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경력 상담심리사가 실전에서 써먹는 듣는 기술, 말하는 기술
작가 도하타 가이토는 일본 교토대학 교육학부에서 상담심리학, 정신분석학, 의료인류학을 연구하였다. 정신과클리닉, 대학교수로 근무하였다. 개인심리상담실을 운영하며 저서로 <매일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마음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 모든 걸 비추는 밤, 마음만은 보이지 않아>등이 있다. 이 책은 아사히신문 '사회계평'에 게재했던 평론과 그 해설로 구성되어 있다. 후반부에 '듣는기술'과 '들려 주는 기술'의 실용적인 매뉴얼을 정리했다.
저자는 '듣는다'를 聞과 聽으로 구분한다. 聞은 일상의 들리는 것을 듣는 피동적인 들음을 의미하며, 聽은 주의를 기울여 능동적으로 듣는것을 말한다. 聞은 안정된 상황(부교감신경계의 작동)에서의 듣기이며 聽은 긴장과 두려움등 스트레스상황(교감신경계의 작동)에서의 듣기이다. 수많은 리더십이나 자기계발서에 다루어진 듣기는 聽에 편중되어 있으며 聞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아 왔다. 그러다보니 聞의 기능이나 중요성, 聞이 더이상 어려워진 상황에 대비한 어떠한 연구도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聽의 단계를 聞의 단계로 전환하기의 중요성을 말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듣기'는 聽이 아닌 聞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그냥 듣기가 어렵다는 것은 내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지 않아서이다. 마음이 쫓기고 위태로울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 내가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된 사정, 귀를 닫고 싶을 정도의 많은 일이 있는것을 누군가가 들어준 뒤에라야 비로소 우리 마음에 타자의 이야기를 담을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듣기의 회복은 여기부터다.
1장 왜 들을 수 없게 되었는가
갈등의 골이 깊은 사회에 필요한 것은 선언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단일화 하는 게 아니다. 억지로 간극을 메꾸려 하지 말고 상대방의목소리를 듣고 상대편 마음 깊은 곳까지 소리가전달 되도록 제각기 흩어진 존재들간에 지속적으로 말이 오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내 언어에 깊은 울림이 있어야 가능해진다. 혹독한 아픔을 경험한 사람의 언어는 그만큼 울림이 크고 멀리 갈 수 있다.
바람직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려면 화자와 듣는 사람 간의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된다. 이러한 상호 신뢰는 어느 일방의 무조건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기브앤테이크로 상호 존재이유에 대한 공감이 기반이 된다. 공감이란 마음이 아플 때 함께 아픔을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우리 인간은 서로 읮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이러한 인간에게 가장큰 고통은 고독이다. 상대방에게 고독감을 안겨 줬다거나 고독한 상황을 만들었다면( 예를 들어 대화에 끼지 못하게 강제했다거나 자기말만 하거나 상대방의말을 무시해버리는 등) 결코 서로의 말을 상대방에게 듣게끔 할 수 없다. 듣기 위해서는 고독을 이겨내야 한다. 이러한 고독은 혼자서 이기기는 어렵다. 지원군 즉, 내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오늘날 '듣기'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는 사회가 만성적결핍상태이기 때문이다.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등 많은 이슈가 발생하고 있고,자원은 제한적이어서 모든 사라들의 결핍상태가 심각해진때문이다. 듣기가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2장 고립에서 고독으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변에 대해 잘 모르고 별로 알고싶어 하지도 않는다. 억지로 누군가와 알게되는 게 귀찮다. 건강할 때는 그래도 괜찮을 지 모르지만 돌봄이 필요한 고령자나 어린이, 장애인, 저소득자는 고립되게 된다. 그 결과 우울증을 비롯한 몸과 마음의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주변에서 들리는 온갖 소리는 자신을 비난하는 폭력적인 목소리로 착각하게 된다.이러한 폭력적인 소리에서 벗어나고자 술을마시고 주변에 폭력을 휘두른다. 그리곤 또다시 고립되는 악순환에 갇혀버린다.
고립과 고독은 엄밀히 구분된다. 구립되어 있을 때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지만, 고독해지면 이야기를 들을 힘이 회복된다. 고립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나게 되면 정신측면의 이상이 굳어지면서 마음의 문을 닫게 되므로 되돌리기가 쉽지 않게 된다. 이러한 상태의 사람은 시간을 들여 멏번이고 만나 마음을 여는 것이 최고의 치료가 된다. 마음을 열게하려면 듣기가 필요해진다 이와 달리 고독은 혼자 있을 수있는 자기만의 방이 갖춰진 상태이며 부족함이 없는 상태이다.
