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낡은 하숙집에 세 들어 사는 주인공격인 가난한 법대 학생 외젠 드 라스티냐크와 주위 인물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아직은 순수한 청년인 외젠의 눈을 통해 옆방에 사는 보잘 것 없는 한 인물의 삶과 몰락을 통해 그 시대 파리 상류층과 서민들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귀족집안 출신이기는 하나 가난한 고학생 외젠은 하숙집 주변에서 풍겨오는 가난의 냄새, 비루한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친척누이 보세앙 부인을 통해 파리 사교계에 발을 들이려 결심한다.
다른 여자가 이미 선택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들이 세상에는 많으니까요. 마치 우리가 쓴모자를 뺏어 쓰고는 우리 생활 방식이 자기 것이 되기를 바라는 소시민이 있듯이 말이에요. 당신은 성공할 거예요. 파리에서 성공이란 모든 것이죠. 즉 힘의 열쇠란 말이에요. 만약 여자들이 당신을 재기 발랄하고 재능 있는 남자로 생각한다면, 남자들도 그걸 믿을 거예요. 당신이 특별히 그들을 실망시킬 만한 언행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렇게 되면 당신은 뭐든지 원해도 되고, 어디든 발을 들여놓을 수 있어요. 그러면 사교계의 실체를 알게 될 거예요. 속고 속이는 자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속는 자도 속이는 자도 되지 말아요. 이 미궁 속에 들어가기 위한 아리아드네의 실처럼 내 이름을 쓸 수 있도록 해줄게요. 하지만 내 이름을 욕되게는 하지 말아요. 96쪽
당장 입을 제대로 된 옷도 없는 외젠은 경제적으로 힘든 시골에 계신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들에게 돈을 빌려줄 것을 요구하고, 가난하나 순박한 이들은 힘들게 그 돈을 마련한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돈과 함께 이러한 편지를 보낸다.
그러니까 어떤 길에 투신하고 있는 거냐? 너의 인생, 너의 행복은 현재의 네가 아닌 그럴 듯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구나. 그러니까 네가 감당할 수 없는 돈을 쓰고 소중한 공부 시간을 낭비해야만 진출할 수 있는 그런 세계를 드나드는 일에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착한 아들 외젠, 엄마의 마음을 믿어 다오. 옳지 못한 길로는 대의에 이르지 못한단다. 너 같은 상황에 있는 젊은이에게는 인내와 체념이 미덕이 되어야 해. 지금 널 나무라는 게 아니다. 우리가 보내는 이 돈에 어떤 씁쓸한 감정도 덧붙이고 싶지 않구나. 내가 하는 말은 자식을 믿고 또 앞날을 내다보는 어머니로서 하는 말이란다. 너의 의무가 무엇인지 네가 잘 알듯이, 네 마음이 얼마나 순수하며 너의 의도가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나도 알고 있단다. 그러니 두려움 없이 너에게 말할 수 있어. 자, 사랑하는 내 아들, 앞으로 걸어가거라. 난 엄마라서 떨고 있지만 우리는 기원하고 축복하면서 네 걸음걸음마다 애정을 담아 함께할 거야. 얘야, 부디 신중하게 처신해라. 어른들처럼 현명해야 한단다. 네게 소중한 다섯 사람의 운명이 너 하기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그래, 우리의 모든 행운은 너에게 달려 있어. 네 행복이 우리의 행복이듯이 말이다. 112쪽
마련된 돈으로 양복과 신발 등 화려한 겉꾸밈을 하고는 상류층 사교에 진출하게 되는 외젠, 여기서 알게 된 귀족부인인 레스토 부인과 재력가의 아내 델핀 드 뉘싱겐부인이 옆 방에 묵고 있는 고리오 영감의 두 딸인 것을 알고는 그들의 화려한 집과 비루한 그녀들의 아버지의 방을 비교하면서 너무 놀라게 된다. 두 딸의 행복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자세가 되어있는 헌신적인 아버지 고리오 영감을 보면서 연민을 느끼는 외젠, 고리오 영감은 외젠의 입을 통해 자신의 딸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한다. 딸들의 불행을 견딜 수 없는 고리오 영감은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어 죽어가는데, 딸들은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바쁘다는 핑계로 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외젠과 친구 의사가 그의 임종을 지키게 된다.
