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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 빈부격차는 당연한 걸까? : 논·서술형 대비 주제토론 수업 1: 부의 불평등
태지원 저
정부 보조가 없으면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사회적 약자, 최저시급을 받는 저소득층, 영어가 외국어인 40대 늦깎이 학생으로서 캐나다 사회가 차려놓은 밥상에 식구 수 만큼 빈 숟가락을 얹은 지 3년째 되던 2018년 4월, 나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렌프루 카운티 소속 공무원이자 파라메딕으로 채용되었다.
한국에서 실패해서, 혹은 사회가 정한 성공의 기준에 스스로 미치지 못한 탓에, 그리고 내 역량으로는 그 기준을 맞출 자신이 없어서 여기로 왔다. 할 줄 아는 것은 별로 없었지만 뭐든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었다.
현재의 직업인 파라메딕으로 일하는 중에도 ‘아, 이 직업 참 괜찮다’ 싶은 경우가 있다. 멈췄던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어 의식을 회복했을 때도 좋았고, 출혈이 심한 환자나 호흡곤란을 호소하던 환자의 상태가 점차 좋아질 때나, 살 수 있을까 싶은 외상 환자를 신속히 헬기에 실어 보내고 한숨 돌릴 때도 좋았다. 그렇게 삶과 죽음을 오가는 극적인 순간만큼이나 이 직업이 좋을 때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세요?”라는 사소한 한마디를 사람들에게 주저 없이 건넬 수 있을 때이다.
2년 전 만났던 환자를 다시 만나게 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환자는 그사이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발작으로 911을 부른 상태. 더 잘살아보겠다고 열심히 살던 중 자신이 닮고 싶었던 삶을 사는 사람이 다시 아프자 저자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오히려 그런 순간 환자는 “괜찮아…. 나도 괜찮아질 거고, 너도 괜찮아질 거야….” 라는 말을 했고 저자는 울음을 터트린다. 맞잡은 손으로 전해졌을 뜨거움이 느껴지는 듯하다.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비춰보고 배우게 되었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경제적인 압박이 심할 때 딸아이가 가져온 학교숙제가 저자를 많이 바꾸게 되었다고. ‘나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을 알아오기’였다. 그때까지 스스로를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은 고사하고 그래야 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살았던 저자는 아픈 것도 모르고 스스로를 너무 함부로 대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고. 자신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니 ‘너, 참 안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스스로를 측은해하고 아끼는 마음이 생기고 커져서 슬프고 힘든 감정까지 모두 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외국에서 40대 가장으로 먹고 살아야 할 걱정으로 치열하게 고민했던 저자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계기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여기 대한민국에서도 치열하지 않은 이가 얼마나 될까. ‘나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 알아오기’라는 과제를 들었을 때 놀라웠다. 우리는 이런 주제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소비하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을 오롯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것이니. 시도해 봄 직하다.
저자가 파라메딕으로 일하면서 겪은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는 폭력적 현장이기도, 차마 읽어내려가기 어려운 먹먹함이 존재하기도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는 매일에 감사했다는 그의 글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우리는 잊고 있었다. 매일의 반짝이는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이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한발씩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손에 잡히지 않지만, 그것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책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였다.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
얼마전 개인적으로는 가족이 응급실을 가게 되는 일을 겪으면서 응급구조사들의 일상은 어떤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마침 이런 책이 나와 솔깃하며 집어들었다. 또한 한국이 아닌 캐나다이민자라는 색다른 환경에서의 이야기라 더 특별했다.
저자는 마흔에 대기업을 그만두고 캐나다로 이민갔고 스트립쇼 공연장, 은행 협력업체 사무실, 경기장 주류 판매소 등에 이력서를 들고 찾아가 최저시급 받는 일을 전전하다 이민 3년차에 캐나다 시골마을의 유일한 한국인 응급구조사가 된다.
그런 저자의 일상, 인생이야기, 생각, 느낌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긴 책이다. 그런 이야기 중에는 위로와 공감, 인생의 지혜도 만날 수 있었다. 응급구조사가 되어 마주한 삶의 풍경들은 잔혹하고, 애처롭고, 안타까웠지만 환자들의 얼굴을 마주할수록 저자는 복잡하게 꼬여 있던 자신의 삶을 풀어나갈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죽음을 앞둔 여러 환자들이 자신의 마지막을 보내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는 대목들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이에게는 최악의 날이 나에게는 일상이 된 지금, 나 또한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때로 불행해지고, 앞으로 약해질 것이며, 최악의 시간을 거쳐 언젠가 반드시 죽음에 이르리라는 것을 안다. 삶이 유한하다는, 이 지극히 당연하고 간단한 사실을 배우기 위해 아둔하기 이를 데 없는 나는 여러 번 가슴을 치며 눈물을 쏟아야 했다.
