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가는 자 : 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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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가는 자 : 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

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

리뷰 총점 9.7 (62건)
분야
인문 > 인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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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건너가는 자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k*******2 | 2024.06.04 리뷰제목
????당연한 이야기지만, 통치 이데올로기로 지정되면 그 종교의 지위가 정치적으로 매우 격상합니다. 그러면서 도교의 교리를 담은 책 주에서도 중요한 책들에 경이라는 글자가 하나둘씩 붙게 됩니다. 선진 시기에 쓰인 《장자》 또한 장나라 시기에 이르러 그 명칭이 남화진경 南華眞經 으로 바뀌게 되고요. 그래서 《장자》 가 남화라는 이름으로 바뀐 연유보다도, 《장자》 라는 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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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지만, 통치 이데올로기로 지정되면 그 종교의 지위가 정치적으로 매우 격상합니다. 그러면서 도교의 교리를 담은 책 주에서도 중요한 책들에 경이라는 글자가 하나둘씩 붙게 됩니다. 선진 시기에 쓰인 《장자》 또한 장나라 시기에 이르러 그 명칭이 남화진경 南華眞經 으로 바뀌게 되고요. 그래서 《장자》 가 남화라는 이름으로 바뀐 연유보다도, 《장자》 라는 책이 경의 지위를 획득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30-)






붓다는 어떤 고삐,어떤 소명을 가졌을까요.그것은 태어났을 때 했다는 짧은 말, 즉 출생게 出ㅅ生偈 에 담겨 있습니다. 붓다는 태어나며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세개고 오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三界皆苦 吾當安之) 이 말을 있는 그대로 풀어보자면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과거 현재 미래로 펼쳐진 온 세상이 고통이니, 내가 그 고통을 해결하겠다'입니다. (-40-)





마하는 크다느 뜻입니다. 그렇다면 한자어로'크다'를 나타내는 대로 번역할 수 있었을 테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마하와 대, 둘 다 크다는 의미이긴 하지만, 마하에는 대에 담기 어려울 만치 크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까닭은 언어적 특성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104-)





나에게 있는 것을 떼어서 저 사람에게 줄 때,내 인식 범위와 관심의 범위는 나를 넘어 나 바깥의 저 사람에게까지 확대됩니다. 그러면 나의 영토는 좁았다고 보아야 할까요, 넓어졌다고 보아야 할까요? 물론 없어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보시를 통해서 내가 인식하는 범위와 통제하고 관리하는 범위가 보시하기 이전보다 더 넓어지니 내가 더 넓은 경험을 하게 되고, 이 경험으로 나는 더 넓어지지요. (-123-)





비운다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을 짓지 않고 바라본다는 의미입니다. (-186-)





상을 짓지 않으면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불하는 지름길이지요. 상을 지으면 안되는 이유가 뭘까요.이 또한 공 때문입니다. 나도, 내 마음도, 세계도 어떤 특정한 근거 하에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질이 없다는 말이지요.그렇기에 확정된 어떤 의미도 있을 수 없습니다. (-187-)





불구부정 不垢不淨 은 더럽지도 않고 꺠끗하지도 않다는 말입니다. 원효대사의 해골 물 이야기를 떠올려봅시다 .원효 대사가 당나라로 가는 길에 잠을 자다가, 목이 너무 말라깼다고 합니다. 손을 더듬어보니 웬 그릇에 물이 있어 물을 한 모금 시원하게 마시고 다시 잤다고 하지요. 그렇게 시웡하게 마시고 잤는데 아침에 마신 물이 해골바가지가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어젯밤에 마신 물이 해골바가지에 담겨 있던 물이었던 것입니다. 그걸 보고는 구역질을 했다고 하지요. (-229-)





"우리 조선은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주희가 들어와서 조선의 주희가 되지 않고 주희의 조선이 되려 한다.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라면 노예의 특색이다.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해 통곡하려 한다. " (-284-)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나 홀로 읽는 도덕경』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탁월한 사유의 시선』,『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 을 읽었다. 최진석 교수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욈하고, 지급은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으로 있다. 고향 함평에서,자신이 해야 할 소명을 실행하고, 인재를 양성하는데 남은 인생을 채우고 있다.





