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으로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내용의 이야기이겠지만 이 또한 요즘 유행한다는 드라마의 영향을 탄 강감찬 장군의 이야기다. 지금까지 나왔던 아니 내가 읽었던 여러 강감찬 이야기들과는 그 결을 살짝 달리 하고는 있으나 마지막 결론은 다들 알고 있는 그 내용이다. 사실 마지막 엔딩의 내용은 강감찬 앤솔러지인 [우주전함 강감찬]이라는 책에서 조동신 작가의 글인 <깃발이 북쪽을 가리킬 때>와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아마도 강감찬 장군의 여러 이야기 중에서 가장 극적인 묘사를 할 수 있는 그런 소재라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두 이야기 모두 바람의 방향이 아주 중요한 키포인트 역할을 하고 있으며 누구나 알다시피 바람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이 임의로 조종을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신 또한 고려라는 나라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내가 읽어왔던 강감찬 이야기와 아주 많이 다른 점도 내포하고 있다. 가장 주된 것으로는 설죽화라는 캐릭터다. 동명의 제목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서는 강감찬 장군을 도운 고려의 위대한 여장수라는 타이틀이 붙어도 아깝지 않은 정도의 용맹함을 드러내는 캐릭터였는데 여기서는 어째 상당한 차이를 두고 있다. 일단 본문에서는 죽화는 매화라는 동생과 함께 이동을 한다. 죽화는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지만 살인본능을 가지고 있는 동생을 둔 터라 내내 노심초사하며 언니인 자신이 지켜줘야 하는 책임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캐릭터에는 후반부 가장 큰 비극적인 반전이 숨어있다.
소설이라는 분야에서 역사를 그대로 이용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것은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다. 소설은 기록을 비팅으로 쓰이지 않았다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누구도 설죽화를 직접 본 사람은 없으니 그녀의 캐릭터의 변주는 자유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나처럼 같은 캐릭터가 다른 이야기에서 전혀 다르게 묘사가 된 책을 읽은 사람이나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약간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 나름대로의 비교점을 찾아서 읽는다면 더욱 흥미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이야기의 가장 큰 장점은 미스터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버려진 땅에서 일어난 살해사건이다. 고려군의 핵심 장교가 잔인하게 살해당했던 것이다. 그것도 여섯 명이나 한꺼번에 죽었다. 그들을 죽인 사람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사원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이것이 종교적인 행위와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만든다. 강감찬은 이 사건의 진실을 알아낼 것을 사냥꾼 각치와 죽화에게 부탁한다. 그들은 어디서 범인의 진상을 알아낼 수 있을까.
"귀주대첩의 미스터리"
차무진의 <여우의 계절> 을 읽고
고려를 거란의 침입으로부터 구한 고려의 영웅인 겅감찬 장군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란의 침입으로 인해 풍전등화의 운명에 놓인 고려를 구한 절세의 영웅 강감찬과 그가 대승을 거둔 '귀주대첩 ' , 그런데 정작 귀주대첩은 극적인 승리를 거둔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사료 연구도 많지 않아 제대로 조명받지도 못해왔다.
이 책 『여우의 계절』 의 작가는 귀주대첩이 일어나기 스무 날 전에 일어난 미스터리한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스릴러적 요소, 오컬트적인 소재와 내용 등을 가미하여 작가의 독창적인 시각으로 창조해 낸 강감찬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그 내용이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 다소 다를 수 있을지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강감찬이 귀주대첩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라는 것인데, 과연 어떻게 귀주대첩에서 승리를 거두었는지, 귀주대첩이 일어나기 전, 그 성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사실이 없어서 이런 이야기도 가능할지 모른다.
이 책의 주인공은 물론 강감찬 장군이지만, 그의 존재는 원숭이 탈 속에 감춰진 신비롭고 기이한 존재로 여겨진다. 강감찬과 관련된 다른 책에서는 강감찬 장군의 용맹함과 기개같은 영웅적인 면모를 다루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작가는 강감찬 장군을 '눈이 네 개 달린 원숭이탈을 쓴 왜소하고 제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허는 노인, 불쏘시개를 뒤적여 화로 안에 묻어둔 도라지 뿌리를 꺼내 부실해보이는 뻐드렁니로 이것을 오물거리는 노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모습만 보아서는 우리의 영웅 강감찬이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작가는 강감찬을 겉으로 보기에 왜소한 노인의 모습으로 그리면서 내적으로는 눈빛만으로 상대에게 암시를 걸어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는 기묘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설정하였다.
