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동구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서 글의 아름다움을, 소설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좋은 소설이란 다시 읽어도 감동적이다. 이 책을 읽은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읽으며 동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공유하며 새로 읽는 것 같았다. 동구는 행복했을까?
다시 읽은 소설은 새로웠다. 내가 읽었다고 착각한 걸까, 라고 생각할 만큼. 할머니가 이렇게 엄마를 욕하고 무시하고 괴롭혔던가. 4대 독자라면서 손자한테 ‘이 새끼야’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던가. 아버지는 또 얼마나 가부장적인 사람인가.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힘든 건 알겠는데 아내를 때리거나 해서는 안 되지 않나. 과거 우리 부모들은 당연하게 생각했던 건가, 소설의 내용을 어렴풋하게 기억할 뿐이었나.
1979년에서 1981년에 걸쳐 한 소년이 바라보는 세계를 담았다. 할머니를 비롯해 아버지, 어머니, 하나뿐인 여동생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소년 동구의 시점에서 말한다. 동구는 계산은 잘하나 글을 또박또박 읽지 못하고 쓰지도 못하는 난독증이었다. 박영은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뒤 동구에게 글을 가르쳐주었다. 선생님에게 자연스럽게 말하기 위해서는 일단 마음이 편해야 했다. 동구의 가족 이야기를 들으며 동구가 속이 깊다는 걸 알고 동구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그런 선생님이 좋은 동구다. 훗날 선생님과 결혼하는 꿈을 꾸기까지 했다.
동구가 사는 동네는 인왕산이 내려다보이는 장소로 청와대가 가깝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도 나왔다시피 1980년대는 계엄령을 선포했던 해였다. 광주에 할머니를 뵈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박영은 선생님, 시국은 불안했다. 1980년대 광주 사태가 있던 때였다. 그건 대외적으로 드러난 사건이고, 동구의 가족에게도 비극적인 사고가 생겼다.
동구의 가족과 더불어 시대적 역사도 함께 흘러간다. 사고가 생기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해와 용서가 필요하다. 아픔을 감추지 못하고 남 탓만 하다가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동구에게 영주는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영주를 업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예쁨을 자랑했을 뿐 아니라 난독증이 있어 제대로 글을 읽지 못하는 동구에 비해 친구들 앞에서 글을 또박또박 읽는 영주를 바라보는 동구의 눈빛은 자랑스러움이었다. 불평불만 가득했던 할머니는 어땠나.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의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아이 하나로 인해 가족은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국을 강력하게 논하지 않으면서,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삶을 말하는 소설이었다. 열 살 소년 동구가 박영은 선생님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얼마나 귀여운가. 소주 두 잔을 마시고 취해 주사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박 선생님이나 주리 삼촌, 이태혁이 웃는 장면은 다시 읽어도 웃긴다. 아이에게 정치나 민주주의, 계엄령에 대해 말해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곁에 사람이 없다는 것, 다시는 오지 못한다는 거로 안타까워할 뿐이다.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은 이제 기억 속에 하나의 영상으로만 남게 되었다. 차가운 철문을 힘주어 당기며 나는 아름다운 정원에 작별을 고했다. 안녕, 아름다운 정원. 안녕, 황금빛 곤줄박이.
아름다운 정원에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난 섭섭해하지 않으려 한다. (369페이지)
엄마를 살게 할 방법을 생각해낸 대로 동구는 행복했을까. 엄마랑 아버지도 행복했을까. 더 큰 아픔이 다가올지도 모르지만, 따로 또 같이 행복할 수도 있는 법이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그립고도 애틋한 시간을 말해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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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설이를 읽었었다. 비슷한 느낌의 성장소설이겠지, 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너무 재밌어서 놀랍고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왜 이제야 읽게 된걸까 싶은. 읽어나가며 이제라도 읽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은. 심지어 2002년에 출간된 20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책이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라며…
1977년부터 1981년에 이르는 시간 속에서 인왕산 허리 부근 조그만 달동네 한가운데에 주인공이자 화자인 한씨 집안의 4대 독자인 동구와 그 가족이 살고 있다. 동구와 여섯살 터울인 사랑스러운 동생 영주, 가부장 그 자체인 아버지, 사사건건 할머니의 미움을 받고 아버지의 따뜻한 공감과 동의를 얻지 못해 마음을 끓고 사는 어머니, 며느리를 지독히도 미워하는 할머니. 할머니와 아버지 대체 왜 그러세요? 묻고 싶어질 만큼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끓어 올랐으니… 이런저런 분란이 끊이지 않는 동구네 가족의 일상을 보며 가슴을 졸이는 일이 많기도 했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동구가 글을 제대로 읽고 쓰는데 미숙하다는 것. 그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게 따뜻한 마음으로 북돋아주고 방과후 같이 공부를 하며 할 수 있음을 새겨주는 동구의 담임인 박 선생님같은 멋진 어른도 있다. 동구는 어른에게 이해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박선생님으로부터 알게 되며 선생님을 마음 깊이 경애하게 된다. 한 소년의 세계에 이토록 많은 우여곡절이 펼쳐지면서도 이 소설에 붙들리고 마는 것은 동구의 마음을 눈에 보듯, 마음으로 전해 받는 듯 쓰여진 세심하고 아름다운 언어 때문일 것이다. 마력이랄까. 휩쓸리면 헤어나오기 힘든 언어의 마력으로 내내 빠져들어버렸다.