책 『건너가는 자』에서는 저자가 무인도에 가면, 꼭 들고다니겠다는 한 권의 책, 반야심셩에 대해  주석을 달고 있었다. 책을 펼쳐드는 순간, 책제목이 『반야심경』이 아닌 『건너가는 자』로 정해놓았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과정에서,답을 .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보시를 말하고 있으며,마하에 대한 개념을 중시하고 있다.번뇌란 인간의 고통을 덜어내는 것이며, 소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면서,의미를 부여하고,책임감을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다. 결국 소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는 자신의 목숨을 함부러 하지 않는다.우울하지 않으며, 무력함을 느낄 여유가 없다.오직 소명으로 살아가며, 상을 짓지 않기 위해 애쓰며,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나를 위한 실존적 행위라는 것을 깨닫게 할 뿐이다.





예컨데, 상을 짓지 안는다는 건, 타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스스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죽을 때까지 타인을 적으로 돌리지 않겠다는 의지다. 보는 것을 그대로 보고 관찰하고,느끼는 것이며, 상을 짓지 않아야 스스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사람에 대해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하나의 상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가치를 생성하고, 긍정적으로 가치을 부여하는 것 또한 상을 짓는 것이다.세상을 왜곡하고, 사람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고, 오류와 실수를 반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시를 한다는 것은 나의 것을 타인에게 나누어 주다는 게 아니다.나의 세계관을 보시를 통해서 확장할 수 있고, 새로운 세계관이 열릴 수 있다. 불구부정 不垢不淨 이란 더럽지도 않고,깨끗하지도 않은 것이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그 음식에 평가하려는 습관도, 불구부정 不垢不淨에서 벗어나는 실천적 행위다. 그러나 불구부정 不垢不淨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해 자연에 대해, 구별짓지 않음으로서, 스스로 자연에 가까워지고, 스스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며,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지금 현재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건너가는 자』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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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건너가는 자, 최진석 지음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p****r | 2024.05.09 리뷰제목
현대 사회에서 고전의 의미는 무엇일까....현대사회에서 고전의 의미는 무엇일까?. 2~3년 전에 인문학 열풍이 전 기업과 정부기관에 일었던 적이 있다. 기업 경영과 정부 기관등 단체 운영을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옛 고전 인문학에서 그 길을 찾고자 많은 인문학자들이 조언을 했었다. 역시 위대한 고전은 죽지않는다는 것을 느꼈었다. 최근에도 고전에 대한 열풍이 다시 일고 있다. 오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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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고전의 의미는 무엇일까....

현대사회에서 고전의 의미는 무엇일까?. 2~3년 전에 인문학 열풍이 전 기업과 정부기관에 일었던 적이 있다. 기업 경영과 정부 기관등 단체 운영을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옛 고전 인문학에서 그 길을 찾고자 많은 인문학자들이 조언을 했었다. 역시 위대한 고전은 죽지않는다는 것을 느꼈었다. 최근에도 고전에 대한 열풍이 다시 일고 있다. 오십에 읽는 시리즈의 열풍을 일으켰던 '오십에 읽는 논어’는 최종엽 교수가 집필한 책으로, 공자의 유명한 경전인 논어를 50대의 인생 후반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새롭게 해석한 책이었다. 이 책은 2021년에 출간되어 대한민국에 《논어》와 고전 열풍을 일으킨 인문 교양서로, 3년 연속 최장기 베스트셀러를 유지했다. 오늘날 기성세대로 처부되는 오십대의 공허함과 가벼움을 채우는 논어의 지혜를 담고 있고, 공자의 말과 지혜에 머물지 않고 오십이 자신을 이해하고 다스릴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공했다. 이글을 쓰고 있는 저도 최교수님의 책을 읽고 많은 감명과 가슴속 울림을 경험했다. 이번에 논어와 함께 동양 고전의 보석이라 할 수 있는 반야심경 중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이 간직했으면 하는 구문들을 정리해서 편저하고 우리가 알아야 할 교훈을 해석한 책이 나와서 기쁜 마음으로 책을 읽게되었다. 최진석님의 <건너가는 자>이다.