어쩌면 이 책의 주인공은 강감찬이 아니라 미래를 보는 신기를 가진 '설죽화' 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거란의 지명을 받고서, 갓난 아이를 품에 안은 채, 고려의 방어성인 구주성으로 오게 된다. 설죽화가 역사적 사료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이 책 속에서 설죽화는 귀주대첩의 승리에 큰 역할을 하는 안물로 그려진다.
구주성에 온 그녀는 갓난 아이를 넘겨주고 쿤 포상을 받고 죽은 동생 설매화를 데리고 가려 하지만 그녀는 군영 내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만나게 된다. 원숭이탈을 쓴 대원수 노인에게 대마신군 여섯 명을 살해하고 도망간 병마판관인 김종현을 찾아내라고 한다.
성 내부의 기운은 어수선하고 군사들 사기는 떨어져간다. 10만 대군의 거란에 대항하여, 절대 이길 수 없다는 분위기가 고조되어 가는 가운데, 과연 대원수 강감찬의 계략은 무엇일까? 이런 상황 속에서 과연 거란의 10만 대군에 맞서서 이기는 것이 가능한가? 정말 강감찬은 귀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이기고 싶은 것일까?퇴각하는 거란군의 구주성 침략에 앞서서 고려군은 과연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작가는 이미 귀주대첩의 결과를 알고 있지만, 어떻게 강감찬이 전세로 봤을 때 승리가 불가능했던 전투를 어떻게 이겨냈는지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한다.
죽어서 혼령이 되어서도 북신의 모습으로, 강감찬에서 고려군의 미래와 귀주대첩의 전세를 예언해준 설죽화, 고려군에 대한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밀접자가 되어 고려군에 침투한 각치이자 거란의 총대장, 각치를 속여 거란의 10만 대군을 구주로 유인하게 만든 강감찬, 속고 속이는 자들 속에서 진정한 승리자는 강감찬이었다. 죽은 혼령까지도 조종하고, 적의 대장까지도 암시를 걸어 조종하는 그의 신비하고 뛰어난 능력이 강감찬 장군이 진정한 영웅이라는 점을 부각시켜준다.
그는 고작 귀신의 말을 듣고 대사를 결정하는 어설픈 자가 아니야.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그것도 모라자 귀신까지 이용하는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이지.
-p. 530-531
귀주대첩의 승리 속에는 이렇게 모든 것을 준비하고, 모든 것을 예견하고, 조종한 강감찬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강감찬과 더불어 이 책에 등장하고 있는 설죽화, 설매화 자매와, 밀접자로 위장한 거란 대장 각치, 강감찬을 도운 고려의 장수들의 활약 등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설죽화의 활약은 오컬트적 요소가 있어서 실제 사실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끌어갈 정도로 비중이 있는 인물이었고, 귀주대첩의 승리에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속고 속이는 자들의 대립과 작가가 숨겨둔 복선과 같은 요소들, 조금씩 실마리가 드러나는 사건의 진실 등을 통해 역사 이야기가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스릴러 소설로 재탄생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냐, 허구를 따지는 것보다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인물들과 사건들의 창조를 통해 새롭게 귀주대첩을 조명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이건 우연일까, 운명일까.
그렇지 않아도 <고려거란전쟁>이 한창 반영되고 있는 요즘.
역사를 빛낸 많은 명장 가운데 강감찬과 고려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거워진 요즘.
이렇게 소설로도 만난다는 건...
꼭 읽어봐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역사와 미스터리 서사의 절묘한 교합으로 이루어낸 또 하나의 드라마!
바로 읽어보았습니다.
고려거란전쟁 마지막 20일의 미스터리
귀주대첩 스무 날 전,
그 성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너도 걸렸던 거야. 암시에."
『여우의 계절』
1019년 2월 6일.
대원수 강감찬이 삼군을 거느리고 개선하여 포로와 노획물을 바치니 왕은 영파역까지 나와 영접하였습니다.
왕은 강감찬의 왼손을 잡곤
"노고가 많았어요. 정말 노고가 많았어요, 할아버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이 신하에게 그런 말을 사용할 수 없는 노릇이거늘...
그런 왕에게 감히 청할 게 있다는 그.
"이번에 고려가 이길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조종의 공덕과 선대 현인의 도움을 얻은 폐하의 이기고자 하는 의지였습니다. 두 번째는."
"으흠, 두 번째는?"
"곤궁하게 살았으면서도 적을 한 명이라도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싸운 구주 토민과, 북계 백성들의 호국 의지였나이다."
