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하게 비슷한 책인 것 같은데도 잘 읽히고 재미있는 책이 있다. 식물에 관해서라면 단연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책이 그런 책이다. 식물들의 평범하기도 하고, 비범하기도 한 생존 전략에 대해 주로 다룬 『식물의 발칙한 사생활』도 역시 잘 읽히고 재미가 있다.
책 끝의 해설을 쓴 스즈키 쥰처럼 그 이유를 생각해봤다. 겹치기고 하는데, 읽으면서 생각해본 것이니 그가 꼽은 것과 겹치는 게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선 친숙한 예를 든다. 편의점에서 상품들이 배치된 것과 식물의 수정을 비유하는 것을 대표적으로, 꽃의 색깔에 따른 연인의 타입을 구분한 것도, 수박씨를 삼켰을 때 뱃속에서 싹이 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상상도 그렇다. 그가 드는 예 가운데는 일본에서 더 잘 통하는 것이 있긴 하지만 한국에서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바로 그렇게 친숙하다는 느낌을 갖고 읽다보면 어느샌가 식물에 관해서 깊이 들어가 있다.
다음으로는 의인화다. 의인화는 무척이나 위험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데 의인화를 쓰는 것은 좀더 쉽게 접근하도록 하지만, 진짜 이유나 상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나가키 히데히로가 쓰는 의인화는 참 딱 과하지 않은 수준이다. 사람과 인간 사회에 빗대어 설명하다가도 어느 정도의 선을 넘지 않고, 진짜 식물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래서 촌스럽지 않다.
그리고 새로 배우는 게 있다. 얇은 책이지만, 그리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 책이지만 책마다 새롭게 알게 되는 게 있다. 이번 책에서는 엔도파이트(endophyte)의 정체에 대해서, 콩과식물에 존재하는 레그헤모글리빈(leghemoglobin)의 존재와 하는 일에 대해서, 곰팡이를 영양분으로 삼는 씨앗에 대해서, (앞서도 얘기한) 곤충별로 좋아하는 색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이중의 작용을 하는 에틸렌에 대해서, 피톤치드가 원래는 독에 가까운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등등을 배웠다. 그냥 알려진 것들을 쉽게만 소개하는 책은 아니란 얘기다. 최신의 연구를 늘 따라가고 이해하고, 또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며, 그의 지적 부지런함을 알 수 있다.
이런 점들이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식물에 관한 책이, 특히 『식물의 발칙한 사생활』이 술술 읽히면서도 재미있고, 또 적지 않은 것을 배우는 책이 되는 이유로 내가 생각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은 거꾸로 선 인간”이라고 했고, 플라톤은 이를 뒤집어 “인간은 거꾸로 선 식물”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신기한 식물의 세계
이 책을 읽고 학교 다닐 때를 떠올려 보았다. 학교 다닐 때는 식물과 관련된 책이 어렵고, 재미도 없다고 느꼈었다. 그래서 아, 따분하다, 란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도 나무 밑동 사이로 열심히 어딘가로 이동하는 개미들이나,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는 벌들과 나비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디를 저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아침에는 활짝 예쁘게 피던 나팔꽃이 저녁만 되면 축 늘어지는 모습, 여름이면 한없이 뻗어나가는 덩쿨식물들, 가을이 되면 빨갛게 물드는 잎들이 신기하기도 했었다. 그런 신기함으로 식물책을 다시 찾아보고 읽으면, 또 다시 어렵고 재미가 없고 흥미가 떨어졌다. 공부하는 것처럼 다가왔다.
<식물의 발칙한 사생활>은 쉽게 읽힌다. 책 속에 작가가 그린 그림이 몇 장 정도 들어가 있지만, 그 흔한 사진 한 장이 없다. 예쁘게 그린 그림 한 장이 없는데도 이해가 저절로 됐다. 왜 그런 걸까.
이 책은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먼저 시선을 끌거나, 궁금함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다. "06. 동물이 옮겨다주는 씨앗" 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한다. '실수로 수박씨를 삼겨버리면 뱃속에서 싹이 난다. 이 말을 종종 듣는데, 대체 이 말은 사실일까-p76
수박 씨를 뱉어내지 못하고, 먹어버린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뱃속에서 싹이 나면 어쩌지, 이런 상상을 하면서 걱정을 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그렇게 경험담을 시작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식물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부분이 좋았다. 쉬운 예시를 들고, 식물의 특징을 잘 포착해 내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니 지루할 틈이 없다.
"풋콩 속의 우주" 라니?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일까? "퇴근길에 가볍게 마시는 생맥주 한 잔~풋콩과 맥주의 궁합은 가히 환상적인다.-p64" 이렇게 시작을 하니 안 읽을 수가 없다. 풋콩 뿌리에 뿌리혹박테리아가 살고 있는데, 특수 능력 소유자 뿌리혹박테리아를 만화 <큐티 하니>로 예시를 드니 단번에 이해가 되고, 절대로 까먹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읽기에 더없이 좋을 것 같다. 개미를 경호원으로 비유한 부분, 곤충이 좋아하는 색을 표현한 부분, 젊은 새싹을 키우는 교육자 같은 역할을 하는 에틸렌 등 비유를 적절하게 표현해 낸다.
광합성이나 엽록소, 박테리아 등 어려운 단어가 공부하듯 먼저 나와 읽기 꺼려지고 어렵게 느껴지고, 흥미를 떨어트렸다면, 광활한 식물과 곤충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고 재미있으니 한 번 빠져보라고, 이 책을 읽고 식물에 호기심을 자극했으니, 이제 식물 세계에 좀 더 빠져보는 건 어떠냐고 권유하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그 자리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식물의 생존 방식을 살펴보니, 인간의 치열한 생존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됐다. 한편으론 식물은 그 자리 그대로, 묵묵히 잘 살아나가고 있는데, 너희 인간들은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걸까. 식물의 눈에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 보일까.
영리하게 삶을 잘 이끌며 잘 살고 있는 식물들을 읽다보니,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계기가 될 것 같기도 하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편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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