.
그저 안나 세르게예브나를 보고 싶었고 가능하면 만나 이야기하고 싶었다.(p.330)
이후 두 사람은 안나가 병을 핑계로 남편을 속이고 두세 달에 한 번 모스크바를 방문할 때 만났다. ‘몰래, 마치 도둑처럼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만 만나(p.337)’던 두 사람은 아무 조건 없이 서로를 사랑한다는 걸 깨달고 ‘남의 눈을 피해야 하고 속여야 하며 서로 다른 도시에서 살며 자주 만날 수 없는 이런 처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p.339)’ 모스크바에 있는 구로프의 가정과 S시에 있는 안나의 가정은 두 사람에게 ‘견딜 수 없는 굴레(p.339)’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불륜은 이렇게 사랑이 되었다.
표제작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제외하고도 극도로 소심한 관리가 재채기를 한 이후 상황을 확대해석 하며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 <어느 관리의 죽음>, 어른의 거짓말로 상처 입은 꼬마가 등장하는 <하찮은 것>, 아이를 돌보느라 잠도 잘 수 없었던 열세 살 어린 소녀 바리까가 등장하는 <자고 싶다> 등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읽은 뒤 체호프의 작품을 유난스럽게 좋아하는 지인과 마주앉았다. 나는 이제 그에게 체호프가 왜 좋으냐고 묻지 않을 것이다. 나도 체호프의 이야기가 왜 좋은지 이유를 모르겠기 때문이다.
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 무도회가 끝난 뒤 (창비 러시아 문학) 를 통해 안톤 체호프를 만났다. 더 알고 싶어서 찾다가 만난 책이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외 16편,총 1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다. 체호프 단편선에 있었던 <관리의 죽음>은 <어느 관리의 죽음>으로 ,무도회가 끝난 뒤에서 만났던 <슬픔>은 <애수>라는 제목으로...같은 소설이라도 번역이 달라지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굽은 거울 : 못생긴 얼굴을 비틀고 변형시켜 예쁘게 보이게 하는 거울이 있다면 당신은 그 거울의 노예가 될 수 있다.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플러스라는 사실을 얘기하는 체호프.
하찮은 것 : 아이는 비밀을 지켜달라는 약속을 다짐받고 비밀 하나를 얘기해줬는데,어른이란 사람은 자신의 감정만 내세워 아이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어른에겐 아이의 약속은 하찮게 느껴졌던 걸까?
쉿 :여기 집에서 부리는 이러한 전횡은 우리가 편집국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소심하고 비굴하며 고분고분하고 무능한 사람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가 ! -p56 집에 돌아와 가족에게 모든 화풀이를 하는 한심한 가장의 모습을 보게된다.
자고싶다 : 열 세살 소녀인 유모 '바리까'는 집안 모든일을 도맡아 하는데, 밤에는 어린 아기의 잠을 재우고 시중을 드느라 잠 한숨을 제대로 못잔다. 그녀의 적은 바로 아기였다는 걸 알고벗어날 방법을 찾는다. 아기를 죽여버리고 곤하게 잠에 빠져든다. ('드라마' 라는 단편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살인으로 해결한다.그것도 아무런 가책도 없이...솔직히 섬찟한 이야기다. 분노조절에 실패한 소수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는듯 했다.
6호 병동 : 의사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 있는 6호병동이라는 정신병원엘 자주 찾아간다. 그곳에 감금되어 있는 환자 중에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하지만, 6호병동을 찾아가는 이 일은 그를 이 병동에 감금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정상인 사람이 정신병자가 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저런 일은 현재 어떤 공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라 무서운 이야기였다.
새로운 별장 : 다리공사를 하는 엔지니어는 공사를 하고 있는 마을에 집을 짓고 딸과 아이를 데리고 온다. 그들은 그 곳 농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고자 한다. 피상적인 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으시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좋은 옷을 걸치고 또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겁니다. -p 304 진심으로 이웃을 대하지만 몇몇의 주민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사끈끈 부딪힌다. 결국 그 가족은 '새로운 별장'이라 불리던 집을 팔고 마을을 떠난다. 타인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있어야하는데.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 여행지에서 만난 두 남녀가 정사를 나누고 각자가 사는 곳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서로를 그리워하게 되고 결국 남자가 있는 모스크바에서 정기적으로 만남을 갖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데...남자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가족이 있고 일이 있는 이 삶이 진실인지,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그 시간들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정답은 뭘까? 체호프의 영향을 받아 썼다는 '부닌의 일사병'이란 소설을 보면 하룻밤만 보내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 후 방황하는 남자의 모습만 볼 수 있었는데,체호프는 다시 만나게 함으로써 더 큰 숙제를 남겨준다. 이 외 다른 이야기들도 충분히 많은 얘기꺼리를 던져주고 있다.
