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로서 작가 오후의 책들을 좋아한다. 우연하게 읽게 되었던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에서부터 독특한 소재, 혹은 평범한 소재에 대한 독특한 접근법을 무척 좋아했다. 과학에 대해, 영화에 대해, 종교, 혹은 믿음에 대해, 연애에 대해 그렇게 볼 수 있는 것, 아니 볼 수는 있지만, 그렇게 쓰는 것은 부럽기도 했고, 정말 재미있게 읽어왔다.
이번 책의 제목은 ‘보여주기’다. 일부러 어떤 내용인지를 확인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애매하고도 다양하게 해석되는 이 제목 아래에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해하는 것을 스스로 즐겼다. 힌트는 있다. 저자 소개다. “성공에는 관심이 없지만/성공을 만드는 방식에는 관심이 많다.” 뒤에도 다른 대구가 이어지지만 결국은 이 책은 바로 그런 내용이었다. 물론 몇 챕터는 읽고서야 알아차렸다.
그렇다. 성공에 관한 책이다. 어떻게 성공하는가, 또는 성공한 사람, 혹은 제품 등이 어떤 전략을 통해, 어떤 과정을 통해 그것을 이루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자기계발서인가? 앞의 말만 봐서도 딱 그렇다. 그런데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에필로그’에서 얘기하듯 이 책은 오히려 ‘반(反) 자기계발서’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성공을 얘기하지만, 독자들에게 이러한 방법으로 성공하라고 계도(?)하는 책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에 대해 관심이 많으니 성공에 대해서 좀 해부해봤다, 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제목이 ‘보여주기’다. 그래서 부제는 ‘세상을 내 편으로 삼는 법’이다. 나를, 나의 상품을 세상에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더 적나라하게 얘기하자면 어떻게 그럴 듯하게 보여줄 지를 여러 예를 통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렇게 해서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러면 어떤 예를 들고 있을까? 몇 가지를 보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있다. 훌륭한 작품이지만,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갖게 된 데에는 20세기 초반의 도난 사건이 한몫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왜 다른 전기차가 아닌 테슬라가 성공을 했는지(‘멋’!), 어떻게 말도 안 되게 서울이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었는지(‘다윗’이 되어라!), ‘리퀴드 데스’라는 생수가 특별한 생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소설에선 제갈량에게 당하기만 한 것으로 나오는 사마의가 결국은 패자가 될 수 있었는지, 얼자였던 원소가 가문을 이끄는 위치에 오르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허례허식’이 중요할 때도 있다)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선한 어그로로 성공한 그레타 툰베리, 우리나라에서 특히 성공한 커피 믹스, 특히 맥심, 실은 데이터과학자였던 나이팅게일, 명품이 인정받는 방식, 손정의의 성공 방식, 히치콕의 도둑질과 프랭클린의 거짓말은 옳고 바르고, 정직함만이 성공의 바탕이 된다는 세간의 믿음(정말로 믿는 건 아니겠지만)과 설교를 살짝살짝 아프게 꼬집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굳이 따지자면 자기계발서이지만, 결국은 반-자기계발서가 되는 것이다.
읽으면서 오후 작가의 이전 책들이 비해 톡 쏘는 맛이 덜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이렇게 정리하다보니, 역시 오후 작가다운 책이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평범한 것 같지만, 평범함은 오후의 것은 아니다. (근데, 에필로그에 책 내는 법은 굳이 넣을 필요가 있을까 싶긴 하다. 물론 궁금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나도 재미있었지만, 이 책이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어서.)
e-book으로 알게 된 책을 종이책으로 다시 읽었다. 블로그를 살펴보니 나만 몰랐을 뿐 참신한 주제에 간결한 문장 때문인지 은근히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가 많다.
오후 작가. 첫 책으로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를 출간했고 그후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주인공은 선을 넘는다>, <믿습니까? 믿습니다!>등을 썼다.
책날개의 작가 소개란에
성공에는 관심이 없지만
성공을 만드는 방식에는 관심이 많다.
국가에는 관심이 없지만
국가를 가능케 하는 체제에는 관심이 많다.
게임에는 관심이 없지만 게임이 만들어내는 세계관에는 관심이 많다.
사랑에는 관심이 없지만
목숨까지 바치게 하는 열정에는 관심이 많다.
그 관심으로 글을 쓴다.
라고 쓰여 있다.
거짓말인거 다 안다. 진짜 성공이나 사랑에 관심이 없다면 성공 방식이나 사랑의 열정에도 관심이 없겠지.
이 책은 돈을 벌거나 권력을 얻거나 유명해지는 등 여러 형태의 성공 사례를 소개하고 그들의 공통적인 성공 요인을 찾아낸다.
모든 것은 공허하다. 많이 가져도 빈손으로 간다. 결국은 다 사라진다.
그러니 움켜쥘 수 있을 때 움켜줘라. 성공에 겁먹지 마라. 훌륭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이 훌륭해진다.