우리가 매일 가족들과, 사랑하는 이들과 스쳐 지나가듯 나누는 사소한 일상일 뿐인데, 신기하게도 삶의 끝에 다다르면 그런 사소한 일상은 죽기 전 마쳐야 하는 신성한 의식이 되고 만다.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서로를 안은 품에서 올라오는 살냄새를, 대화에서 전해지는 안온함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더 절실히 간구하는 것은 그것이 숨을 거두기 전에 거쳐야 하는 순서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바로 그런 사소한 일상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행복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이고, 행복했던 기억만큼 우리 삶에서 중요한 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모두가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느 정도 현실에 타협하는 이유가 가장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다. 먹고 살 걱정만 아니라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때도 있는 걸 보면, 오랫동안 바라고 준비하면서 닿은 목적지라도 그 일의 사명감이라는 것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건가 보다 싶기도 하다.
좋은 상황에서, 좋은 조건으로 캐나다로 향한 건 아니다. 바닥을 치고 일어서는 마음으로, 이게 아니면 더는 붙잡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간절함으로 캐나다의 파라메딕으로 채용된 그의 삶을 듣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한국인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이방인으로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란 더욱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니다. 그렇게 마주한 응급구조사로 일하는 그의 역할은 누군가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함께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가 그 일을 하면서 겪은 일과 감정으로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게 되었다. 죽음에 가까이 닿을 뻔한 순간에 생의 영역으로 다시 돌아온 환자를 볼 때는 기뻤다. 심각한 외상 환자를 이송하게 된 후에도 다행이다 싶었다.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절망에 빠지다가도 곧 회복하는 의식을 확인하고 안도하기도 했다.
그것뿐일까? 혹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 그의 한 마디가, 어쩌면 그를 살게 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은 나만 하는 걸까. 생으로 이끄는 그의 역할에도 죽음은 늘 가까이 있었다. 그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과 죄책감, 가족의 죽음에 슬퍼할 이들의 마음을 가늠하는 것 역시 그가 꼭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혼란스러운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해서 모른 척할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먼저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바뀐 그의 이야기는, 그저 누군가의 작은 변화쯤으로 여길 수 없었다. 그의 직업 때문에 생긴 습관인가 싶다가도, 그의 업무 시간이 아닐 때도 스스럼없이 나오는 그 말에 그의 진심을 느낀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 선뜻 내미는 손이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그 마음이 그에게 그대로 되돌아온 경험 때문에 그는 잊을 수 없는 경험과 습관을 갖게 된 건 아닐까? 어떤 이유로든, 그의 이 아름다운 습관이 부디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여러 번 드나들었던 응급실, 다급한 환자와 보호자와는 다르게 절차에 따라 치료를 시작하는 병원의 방식, 그 사이에 또 여러 번 마주치는 구조대원들을 볼 때마다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그저 하나의 직업으로, 그들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거겠지 싶은, 나와 다른 일상을 사는 그들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다르지만 비슷한 역할을 하는, 주변에서 자주 보는 그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한국과 캐나다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르기도 하고, 총기나 마약 사고가 빈번해서 그 잔혹함이 그에게도 충격이었을 테다. 내 눈앞에 펼쳐진 타인의 비극과 고통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업무에 뛰어 들겠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사건 현장을 마주하고 지켜낸다. 그가 하는 일에도 규정이 있지만, 때로는 그것을 무시하고 간절한 마음이 앞서 나갈 때가 있다. 그것이, 그가 타인의 고통과 비극 앞에서 취하는 태도였다. 올바르다 그르다 판단하기에 앞서,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마음 자세가 아닐까 싶다.
죽음을 앞둔 여러 환자가 자신의 마지막을 보내는 다양한 방식을 듣고 있노라면, 나 역시 마지막을 보내는 순간을 상상하게 된다. 매번 그 상상에서 멈추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마주할 그 순간에 타인과 연결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혼자 쓸쓸하지 않게, 내 앞의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면서, 이렇게 가는 순간까지 즐거웠다고, 앞서 경험한 슬픔도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게 말이다. 호스피스 시설로 이동하는 시한부 환자의 웃음에 어떻게 인사를 나눌지 혼란스러워하는 저자의 표정을 그려보기도 하지만, 그 순간마저 한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쓰는 태도가 아름다웠다. 죽음을 앞둔 많은 환자가 자신의 마지막을 보내는 다양한 방식 앞에서 우리가 저절로 배우게 되는 것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죽음 너머에 있는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언젠가부터 병원에 드나드는 횟수가 늘었다. 나는 환자와 보호자로 병원에 익숙해졌지만, 그 익숙함에 점점 무던해지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죽음에 조금씩 가까워진 기분 때문이다. 언젠가 닿을 그 순간을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어떻게 닿을 것인지 생각하는 건 낯설다. 저자가 만난 많은 환자와 가족이 보여준 것들로, 저자가 자기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을 알게 되는 과정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살아가는 우리를 더 아끼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게 하는 이야기다. 요즘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로 많이 힘들었는데, 정신적으로 피로하니 몸까지 내 말을 듣지 않는 시간이 계속되어 울고 싶었는데, 나를 더 소중하게 대하며 살아가기를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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