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가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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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가는 자

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

리뷰 총점 9.7 (7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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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인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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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건너가는 자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k*******2 | 2024.06.04 리뷰제목
????당연한 이야기지만, 통치 이데올로기로 지정되면 그 종교의 지위가 정치적으로 매우 격상합니다. 그러면서 도교의 교리를 담은 책 주에서도 중요한 책들에 경이라는 글자가 하나둘씩 붙게 됩니다. 선진 시기에 쓰인 《장자》 또한 장나라 시기에 이르러 그 명칭이 남화진경 南華眞經 으로 바뀌게 되고요. 그래서 《장자》 가 남화라는 이름으로 바뀐 연유보다도, 《장자》 라는 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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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지만, 통치 이데올로기로 지정되면 그 종교의 지위가 정치적으로 매우 격상합니다. 그러면서 도교의 교리를 담은 책 주에서도 중요한 책들에 경이라는 글자가 하나둘씩 붙게 됩니다. 선진 시기에 쓰인 《장자》 또한 장나라 시기에 이르러 그 명칭이 남화진경 南華眞經 으로 바뀌게 되고요. 그래서 《장자》 가 남화라는 이름으로 바뀐 연유보다도, 《장자》 라는 책이 경의 지위를 획득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30-)






붓다는 어떤 고삐,어떤 소명을 가졌을까요.그것은 태어났을 때 했다는 짧은 말, 즉 출생게 出ㅅ生偈 에 담겨 있습니다. 붓다는 태어나며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세개고 오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三界皆苦 吾當安之) 이 말을 있는 그대로 풀어보자면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과거 현재 미래로 펼쳐진 온 세상이 고통이니, 내가 그 고통을 해결하겠다'입니다. (-40-)





마하는 크다느 뜻입니다. 그렇다면 한자어로'크다'를 나타내는 대로 번역할 수 있었을 테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마하와 대, 둘 다 크다는 의미이긴 하지만, 마하에는 대에 담기 어려울 만치 크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까닭은 언어적 특성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104-)





나에게 있는 것을 떼어서 저 사람에게 줄 때,내 인식 범위와 관심의 범위는 나를 넘어 나 바깥의 저 사람에게까지 확대됩니다. 그러면 나의 영토는 좁았다고 보아야 할까요, 넓어졌다고 보아야 할까요? 물론 없어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보시를 통해서 내가 인식하는 범위와 통제하고 관리하는 범위가 보시하기 이전보다 더 넓어지니 내가 더 넓은 경험을 하게 되고, 이 경험으로 나는 더 넓어지지요. (-123-)





비운다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을 짓지 않고 바라본다는 의미입니다. (-186-)





상을 짓지 않으면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불하는 지름길이지요. 상을 지으면 안되는 이유가 뭘까요.이 또한 공 때문입니다. 나도, 내 마음도, 세계도 어떤 특정한 근거 하에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질이 없다는 말이지요.그렇기에 확정된 어떤 의미도 있을 수 없습니다. (-187-)





불구부정 不垢不淨 은 더럽지도 않고 꺠끗하지도 않다는 말입니다. 원효대사의 해골 물 이야기를 떠올려봅시다 .원효 대사가 당나라로 가는 길에 잠을 자다가, 목이 너무 말라깼다고 합니다. 손을 더듬어보니 웬 그릇에 물이 있어 물을 한 모금 시원하게 마시고 다시 잤다고 하지요. 그렇게 시웡하게 마시고 잤는데 아침에 마신 물이 해골바가지가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어젯밤에 마신 물이 해골바가지에 담겨 있던 물이었던 것입니다. 그걸 보고는 구역질을 했다고 하지요. (-229-)





"우리 조선은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주희가 들어와서 조선의 주희가 되지 않고 주희의 조선이 되려 한다.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라면 노예의 특색이다.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해 통곡하려 한다. " (-284-)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나 홀로 읽는 도덕경』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탁월한 사유의 시선』,『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 을 읽었다. 최진석 교수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욈하고, 지급은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으로 있다. 고향 함평에서,자신이 해야 할 소명을 실행하고, 인재를 양성하는데 남은 인생을 채우고 있다.