역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안톤 체호프는 많은 비평가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작가라고 고백한단다. 소박해서 난해한 역설적인 작가가 바로 체호프라고. 그래서인지 역설적이게도 난 이 작가가 좋다. 어려운 사상이나 철학들을 집어 넣지 않는 그의 글은 난해하지 않고 담백하다. 이 책의 여러 단편에서 보여주는 풍경에 대한 묘사들은 다른 책의 단편들에서 봤던 맛을 또한 번 느끼게 해준다. <농부들>이란 단편에서 올가라는 여인이 농부들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을 보면 묘하게 '톨스토이'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했다. 거창한 사상이 아니라 삶의 사소하고 잡다한 현상에 주목한 글을 썼고, 자신의 글을 읽고 어떤 경향을 추구하는 사상가로 규정지으려는 자들을 싫어하고 단지 자유로운 예술가이고자 한다는 그의 이야기는 체호프의 글이 지금까지도 고전으로 남아서 읽혀지는 이유를 말해주는듯 하다.
인문학 공부를 같이 하는 팀이 있다. 공부하는 것만 좋았지 독서 모임에 대해 생각지 않았는데 그중 큰 언니로 통하는 분이 모임에 대한 제안을 하셨다. 첫 책으로 정해진 것이 바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다. 책에는 17편의 안톤 체호프의 단편이 실려 있다. 17편의 줄거리를 모두 이야기하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아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만 언급하고자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애수’다. 아들을 잃은 마부는 자신의 슬픔을 누구에게든 털어 놓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무도 마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때문에 마부는 슬프지만 슬프다고 말할 수조차 없다. 가끔 텔레비전에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인터뷰를 본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힘들어하면서 그럼에도 세상은, 사람들은 살아간다는 것이 그들을 힘들게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결국 내 일이 아니면 그 누구도 진심으로 슬퍼 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는 건지 모르겠다. 큰 것을 바란 것은 아니다. 그냥 자신의 슬픔 마음을 조금이라도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마부는 덜 외로웠을까? 현대인의 고독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아 기억에 남는다.
‘어느 관리의 죽음은’상대의 마음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천당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소심한 관리가 오페라 관람 중에 장관의 뒤통수에 재채기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 한다. 자신의 의식 세계에 갇혀 지나치게 확대 해석을 해 결국 죽음에 이르는 관리를 보며 어리석다 말해야 할지,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해야 할지 씁쓸함을 더한다. 괜찮다고 말하는 장관에게 자꾸만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 하지만 장관 입장에선 이 관리가 더 이상하고 놀리는 것 같다.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기억하게 만드는 소심한 관리의 성격. 현실에서 이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굉장히 피곤한 일 아닐까?
‘거울’이란 단편을 보면서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아내는 오래된 성에서 증조할머니가 죽을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굽은 거울을 보게 된다. 아내 역시 거울을 보고 나서는 거울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묘하게 굴절되어 아름답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비추는 거울.. “난 너무 아름다워.”란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성형외과 침대에 누워있을지 모르겠다. 더 아름다운 얼굴과 만나기 위해... 동안 열풍에 미인 열풍. 진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는 단편이다.
‘자고 싶다’란 단편은 지금의 추리 스릴러 느낌이 강하다. 밤낮으로 쉴 틈 없이 일하는 어린 유모. 유모는 자고 싶다는 유혹에 빠져 아이를 목 졸라 죽이고 잠을 청하게 된다. 이 얼마나 무섭지만 안타까운 일일까? 어린 유모도 지금으로 따지면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 그런 아이가 아기를 보고, 일을 하면서 편안하게 잠을 자본 게 언제인지 모른다. 조금의 잠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할 것 같은 유모는 결국 우는 아이의 목을 조르고 편안하게 잠을 청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고 했던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려오는 눈꺼풀과의 싸움에서 이겨보려 했던 어린 유모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하다.