3장 듣기의 힘, 걱정의 힘
의료는 법률규제의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상담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더우기 듣기는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세상지식이란 세상이 어떤 곳이고 인생에는 어떤 쓴맛과 단맛이 있는지에 대해 시중에서 공유되고 있는 지혜를 말한다.이러한 세상지식은 상세한 내용을 공유할 때 강한 힘을 발휘한다. 웬만한 정신적 문제는 세상지식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다. 현 시대에 이러한 공유의 도구로 ON/ OFF라인 등 각종 '연결고리'들이 있다. 하지만 지나친 고도화와 세분화로 무리에 들지 못하는사람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공유의 강도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정신건강문제의 대부분이 세상 지식을 통해 해결되지만 어느수준 이상의 문제에는 전문가의 간섭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전문가의 간섭이 절대적이어서는 궁극의 해결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 전문가의 간섭은 평범한 사람이 서로 돌보는 것을 돕기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4장 누가 듣는가
의견이 대립하는 당사자간에는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게 된다. 게다가 상대방이 일종의 트라우마경험이 있을 때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어떠한 강압적 수단이나 회유도 통하지 않고 극한 상황의 대립구도로 치닫게 된다. 이럴 때 자신의 편에서주는 어떤 한사람(제삼자)이 있으면 그 사람을 통해 '듣기'의 단초를 만들 수 있게 된다. 대화에서 이렇게중요한 역할을 하는 제삼자의 기능은 객관적, 중재적, 친구 같은 역할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삼자가 되어야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 스스로 당사자와 제삼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게 중요한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기술이 바로 '들려주는 기술'과 '듣는 기술'이다
"이야기좀 들어줄래?" - 드려주는 기술
"무슨일 있었어?" - 듣는기술
곤경에 처해 있을 때, 불안에 휩싸여 절망하고 혼란스러울 때, 그 고뇌를 누군가 들어주고 알아주고 걱정해 주는 순간 불안감이 수그러들고 생각하는 여유를 찾게되며 감정이 안정을 찾아 이성의 끈을 잡게 된다. 현실은바뀐게 없어도 심리와 상대방에 대한 관점이 제대로 작동되어 사물이 제모습으로 보이게 되고 들리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게 되면(聞) 모든 긴장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고 더이상 이야기가 심각한문제로 들리지(聽)않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모든것이 평온한 안정의 상황이다. 이것이 바로 듣기의 힘이다. 고립되어 모든 자원이 결핍된 상황에서 절망이나 고독을 타자에게 맡길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마음속 텅 빈 공간에 희망과 유대관계의 감각, 서로 어울리고 의지하려는 사회적 본능이 생겨나는 것이다. 저자는 원만한 사회생활을 유지하려면 나 자신이 가진 생각이나 고민을 가두어두기보다 드러내어 표현하고 적극 알리는 것을 권장한다. 바로 "들려주기 기술'이다. 또한 다른사람과의 대화시에 제삼자의 입장을 떠올리며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듣는 기술'이 오늘날 개인화, 세분화, 고도화의 물결 속에 고립되지 않기 위한 필수 기술로 소개하였다. 또한 이러한기술은 일상생활이나 긴급상황에서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팁도 제공하였다. 가정과 직장에서 수많은 대화가 삶의 기본이 된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많이 만들수록 내 삶이 부드러워지고 원만해질 것이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사람들은 왜 내 말을 안 들을까?, 미래 전망의 불투명, 불안이 엄습한 "대화 단절"사회에서 각자도생을
여유가 없어서, 흥미가 없어서, 시시껄렁한 이야기라서, 늘 푸념이어서 듣는 사람도 우울해지니까, 그럴듯한 답변들이다. 정작, 넘치고 또 넘쳐나는 이야기들, 지하철을 타봐라, 사무실, 학교 어딜 가든 떠드는 소리는 여전한데, 정작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네”.
이 책의 지은이 도하타 가이토는 한때 대학교수로 일할 때의 처지를 토로하는데, 사람들이 많은 곳이나 회의 등에 영 익숙지 않아, 회의 중에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 있던 교수가 하는 말, 회의 중에는 휴대전화 사용하면 안 된다고…. 이른바 군중 속의 고독감을. 아니 지은이 표현대로라면 고립감을(?), 아무튼 대학의 역할과 기능의 변화 속에서 투명, 가시화 등이 영 맞지 않았는지, 대학에 사표를 내고, 상담실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듣기 기능 부전 상태에 빠진 사회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이 최선
이 책은 “듣기(聞) 기능 부전 상태에 빠진 사회”를 주제로 지은이가 일본 아사히(朝日) 신문의 사회 계명(季評)에 석 달에 한 번씩 실은 글(평론)을 앞에 달고, 이를 상담사의 시선으로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풀어쓴 글과 실용적인 매뉴얼 노하우를 묶어서 엮은 것이다. 지은이는 “듣기(聞)와 듣기(聽)”의 관계를 지금껏 오해했다고 말한다. 듣기(聞)는 쉬운 레벨이고 또 다른 듣기인 청(聽), 즉 경청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청보다는 문, 그냥 들어주기가 더 어렵다고, 끼리끼리,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반론은 귓등으로 오로지 앞으로 내 생각이 옳다 진격을 외치는 무리, 정치판에서 목소리를 높은데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이런 상태, 서로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기 바쁜 가정 안 세상에 이르기까지, 온통 “소통” 부재라는 말이다. 왜 소통 부재가 생긴 걸까에 천착한 지은이는 이 책의 배경을 ‘자원이 한정된 사회에서 그래도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쩌면 좋을까?’라는 물음이라고 했다. 글쎄다. 듣기 기능 부전과 한정된 자원의 분배가 무슨 상관이람.