저자인 최진석님은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이다. 건명원(建明苑) 초대 원장을 지냈다. 1959년,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 곁의 작은 섬 장병도에서 태어나 함평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베이징대학교에서 당나라 초기 장자 해석을 연구한 『성현영의 ‘장자소’ 연구(成玄英的‘莊子疏’硏究)』(巴蜀書社, 2010)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가(道家) 철학자인 그는 원래 서양철학을 공부하려고 독일 유학을 계획했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독일철학을 공부할 때는 미간을 찌푸리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책을 읽곤 했는데 우연히 책꽂이에서 발견한 장자를 읽으면서 재미에 푹 빠져 편안하게 즐겼다. 그래서 ‘공부를 하려면 재미있고 좋아하는 것을 해야지’란 생각으로 동양철학으로 바꿨다. 게다가 유가(儒家)보다는 도가(道家) 책을 읽을 때 더 영감이 떠오르고 짜릿짜릿했다. 저자가 노장 철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이유다. 저자는 우리에게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주체적이고 욕망에 집중하며 살라고 권한다.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미래가 주체적이고 욕망하는 개인에게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은 책으로는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2021)』 『나 홀로 읽는 도덕경(2021)』 『탁월한 사유의 시선(2018)』 『경계에 흐르다(2017)』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2015)』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2001)』 등이 있고, 『장자철학(2021)』 『노장신론(1997)』 등을 해설하고 우리말로 옮겼다.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은 『聞老子之聲, 聽道德經解』(齊魯書社, 2013)으로 중국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출판사 저자 소개 자료 중에서

최진석 교수님의 책 <건너가는 자>는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인 반야심경을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인간의 소명과 세상의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을 다루며,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인간이 겪는 고통과 그 고통을 넘어서는 지혜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들어가며 - 세계의 법칙을 비추는 반야의 길

1장_인간의 소명을 깨닫고, 세상의 진실을 마주한다

2장_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니, 반야의 지혜를 딛고 저쪽으로 건넌다

3장_더 채우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정확히 보기 위해 상을 짓지 않는다

4장_뒤집힌 생각을 바로잡아, 가장 탁월한 길을 선택한다

5장,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고통의 바다를 건너갈 뿐이다

나오며 - 경전을 족쇄 아닌 등불로 삼길

반야심경은 대승불교의 반야부경전 중 하나로 원 제목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다. 이 경은 불교의 모든 경전 중 짧으면서도 (260글자) 그 품은 뜻은 여타의 다른 경전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어 불교의 모든 의식에서 반드시 독송되고 있는 중요한 경전이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내용 다음과 같다. 실체가 없음(경전은 실체가 없고, 감각, 생각, 행동, 의식도 없는 것을 말한다), 무시간성(시간이라는 관념에서 완전히 떨어진 무시간성을 의미하며, 이는 영원한 차원을 상징한다), 무명(모든 존재들이 외관상으로는 생겨나는 것 같기도 하고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더러운 것 같기도 하고 깨끗한 것 같기도 하고 증가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감소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생겨나는 일도 없고 없어지는 일도 없으며,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으며, 감소하는 일도 없고, 증가하는 일도 없다), 피안으로 가자(경전은 피안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며, 깨달음의 지혜를 통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경전은 불교의 깊은 뜻을 담고 있으며, 지혜와 깨달음을 통해 인생의 고통을 해소하고 평화로운 삶을 이루는 길을 제시한다. 

<반야심경>에 세계의 법칙이 담겨 있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만, 이렇게 말해볼 수는 있겠습니다. 고요한 수면에 달이 비칠 때면 수면에서도 비친 달을 볼 수 있듯, <반야심경>에도 세계의 법칙을 비추는 부분이 있다고요. 고요한 수면에 달이 비친다고 수면 아래에 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면에 밤하늘이 모두 담길 수도 없겠지만, 수면에 비친 달 역시 아름답게 빛나는 것만큼은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세계의 법칙과 <반야심경> 역시 달과 달을 비추는 수면의 관계로 바라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서문에서

