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여러 차례, “그래도 희망은 과학이다”란 말을 여러번 썼다. 아무리 과학이 불완전하더라도 그대로 우리가 기댈 데는 과학뿐이었다고 생각한다(물론 정치권에서 얘기하던 ‘과학적 방역’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실제로는 어찌 되었든 과학의 힘을 빌어 극복할 수 있었다(‘전적으로’라고는 할 수 없어도). 그리고 앞으로의 대책도 상당 부분 과학에 기대야 한다고 생각한다._이러게 얘기하면 당신은 과학자이니까. 혹은 과학 지상주의자냐, 하고 힐난할지 모른다. 난 과학이 전부라고 하는 게 아니라 과학을 거부하는 것이 문제라는 쪽에 훨씬 가깝다.
루크 오닐의 『여기 과학이 있다』는 바로 그런 과학에 대한 자세에 대한 책이다. 과학(이른바,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같은)의 내용이라기보다는 사회에 대한, 혹은 여러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과학적 논의에 대한 책이다. 우리가 지금 생각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 과학은 어떤 답을 줄 것인지, 혹은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랬을 때 우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까?
백신 접종이라든가, 신약개발, 비만, 우울증, 기후 위기 같은 진짜 과학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보다는 조금 논란을 있을 수 있지만 과학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자유의지가 존재하는지의 문제, 인종 차별의 문제, 성에 관한 고정관념 같은 것은 충분히 과학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문제이고, 또 그래왔던 문제들이다.
그러나 좀 더 예민한 문제도 있다. 마약 합법화에 관한 논의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범죄에 대한 내용도 그렇다. 마약을 어디까지 허락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첨예한 논의도, 범죄자는 유전적인지, 환경에 영향을 더 받는지에 관한 내용도 논란이 될 수 있는 논의다. 그러나 저자는 이 문제들을 자신의 생각을 주장한다기보다 과학적으로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논문으로 발표되었다고 모든 게 과학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을 준수했는지, 그 결과를 제대로 해석했는지와 같은 것들까지 확인해야만 그것들을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정말 과학 교양 서적에서 잘 논의하지 않던 것도 있다. 직업의 의미라든가 빈부 격차와 같은 것들이다. 이것들은 대체로 사회의 문제로 이야기되던 것들이며, 과학이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물론 이 문제들과 관련해서 과학이 얘기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도 느낀다(주로는 통계 자료 등이라). 하지만 과학이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지에 관한 바로미터라고도 여겨진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다. 과학이 현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우리에겐 그래도 과학이 있다는 것이다. 그 과학이 우리에게 정보를 주고,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것. 과학이 아마도 “궁극적으로 어둠을 빛으로 바꾸어” 줄 수 있을 거라고.
중세시대는 흔히 '신 중심의 시대'로 불린다. 이 시기에 지식과 세계관은 주로 교회와 종교에 의해 지배되었으며, 과학적 탐구보다는 신앙과 종교적 교리가 우선시되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가 삶의 모든 측면을 통제했다. 교육은 주로 수도원과 성당 학교에서 이루어졌으며, 지식은 신학적 틀 안에서만 허용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 우주론은 교회 교리와 결합되어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과학적 탐구는 종종 이단으로 간주되었고, 교회 교리에 반하는 발견은 억압되었다. 그러나 14세기부터 시작된 르네상스(Renaissance)는 이러한 중세의 어둠을 뚫고 새로운 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르네상스는 '재탄생'을 의미하며, 이는 과학과 예술, 철학의 새로운 부흥을 나타내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 문학, 예술이 재발견되었고, 인간 중심의 사고가 부활했다. 이는 '인문주의'(Humanism)로 알려진 사상으로, 인간의 가치와 능력을 강조하며,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르네상스는 과학 혁명의 서막을 열었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 중 하나임을 주장하면서, 기존의 지구 중심 우주론을 뒤집었다. 이는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그의 저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는 과학 혁명의 기초를 놓았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지지하며, 망원경을 이용해 목성의 위성, 태양의 흑점, 금성의 위상 변화를 관찰했다. 그의 발견은 천문학적 관측이 교회 교리와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주었고, 과학적 방법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갈릴레오는 실험과 관찰을 통한 과학적 탐구를 촉진하며,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르네상스 과학 혁명의 절정을 이룬 인물이다. 그의 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에서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과 운동의 법칙을 제시했다. 이는 우주의 모든 현상을 수학적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과학적 사고의 기초를 확립했다. 뉴턴의 업적은 과학이 독립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르네상스는 과학이 다시 태어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인쇄술의 발명으로 지식이 급속히 확산되었고, 과학적 탐구가 독려되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고대의 지식을 재발견하고, 인간의 이성과 관찰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했다. 이는 과학적 방법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근대 과학의 발전을 이끌었다.