그 언어에 어린 아이의 장난스러운 활력이 있고, 가정의 다사다난한 현실이 있으며, 행복하지만은 않은 슬픔이 녹여져 있다. 결코 믿고 싶지 않은, 사랑하는 동생에게 펼쳐진 불운과 5.18의 격랑의 비운 속으로 자취를 감췬 경애하는 박 선생님에 대한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이 있다. 소설은 동구가 사랑하는 동생과 선생님의 다른 세계를 조금씩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동구를 껴안는다. 동구는 그렇게 세상을 배우며 세계를 이해하고 사랑과 이별을 보듬어 나간다.
그렇기에 이 소설을 장식하는 동구의 마지막은 찬란하도록 아름답고 슬프다. 동생 영주의 죽음으로 아수라장이 된 가정이 가족으로 지켜지기 위해 동구는 중요한 선택을 하고, 그것을 선언하듯 동경해왔던 아름다운 정원에서 작별을 고한다. 애정했던 꽃과 나무와 새들의 풍경을 다시 한번 눈에 담으며 동생과 선생님이 지금 함께 같이 보고 있다는 아픈 소망을 바라기도 한다. 동구가 사랑하는 것들을 이별하는 모습, 그걸 지켜보는 내 마음도 아팠다. 사랑처럼 이별 또한 반드시 오기에. 대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인정하고 받아들여만 하는 이별이 더 많기에. 나 또한 겪어보았기에.
그렇지만 아름다웠다. 가슴에 기억에 영원토록 남아있을 동구의 아름다운 정원, 사랑하는 사람들, 그 힘으로 다시 시작될 동구의 삶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368p 나에게 잿빛 등 털을 내보이고 누운 향나무 쪽으로 달아나는 곤줄박이를 바라보며 나는 지금도 어디에선가 영주와 박 선생님이 저 곤줄박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365p 나는 퍽 행복해졌다. 나무에 꽃도 잎도 없지만 아름다운 정원의 옛 기억을 더듬으면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잎을 달았을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각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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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썼습니다>
어머니를 몹시도 구박하고 동구에게도 매타작을 가하는 할머니와 가부장적인데다 엄마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는 아버지와 여섯 살 터울의 동생 영주가 함께 사는 동구네 집은 인왕산 허리 부근, 화강암 바위로 이루어진 산줄기의 조그만 달동네 한가운데 있다.
동구는 3학년이 되도록 글을 읽지 못해 엄마가 학교에 불려가기도하고 집에서도 천덕꾸러기에 지진아 소리를 듣고 산다.
더군다나 세 돌이 안 된 영주가 글을 읽기 시작하자 할머니의 구박은 더 심해지고 모든 잘못은 엄마에게 돌아간다.
3학년 2학기 새 담임이 된 박영은 선생생님은 동구의 ’난독증‘을 눈치채고 방과 후 학습을 시작하고 동구의 착한 심성과 동생을 사랑하고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박영은 선생님 덕분에 난독증은 점점 나아지고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함께 하며 동구는 점점 더 많이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다.
영주가 태어난 1977년에 시작된 이야기는 동구에게 큰 불행이 닥치는 1981년에 끝을 맺는다.
소설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굵직하게 기록되는 12.12군사반란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루고 있지만 산동네 아이에게는 탱크를 구경하러 간 날이거나 박영은 선생님이 사라져버린 날로 기억되기에더더욱 마음이 아프다.
너무나 극악스러운 할머니와 엄마를 지켜주지못하고 할머니에게 동조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 시절엔 다 그렇게 살았다고 눙치기는 어렵다.
동구의 선택이 원하던 대로 끝까지 엄마를 지킬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기에 더 마음이 아파온다.
2002년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작품을 출간 22년 만에 읽었다.
오랜만에 새벽까지 책을 읽었고 동구의 마음을 몰라주는 어른들이 미워 울었고 착하기만 한 동구가 너무 일찍 아름다운 정원을 떠나는 게 속상해 울었다.
어린아이를 어린아이답게 살 수 없게 하는 현실이 여전히 존재하기에 동구에 이야기가 현재진행형처럼 느껴져 마음이 아프다.
어른이 된 동구는 그 착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라 믿으며 아픈 마음을 달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