책 『건너가는 자』에서는 저자가 무인도에 가면, 꼭 들고다니겠다는 한 권의 책, 반야심셩에 대해  주석을 달고 있었다. 책을 펼쳐드는 순간, 책제목이 『반야심경』이 아닌 『건너가는 자』로 정해놓았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과정에서,답을 .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보시를 말하고 있으며,마하에 대한 개념을 중시하고 있다.번뇌란 인간의 고통을 덜어내는 것이며, 소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면서,의미를 부여하고,책임감을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다. 결국 소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는 자신의 목숨을 함부러 하지 않는다.우울하지 않으며, 무력함을 느낄 여유가 없다.오직 소명으로 살아가며, 상을 짓지 않기 위해 애쓰며,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나를 위한 실존적 행위라는 것을 깨닫게 할 뿐이다.





예컨데, 상을 짓지 안는다는 건, 타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스스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죽을 때까지 타인을 적으로 돌리지 않겠다는 의지다. 보는 것을 그대로 보고 관찰하고,느끼는 것이며, 상을 짓지 않아야 스스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사람에 대해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하나의 상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가치를 생성하고, 긍정적으로 가치을 부여하는 것 또한 상을 짓는 것이다.세상을 왜곡하고, 사람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고, 오류와 실수를 반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시를 한다는 것은 나의 것을 타인에게 나누어 주다는 게 아니다.나의 세계관을 보시를 통해서 확장할 수 있고, 새로운 세계관이 열릴 수 있다. 불구부정 不垢不淨 이란 더럽지도 않고,깨끗하지도 않은 것이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그 음식에 평가하려는 습관도, 불구부정 不垢不淨에서 벗어나는 실천적 행위다. 그러나 불구부정 不垢不淨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해 자연에 대해, 구별짓지 않음으로서, 스스로 자연에 가까워지고, 스스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며,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지금 현재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건너가는 자』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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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건너가는 자, 선을 넘는 자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 2024.12.02 리뷰제목
공자님은 여획이라고 말하고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노닥거리지 말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노자를 보면 말이 알쏭달쏭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높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자정도는 이해하고 그 대칭점을 한 번 또 보라는 의미처럼 이해되기도 한다. 이런 관념적인 철학적 용어를 듣다 보면 세상과 동떨어지는 것 같지만 노자는 볼 때마다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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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님은 여획이라고 말하고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노닥거리지 말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노자를 보면 말이 알쏭달쏭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높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자정도는 이해하고 그 대칭점을 한 번 또 보라는 의미처럼 이해되기도 한다. 이런 관념적인 철학적 용어를 듣다 보면 세상과 동떨어지는 것 같지만 노자는 볼 때마다 생각해 보면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때쯤 EBS에서 강의하는 최진석이란 사람을 알게 됐다. 텔레비전 끊은 지 15년도 넘었는다. 오래전 술 마시고 집에 들어와서 우연히 켜 본 텔레비전에 나온 사람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사람보다, 보여지는 대로 보는 사람보다 강하다" 거의 이런 의미였는데 술이 확 깨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도덕경을 사서 읽고,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어려 권 사서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하고,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아마 불교방송에서 강연하는데 한 번 가서 책도 사고 배서 같은 사인도 받았던 것 같다. 그땐 왜 도덕경 강의를 불교방송에서 하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시대를 살아가며 동시대의 철학자를 본다는 것은 생경하기도 하고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내 해석일 뿐이다. 


 며칠 전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건너가는 자"라는 책을 만났다. 중고서점인데 새책과 같은 상태고, 저자를 보자마자 내용도 확인하지 않고 구매했다. 표지에 쓰여 있는 '익숙함을 넘어 탁월함으로'라는 말은 그 문장이 품고 있는 의미를 잘 알듯하고,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은 알쏭달쏭하다. 


 책을 펼치고 나니 반야바라밀다심경에 관한 책이다. 최근에 법륜 스님의 책을 읽은 바가 있어 흥미가 조금 떨어지지만 천천히 읽어 보기로 했다. 스님과 철학자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스님은 보다 현실적이고 경험적 사례로 이야기하고 철학자는 세상의 미래에 혁신을 던지기 위해서인지 다채롭다.