과학 발전과 함께 산업혁명과 여러 과학적 발견으로 오늘날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때와 비교하여도 뒤떨어지지 않을 물질적 풍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현대 과학과 ICT 기술 발전의 고도화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나, SNS나 여러 매체에서 이야기 되고 있는 가짜 뉴스나 잘못된 맹신, 관념들은 그 어느 떄 보다 더 많이 양산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드리는 잘못된 이론이나 가짜 뉴스, 편협한 소문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을 잘못된 믿음이나 신념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번에 이러한 미신과 비합리적인 믿음에 대해 과학적데이터와 접근 방법으로 그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올바르게 판단하도록 이야기 해 주는 책을 읽을 기회를 얻었다. 루크 오닐의 <허튼소리에 신경 쓰지 마라, 여기 과학이 있다>였다. 책의 제목에서 부터 책의 주제를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인 루크 오닐은 아일랜드 더블린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 생화학 및 면역학 학과의 생화학 교수이다. 세계적인 면역학자이자, 해당 분야에서 다수 인용되는 연구자 상위 1퍼센트에 속한다. 아일랜드 라디오 방송국 뉴스톡Newstalk의 〈팻 케니 쇼 Pat Kenny Show〉에서 인기 있는 주말 프로그램을 맡아, 과학과 관련한 까다롭고 복잡한 질문에 특유의 재치 넘치는 태도로 전문가다운 답변을 전한다. 유명한 방송인 팻 케니가 ‘갈라파고스 제도만큼이나 희귀하고 별난 생명체’라고 표현하기도 한 루크 오닐은 인간 면역 체계에 혁신적인 연구를 한 공로로 2016년, 런던 왕립 학회의 회원이 되었다. 저서로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 후 50년》(공저) 《The Great Irish Science Book》 등이 있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장. 자유의지_당신이 내린 결정은 누구의 뜻인가?
2장. 백신 접종_그렇게까지 겁먹을 이유가 있을까?
3장. 신약 개발_신약은 왜 그리 비싸며,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4장. 비만_덜 먹고 더 많이 운동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5장. 우울증_마음의 염증도 치료할 수 있으니, 힘을 내 볼까요?
6장. 약물 중독_나를 해치는 줄 알면서도 왜 벗어나지 못할까?
7장. 마약 합법화_모든 마약을 합법화하는 날이 올까?
8장. 범죄_사람들은 왜 법을 무시하고 범죄를 저지를까?
9장. 성 고정관념_아직도 화성, 금성, 어쩌고저쩌고하는 말을 믿는가?
10장. 인종 차별_인종을 구분하는 과학적 근거가 있기는 한가?
11장. 직업_무의미한 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보람 있게 살려면?
12장. 빈부 격차_돈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무엇일까?
13장. 기후 위기_지구가 망가지면 되돌릴 수 있을까?
14장. 존엄한 죽음_안락사를 원하는 사람을 외면해도 될까?
