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적인 제목의 책들이 있다.
제목만으로 책을 판별하는 것은 때로 위험하지만,
새로운 책을 찾을 때는 또 그 기준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김은지 시인이 쓴 산문.
시집은 아직 안 읽었지만 먼저 산문으로 만나는 것도 좋아서 택했다.
말 그대로 동네를 산보하며, 관찰하고, 느낀 점들을 담은 책이다.
가끔은 제법 멀리 떨어진 곳을 여행한 이야기도 있다.
요즘 우리 시대에 가장 외면받는 작가군이 시인이지만,
우리 말을 사려깊게 다루는 작가의 전방에 시인이 있음을 나도 믿는 사람이다.
어디 화려한 여행지는 없어도,
그렇기에 시인의 산문은 안심(?)하고 읽게 된다.
얼마전에 김소연의 에세이를 그런 맥락으로 참 좋게 읽었었다.
이런 문장에 어찌 미소짓지 않을 수 있을까.
시력 검사를 할 때 보이는 한 그루의 나무에도 나는 아련한 기분이 든다.
걷기 예찬론자인 작가.
요즘 배우 하정우의 책을 다시 읽는데,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반갑다.
파주라는 도시는 늘 호기심이 있었다.
SNS의 여행지 피드에도 헤이리 라든가 늘 파주는 단골 소재였다.
이번 여름엔 한번 꼭 가봐야겠다.
결심의 막연함을 확실함으로 바꾸게 한 문장들이 책에 있었다.
책의 영향력? 그게 별건가.
이렇게 마음에 뚜렷함을 배가시키고, 행동에 옮기게 하는 게
작가의 문장의 힘이겠다.독서가이지만 시집은 여전히 거리감이 있다. 일 년에 한 권 읽으면 많이 읽는다 할 정도로 어렵고도 힘든 장르인데 이상하게 시인님들의 산문집은 또 자주 읽는 편이다. 작년 연말에 염세적인 분위기의 산문집을, 올해는 젊은 감각의 차가운 산문집을 완독했다. 더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시인보다는 에세이스트로 알게 된 작가님들도 있었다. 그만큼 시인을 산문집으로 배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책은 김은지 시인님의 산문집이다. 시집은 어려워도 산문집은 인상적이었던 터라 이번에 새로 만나게 된 시인의 산문집 역시도 기대를 가지고 고르게 되었다. 추천사의 고명재 시인님 산문집도 구매해두고 아직 포장지도 뜯지 않은 상태로 보관 중인데 조만간 읽을 계획이었다. 늘 좋은 느낌을 주어서 이번에도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동네 이름과 함께 시인님께서 가지고 있는 추억들과 생각들이 드러나는 글이다. 서울의 지명이 등장하기도 하고, 울산과 전주, 문경에 이르기까지 다른 지명에 얽힌 이야기들도 등장한다. 행사로 가는 지역에서 있었던 일들, 친한 지인의 고향 또는 시인님의 고향에서 있었던 일들, 가족과 나눈 이야기 등 큰 사건들보다는 작고 사소한 일들 위주로 소소한 에피소드들이었다.
산문집의 특성처럼 술술 읽혀졌다. 페이지 수도 얇은 편이고, 가벼운 이야기 위주이다 보니 한 시간 반 정도에 완독할 수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책장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푹 빠져서 읽었다. 시인이라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아니 인간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내용들이어서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주소가 드러난 게 인상적이었다. 운전하면서 내비게이션 하단에 뜨는 주소를 보는 습관이 있는데 그게 떠오르기도 했다. 그냥 평범한 운전이어도 그 주소가 특별하게 만드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책에 등장하는 주소 중 어느 하나도 알지 못했는데 뭔가 다음에 기회가 되어 그 주소지를 방문하게 된다면 새록새록 책의 내용이 떠오르지 않을까. 심지어 가까운 순천시에 위치한 동네마저도 처음 듣는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사실 어느 하나의 에피소드가 인상 깊은 작품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모르는 지명이어서 조금 낯선데?'라는 의문을 가졌는데 막상 읽다 보니 군데군데 시인님의 공간에 대한 추억들과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시선들이 강렬하게 와닿았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동네 서점의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니는 출장길에서의 추억들. 사람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던 산문집이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김지은 - 동네 바이브
안온북스에서 출간된 김지은 시인의 산문집 동네 바이브.
그 유명한 '여름 외투'의 시인인데,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시인의 시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시를 읽지 않고 바로 마주한 산문집은 건강하고 상냥했으며 씩씩했다.
작은 키라고 본인이 직접 말했는데, 전국 방방곡곡을 알뜰살뜰하게 살피며 다녀온 발랄한 기록이 시처럼 천천히 퍼진다. 이 책은 얇고 작아서 작은 가방에도 쉽게 휴대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후루룩 읽어 버리지 않고, 일주일 내내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다.
시처럼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문장을 곱씹고, 그녀의 얼굴과 그녀의 친구들을 상상해 보았다. 싱그럽고 건강한 사람들 같았다.
'꼭 시를 쓰는 일에 대해서가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다른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일상의 관성을 넘어서는 힘을 얻기 위한 좋은 시도가 될 것이다.'-25p
'보조 전망대라고 해서 결코 뭐 하나 빠지거나 부족하지가 않습니다. 물론 여긴 망원경도 없고, 주 전망대처럼 3층까지는 안 되지만 여기 보조 전망대도 아름다운 능성, 저 바다, 습지 모두 잘 볼 수 있어요. 보조 강사와 비슷한 거죠.' -82p
'(탁구를 치다가) 결국 우리도 점수를 매기기로 했다. 웃긴 사람 1점, 너무 웃긴 사람 2점.'-152p
'덜 좋아하면 좋을 텐데, 어떻게 덜 좋아하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계속 좋아해야겠다.'-189p
어떻게 해야 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김은지 시인은 강아지도 시도 친구들과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모두 과감하게 계속 좋아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그런 시인의 당찬 포부를 읽으며, 나 역시 그래야겠다고. 덜 좋아할 방법을 찾지 말고 더 좋아해서 이걸로 더 행복해질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작가들의 루틴에는 체력을 위한 운동과 생각 정리와 영감을 위한 산책이 엄연히 나눠져있다. 모두들 산책을 해야한다고 말하는 것 보면 산보가 주는 이로움은 단순히 건강이나 기분전환 정도가 아닌 것 같다. 새로운 곳을 씩씩하게 걸으며 느끼는 생동감, 용기는 다시 살아갈 희망으로 치환되는 것일까.
누군가 참석을 못해 모임이 취소 돼도, 친구의 실수로 호텔 예약이 잘못 돼도, 이것도 다 추억이야! 라고 생각해주는 김은지 시인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다정한 친구가 있으면 좋을텐데. 읽는 내내 시인이 내 친구인것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외롭지 않았다는 찬사는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