 어쩌면 환갑이 넘은 교수님이 그간의 저작과 자신의 성취를 한 권의 책에 담으려고 하진 않았을까? 그 좋은 뜻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중도가 어중간한 가운데가 아니라 탁월함이라는 글귀를 보며 또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모든 것이 공이라고 하는데 그 공이란 것도 공일뿐이라고 주장을 하는데.. 현실에서 이해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인간에게 정말 큰 선을 넘는 것이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해했다고 다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


 무지를 벗어 탁월한 사유의 지선을 갖는 높은 수준에 다다르고, 도덕경이던 반야심경이던 그것이 지향하는 바를 위해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스스로 펼치는 모습 그것이 진정한 자유로움과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한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한편 교수란 좋은 직업적 환경을 벗어나 세상을 위해 노력하려고 한 노교수의 노력을 보면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개인적으로 세상의 리더란 세상을 위한 업적이 있어야 한다. 업적을 만들 계획이 아니라 세상에 입증되고 그 추세에 대한 신뢰가 존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권에서 그 선택이 또 하나의 업은 아니었을까 하는 아주 큰 아쉬움이 있다. 하여튼 이 한 권으로 최진석 교수의 세상을 보는 시선, 도덕경, 반야심경에 대한 해석과 의미를 통해 내 삶을 반추할 만한 것 같다.


#최진석 #건너가는_자 #탁월한_사유의_시선 #철학자 #도덕경 #독서 #반야심경 #반야바라밀다심경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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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건너가는 자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c******m | 2024.08.18 리뷰제목
불교의 경전중 반야심경을 좋아해서 지금까지 몇권의 책을 읽은것 같은데 이번에 읽은 최진석 교수의 건너가는 자가 제일 알찬 것 같습니다 경전의 내용을 풀어서 설명하는데 그치는 책들이 대부분인데 건너가는 자는 설명에  그치지 않고 저자의 내공이 더해져서 반야심경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네요 자신만의 고삐를 잡고 건너가기를 계속 반복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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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경전중 반야심경을 좋아해서 지금까지 몇권의 책을 읽은것 같은데 이번에 읽은 최진석 교수의 건너가는 자가 제일 알찬 것 같습니다 경전의 내용을 풀어서 설명하는데 그치는 책들이 대부분인데 건너가는 자는 설명에  그치지 않고 저자의 내공이 더해져서 반야심경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네요 자신만의 고삐를 잡고 건너가기를 계속 반복 하는 것이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요지인 것 같습니다  모두들 성불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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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건너가는 자 평점10점 | s*******6 | 2024.05.23 리뷰제목
?건너가는 자...과연 무엇을 건너간다는 의미일까. 나는 최진석님의 「건너가는 자」의 앞표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가느다란 선이 있고 그 중앙에 한참 어딘가를 바라보며 건너가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발의 모양을 보니 서있지는 않은 것 같다. 정말 걸어가고 있는 그 찰나를 포착한 모습이다.익숙함이 탁월함이 되고 얽매임이 벗어남이 된다는 말에도 눈길이 간다. 나는 곰곰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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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가는 자...

과연 무엇을 건너간다는 의미일까. 나는 최진석님의 「건너가는 자」의 앞표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가느다란 선이 있고 그 중앙에 한참 어딘가를 바라보며 건너가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발의 모양을 보니 서있지는 않은 것 같다. 정말 걸어가고 있는 그 찰나를 포착한 모습이다.


익숙함이 탁월함이 되고 얽매임이 벗어남이 된다는 말에도 눈길이 간다. 나는 곰곰 생각하다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한번 내려보았다. 익숙할 정도로 무언가를 잘 하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탁월한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며 얽매여 있다고 느끼지만 실은 그것이 자유를 허락하는 이유가 된다고.


그렇게 펼쳐든 책은 내가 읽기에 아주 쉽지는 않았다. 우선 ≪반야심경≫에 대해 내가 너무나도 모르는 것이 많기에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책이 워낙 쉽게 설명해 주려고 노력을 했기 때문인지 많이 어렵지는 않았다. 나는 그래도 한번 더 읽어보고 생각해 보기를 원하는 곳에는 형광펜을 그어가며 책을 읽어갔다. 내가 이 많은 가르침을 단번에 다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책을 읽을 때 한번에 이해가 바로 되는 책이 좋지만 가끔은 생각할거리를 던져주는 책도 좋다. 왠지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만 같아서 다 읽고난 후 만족감이 더 큰 것 같다. 이 책이 그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한 페이지씩 천천히 읽어간다.


