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독교인도 들어보신 얘길 겁니다. 평소 주님을 누구보다도 잘 따르던 나사로 3남매였거늘, 이 나사로가 어느날 죽습니다. 뒤늦게 찾아오신 주님을 마르다와 마리아가 원망하지요. 주님이 계셨더라면 제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던 주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으로 가서 말씀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죽은 지 며칠이 되어 썩는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세상에, 여전히 수의를 두른 채 걸어나옵니다.
이 책은 이러한 주님의 기적 다음의 얘깁니다. 죽었다 다시 살아난 나사로는 어떻게 됐을까요? 남은 인생을 더욱 주님을 위해, 두 여동생과 즐겁게 행복하게 살았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실제로 우리 앞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우린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할까요? 무섭지 않겠습니까? 아니, 죽었다가 다시 살았는데, 얼마나 이 사람이 두렵고 무섭겠어요. 그래서 실제 사람들도 그렇게 합니다. 나사로가 악마라면서 돌로 쳐 죽여요. 나사로가 죽었으니, 주님이 가만 계실 수 없잖아요. 다시 살려 주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더 무서워졌겠죠? 나사로를 또 죽입니다. 죽었다 살아나고, 죽었다 살아나고. 지칠 대로 지친 나사로는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친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에 내가 죽으면, 나를 그대로 매장하지 말고 내 시신을 불에 태워 가루로 날려보내라고. 주님이 다시 살리실 수 없도록. 다시 사는 게 끔찍해진 겁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사랑과 기적, 은혜를 베푸십니다. 받을 자격이 있는지도 하나님이 결정하시죠.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사랑과 은혜를 받은 다음 어떻게 살 것인지 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겁니다. 기적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기적으로 내가, 우리가 어떻게 변화한 삶을 다시 살 것이냐가 문제인 겁니다. 은혜의 의미를 알 수 없다면, 불로장생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