마지막으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읽으면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떠올랐다. 삶이 권태로웠던 남자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만나 정사를 벌인다. 이후 각자의 일터로, 가정으로 돌아간 이들은 그렇지만 서로를 잊지 못한다. 결국 다시 만나게 된 사이지만 남의 눈을 피하며 이중생활을 해야만 한다. 이들은 각자의 가정을 정리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이들의 미래는 여전히 안개 낀 흐림인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국적 불문, 시대 불문. 불륜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기회(?)가 되어 부부가 된다면 연애하는 만큼 보고 싶고 더 사랑스러울까? 결국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은 더 애틋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쟁취하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과 놓쳐야 할 것 들이 많다. 어떤 것이 서로에게 이득일지.. 쉽지 않은 선택 아닐까?
읽었을 거라 생각했던 단편이지만 실제로는 읽지 않은 단편이 더 많았고 그랬기에 즐거운 시간이었다. 독서 모임에서는 어떤 것을 주제로 이야기할지, 나보다 인생을 더 산 그들은 무엇이 인상 깊었는지 들어볼 참이다. 독서 모임이 기대가 된다.
‘자신에게는 두 개의 생활이 있다. 하나는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도 있고 알 수도 있는 그런 공개된, 상대적 진실과 상대적 거짓으로 가득 찬, 주위 사람들의 삶과 아주 닮은 그런 생활이다. 다른 하나는 은밀하게 흘러가는 생활이다’
얄타라는 지명은 얄타 회담으로 학창 시절 역사 교과서에 등장했던 관계로 친숙한데 이 소설에서 안나와 구로프 두 남녀가 만나게 되는 일탈의 공간이다. 우크라이나 아래 크림반도에 위치해 있는데, 톨스토이는 여기에 여름 별장을 가졌으며 체호프는 몇년간 이곳에 체류했었다고 한다.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모르겠지만 불륜의 원조격인 안나 카레리나와 첫이름이 같다. 기차역에서 브론스키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고 길고도 상세한 불멸의 서사 속에 담긴 안나 카레리나의 이야기와 달리,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안나 세르게예브나는 얄타의 나른하고 지루한 휴양지에서 만남과 그 이후 계속되는 불륜이 아주 짧은 단편 속에 간략하게 담겨있다. 부유하고 성실한 남편과 결혼한 상태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고 정사를 벌이고 파멸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간다는 점에서 안나 카레리나와 유사하다. 안나의 일거수일투족과 그녀의 변덕, 그녀의 불륜으로 인해 그녀 주변 인물들의 심리 상태까지 톨스토이의 붓끝으로 속속들이 시대 속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안나 카레리나와 달리 이 소설에서 독자들이 안나 세르게예브나의 감정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구로프가 느끼는 방식과 구로프에게 던지는 몇 마디 말에 의지한다.
휴양지에 혼자 온 구로프는 이미 또래의 아내에게서는 싫증을 낸 지 오래로 외도를 밥먹듯 하면서도 여성에 대한 일종의 우월적이거나 혐오적 시각을 갖고 있어서 여성을 '저급한 인종이'라 지칭하지만 끊임없이 상대를 갈아치우며 여성 편력을 드러내는 유형의 인간이다. 그에게 여성은 즉각적인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대상으로 설령 뛰어난 미모와 정신을 소유한 여인이라 할지라도 오래 가는 경우가 없고, 그 일탈로 인해 오히려 늘 곤경을 겪게 하는 존재이다. 같은 기간 얄타에 혼자 온 안나가 스피츠 한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는데 쉽게 접근해서 쉽게 정사를 벌이고 때가 되어 헤어지는 아주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얄타에서 헤어지며 이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될 것임을 서로에게 인정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쉽게 잊혀지리라 생각했던 안나를, 모스크바로 돌아온 구로프는 한 달이 넘어도 잊지 못하고 더욱 더 절절하게 그리워하게 된다. 온통 마음 속에 안나 뿐인 구로프는 그 이야기를 주위에 하고 싶어 하지만 그렇다고 아내에게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오죽하면 아내에게라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동료에게 얘기를 꺼내지만 주위를 끌지도 못한다. 결국 그를 둘러싼 모든 일상의 사교는 아무 의미도 없고 단지 안나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가득한 구로프는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가 사는 도시로 찾아간다. 하루를 종일 집앞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체념하지만 곧 (그녀가 관람할 게 뻔한)오페라 공연 소식을 듣고 극장에 나타나 남편이 잠시 자리를 비운 막간에 키스를 퍼붓고 애정을 고백한다. 깜짝 놀란 안나. 구로프 못지 않게 그를 그리워했던 듯 보여지는 안나는 당황해하지만, 자신이 모스크바로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한다. 이제 둘은 매달 대학 병원에 간다는 핑계로 모스크바에 하루씩 와서 호텔에 묵으며 구로프와 밀회를 갖는다.