물리학과 불교의 가르침에 대한 비교는 정말 참신했다. 전혀 같기는 커녕 비슷한거라고는 눈 씻고 보아도 없을 것 같은 그것들에도 유사점이 있다는 가르침을 가장 먼저 얻었다. 빛에 대한 성질도, 성질이라는 것이 본래 있었던건지에 대한 사색도 나에게는 큰 가르침을 주었다.


저자는 그 어떤 책보다도 ≪반야심경≫이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것 같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한번 더 눈을 부릅떴다. 목차를 보다가 몇 개의 제목에서 눈이 멈췄다. 무소유도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고 과정없이 결과만 바라거나 과정을 건너뛰고 결과만 이해한 채로 결코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이야기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거늘 이 말들이 뜻하는 바를 속 뜻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무언가를 내려놓아야만 더 많이 들 수 있기 때문이라는 무소유의 가르침을 또 한번 읽으면서 과연 나는 무엇을 내려놓고 또 무엇을 더 들어올려야할까 고민에 빠져본다.


내가 매일 읽고 있는 책에서 얼마전 읽은 내용이다. 책은 우리의 인생을 스포츠에 비유를 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손에 복싱장갑을 끼고 링 위에서 복싱경기에 임하고 있다. 누군가는 손에 맞지 않는 장갑을 끼고 있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신발이 몸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페이스에 맞게 우리의 능력치에 맞게 복싱을 하며 우리 갈 길을 간다. 그런데 만약 복서가 몇 대를 맞았다고 해서 링을 떠나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링을 가로지르며 그것이 허공을 가를지라도 펀치를 날려야 한다. 나는 어떤 연관성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건너가는 자」를 읽으며 바로 이 대목을 떠올렸다. 복서는 펀치를 날리기 위해 링을 건너간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가는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 상대가 없이 홀로 하는 훈련이라 해도 그냥 머물러 있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순례」에서 티베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떠오른다. 사람의 몸은 '자루'와 같아서 영혼은 그 자루에 잠시 머물다가 떠나가는 것이라는 그 이야기를 생각해 보니 세상 어떤 사람도 "건너가는 자"가 될 수 밖에는 없겠다 싶다. 


저자는 우리에게 나만의 고삐를 찾아 끊임없이 그것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주지시킨다. 나는 이 대목에서는 「마음 탄다, 말을 탄다」가 떠올랐다. 그 책에서 기승자는 반드시 말의 고삐를 놓아서는 안 된다는 문장을 보았다. 나만의 고삐가 말의 고삐가 되니 내 인생이 말이 되어 힘차게 뛰어가는 느낌이 든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이렇게 많은 책들과 내용이 함께 생각난다니.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이 책의 위력이다.



※ 나의 고삐를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쫑쫑은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인 견해로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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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왜 반야심경인가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m****h | 2024.05.22 리뷰제목
반야심경과 세계, 또 건너감이란지은이 최진석 선생은 <반야심경>과 세계, 달과 달을 비추는 수면처럼, 이곳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갑자기 당연하지 않다고 하면, 당황스럽고 때로는 황당하기도 하다. 저곳이 어느덧 이곳이 되면, 또 다른 새로움과 황당함은 저곳이 되듯,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자는 늘 깨어있는 자요. 생각을 그치지 않는 사람이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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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과 세계, 또 건너감이란


지은이 최진석 선생은 <반야심경>과 세계, 달과 달을 비추는 수면처럼, 이곳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갑자기 당연하지 않다고 하면, 당황스럽고 때로는 황당하기도 하다. 저곳이 어느덧 이곳이 되면, 또 다른 새로움과 황당함은 저곳이 되듯,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자는 늘 깨어있는 자요. 생각을 그치지 않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양과학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거시세계, 뉴턴의 고전역학이 이곳이라면 닐스 보어 등이 정립하였던 양자역학은 저곳이다. 양자역학은 미시세계, 이 세계는 오감으로 전혀 알아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그저 결과가 그렇다니, 그럴 뿐, 


왜 하필 반야심경일까? 


