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세계대전은 그 때까지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규모의 엄청난 피해를 입힌 전쟁이었다. 이 책은 그 전쟁이 어떻게 해서 발생하게 되었는지, 전전(戰前) 수년 동안 관련 당사국들의 상황을 세심하게 추적하는 책이다. 보통 전쟁을 다루는 저작물의 경우 전쟁의 경과에 집중하는데 반해, 이 책은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의 시기만을 다룬다.
굉장히 두꺼운 책인데, 서술이 그렇게 지루하지만은 않다. 물론 이쪽 역사에 대해 많은 선지식이 없는 이상,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 쏟아져 나오는지라 약간 당황스럽긴 하지만, 또 각국의 복잡한 정치현실을 한참 읽다보면 정신이 아득해질 때가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중심에 두고 읽어나간다면 또 재미있게 읽을 만하다.
1부에선 세르비아의 상황을 집중적으로 설명한다. 사실 발칸 반도에 위치한 이 크지 않은 나라는 과거 ‘세르비아 제국’이라고 불리는 영광스러운 확장의 시대를 거쳐 14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의 치하에 들어가게 된다. 19세기에 들어서야 독립하게 된 이 나라는 복잡한 정치지형으로 인해 수상조차 원하는 바를 쉽게 실행할 수 없었다. 더구나 19세기 후반에는 호전적인 군부가 중심이 된 세력이 국왕을 살해하면서 권력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되면서 영토확장주의와 민족주의가 크게 발흥하게 된다.
한편 세르비아의 이웃에 있으면서 직간접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끼치던, 그리고 후에 사라예보에서 살해된 왕세자의 나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상황도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우선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당시 이 나라는 합스부르크가문의 지배에 있던 오스트리아와 자체적인 수상을 가지고 있던 헝가리 두 나라의 연합으로 형성된 이중군주국이었다. 수많은 민족들이 함께 살고 있었으니 의사결정 과정의 어려움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고.
독일제국의 상황도 복잡했다. 프로이센을 주축으로 형성된 이 나라는 유럽의 인근 국가들로부터 끊임없이 의심을 받고 있었던 것 같다. 외교적으로 점점 고립돼가던 상황에서 러시아의 팽창위협을 과장스럽게 의식하던 군부는 ‘예방전쟁’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었고, 카이저(황제) 빌헬름은 군주답지 않은 행태로 주변에 염려를 끼치고 있었다.
여기에 시종일관 독일(과 독일과 가까운 오스트리아-헝가리)을 고립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외교적 목표로 삼고 있었던 듯한 프랑스와 프랑스, 러시아 등과 조약을 맺으며 가까워지고 있는 영국, 그리고 곰처럼 조금은 굼떠 보이지만 발칸 반도에 영향력을 끼치려는 러시아까지...
마침내 세르비아 내 군부 비밀조직인 흑수회가 사주한 암살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런 복잡한 각국의 정치상황과 외교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1차적으로 피해당사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즉각적인 대처 대신(만약 그랬다면 좀 더 동정적 여론이 형성될 수 있었을 거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복잡한 내부논쟁을 시작했고, 세르비아와의 연계 아래 동원령을 시행하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으로 독일 군부 역시 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이는 자연히 독일을 경계하는 프랑스의 반응을 불러일으켰고(막상 전쟁이 벌어진 후 프랑스 군의 현실을 보면 뭘 믿고 그렇게 독일을 까댔나 싶기도 하지만), 이들은 영국의 참전마저 이끌어냈다. 그 결과는 최소 3천 만 명의 군인들의 희생과 그보다 훨씬 더 큰 민간인들의 피해였고...
수백 페이지가 넘는 자세한 서술을 통해 저자가 말하려는 바는, 세계대전과 같은 행위자가 많고 복잡한 사건은 선형(線型)의 단순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각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복잡한 국내 정세에 저마다 대처하기 급급했고, 외교에 있어서는 온갖 선입관과 억측, 거짓 정보에 근거한 착각 등이 버무려진 난장판이었다.
책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가 1차대전 관련 당사국들의 외교적 판단에 하나같이 오류가 있었다는 점이다. 신의에 기초한 외교라는 게 없었던, 속고 속이는 시대이긴 했지만(어쩌면 이건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통하는 이야기일지도),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자신들의 관점으로만 단순하게 만들었을 때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분명 이들은 눈을 뜨고는 있었지만, 자신들이 내리는 결정이 어떤 위험을 초래할지 볼 수 없었던 ‘몽유병자’였다는 게 저자의 평가.
복잡한 민족구성을 가진 국가에서의 통치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중군주국이라는 독특한 정체를 가지고 있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그 복잡한 의사결정구조 때문에 적절한 때에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없었고, 민감한 정치적 결단은 대개 반대 목소리들에 묻혀 상쇄되어 버렸다. 어차피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수렴해 낼 수 있는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폭력과 망상을 추종하는 세력들도 여하튼 선거를 통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은 재앙적이었다.
사실 나는 민주주의 정체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는 것이 정상이고, 좀 시끄러워보여도 최선의 방법을 향해 합의를 이루어나가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오스트리아 제국 의회에서 뭔가를 하려는 상황을 가정해 보니, 언젠간 잘 풀리겠지 하는 식으로 낙관해도 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든다.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의회에 잔뜩 앉아 있지 않던가.
그런데 또 한 편으로.. 최근 비례연합정당이라는 게 만들어진다면서 여러 소수, 그것도 아주 소수정당들이 참여해 당선권에 후보를 배치시키게 된다는 점도 살짝 우려가 된다. 이쪽은 좀 과대대표가 되는 건 아닐까. 민주주의 안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드시 국회의 의석 배분을 의미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과연 그 안에서 합리적인 지혜가 도출될지, 아니면 중구난방의 싸움만 가속화될지...
2017년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이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에게 이 책의 원서를 선물했다고 한다. 북한의 관리들이 영어로 쓰인 이 책을 읽긴했을까 싶지만, 그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정치와 외교는 굉장히 복잡하며, 한두 가지의 논리로 모든 걸 설명하려다보면 의도치 않은 파국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경고였으리라. 그건 북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북한 체제를 최고지도자의 한 마디면 모든 인민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곳으로 여기지만, 정말로 그럴까? 그 안의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 또한 몽유병자처럼 눈뜨고 자기 집에 불을 지르는 멍청한 짓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