"암요. 그렇다마다요. 그들에게 보상해야 합니다. 아니, 아니, 내가 첫 번째가 아니라 그들이 첫 번째이지요. 이제 그들은 여력이 나고, 봄이 오면 김매고 농사지으면서 안도하고 태평성대를 누릴 것입니다. 나는 당장 전사자의 유골을 수습해서 제사를 지낼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뭡니까? 세 번째는?"
"우리를 승리로 인도한 호국 영령의 음덕이 있습니다. 청컨대, 국사를 지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써온 그 영령을 배향하고, 사찰에 칙령을 내려 닷새를 기한으로 분향하고 염불을 외게 해주시옵소서. 신, 간곡히 청합니다."
"아고, 아고, 못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할아버지." - page 11 ~ 12
사위가 낮처럼 밝습니다.
겨울 북계의 밤.
다름 아닌 여우난골 마을이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란인 애꾸는 저쪽, 병풍 앞에 이불을 반쯤 덮고 앉아서는 오들오들 떨고 있는 두 명의 고려인 여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애꾸는 저것들을 데리고 갔을 때 상급자에게 고려인 귀족 여자로 속일 수 있을지를 가늠했지만 그냥 혼자 처리하는 것을 선택했는데...
어어어어?
거란인이 실그러졌습니다.
그리곤 방 안 가득한 피비린내...
"온니 말대로 야만인이 참말로 방에 들어왔네. 온니는 앞날을 참 잘 맞혀. 야만인은 패물도 지니고 있다고 했는데 정말로 그러네. 귀신같은 우리 온니. 예쁘고 힘센 우리 온니." - page 30 ~ 31
바로 두 여인은 과거와 미래를 보는 예지를 지닌 '설죽화'와 '죽이는 병'에 걸린 '설매화' 자매였습니다.
버려진 땅, 북계 구주의 외딴 방어성 내 토속신을 모시는 사원에서 고려군 핵심 기마대의 여섯 장교가 잔인하게 살해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사건에 대해 대원수로부터 설죽화와 설매화 자매, 북방의 만능 사냥꾼 각치가 진실을 파헤칠 것을 의뢰받게 됩니다.
하지만...
사건은 파헤칠수록 실체가 벗겨지기는커녕 고려군 내부의 수상한 기미가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결국 그들은 이 북계의 왕, 늘 원숭이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는 고려군 대원수가 현존하는 생명체 중 가장 사악한 존재임을 느끼게 되는데...
각치는 그를 구속하고 있는 탈을 차마 벗겨내지 못했다.
"각하.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입니다."
"......그러면...... 생각을 달리하면 미래가 바뀔까?"
각치 표정이 굳었다.
"그럴 것입니다. 각하의 결심이 바뀌면 미래도 바뀝니다."
각치는 한없이 슬픈 표정으로 원숭이탈을 바라보기만 했다. - page 418
몰입감도 장난 아니었고 생동감 넘치는 장면 묘사가 어느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끔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미래를 보는 예지력을 지닌 설죽화와 살인병에 걸린 설매화 자매, 북방의 만능 사냥꾼 각치 등 등장인물은 예기치 못한 상상으로 이끌었었고 역사 사실과 스토리텔링의 교합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팩션이 아니었는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문장을 꼽으라면 저는 이 문장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각치는 들고 있던 가면을 썼다. 그래야만 자신을 보호할 것 같았다. 내가 아님을 말해야만 하늘이 자신을 숨겨줄 것만 같았다. 탈은 그런 것이니까. 탈을 쓰면 그것으로 주목받지만, 속에 숨은 자는 자신을 속일 수 없다. - page 363
우리는 전쟁의 명성만을 알지 실제 그 이전이라든지 그 이후에는 관심이 없기 마련입니다.
고려거란전쟁 마지막 20일의 미스터리.
정말 이런 일도 있지 않았을까...
책을 덮어도 그 여정동안 함께 해온 감정이 남아 여운이 남아 맴돌았습니다.
1,000년 전, 반도인은 이족의 도움 없이, 오직 그들 힘으로 그들 것을 지켰다. 그 복으로 근 100년을 당당하고 무탈하게 지냈다. 그들 후손은 달랐다. 1,000년 동안, 지금까지도, 어딘가에 빌붙어 자신을 상징하며 살고 있다. 감히 상상한다. 다시 우리 힘으로 우리 것을 지킬 수 있기를. 원이탈의 혼령이 우리 등 위에 내려앉기를. -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