세상에 존재하는 나를 인지할 때, 참된 건너감으로써 삶의 도약을 이룰 수 있다는 지은이의 갈파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즉, 반야심경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게 돕는 반야의 지혜를 담은 핵심 경전이다. 


이 책은 5장 체재이며, 1장에서는 인간의 소명을 깨닫고 세상의 진실을 마주보기다. 천상천하유아독존, 하늘과 땅 사이에 오로지 나만이 존귀하다는 의미는 어떤 의미인가, 노자의 자중자애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까, 당신의 고삐는 무엇인지, 왜 행복하지 않은가, 본무자성(색즉시색, 공즉시색이라) 무엇인가를 그것이게 하는 성질은 없다. 관계 맺는 형태와 인연에 따라 잠시 그것으로 있을 뿐이다. 불경에서는 본무자성(本無自性)이라는 존재형식을 “공”이라는 글자로 개념화한다, 이렇게 근본개념을 살피면서 2장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 반야의 지혜를 딛고 저쪽으로 건너간다고, 아는 것을 디딤돌 삼아 모르는 것으로 넘어가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그럼 어떻게 하면 나를 키우는 지혜를 기를 것인가, 3장에서는 더 채우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정확히 보기 위해 상(相)을 짓지 않는다. 4장에서는 뒤집힌 생각을 바로잡아, 가장 탁월한 길을 선택한다. 5장.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고통의 바다를 건너갈 뿐이다. 


반야심경의 심오함을 지은이는 물리학을 빌어 설명한다. 그렇다고 물리학이 경전의 세계를 다 설명해주지도 않을뿐더러 같지도 않다.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일뿐이다. 


결론은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즉, 건너가세, 건너가세, 저기로 건너가세. 저기로 다 함께 건너가세. 깨달음이여. 만세라는 뜻이다. 반야의 지혜란 지혜도 얻을 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요. 얻을 것이 없기에 그러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고정된 생각 뒤집기, 보이는 길은 무엇일까?


인간은 이론이나 진리를 통해서 세계를 보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를 통해서 진리와 이론을 건축하는 존재다. 발상의 전환이며, 패러다임의 변화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은 어떤 특정한 관점, 창(이론과 진리)으로 이 세계를 보거(상을 만들거나)나 해석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고정된 틀과 관념을 떨쳐내 버리라는 말이다. 또 보자. 법정 스님의 상징처럼 여기는 “무소유”란 또 무엇인가, 내려놓는 이유는 내려놓아야 더 많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을 빼는 이유는 힘을 더 세게, 더 정확히 구사하기 위함이다. 


반야 세계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것이 없다, ‘바람직한 것’, ‘해야 하는 것’, ‘좋은 것’ 이 마음에 자리 잡으면 두려움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뭔가를 잃는다는 것이야말로 두려움이다. 바람직한 것을 위해, 해야 할 것을 위해, 좋은 것을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두려움 속에서 헤어나기 위함이다. 두려움으로 왜곡과 갈등이 생겨나니, 바람직한 것이 맘에 부담이 되고, 해야 하는 도리가 무겁게 어깨를 짓누를 때, 이런 가치 판단 자체가 무용, 쓸데없는 것이라.


한 번에 깨침을 얻을 수 없듯, 하루 이틀 그리고 또 하루 이틀 셀 수 없을 만큼의 되새김질이 필요하다. 부처가 승려 대중에게 손을 들어 달을 가리키는데, 보라는 달을 아니보고 부처님의 손끝을 보고 있노라. 이게 바로, 부처라는 존엄의 대상이 상대적으로 존재하고 그가 행하는 것이 진리인 양. 뜻도 모르고 경전만 부지런히 외우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최진석 선생의 반야심경은 경전이 아닌 그 안에 담긴 뜻을 헤아리고 또 헤아려 마음의 무기로 삼으라는 말이다. 부처의 손끝이 아닌 달을 보라는 말이다. 즉, 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 건너가라는 말이다. 장애물이 벽이든, 물이든, 그 형체는 본디 없는 것이니...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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