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널려 있는 아이디어들은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자연선택의 혹독한 검증을 거쳤으며, 더욱 신나는 것은 거저라는 점이다."(204쪽)
생물학자, 생태학자, 동물행동학자이자 국내에서는 개미에 대한 강연과 저작들로 잘 알려진 학자이신 저자분은 국내에서 박물관장으로 정부 부처의 자문으로 사회운동가로 활동해 오시기도 했다고 한다.
이 책은 세 단락으로 이루어져 첫 단락은 저자분의 학창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로 한 명의 학자이자 인간으로 성장해온 저자의 과거를 통해 사람의 생이라는 게 노력과 함께 운명적 흐름도 깊게 영향을 주는구나 하는 감상을 갖게 한다. 저자분의 생의 지점들마다 주어진 우연들이 저자분의 인생을 만든 운명이 되었다는 자신의 설명과 그 설명을 따르며 그런 감상을 갖게 된다.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주어지는 요소들이 사람이 느닺없이 갖게 되는 결심만인 것이 아니라, 그의 생의 저변을 이루는 경험들을 통해 갖춰지듯, 자신의 선택들에서도 우연인 듯 주어지는 요소들과 선택의 기로들이 운명적으로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감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을 통해 갖는 감상과 다름없지 않나 싶다. 미성숙한 인간은 자신만을 보기에 자신의 의지니 노력이니 계획이니 하는 말만을 하겠지만 자신만이 아닌 모든 영향력과 요소들을 넓게 보다 보면 노력이니 의지니 하는 것의 근원이 운명이었음을 또 그 의지와 노력이 차지하는 부분이 그다지 크지 않음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두 번째 단락은 이 책의 제목과 같이 곤충사회를 그리고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고 사회적 동물이라고 배우지만 인간 이상의 사회성을 보여주는 곤충들이 있으며 농사, 목축, 낙농, 건축, 분업, 전쟁, 영토확장, 사회 형성, 노예 육성 등을 통해 살아가는 개미와 또 그와 유사한 벌의 삶은 보며 인간의 삶의 모습이 그다지 위대한 지배종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기 헌신과 희생의 면은 곤충이 더 위대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벌은 여왕개미가 임신하고 돌아온 공주개미를 위해 벌집과 일벌들의 절반을 남겨주고 집을 찾으러 나가는 분봉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한국의 결혼하는 자식을 위해 집을 장만해 주는 부모의 헌신을 이야기하며 저자는 벌들은 이보다 더하지 않느냐며 극찬을 하기도 한다. 그저 삶의 양식의 하나로 보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말씀에 약간은 공감하기도 했다.
세 번째 단락에서는 저자분은 이 책 전반의 이야기들을 종합하고 환경문제를 더하며 공진화를 이야기하시기도 한다. 사회와 자연이 다 함께 성장과 풍요를 지속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이다. 나로서는 인간의 영향이 극단적인 영향을 미쳐서 환경파괴가 시작되었다는 종말론적 환경주의를 믿지 않기에 저자분의 말씀의 모든 부분에 공감하지는 않았지만 다 함께 살아가자는, 함께 진화해 나아가자는 말씀에는 적극 공감했다.
본서는 생태학만이 담기기보다 한 사람의 생의 몇 대목을 담고 있기도 하고 곤충의 삶을 공감하고 그를 통해 성찰할 기회도 되며 아울러 자연과 함께 나아가자는 감상까지 갖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감상이 가져지는 책이다. 지식과 성찰과 지혜가 어우러진 책이 아닐까 싶다. 저자분이 구어체로 일상의 이야기들을 토로하는 투로 저술하신 책이기도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서 교훈과 조언과 성찰을 얻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찾으실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자연계에서 우리는 ‘가진 자’잖아요. 우리는 이미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발자국 하나까지 신경 쓰면서 내디뎌야 해요. 곰도 막 걸어 다니는데, 인간이 걸어 다니는 것까지 시비 걸면 어떡하나, 하실 수도 있어요. 시비 걸어야 마땅하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인간은 이미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스럽게 내딛어야 하는 막강한 존재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이런 노력을 해야 자연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97
지금 이 순간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전환은 생태적 전환밖에 없습니다. 기술의 전환도 아니고, 정보의 전환도 아닙니다. 죽고 사는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생태적 전환을 해야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현명한 인간이라는 자화자찬은 이제 집어던지고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로서 다른 생명체들과 이 지구를 공유하겠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공생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기 때문입니다. p.279
저는 최재천 교수님 유튜브 구독자인데요. 교수님 영상을 보다보면 치열한 인간 삶에서 허덕이는 저를 잠시 벗어나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크게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일, 육아, 사람관계 이런 것들에 매몰되다보면 작은 거 하나에도 스트레스 많이 받는데 시간이 지나서 다시 생각해보면 굳이 이렇게 스트레스 받을게 있나 싶은게 많더라구요. 왜냐면 많은 생물들이 각자 입장, 환경에 맞춰서 살아가는데 사람만이 뭔가 더 잘 해보려는 욕심 때문에 괜한 기대와 실망을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노력을 안 해야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방금 말한 것처럼 자기의 입장, 장점, 환경을 고려해서 나를 발전시키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되요.
이번에 읽은 최재천 교수님의 [최재천의 곤충사회] 역시 이런 생각을 더 확신하게 해주었습니다. 이 책은 교수님이 평소에 강의하셨던 것들을 잘 정리한 책인데요. 작게는 사람들 관계에서, 크게는 다른 생물들과의 관계에서 너무 욕심을 부리면 그르친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왜나면 이 세상은 다같이 사는 세상이니깐요.
먼저 교수님의 삶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학교에서 친구들 중에 자기만 재수를 하고 좋은 대학을 취직해서 의사가 되고 했지만 결국 지금은 친구들이 많은 나이에도 강의를 뛰고 계시는 교수님을 부러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교수님이나 친구들이나 공부를 잘 하셨겠지만 교수님은 다른 사람 눈치를 안 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자신만의 길을 만드셨습니다. 아무도 연구하지 않은 민벌레를 연구한 것이 나중에 도움이 되었고 국립생태원 초대원장으로 초청되어 경영을 하실 때 자신만의 경영철학으로 위에서 찍어내려서 일하는게 아니라 직원들이 스스로 생각하면서 일을 할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이 과정 중에 내가 잘났다, 잘나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지금의 교수님 모습은 없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책 제목대로 곤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인간이 고등동물일 수 있지만 결국 자연 앞에서는 한낱 작은 조각일 뿐입니다. 우리 잘 살자고 환경을 마음대로 파괴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해충이라고 다 박멸해버리니 기후가 이상하게 변하고 동물의 다양성이 없어지면서 기후이상현상과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이 자주 오게 된다고 하십니다. 벌, 개미, 흰개미 등을 예로 드시면서 이들도 때로는 희생을 하면서 모두가 잘 되기 위한 행동을 한다고 하는데요. 우리 사람도 너무 나만 생각하지 않고 작게는 옆사람, 크게는 사람, 더 크게는 주변 자연환경까지 생각하면서 너무 욕심 부리지 않고 살면 좀 더 따뜻한 사회가 되고 나 역시 더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오랜만에 교수님 책을 봐서 좋았습니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