저자는 <반야심경>이 세계의 법칙을 완전히 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주저하지만, <반야심경>이 세계의 법칙을 반영하는 부분이 있다고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비유에서, 고요한 수면에 비친 달은 <반야심경>을 통해 볼 수 있는 세계의 법칙을 상징한다. 달이 수면에 비치듯이, <반야심경>은 세계의 법칙을 비추어 보여준다. 그러나 수면 아래에 실제로 달이 있는 것은 아니며, 수면이 밤하늘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반야심경>이 세계의 모든 법칙을 완전히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면에 비친 달이 아름답듯이, <반야심경>을 통해 비추어진 세계의 법칙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고 아름답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비유는 <반야심경>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나타내며, 이 경전이 제공하는 지혜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반야심경>은 세계의 근본적인 진리를 완전히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세계의 일부 법칙을 반영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최진석 교수님의 책 <건너가는 자>는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인 반야심경을 현대적 시선으로 해석하고 저자의 철학적 개념을 더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려운 반야심경의 내용을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인간의 소명을 깨닫고, 세상의 진실을 마주한다>에서 자신의 꿈과 사명을 점검하고, 자기 소명을 발견하며 실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전의 역할을 탐구한다.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니, 반야의 지혜를 딛고 저쪽으로 건넌다>에서 붓다의 깨달음과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는 해탈에 대해 설명한다. <더 채우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정확히 보기 위해 상을 짓지 않는다>에서 무소유의 태도와 세계의 진실을 직접 대면하는 방법을 논하며, <뒤집힌 생각을 바로잡아, 가장 탁월한 길을 선택한다>에서 삼법인과 전도몽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탁월한 길을 선택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고통의 바다를 건너갈 뿐이다>에서 반야의 지혜를 통해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주문과 극단적 부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은 이러한 내용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열어가는 사람이 가장 존귀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자신의 고유한 내용을 바라밀다의 형식에 담아 나만의 길을 걸어가는 고독한 사람의 지혜를 찬양한다. 

피안이라는 높은 경지가 정해져 있고, 정해진 그 높은 경지를 향해서 부단히 나아간다고 하면 아주 멋진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것만이 바라밀다는 아닙니다. 어디에 서 있건 지금 이 자리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다음을 도모하는 것, 익숙함을 뒤로 하고 낯설면서도 위험하고도 해석되지 않은 곳으로 건너가는 용기 있는 동작, 이것이 바라밀다입니다.

바라밀다 - 건너가기, 중에서

이 문장에서 저자는 바라밀다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바라밀다는 불교 용어로, 고통과 번뇌가 없는 경지인 피안으로 건너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저자는 피안이라는 경지만을 목표로 삼는 것이 바라밀다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현재 위치와 상황에 상관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익숙한 것을 뒤로하고 낯선, 위험하며 해석되지 않은 곳으로 용감하게 나아가는 행동이다. 저자는 이러한 동작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밀다를 실천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단순히 정해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며,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접근은 우리가 삶에서 직면하는 불확실성과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을 재고하게 만들며, 자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성장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저자는 철학적 깊이와 함께,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서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표지에 있는 삽화에서도 큰 의미를 주는 것 같다.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지혜를 '건너가는 자’로 표현한 것 같다. 삽화는 스위스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대표작 [걷는 사람]을 연상시키며, 가늘고 긴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다.

건너가는 자, 총리뷰

저자는 붓다의 가르침과 <반야심경>을 통해, 삶의 본질적인 질문들에 대해 탐구하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며, 진정한 자유와 해탈을 향한 걸음을 내딛게 하는 것 같다. 

* 본 포스팅은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 댓글 0
종이책 건너가는 자 평점10점 | s*******6 | 2024.05.23 리뷰제목
?건너가는 자...과연 무엇을 건너간다는 의미일까. 나는 최진석님의 「건너가는 자」의 앞표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가느다란 선이 있고 그 중앙에 한참 어딘가를 바라보며 건너가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발의 모양을 보니 서있지는 않은 것 같다. 정말 걸어가고 있는 그 찰나를 포착한 모습이다.익숙함이 탁월함이 되고 얽매임이 벗어남이 된다는 말에도 눈길이 간다. 나는 곰곰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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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가는 자...

과연 무엇을 건너간다는 의미일까. 나는 최진석님의 「건너가는 자」의 앞표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가느다란 선이 있고 그 중앙에 한참 어딘가를 바라보며 건너가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발의 모양을 보니 서있지는 않은 것 같다. 정말 걸어가고 있는 그 찰나를 포착한 모습이다.


익숙함이 탁월함이 되고 얽매임이 벗어남이 된다는 말에도 눈길이 간다. 나는 곰곰 생각하다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한번 내려보았다. 익숙할 정도로 무언가를 잘 하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탁월한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며 얽매여 있다고 느끼지만 실은 그것이 자유를 허락하는 이유가 된다고.