그는 안나를 만나러 가는 길에 딸에게 자상한 모습을 연출하며 자신이 매일 살아가고 있는 세계는 진실된 세계가 아니며 가식의 세계이며 오로지 안나와의 짧은 만남만이 진실된 세계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거짓의 세계에 살아가야 함을 막막해하고 슬퍼한다. 하지만 안나를 대하는 그의 마음은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진실만의 세계일까. 이미 얄타에서 개에게 뼈를 주겠다며 접근해서 정사를 벌이고 나서 안나는 자신이 타락한 여자가 되었다고 그래서 자신을 더는 존중하지 않게 될 거라며 울먹이며 죄책감에 흔들리는 그녀에게서 구로프는 짜증이 났으며, 이미 죄많은 여인의 모습을 느낀다. 타락은 여성 혼자서만 했단 말인가. 함께 한 타락에, 한 사람은 타락했다며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자책하고 애원하고, 다른 한사람은 그런 호들갑에 속으로는 멸시와 조소를 보내며 여전히 여성의 마음에 들도록 처신하는 구로프의 이 '진실된' 사랑이야말로 거짓으로 가득하다. 안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안나가 얄타에 온 이유는, 부족함 없는 상류 사회에서 성실하고 착한 남편에게 지루함을 느끼고는 뭔가 새로운 걸 찾아 서다. 호기심에 가득한 채 다른 삶을 기대하며 얄타라는 도시에 찾아온 배경에는 남편에게 아프다는 거짓말이 있다. 안나의 일탈에 대한 환상과 구로프의 여성 편력이 만난 것인데, 남자의 처신과 여성의 갈망은 뭔가 허위와 가식 속에서 뭔가 균형을 찾은 듯하다.
'다른 삶이 있을 거야 하고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죠. 제대로 살아 보고 싶었어요! 제대로, 제대로…. 호기심이 저를 괴롭혔어요..(안나 세르게예브나)'
이제 둘은 도둑처럼 남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날 수밖에 없다. 남들과 함께하는 의미없는 모든 공적 사교가 끝난 시간 오로지 안나의 눈물과 함께 하는 짧은 만남은 서로를 더욱 간절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비참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안나를 만나러 가는 날 머리가 세어버린 자신을 보며 여성들이 다 늙어빠진 자신에게 그토록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무얼까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구로프의 실제 모습이 아닌 자신의 결혼 생활에서 갖지 못한 어떤 환상을 구로프에 덧씌워 놀고 그 환상을 좋아한다는 사실 그 짧은 깨달음. 결국 그에게 있어서 의미없는 일상과 진정한 사랑 중 무엇이 진실이냐는 물음에 답해야 할 사람은 독자가 되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까지와 달리 추악해진 자신을 발견한 구로프가 이제 와서야 진실된 사랑을 하기 시작했고 도둑 사랑이라는 이 굴레를 어찌 헤쳐나가야 할 지 모른다는 것이다. 안나 카레리나는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졌지만 안나 세르게예브나는 아직도 호텔 방에 앉아 자신의 나이의 두 배인 늙어가는 구로프를 안으며 안타까움과 이룰 수 없는 연모에 눈물 흘리고 있다
‘두 배나 나이가 많은 사내의 가벼운 조소와 거친 오만의 그림자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늘 그를 선량하고 특별하며 고상하다고 말했으니, 분명히 그는 그녀에게 본래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무의식중에 그녀를 속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