지은이의 ‘사회철학’이란 표현은 "대화"다. 신자유주의로 각자도생을 하는 현대인, 집단주의든 개인주의든 모두 나름의 한계가 있고,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귀를 닫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게 한다. 여기에는 저 출생 초고령사회의 문제들 인구 절벽을 비롯하여 수도권 집중화, 지방의 공동화와 인구감소, 노인 문제, 아이(출생, 양육) 문제, 도시는 도시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각각의 문제가 있지만, 한정된 자원을 서로 끌어가려는 경쟁으로 서로 소통하지 않고 균열은 더 깊어지고, 이때 필요한 것이 “대화”라는 것이다. 건강한 사회로의 복귀는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 요즘 한국의 실정도 그러하지 않은가, 정치 현장을 보라. 국회의원 공천을 하는데 일방통행, 힘의 논리, 바로 소통, 대화의 부재다.
묻지 마 식 살인, 청소년 비행. 이 이면에는 “그때 내가 필요할 때, 내 말을 들어줄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누구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듣지 않고 내뱉은 말은 상대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지은이는 1년 만에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던 일본 스가 총리와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코로나 대유행 시절에 어떻게 국민에게 다가섰는지를 비교하는데, 떠나는 일본 총리가 말하기를 “왜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에 대한 답을 메르켈의 국민을 대하는 태도로 설명했다. 국민의 자유를 제하는 긴급 사태가 초래된 것에 대해 국민께 용서를 구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이른바 소통한 것이다. 일본 총리는 국민이 알 필요 없음. 정부가 다 알아서 함. 국민을 사지로 모는 국가가 있겠냐고, 일본 국민의 드센 항의는 “내 말 좀 들어줘, 우리는 절박함을 알아야 달라"라는 말이었다.
지은이는 듣기 기능의 부전 상태 담론을 일본 사회체제를 다루는 거시적 접근에서 가정에 개인에 이르는 미시적 접근까지, 마치, 카페에 앉아 차 한잔하면서 편하게 옆 사람에게 말하듯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것도 심리학자, 의료인류학자 들의 이야기를 곁들어가면서, 술술.
공동체의 유대관계가 살아나야!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며, 격려해 주고 등을 토닥여 주는 사람들 속에서 얼어붙은 마음은 풀린다. 정신건강의학이나 공인된 상담심리사, 심리상담가가 아니더라도 우리 누구라도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 옆에서 그저 이야기만 들어줘도 된다. 격려만 해줘도 된다. 지은이는 전문가 필요한 대목은 마음이 아픈 사람이 왜 대인관계에서 화를 내고, 무례하게 구는지 그 원인을 진단명이라는 규정을 통해서 성격이 못된 사람이 아니라 지금 마음의 병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말해준다면, 주변의 태도는 바뀐다고, 아주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영역 이외의 것은 민간영역(주변 사람들, 혹은 일반 사람)에서 민속 영역(전통적으로 요가, 명상, 혹은 무당의 굿이라도)에 맡겨도 좋다고 이른바 전통적인 “돌봄” 문화의 회복을 말한다. 모든 것을 전문가 영역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전문가는 평범한 사람이 서로 돌보는 것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경청할 만한 대목이다. 그저 내 말을 좀 들어달라는 것이 핵심이다. 일상의 이야기를 하거나 들어주거나 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라포(신뢰)가 형성되면 그것으로 도움이 된다. 동네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온 동네 사람이 함께 키운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익숙해진 아파트 생활은 고립무원이다. 문을 닫으면 누가 사는지, 그 집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 이렇다.
대문에 커다랗게 “맹견 주의”라고 써 붙여 놓은 집 안의 강아지는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요란하게 짓는다. 이 개는 주인 외에 다른 사람이 두려워서 그런다. 오지 말라는 의사표시일 뿐, 사람도 마찬가지다.
듣기 기능 회복은 "내 이야기 들어줄래요"로 시작
이게 아마도 정답인 듯싶다. 내 말을 왜 안 들어줄까가 아니라, 먼저 내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가, TV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비틀거나, 왜곡하거나, 상상하거나, 예측하고 단정 짓기 전에, 대체로 우리 이야기는 “답정너다”. 다만, 그런 결정에 대한 지지를 받고 싶을 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