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supportEmptyParas]--> <!--[endif]-->
월향신사의 좁은 덤불숲을 들어가면 녹나무 한 그루가 있다. 초하룻날과 보름날 밤에 나무의 우묵한 동굴에 들어가 밀초에 불을 켜고 염원을 한다. 예념자와 수념자를 이어주는 이가 녹나무 파수꾼이다. 파수꾼 레이토는 오늘도 신사의 경내를 청소하고 있다. 레이토의 시선을 따라가면 다양한 사람들이 기념하러 온다. 녹나무의 파수꾼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뤘던 『녹나무의 파수꾼』에 이어 『녹나무의 여신』은 신사를 찾아온 고등학생 소녀의 동생들과 잠을 자고 나면 기억을 잃은 소년이 찾아오며 일어나는 일을 다룬 내용이다. 행복이라는 건 어디서 오는지 묻고, 전체적으로 따스함과 뭉클함을 주는 소설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월향신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팔아달라며 유키나와 동생들이 찾아와 시집을 맡기고 그 시집을 읽은 한 중년 남자는 다음에 주겠다며 시집을 그냥 들고 나간다. 시집을 누가 사겠느냐며 거절하려 했던 레이토는 유키나가 마음 상할까 봐 독후감을 남겨 전해준다. 인지장애가 있는 치후네를 따라 갔던 곳에서 자고 나면 기억을 잃은 소년을 만나 스타워즈와 관련된 대화를 하는데 소년은 모처럼 이야기가 통한 사람을 만났다며 기뻐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소설에서 한 장이 끝나면 ‘내일의 나에게’라는 일기가 펼쳐진다. 자고 나면 기억을 잃는 소년이 내일을 위하여 쓴 일기다. 일기에서 중학생 모토야는 레이토를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고 쓴다. 녹나무에 대한 시를 쓴 유키나의 시집을 모토야에게 주자 그는 시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다. 녹나무를 여신으로 표현하는 그림이었다. 레토야는 유키나와 모토야를 이어준다. 함께 그림을 그리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어쩐지 뭉클해진다. 누군가와 대화가 할 수 있다는 거,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중요한 게 없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녹나무에 맡긴 염원은 반영구적으로 남게 됩니다. 다만 두 가지 예외가 있어요. 첫째는 같은 사람이 두 번 이상 예념하는 경우인데, 먼저 맡긴 염원은 나중 것으로 갱신됩니다. 요즘 말로는 업데이트라는 게 될까요. 또 한 가지는 예념한 당사자가 수념하는 경우인데, 그 염원은 녹나무에서 완전히 소실됩니다. 그 뒤에는 아무도 수념할 수 없어요. …… 그러니 그 방법을 이용해 추억을 되찾더라도 기회는 단 한 번이에요. 두 번은 없습니다. 예념한 당사자의 수념이 금지 사항이 아니지만, 감행할 거라면 그 점을 명심하도록 하세요. 그게 파수꾼의 역할입니다. (326페이지)
<!--[if !supportEmptyParas]--> <!--[endif]-->
모토야에게 소원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가게 '단맛집'에서 만든 매실 찹쌀떡을 먹고 싶다는 거였다. 다른 기억은 잊었어도 찹쌀떡의 맛은 잊지 않고 있었다. 죽기 전에 먹어보고 싶다는 말에 레이토는 모토야에게 매실 찹쌀떡을 먹게 해주고 싶었다. 찹쌀떡을 만드는 과정이 나오는데, 모토야가 진정으로 원했던 건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행복이란 얼마나 단순한 것인가.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소원이 있다면 뭔가 거창한 것 같은데 실제로는 아주 작은 것이다. 가족이 함께 모여 무언가를 먹었던 장면 하나가 오래도록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순간이 훗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녹나무의여신 #히가시노게이고 #소미미디어 #책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일본문학 #일본소설 #녹나무의파수꾼 #염원 #기원 #힐링소설 #녹나무두번째이야기
히가시노 게이고의 여러 시리즈 중 ‘녹나무’ 시리즈는 2020년에 첫 편(《녹나무의 파수꾼》)이 나왔고, 《녹나무의 여신》이 두 번째 작품이다. 앞으로 더 나올지 어쩔지는 모른다. 그래서 시리즈란 표현을 쓰지 않고 속편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희한하게 《녹나무의 파수꾼》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녹나무에 대해서만큼은 선명하다. 가끔 생각나기도 했다. 어디선가 ‘녹나무’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떠오르기도 했다. 한 사람이 진심을 다해 기념하면, 후에 그 진심을 다한 사람이 그 마음을 전해주는 녹나무.