(p.9)
프롤로그에 나오는 저자의 조언이다.
‘모든 것은 공허하다. 많이 가져도 빈손으로 간다.’
이런 말을 들으면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이 생각난다. 팔선녀 만나서 부귀영화 누리고 살아도 인생사 다 부질없더라, 하는. 그런데 말이다. 정작 <구운몽>을 보면서 이렇게 국어책 해설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다들 마음속으로는 ‘기왕 태어났는데 양소유처럼 성공해서 누리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조선 최고의 양반가문에서 태어나 누릴 거 다 누려본 분이 전해주는 주제는, 맞는 말이지만 딴죽을 걸고 싶어진다. ‘훌륭’까지는 몰라도 기왕 시작한 일은 잘하고 싶고, 남에게 인정도 받고 싶고, 돈도 벌고 싶다고.
여기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바로 ‘나쁜 행동을 할 때일수록 선을 넘는 것에 더 철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일을 그르치곤 한다. 성공한 도박가들의 인터뷰를 보면 그들이 마치 정기 예금하듯 계획적으로 베팅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절제는 중요하다. 특히 나쁜 일을 할 때는 더더욱.
(p.24)
원래 유명했지만 도난사건으로 더 유명해진 그림, <모나리자>. 저자는 <모나리자>의 절도를 사주한 발피에르노의 행동에 주목한다. 루브르의 유리공 페루자로 하여금 그림을 훔치게 하고, 자신은 모작 6점을 준비해 미국의 암시장에 팔아치우고 감쪽같이 잠적했다는 사기꾼 발피에르노.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지만 여태 위작도, 그것을 샀다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그런 일이 실재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 이 황당한 사건에서 우리가 배울 게 있을까?
저자는 <모나리자>의 도난 공범 발피에르노가 진품에 욕심내지 않았고 공명심도 없었기에 성공(?)했다며 ‘선’을 지키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선을 잘 지키자.’ 흔한 말이지만 모나리자며 도난사건이며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 이야기 덕분에 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도 성공한 범죄자에게서 배우는 교훈이라니.
하지만 그는 창작자라기보다는 편집자에 가까웠다. 그가 했다고 알려진 유명한 말은 대부분 어디선가 가져온 것들이다.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구절 ‘노동자에게는 국가가 없다’,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엇다’ 두 문구는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장 폴 마라 Jean-Paul Marat 가 처음 한 말이다. 지금도 자주 쓰이는 표현인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는 독일 시인 하이네 Heinrich Heine가 사용하는 등 그 시대에 종종 사용되었던 표현이다. 공산주의 세계를 표현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루이 블랑키Louis Blanqui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개념은 루이 블랑 Louis Blanc이,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구절이자 지금도 노동절이면 길거리에 나붙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표현은 독일의 정치인 카를 샤퍼Karl Schapper가 먼저 사용한 표현이다.
(p.212~213)
어제부터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고 있다. 무지 두껍고, 어렵다. 그런데도 읽는 이유는 금, 은같은 재물을 모아야 국력이 커진다고 여기던 300년 전 중상주의 시대에 GNP를 비롯하여 여러 경제학의 개념을 생각했다는 사실이 너무 대단하고 신기해서이다. 하지만 해제부분을 살펴보니 애덤 스미스 또한 존 로크와 루소, 칸트의 영향을 받았고 특히 그의 스승이었던 허치슨 교수로부터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마르크스도 마찬가지다. 돌이켜보면 공산주의의 원형 같은 개념은 플라톤의 사상에서도 보이고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애덤 스미스를 경제학의 아버지라 부르듯 누가 뭐래도 공산주의의 실체를 만들고 완성한 공산주의의 창시자는 카를 마르크스이다.
절도 마케팅, 왕따, 허례허식, 명품, 어그로... 저자는 우리가 평소에 눈여겨보지 않았던 지점에서 성공 전략을 찾아낸다. 그렇다면 이런 여러 성공비법을 그대로 실천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No! 어림없는 소리다. 저자는 이건 어디까지나 디폴트값이고 화룡점정은 ‘운’이라고 강조하며 그 ‘운’이란 건 현대의 신인 대중이 주는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중은 너무도 변덕스러워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가만히 앉아 신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나?
성공이 예측불가라면 재능과 노력 외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그건 바로 신의 눈 밖에 나지 않는거다. 야박하다. 재능, 노력, 착하게 살기, 다 하고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니. 그렇지만 성공은 몰라도 최소한 나락은 가지 않는다고 하니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하나.
나는 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는다면 최소한 망하지는 않는다는 저자의 주장을 바꾸고 싶다.
큰 재능이 없어도, 죽도록 노력하지 않아도, 착하고 성실하게만 산다면 소소한 행복, 작은 성공은 누릴 수 있다고 말이다. 그조차 쉽지는 않겠지만, 그 정도는 욕심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