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대학 다닐 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고 '어떻게 이렇게 재미없는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가? 원래 상 받는 작품들은 다 재미가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물론 그때와 지금의 나는 이미 인생을 바라보는 깊이의 차이가 많이 다를 테지만 이런 의구심은 다른 독자들도 어느 정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전에 '카뮈'의 작품 "이방인"을 번역한 '이정서'님 역시 우리에게 알려진 번역본은 '알베르 카뮈'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미 출판된 "페스트"를 읽지 않은 나로서는 좀 더 힘을 빼고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는 나의 큰 오산이었다. 직역이 오히려 가슴에 꽂히는 문장과 글귀들로 집중에 집중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왜 소설인데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있는지, 아직도 그 밑줄을 다시 확인하면 처음 읽을 당시의 감정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왜 '시시포스의 바위 굴리기 같은 작업'이라고 했는지 역자의 고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덕분에 등장인물을 통해 전달되는 전염병에 둘러싸인 각가지 반응과 대처에 대해 우리의 상황과 대비해 가며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역병은 물러나고 오랑의 삶은 서서히 평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의사 리외는 살아남은 자의 기쁨과 슬픔 속에서, 역병은 결코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언제든 깨어나 다시 한번 세상을 덮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곧 세상의 부조리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에 맞서기 위해서는 경계와 연대가 계속해서 필요하다는 카뮈의 신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역병 LA PESTE]를 통해 아주 오래전 이야기 같은 '코로나19'의 팬데믹 당시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길 감히 추천한다. 이는 우리가 소설 속 상황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더욱 그 의미가 클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반드시 어떤 특수상황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전반적인 인간의 태도과 사상, 그 안에서 보이는 여러 군상을 바라보며 조용히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카뮈가 작품속에서 구분한 라 페스트, 페스트, 페스트 누아르를 명백히 구분하여 번역한 역자 이정서의 10년만의 재번역작인 라 페스트를 새로 접하게 되었다.
역병은 전쟁이나 역병과 같은 대재앙 속에서의 신과 인간, 양심과 인류애와 연대를 떠올리게 만든다.
역병에는 인간답고자 하는 무수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이 하는 말을 통하여 카뮈의 철할적 통찰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라 페스트는 1940년대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연안 도시인 오랑을 배경으로, 도시를 장악한 전염병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을 서술자의 시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라 페스트의 주요 등장인물 들엔 의사인 베르나르 리외, 공무원인 조제프 그랑, 기자인 레몽 랑베르와 파늘루 신부가 있다.
베르나르 리외는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침착하고 이성적인 의사이다. 가난 때문에 의사가 된 그는 모든 것을 희생하며 어려운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하지만, 병든 아내를 먼 곳에 요양보내놓고 한번도 찾아가지 못하는 의사이기도 하다. 전염병의 초기부터 당국에 전염병 통제를 위한 보건 수단을 끊임없이 요구하면서도 본인은 최전선에서 역병을 차단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조제프 그랑은 천성적인 성실함을 가진 인물로, 시청에서 계약직을 일을 시작했고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상사로 인하여 시청에 남아있었지만 끝내 시청의 하급 공무원으로 머물게 된 인물이다. 그는 근무 후 시간을 오로지 자신의 소설 쓰기에 전념하며, 완벽한 문장을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은 이 소설에서 삶의 의미를 쫓는 인간의 투쟁을 상징한다. 리외는 그랑을 전염병 시대에 다른 어떤 인물보다 영웅이라고 생각하며, 그랑은 리외에게 무료로 치료를 받고 역병 기간 동안 리외를 도와 많은 잔일을 하는 인물이다.
이렇게 다면적인 등장인물들을 통하여 알베르 카뮈가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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