그렇게 펼쳐든 책은 내가 읽기에 아주 쉽지는 않았다. 우선 ≪반야심경≫에 대해 내가 너무나도 모르는 것이 많기에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책이 워낙 쉽게 설명해 주려고 노력을 했기 때문인지 많이 어렵지는 않았다. 나는 그래도 한번 더 읽어보고 생각해 보기를 원하는 곳에는 형광펜을 그어가며 책을 읽어갔다. 내가 이 많은 가르침을 단번에 다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책을 읽을 때 한번에 이해가 바로 되는 책이 좋지만 가끔은 생각할거리를 던져주는 책도 좋다. 왠지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만 같아서 다 읽고난 후 만족감이 더 큰 것 같다. 이 책이 그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한 페이지씩 천천히 읽어간다.


물리학과 불교의 가르침에 대한 비교는 정말 참신했다. 전혀 같기는 커녕 비슷한거라고는 눈 씻고 보아도 없을 것 같은 그것들에도 유사점이 있다는 가르침을 가장 먼저 얻었다. 빛에 대한 성질도, 성질이라는 것이 본래 있었던건지에 대한 사색도 나에게는 큰 가르침을 주었다.


저자는 그 어떤 책보다도 ≪반야심경≫이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것 같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한번 더 눈을 부릅떴다. 목차를 보다가 몇 개의 제목에서 눈이 멈췄다. 무소유도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고 과정없이 결과만 바라거나 과정을 건너뛰고 결과만 이해한 채로 결코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이야기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거늘 이 말들이 뜻하는 바를 속 뜻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무언가를 내려놓아야만 더 많이 들 수 있기 때문이라는 무소유의 가르침을 또 한번 읽으면서 과연 나는 무엇을 내려놓고 또 무엇을 더 들어올려야할까 고민에 빠져본다.


내가 매일 읽고 있는 책에서 얼마전 읽은 내용이다. 책은 우리의 인생을 스포츠에 비유를 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손에 복싱장갑을 끼고 링 위에서 복싱경기에 임하고 있다. 누군가는 손에 맞지 않는 장갑을 끼고 있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신발이 몸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페이스에 맞게 우리의 능력치에 맞게 복싱을 하며 우리 갈 길을 간다. 그런데 만약 복서가 몇 대를 맞았다고 해서 링을 떠나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링을 가로지르며 그것이 허공을 가를지라도 펀치를 날려야 한다. 나는 어떤 연관성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건너가는 자」를 읽으며 바로 이 대목을 떠올렸다. 복서는 펀치를 날리기 위해 링을 건너간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가는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 상대가 없이 홀로 하는 훈련이라 해도 그냥 머물러 있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순례」에서 티베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떠오른다. 사람의 몸은 '자루'와 같아서 영혼은 그 자루에 잠시 머물다가 떠나가는 것이라는 그 이야기를 생각해 보니 세상 어떤 사람도 "건너가는 자"가 될 수 밖에는 없겠다 싶다. 


저자는 우리에게 나만의 고삐를 찾아 끊임없이 그것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주지시킨다. 나는 이 대목에서는 「마음 탄다, 말을 탄다」가 떠올랐다. 그 책에서 기승자는 반드시 말의 고삐를 놓아서는 안 된다는 문장을 보았다. 나만의 고삐가 말의 고삐가 되니 내 인생이 말이 되어 힘차게 뛰어가는 느낌이 든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이렇게 많은 책들과 내용이 함께 생각난다니.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이 책의 위력이다.



※ 나의 고삐를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쫑쫑은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인 견해로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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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왜 반야심경인가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m****h | 2024.05.22 리뷰제목
반야심경과 세계, 또 건너감이란지은이 최진석 선생은 <반야심경>과 세계, 달과 달을 비추는 수면처럼, 이곳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갑자기 당연하지 않다고 하면, 당황스럽고 때로는 황당하기도 하다. 저곳이 어느덧 이곳이 되면, 또 다른 새로움과 황당함은 저곳이 되듯,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자는 늘 깨어있는 자요. 생각을 그치지 않는 사람이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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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과 세계, 또 건너감이란


지은이 최진석 선생은 <반야심경>과 세계, 달과 달을 비추는 수면처럼, 이곳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갑자기 당연하지 않다고 하면, 당황스럽고 때로는 황당하기도 하다. 저곳이 어느덧 이곳이 되면, 또 다른 새로움과 황당함은 저곳이 되듯,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자는 늘 깨어있는 자요. 생각을 그치지 않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양과학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거시세계, 뉴턴의 고전역학이 이곳이라면 닐스 보어 등이 정립하였던 양자역학은 저곳이다. 양자역학은 미시세계, 이 세계는 오감으로 전혀 알아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그저 결과가 그렇다니, 그럴 뿐, 


왜 하필 반야심경일까? 