15장. 미래_우리는 어떤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까?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오닐 교수가 소셜미디어와 알고리즘에 의해 조종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논의한 장면이다. 이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봤을 문제로, 오닐 교수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소셜미디어는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친구들과 소통하고, 뉴스를 접하며, 다양한 정보를 공유한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 뒤에는 우리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숨어 있다. 바로 소셜미디어가 우리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조종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소셜미디어 회사들의 경제 모델은 사용자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광고를 표적화하는 것이다. 페이스북이나 구글과 같은 거대 기업들은 사용자들의 온라인 활동을 분석하여 그들의 관심사, 성향, 행동 패턴을 파악한다. 이를 통해 광고주들은 특정 타겟 그룹에게 맞춤형 광고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광고는 단순히 제품을 홍보하는 것을 넘어, 사용자의 심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그들이 구매를 결정하게 만든다.
최근의 연구는 소셜미디어가 어떻게 사용자들의 심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는지 보여준다.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좋아요’ 데이터를 분석하여 그들을 ‘외향적’ 또는 ‘내향적’으로 분류한 후, 각 그룹에 맞춤형 광고를 제공한 사례가 있다. 내향적인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움은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외향적인 사람들에게는 “스포트라이트를 사랑하고 순간을 느껴 보세요”라는 문구를 담은 광고를 보냈다. 그 결과, 이러한 맞춤형 광고를 본 사람들은 구매 가능성이 54% 더 높았다. 이러한 기법을 ‘심리적 대중 설득’이라고 한다. 이러한 광고 기법은 소비자의 자유의지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자발적으로 제품을 선택하고 구매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소셜미디어가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성격, 정치적 성향, 심지어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특성들까지도 광고주들에게 노출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소셜미디어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유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될 수 있다. 소셜미디어 회사들이 사용자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조작에 대해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가? 소셜미디어가 우리의 자유의지를 침해하는 방식은 매우 은밀하고, 우리는 이를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 이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자유를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소셜미디어는 우리 삶에 많은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조종하는 위험한 요소가 숨어 있다. 광고를 통해 우리의 심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행동을 유도하는 소셜미디어의 기법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침해하고,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우리는 소셜미디어의 이러한 조작에 대해 더욱 경각심을 가지고, 우리의 자유의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결국, 소셜미디어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으며, 우리는 이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대처해야 할 책임이 있다.
단순히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점에서 여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들과는 차별화 된다. 예를 들어, 우울증과 약물 중독 문제에 대해 오닐 교수는 최신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한 접근법을 제안하며, 이는 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다. 또한, 돈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에 대해 논의하는 부분에서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더욱 주목받게 된 백신 접종 문제, 획기적인 신약 개발과 비용 문제, 현대인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우울증과 약물 중독, 그리고 고령화 사회에서 점점 더 관심을 끌고 있는 안락사에 관한 논의까지, 이 책은 인류가 직면한 주요 문제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특히, 마약 합법화처럼 논란이 많은 주제도 진지하게 다루면서도 오닐 교수의 특유의 위트를 잃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허튼소리에 신경 쓰지 마라, 여기 과학이 있다, 총리뷰
ICT기술 발달과 인터넷의 대중화, SNS의 폭팔적인 증가로 현대 사회에는 가짜 뉴스가 넘쳐나고, 정보를 얻는 것보다 선별하는 것이 중요한 이 시대인 것 같다. 저자는 과학과 사실의 힘을 빌려 논쟁적인 이슈들의 진실에 다가서는 과정을 독자들에게 실감이 되도록 전달해 준다. 과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과학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류 앞에 놓인 피할 수 없는 도전에 대한 과학적 해답
인간과 생명의 진화에 관한 과학적 통찰을 담은 책 <휴머놀로지>,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 후 50년>과, 자국의 어린이를 위해 <위대한 아일랜드 과학책> 등 여러 생명/과학 관련 서적을 집필하시고 현재 연구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발히 활동 중이신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생화학?면역학부 생화학 교수 루크 오닐의 신작이다. 저자는 인류 앞에 놓인 커다란 문제에 과학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리고자 이 책을 집필하게 되셨다고 한다.