《녹나무의 여인》은 《녹나무의 파수꾼》에서 녹나무의 파수꾼이 된 나오이 레이토가 신사 경내를 빗질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세 명의 오누이가 찾아오고 어설프게 프린트해서 스테이플러로 박아놓은 시집을 팔아달라고 한다. 맏이인 여고생 유키나가 쓴 시집의 제목은 《헤이, 녹나무》다. 시집은 잘 팔리지 않는다.
한 남자가 시집을 돈도 내지 않고 가져간다. 구메다 고사쿠라는 사내다. 부유하게 살며 오냐오냐 하며 커오다 집안이 기울며 무위도식하며 살아간다.
《녹나무의 파수꾼》에서 곤경에 처한 레이토를 구해내고 녹나무의 파수꾼으로 일하도록 한 야나사가와 치후네가 있다. 무척이나 영리했던(지금도 영리하지만) 인지장애를 겪고 있다.
뇌종양을 앓는 중학생 소년 하류 모토야가 있다. 그는 놀랄만한 그림 솜씨를 지니고 있지만, 잠만 자고 나면 전날의 기억은 싸그리 사라진다. 그래서 매일매일 일기를 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일기만으로 짐작할 뿐이다.
《녹나무의 여인》은 사람들이 마음을 전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그 과정은 녹나무를 통해서 이뤄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진심은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전해진다. 유키나와 모토야가 함께 만든 그림책은 그 결과물이다. 사람들이 미래가 어떤지 알고 싶어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란 걸 그 어린 학생들이 모진 환경 속에서 깨닫고, 그 진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전혀 독하지 않은 이야기다.
녹나무의 파수꾼을 읽은 게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번에는 녹나무의 여신이다. 전편 녹나무의 파수꾼에서 레이토는 절도범이 될 뻔했지만, 이모님에 의해 월향신사 관리인이자 녹나무 파수꾼이 되었다. 파수꾼이 되어 녹나무의 신비한 힘을 알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월향신사의 덤불 숲을 따라가면 녹나무가 한 그루 있다. 초하룻날과 보름날 밤. 나무 기둥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밀초에 불을 켜면 사람의 염원을 주고 받을 수 있다. 녹나무에 염원을 새기면 이건 예념이고, 받으면 수렴이다. 예념자와 수렴자를 이어주는 사람은 바로 파수꾼. 레이토는 이모님 치후네의 뒤를 이어 매일 경내 청소를 하고 기념이 있을 때마다 손님들을 안내한다. 어느 날 비 오는 밤. 기념하던 손님이 쓰러져 레이토는 문단속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종무소를 비우게 된다. 다음 날 경내로 돌아와 보니 뭔가 이상하다. 빗물에 젖거나 쓰러져 있어야 할 밀초가 그대로 였던 것. 이후 며칠 뒤 월향신사에 형사가 찾아온다. 한 집에 두 명의 절도범과 강도범이 침입한 사건. 이 사건에 시집을 대신 팔아 달라고 찾아온 여고생이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또한 치후네와 함께 간 곳에서 알게 된 잠들면 기억을 잃는 소년에 대한 사연까지. 레이토는 이들과 연관되어 어떻게 사건을 해결해 나갈까?
미래를 알는 것보다 더 소중한 건 바로 지금이니라. 너는 지금 살아 있지 않으냐. 풍족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 있지 않으냐 (중략) 어제 일 따위 돌아보지 말라.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후회하는 것에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은 모두 지나간 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내일의 일을 염려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염려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한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은 바로 지금이니라. 지금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로써 행복한 것이니라 지금 네가 존재하는 것을 고마워하고 감사하라. (354~355)
우리 동네에 이런 녹나무가 있다면 나는 예념을 하게 될까? 아니면 수렴을 하게 될까? 음. 나는 가능하면 후회를 만들지 않으며 살고 싶은 사람이다. 아이들 일이라면 더더욱. 부모 자식 일이 어디 100% 만족하겠느냐마는 그래도. 나는 아이들보다 나이가 있으니까 아마 예념을 하게 될 것이고 아이들은 나의 기억이나 생각을 수렴하겠지. 하지만 나는 어떤 것도 남기고 싶지는 않다. 살아있는 동안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자는 마음으로. 그렇다고 내가 또 울 부모님께 최선을 다했나? 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부모님 사랑보다는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니까.
잔잔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다. 추리 미스터리 소설을 주로 쓰는 히가시노 게이고. 어떤 책은 실망하다가도 또 어떤 책은 괜찮네. 이러니 중박 이상은 가지.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가. 그래서 신작이 나오면 찾아 읽게 되는 작가. 뒷이야기가 궁금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짠 한 추리 소설을 최근에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런 따뜻한 소설은 언제든 오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