외젠이 자기 주머니를 뒤져 보니 한 푼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크리스토프에게 1프랑을 꾸어야 했다. 돈을 꾼 것 자체는 별 것 아닌 일이었지만 라스티냐크의 마음에는 이로 인해 무서운 슬픔이 밀려왔다. 해는 지고 축축한 땅거미가 신경을 자극했다. 그는 무덤을 바라보다가 그곳에 청춘의 마지막 눈물을 묻어버렸다. 순수한 마음의 거룩한 감정에서 우러나온 눈물, 떨어진 그 땅에서 다시 샘솟아 하늘까지 향하는 그런 눈물이었다. … 혼자 남은 라스티냐크는 묘지의 높은 언덕 쪽으로 몇 걸음 걸어 올라가, 등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센 강의 양쪽 기슭을 따라 구불구불 누워있는 파리를 보았다. 그의 시선이 거의 탐욕스럽게 집착한 곳은 방돔 광장의 기둥과 앵발리드의 둥근 지붕 사이, 그가 뚫고 들어가고 싶어 했던 그 멋진 사교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웅웅거리는 벌집 같은 이곳에 그는 미리 꿀을 빨아내기라도 할 듯한 시선을 던지며 이 거창한 말을 던졌다. “자, 이제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
그리고 그 사회에 대한 첫 도전의 행동으로, 라스티냐크는 뉘싱겐부인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334쪽
작품 전반에 걸쳐, 서민을 대표하는 공간인 하숙집과 화려한 파리 사교계가 묘하게 대조를 이루는데, 고리오 영감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보면 몸담고 있는 곳은 달라도 모두가 속물이며 따뜻한 마음이 결여된 그들의 모습이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다만 고리오 영감의 죽음을 지켰던 외젠과 그의 친구 의사의 모습이 조금 위안을 준다고나 할까. 자신들이 가진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모아 장례를 치뤄주는 모습은, 부자이고 권력을 다 가진 것 같은 고리오 영감의 딸과 사위들의 태도와 대조를 이룬다. 외젠과 같은 마음이 따스한 이들이 이 모습 그대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글쎄 그와 파리의 대결은 누구의 승부로 끝날 것인가. 치장하고 화려한 껍데기만 있는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작가 발자크 주위의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평생 빚 독촉에 시달리며, 이를 갚기 위해 작품을 쉴 새 없이 써야 했던 발자크는 이때 이미 파리의 쓴맛 단맛을 모두 알아버린 것은 아닐까.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물질만능주의 시대의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다.
고리오 영감은 한마디로 부유한 사업가였지만, 딸 시집보내느라 기둥 뿌리 뽑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시대적 배경이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왜 귀부인들은 남편 이외에 바람피는 용도로 애인이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애인들 뒤 바주기위해 집안 기둥뿌리 뽑는 귀부인들이 많았다니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생활이었다.
고리오 영감을 읽게 된것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는 중에 고리오 영감이 언급이 되었기 떄문이다.
21세기 자본론은 아직 완독을 못했는데, 고리오 영감은 완독을 하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오래전 소설인데, 지금의 이야기로 각색을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시대상황이나, 등장 인물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읽으면서 문득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이 떠올랐다.
물론, 리어왕에 비교되는 인물은 바로 고리오 영감이다. 책을 읽는 중에도, 이렇게 올인하다 큰 코 다치지 싶었는데...역시나, 죽는 순간까지 딸들은 저들의 이런 저런 사유를 빙자하여 콧배기도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고리오 영감의 지나친 집착이 빚어낸 결과이리라.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고리오 영감의 두 딸들 나지와 덴피..그리고 그 남편들이 보여주는 비인간적인 측면을, 하숙집 주인인 보케부인과 그 하숙생들 역시 똑같이 보여준다는 점이 좋았다.( 뭐..비인간적인 측면이 좋았다기 보단..보편적으로 등장하는 한 두명의 근본부터 착한 사람이 마구잡이로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 좋았다. 왜냐면, 그렇게 되면..너무 리얼리티가 떨어지니까.)
그래서, 오래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부자는 나쁘고 가난한 사람은 착하다,라는 뻔한 편견을 깔고 있지 않다는 것은 나름 신선했다. 물론, 막판에 고리오 영감의 비참한 말로에 살짝 착한 모습을 보이는 주인공 외젠의 모습에선 조금 작위적인 느낌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눈앞에 펼쳐져 있는 빠리를 두고, 결투(?)를 다짐하는 그의 모습에서...아마, 그 역시... 고리오 영감처럼 돈의 희생자가 되었거나, 아님 악착같이 출세했거나...하는 쓰여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도 괜찮았고.