제목부터 뭔가 자극적이다. 번역하시면서 제목을 바꾸신 줄 알았는데 원제 그대로다. 책 제목이 딱 내 스타일이다. 책 제목도 제목인데, 사실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초사흘달’ 출판사에서 나온 신간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번에 초사흘달에서 펴낸 <과학의 눈>을 읽었는데, 하나의 과학 지식을 한 장의 고해상도 이미지와 함께 명확하고 간결한 글로 설명하고 있어 너무 미시적이거나 거시적이어서 상상하기 어려웠던 과학 지식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감사하게도 책키라웃(@checkilout_book) 님께서 진행하신 서평단 모집에서 뽑혀 이 책을 제공받아 읽을 기회를 갖게 됐다.
책은 총 1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은 하나의 주제어와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볼 문제(질문)를 제시하고, 실험/데이터/통계 등 과학적 근거에 기초하여 제시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책에서 제시한 15개의 주제어는 다음과 같다. 자유의지, 백신 접종, 신약 개발, 비만, 우울증, 약물 중독, 마약 합법화, 범죄, 성 고정관념, 인종 차별, 직업, 빈부 격차, 기후 위기, 존엄한 죽음, 미래.
‘어라, 자유의지, 마약 합법화, 직업 이런 주제랑 과학이 뭔 상관이 있지?’ 싶었지만, 책을 읽어보니 여기서 말하는 ‘과학’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이런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인문과학, 사회과학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의미의 과학으로 보면 된다.
15개 주제에 대해 요약하는 것은 지면상 불가능하기도 하고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스포가 될 수 있으므로, 15개 주제 중 내가 흥미롭게 읽은 ‘직업’에 관한 내용만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책에서는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해 원격(재택) 근무가 주목받았음을 언급하면서도, 원격 근무자가 사무실 근무자보다 더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흥미로운 설문 조사 결과를 제시한다. 그 이유는 원격 근무자가, 소외감과 함께 회사(팀)에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소속감과 사교 활동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리 출퇴근 전쟁에 시달릴지라도 사무실에 출근해야 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 ‘몰입’의 경지에 이르면 온갖 걱정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언급하며 몰입의 3요소로 자율성, 숙달, 목적을 들고 있다. 아울러, 책에 ‘삶의 보람’, 또는 ‘존재 이유’라는 뜻의 일본어 용어인 ‘이키가이’를 설명하는 벤다이어그램이 도시되어 있다. 이키가이는 세상에 필요하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고,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책에 소개된 몰입의 3요소와 ‘이키가이’를 찾는 벤다이어그램을 이용해 ‘직업’이라는 주제어와 관련하여 제시된 ‘무의미한 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보람 있게 살려면?’ 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점이 내겐 매우 유익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대부분 심각한 문제지만, 저자의 글에는 유머와 위트가 넘친다. 외국인 저자의 재치나 유머가 번역 과정에서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운 측면이 분명히 있을텐데 번역가님의 번역이 정말 기막히다(원문은 확인한 바 없지만). 책에 사진, 그림, 도표 등과 함께 흥미로운 실험 결과, 연구 사례, 통계, 설문 조사 결과가 상당수 제시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논쟁적인 이슈들에 접근할 수 있다. 무엇보다 문장이 짧고 명확하여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자연과학 도서로 오해(?)하고 시작된 독서였지만, 여태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해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 한 뺨 더 성장한 느낌을 받는 독서였다. 책 읽는 재미도 느끼면서 과학적 관점에 기초하여 인류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는 여정에 동참하고 싶은 분들께 꼭 추천드리고 싶은 책이다.
끝으로 저자께서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으셨던 메시지를 정리하며 서평을 마무리해 본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매우 중요한 질문들을 함께 풀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모두가 과학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과학자는 항상 질문을 던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며, 궁극적으로 어둠을 빛으로 바꾼다.”
-‘시작하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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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책키라웃(@checkilout_book) 님을 통해 초사흘달 출판사(@3rdmoonbook)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