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는 알아도 고딕호러는 또 낯설기에 검색을 해본다. 고딕물이라고 통칭해서 죽음에 대한 주제와 낭만주의가 결합된 것이란다. 죽음과 낭만이라 참 어색한 조합일 수밖에 없는데 또 그걸 문학적으로 풀어내면 어째 또 멋지기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고. 그렇다면 제목에 의하면 여기의 이야기들은 제주를 배경으로 해서 죽음과 낭만이 포함된 이야기라는 결론이 나겠다.
처음부터 읽다가 중간쯤 박소해 작가의 글을 읽은 후 작가의 말을 읽고 나니 조금 더 명확한 이해가 되었다. 기획자라 명확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제주색을 주기 위해서 제주의 전설을 넣고 사회 역사적인 이슈도 추가하고 새로운 공포물을 추구했다는 것. 그래서일까 몇번을 가도 몰랐던 제주의 새로운 모습들이 이야기 속에서 많이 보인다. 알뜨르 공항도 그러하고 빌레못 동굴이나 차귀도, 곶자왈 등 낯선 장소들이 언급되고 있어서 다음에 제주를 혹시 또 가게 된다면 이 책에 나온 이 낯선 곳들을 탐험하듯이 가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그것이 바로 제주에 살고 있는 작가가 기획한 의도가 아닐까.
제주에 취재를 갔다가 역사 속 그 어느날로 넘어가 버린 주인공의 이야기, 시댁에 아기를 뺏겼다며 탐정에게 아이를 찾아줄 것을 부탁하는 이야기, 한달살이를 하러 왔다가 아예 집을 사버리는 누나의 이야기, 전쟁 당시 집성촌 사람들의 노역 이야기, 등대를 지키는 일을 하면 돈을 주겠다는 등대지기 이야기, 이단 종교 이야기, 지역 개발을 위해 일을 하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이야기까지 총 일곱개의 이야기들을 무지개보다도 더 현란한 색을 발하면서 자신만의 특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앤솔러지의 힘이다.
일곱 작가 중에 홍정기 작가와 전건우 작가의 작품은 전에 읽어본 적이 있지만 나머지 작가들은 전혀 새롭다. 여러 앤솔러지에 참여한 작가들이 있는데 아마도 단편보다는 장편을 좋아하는 내 성향상 앤솔러지를 잘 읽지 않아서 그렇게 치우친 경향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박소해 작가의 이름은 조금 익숙했는데 [네메시스]라는 앤솔러지 작품에서 본 적이 있었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이단 종교의 이야기를 그린 <라하밈>은 구마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검은 사제들]을 보는 느낌도 들고. 한 작품만 꼽자면 홍정기 작가의 <등대지기>. 그저 불만 껐다 켜면 되는데 2년을 버텨야 한다는 조건이 아주 극적이었다. 누구라도 살짝 혹 할 수 밖에 없는 2억이라는 돈을 내 걸어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일으키고 있다. 독자들을 어떻게 꼬셔야 하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영리한 플롯의 전개였다.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를 좇아가듯 나 또한 작가의 뿌려놓은 그 과자조각들을 홀린듯 쫓아가다가 덜컥 덫에 걸려 버렸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 이런 전개를 숨겨 두었구나 애초에 혹하는 조건일 때 의심을 했어야만 했다. [전래 미스터리]에서도 봤었지만 단편에 확실히 강한 작가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느낌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보고싶어지는 시점이다.
목차가 아주 신기한데 제주의 지도를 그려놓고 각 작가의 작품이 배경이 되는 장소에 작품의 제목과 작가의 이름을 배치했다. 어디에서 일어난 일인지 한 눈에 볼 수 있어 색다른 시도라 여겨진다. 신박한 접근 참 쌈박하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제주도 깊은 곳, 인간은 헤아릴 수 없는 섧고 서늘한 기척들"
호러와 제주의 만남이라니. 제목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일곱 명의 작가가 제주를 무대로 일곱 편의 이야기를 <고딕 X 호러 X 제주>에 실고 있다.
<말해줍서>는 4.3 사건을 배경으로 비통에 빠진 4월의 제주를 재연한다. 외조모상 이후, 섬을 떠나 육지에서 한번도 돌아온 적 없었던 수연은 자신이 하고 있는 방송 일로 인해 제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게 된다. 선착장에서 일행을 잃어버린 수연은 자그만 여자 아이를 만나고, 아이가 알려준 대로 어른들이 있다는 빌레못 동굴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너희 서 있는 사람들>에서는 36세의 사립 탐정인 박경원과 조수 나기은이 사건을 의뢰 받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시댁에 빼앗긴 어린 아이를 되찾아달라는 사건이었는데, 경원과 기은은 미신을 과신하며 제주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의뢰인의 시댁으로 향하게 된다. 그들이 향한 곳은 한경면 차귀도라 불리는 제주 최서단에 위치한 섬으로 1970년에 이미 무인도가 되었다고 검색되는 곳이다. 핸드폰 신호도 잡히지 않고, 7월의 바닷물이라고 하기엔 유독 차가운 그곳에서는 미스터리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외에도 <청년 영매_모슬포의 적산가옥>, <구름 위에서 내려온 것>, <등대지기>, <라하밈>, <곶> 등의 작품들이 실려있다.
제주의 지명과 제주의 방언, 제주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앤솔러지 작품답게 참신하고, 독특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사실 읽으면서 난해한 이야기도 있었고, 급하게 끝나버리는 결말로 매듭지어진 작품은 개인적으로 아쉽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훗날 제주를 여행하면서 책 속에 나왔던 지명의 장소를 찾거나 설화를 듣게 된다면 반가울 것 같기도 하고, 책 속의 이야기들이 다시 한번 상기될 것 같다. 또한 미스터리, 호러라는 장르답게 계속해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데, 이것이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