책을 읽고 나서는, 나의 아버지와 고리오 영감에 대한 생각도 해보았다.
모든 부모..아니 대다수의 부모는 어쨌거나 자식을 위해 가진 것을 모두 내주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도 간과하고 있는 것은...항상 돈이 문제의 시발점이고 해결점은 아니라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에..물론, 돈도 중요하지만...다른 그 무엇도 중요하니까.
책 중간에...좋은 말들이 많이 나온다.
언제나 나의 신념 같은..."좋은 감정이 있으면 상대방이 알 수 있다" 뭐 그런건...어느 글에서나 확인되는 것이 좋다.
책 속의 인물에 대해서 본인을 대입해 볼 수 있을텐데..아마 그렇다면, 나는 보케 부인과 닮아 있을 것이다. 은근 사람 무시하고, 돈 밖에 모르거나, 사람이 당장 죽어가도 내 이익을 챙기는...뭐, 나는 빵과 돈에만 목숨걸고 살기로..한때는 작정을 했던 사람이니까.
이 책은...문학과 예술이 어떻게 사회화되었는지,에 대한 이해하고자하는..나름 큰 마음먹고 시작한 독서이다. 작가의 의도가 있던 없던...그 시대를 반영하는 글 속에서 뭘 건져내야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인데..어쨌거나..책을 이렇게 뜯어먹을 정도로 차분하게, 재미나게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차츰 차츰... 책 한 권을 읽고 나서의 그 여운은 예전보단 더 진하게 오래 남지 않을까 한다.
부성애처럼 순수하던 돈과 여자에 대한 불순한 욕망이든 과도한 집착은 영혼을 갉아 먹고 최종적으로 사람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착하고 한때나마 한재산 모았던 노인이 딸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최종적으로 개처럼 죽어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렸다.
애송이 시골 청년 라스티냐크가 어리숙한 어린 양에서 어떻게 능란한 남자로 변해가는지
가난한 노인이 부유한 딸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하고 버려지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소설내에서는 두 곳의 이분법적 무대가 등장한다.
보케 하숙집과 귀족사회 그 귀족사회는 다시 신분적 우위에 있는 생제르맹과 부르조아의 장소인 쇼세당탱으로 나뉘어 보여 준다
쇼세당탱의 부르조아는 생제르맹의 신분 귀족사회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고리오 영감의 둘째 딸 델핀이 대표적이다.
라스티냐크가 보케하숙과 귀족사회를 경험하면서 두 장소는 다르지만 같은 교훈을 준다.
처음에 고리오 영감의 재산을 보고 결합을 원하던 하숙집 주인 보케가 고리오 영감의 돈이 떨어지자 냉담해지는 것이나, 다주다 후작이 지참금을 원하여 로슈피드가와 결합하기 위해 보세앙 부인을 내치는 것이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다주다 후작에게 버림받은 보세앙 부인의 눈물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드는 귀족사회나 죽어가는 고리오 영감에게 무심한 하숙집 모습의 잔인성과 잔혹감은 무엇이 다른지 알지 못한다.
결국 탈옥수 보트랭의 말처럼 세상은 인간들에게 끊임 없은 테스트와 시련을 안겨 주고, 그것을 끊는 방법은 세상과의 결투에서 승리해야만 끝낼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라스티냐크는 딸들에 대한 끝 간 데 없는 고리오 영감의 희생에 기가 질리고, 아버지에 대한 딸들의 무심함에 아연실색하게 된다.
그 가운데서 고리오 영감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장례를 치뤄주고 뉘싱겐 부인(고리오 영감 둘째 딸)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하러 쇼세당탱으로 향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겉으로는 휘황찬란하지만 후회와 양심의 가책이 몸을 갉아 먹고, 값비싸고 허망한 쾌락을 쫓지만 그 댓가로 끊임 없이 번민에 휩싸이게 되는 생활에서 라스티냐크는 절망한다.
그러나 자신이 거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쳇바퀴 같은 생활 속에서 과연 라스티냐크가 벗어날 수 있을지 아니면 같이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질지 결과는 나오지 않았으나 단언컨데 라스티냐크도 위선과 기만에 찬 인생을 살다
쓸쓸한 최후가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 것이라 예상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