세상에 존재하는 나를 인지할 때, 참된 건너감으로써 삶의 도약을 이룰 수 있다는 지은이의 갈파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즉, 반야심경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게 돕는 반야의 지혜를 담은 핵심 경전이다. 


이 책은 5장 체재이며, 1장에서는 인간의 소명을 깨닫고 세상의 진실을 마주보기다. 천상천하유아독존, 하늘과 땅 사이에 오로지 나만이 존귀하다는 의미는 어떤 의미인가, 노자의 자중자애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까, 당신의 고삐는 무엇인지, 왜 행복하지 않은가, 본무자성(색즉시색, 공즉시색이라) 무엇인가를 그것이게 하는 성질은 없다. 관계 맺는 형태와 인연에 따라 잠시 그것으로 있을 뿐이다. 불경에서는 본무자성(本無自性)이라는 존재형식을 “공”이라는 글자로 개념화한다, 이렇게 근본개념을 살피면서 2장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 반야의 지혜를 딛고 저쪽으로 건너간다고, 아는 것을 디딤돌 삼아 모르는 것으로 넘어가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그럼 어떻게 하면 나를 키우는 지혜를 기를 것인가, 3장에서는 더 채우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정확히 보기 위해 상(相)을 짓지 않는다. 4장에서는 뒤집힌 생각을 바로잡아, 가장 탁월한 길을 선택한다. 5장.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고통의 바다를 건너갈 뿐이다. 


반야심경의 심오함을 지은이는 물리학을 빌어 설명한다. 그렇다고 물리학이 경전의 세계를 다 설명해주지도 않을뿐더러 같지도 않다.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일뿐이다. 


결론은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즉, 건너가세, 건너가세, 저기로 건너가세. 저기로 다 함께 건너가세. 깨달음이여. 만세라는 뜻이다. 반야의 지혜란 지혜도 얻을 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요. 얻을 것이 없기에 그러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고정된 생각 뒤집기, 보이는 길은 무엇일까?


인간은 이론이나 진리를 통해서 세계를 보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를 통해서 진리와 이론을 건축하는 존재다. 발상의 전환이며, 패러다임의 변화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은 어떤 특정한 관점, 창(이론과 진리)으로 이 세계를 보거(상을 만들거나)나 해석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고정된 틀과 관념을 떨쳐내 버리라는 말이다. 또 보자. 법정 스님의 상징처럼 여기는 “무소유”란 또 무엇인가, 내려놓는 이유는 내려놓아야 더 많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을 빼는 이유는 힘을 더 세게, 더 정확히 구사하기 위함이다. 


반야 세계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것이 없다, ‘바람직한 것’, ‘해야 하는 것’, ‘좋은 것’ 이 마음에 자리 잡으면 두려움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뭔가를 잃는다는 것이야말로 두려움이다. 바람직한 것을 위해, 해야 할 것을 위해, 좋은 것을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두려움 속에서 헤어나기 위함이다. 두려움으로 왜곡과 갈등이 생겨나니, 바람직한 것이 맘에 부담이 되고, 해야 하는 도리가 무겁게 어깨를 짓누를 때, 이런 가치 판단 자체가 무용, 쓸데없는 것이라.


한 번에 깨침을 얻을 수 없듯, 하루 이틀 그리고 또 하루 이틀 셀 수 없을 만큼의 되새김질이 필요하다. 부처가 승려 대중에게 손을 들어 달을 가리키는데, 보라는 달을 아니보고 부처님의 손끝을 보고 있노라. 이게 바로, 부처라는 존엄의 대상이 상대적으로 존재하고 그가 행하는 것이 진리인 양. 뜻도 모르고 경전만 부지런히 외우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최진석 선생의 반야심경은 경전이 아닌 그 안에 담긴 뜻을 헤아리고 또 헤아려 마음의 무기로 삼으라는 말이다. 부처의 손끝이 아닌 달을 보라는 말이다. 즉, 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 건너가라는 말이다. 장애물이 벽이든, 물이든, 그 형체는 본디 없는 것이니...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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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최진석 교수님이 길어 올린 질문, 건너가는 자 평점10점 | s*****h | 2024.05.01 리뷰제목
최진석 교수님의 책은 언제나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사유의 깊이로 나를 끌어당기고한번도 바라보지 못한 시선으로 세상을 느끼게 해준다.<건너가는 자>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나를 이끌어준 이 책은 <반야심경>의 지혜를 탐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반야심경>은 불교라는 종교의 경전이면서도만물의 형성 원리를 다루는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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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교수님의 책은 언제나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사유의 깊이로 나를 끌어당기고
한번도 바라보지 못한 시선으로 세상을 느끼게 해준다.

<건너가는 자>
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
나를 이끌어준 이 책은 <반야심경>의 지혜를 탐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야심경>은 불교라는 종교의 경전이면서도
만물의 형성 원리를 다루는 동시에, 삶의 태도에 관한 철학서이다.

이에 대해 서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반야심경>에 세계의 법칙이 담겨 있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만, 이렇게 말해볼 수는 있겠습니다. 고요한 수면에 달이 비칠 때면 수면에서도 비친 달을 볼 수 있듯, <반야심경>에도 세계의 법칙을 비추는 부분이 있다고요. 고요한 수면에 달이 비친다고 수면 아래에 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면에 밤하늘이 모두 담길 수도 없겠지만, 수면에 비친 달 역시 아름답게 빛나는 것만큼은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세계의 법칙과 <반야심경> 역시 달과 달을 비추는 수면의 관계로 바라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_ 책 중에서<건너가는자> 책은 생각의 깊이에 대한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책이라 말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읽다보면
때로는 깊이가 부족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은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생각의 깊이로 나를 끌어당김을 알 수 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봅시다. 붓다가 한 최초 지각은 바로 세상이 고통의 바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고통의 바다임을 진실로 알았으니 이제 붓다가 해야할 일은 명확해집니다. 고통의 바다에서 중생을 건져 올려 구하는 것입니다. 불교, 붓다의 모든 설법은 한 가지 이야기를 달리 풀어낸 셈이지요. 결국은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_ 책 중에서

붓다가 한 최초의 지각.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는 것을 해탈이라고 한다고한다.
어떻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불교의 교리에 맞춰 하나하나 설명이 되고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건 그가 바라본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진실.
세계의 진실을 진실로 아는 것.
그 과정에서 해탈의 근본적인 조건과 함께
붓다가 마주하는 세상을 느껴본다.

불국과 속세도 불이의 관계로, 수행자와 비수행자도 불이의 관계로 바뀝니다. 불이의 관계로 바뀌려면, 굳건한 정체성을 근거로 하여 따로 존재하던 양편의 두 개가 각각 자신의 정체성을 허물어야 합니다. 각자의 정체성을 분명하고도 굳건하게 지키는 한에서는 양편의 각자가 불이의 관계로 바뀌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냥 둘로 존재할 수박에 없겠죠. 그래서 공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_ 책 중에서

공의 개념
사실 불경을 읽으면서 가장 이해가 잘 되면서도 이해가 어려운 개념이 바로 공의 개념이었다.

색수상행식 오온이 모두 공이라고 합니다. 대승의 철학을 아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색수상행식이 연합해 있다는 의미나 색수상행식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에서 공이 아니라, 색수상행식 하나하나가 다 공이라는 것입니다. 색도 공이고, 수도 공이고, 상도 공이고, 행도 공이고, 식도 공이라는 것입니다. 색 자체가 인연이고, 수 자체가 인연이고, 상 자체가 인연이고, 행 자체가 인연이고, 식 자체가 인연이라는 것입니다. 색 자체가 관계이고, 수 자체가 관계이고, 행 자체가 관계이고, 식자체가 관계인 것이죠. 오온개공이라는 말의 의미는 이러합니다. 그럼 이제 공이라는 개념을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_ 책 중에서

읽어도 이해가 될 듯 되지 않을 듯하다.
분명한건 생각해보지 못한 또 다른 생각 영역을 마주한다는 점이다.

<건너가는 자>
이 책은 흔들리고 위태로운 이 시대에 마음의 등불이 되는 반야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로 인해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
변화를 말미암아 달라지고 성장하는 것.

자유로운 자는 건너가는 자라고 표현한 이 책이 갖고 있는 묘미를 마주해보는 기회를 가져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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