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곧 선생님이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터라 평소 숲에 대한 이야기나 교훈을 다루는 내용을 참 좋아하는데, 이 책은 책의 제목부터 나의 흥미를 사로잡았다. 20년 차 숲 해설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하니 책을 읽기 전 부터 기대감을 안고 읽었던 것 같다. 우선 책의 표지도 푸르른 녹음이 짙은 모습이라 눈이 편안해지고 힐링 되는 것 같았다.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집 <풀꽃>
나태주 시인의 詩와 같이
자세히 보아야 그 아룸다움을 느낄 수 있는 꽃들이 있다.
지난 겨울의 추위를
꿋꿋이 이겨내고
봄에는 사람들이 먹거리로
눈에 보이는대로 켜가는 것도 지켜낸 후
피우는 작은 꽃
'냉이꽃'
들판에 피었어도 키가 적어
자세히 보아야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꽃.
이런 작은 들꽃에게는 감히 상상도 못하는
큰 키로 우리 사람들에게
큰 그늘이 되어주고,
여러 곳에서 아름다리 우뚝선 수호신같이
그 존재를 뽐내는
'느티나무'
하지만,
그 중심의 굵은 나무몸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매우 가는 끝가지에는 자잘한 모래 알갱이 같은 꽃이 붙어 있다.
이런 가느다란 가지와
자잘한 꽃
그리고, 그 꽃에 어울리는 얇고 납작한 열매가
굵디굵은 느티나무의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우리가 숲에서 혹은 들판에서 종종 볼수 있었던
각종 식물과 나비, 잠자리, 조류와 포유류까지
자연의 모습을 우리 인생사와 대비하여
숲 속에서 숲해설가에게 이야기를 진짜로 듣듯이 들려주고 있는 책이다.
집의 책상과 베란다에서도 쉽게 보는
'몬스테라'
이 식물은 왜 자신의 몸에 구멍을 내거나
자신의 몸을 찢어 놓는 걸까?
그것은
위에 있는 잎들이 햇빛을 모두 가려버리면
아래에 있는 잎들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그러하듯이
잎들도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하여
위로 위로
햇빛이 비추는 방향으로 더욱 가까이
햇빛을 받는 잎 넓이는 가급적 크게 키워
욕심을 부리곤 한다.
그런데,
몬스테라는 그렇게 하지 않고
아래의 잎들에게 자신의 몸을 찢어 양보한다.
왜?
아래 잎들과 같이 공생하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은 자신이 햇빛을 더 많이 받으면 좋지만,
아래 잎들의 양분이 부족해져서
결국 자신이 얻은 양분을 아래 잎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조금 더 길게 본다면
햇빛을 같이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자신이 더 많은 양분을 얻을 수 있는 길이란 걸
이 식물은 알기 때문이다.
숲에서는
자그마한 식물들이
혹은, 가냘픈 곤충이나 동물들이
미래의 공존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양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우리 인간사회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기가 어려울까?
이것이 숲과 자연을 통하여
이 책에서 저자가 남기고픈 이야기이지 않을까 한다.
저자는 20년 차 숲 해설가이자 생태공예 연구가로서 숲에서 활동하면서 '숲이 답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요.
"숲은 다시 태어나지 않고도 삶을 사는 방법, 말하자면 이생을 충분히 잘 사는 방법이 기록된 책이더라고요. 어느덧 저도 한 권의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1cm 냉이를 기억해 낸 후 시지프스의 돌을 굴리는 일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8p)
이 책은 숲에서 만나는 식물과 동물들을 다정한 친구마냥 소개하며 삶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어요.
각각의 동식물들은 사진이 아닌 세밀화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사람으로 치면 증명사진 대신에 초상화를 보여준 것이라 왠지 더 정감이 가네요.
뭔가 동식물 사전을 보는 듯, 간략한 설명이 나와 있어서 숲 속 친구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네요. 여기에서는 둥글둥글한 귀룽나무 열매, 뿔나비, 몬스테라, 은방울꽃, 병꽃나무, 개미, 오색나무, 개망초, 사과나무, 고추잠자리, 왕솔나무, 실새삼, 괭이밥, 청설모, 해바라기, 배롱나무, 나비, 직박구리, 까치, 느티나무, 산수국, 야고, 억새, 제비꽃, 타이탄 아룸, 대추나무, 냉이꽃, 변경주선인장, 난초, 아보카도, 쇠비름, 자이언트 라플레시아, 소나무, 계요등, 쇠무릎, 콩과식물, 난쟁이버들, 사향제비나비, 쥐방울덩굴, 선인장, 낙타, 질경이, 작약, 박꽃, 계수나무, 민들레가 주인공이에요. 사람들처럼 누가 더 잘났는지 따져보고 비교할 필요가 없어요. 하나하나 모두가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병꽃나무의 뿌리는 내년에도 병꽃을 피우기까지 땅 속의 바위나 돌을 피해 요리조리 옮겨가면서 부지런히 물과 양분을 찾아낼 것이다. 나는 그런 병꽃나무의 뿌리가 부러워졌다. 내게도 병꽃나무와 같은 뿌리가 있으면 좋겠다. 물론 내게도 뿌리가 있긴 하다. 병꽃나무 뿌리와 달리 장애물 앞에서 멈춰버렸던 연약한 실뿌리. (···) 나의 실뿌리에게 말한다. 천천히 피워도 괜찮아. 못 피우면 어때. 네가 살아있어 꿈틀대는 게 좋아." (39p)
세상에 꽃을 피우고 싶지 않아서 안 피우는 식물은 없을 거예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을 뿐이죠. 그럴 때 우리는 좌절하고 포기할 때가 많은데 식물은 열심히 뿌리를 더 멀리 뻗어나가려고 애를 쓰며 부지런히 물과 양분을 찾아낸 거예요. 땅 위의 꽃을 피우기 위해 땅 속에서는 뿌리가 제 역할을 다하려고 무진장 노력했다는 걸, 그 간절한 마음이 합쳐져서 꽃이 되었네요. 그러니 작고 볼품없어 보이는 꽃조차도 이제는 함부로 무시하지 못할 것 같아요. 저자가 2월의 어느 날,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냉이들과 냉이꽃을 보며 느꼈던 그 감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어요.
"꽃을 못 피운 냉이와 한 송이라도 꽃을 피운 냉이는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꽃을 피운 경험이라는 큰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140p)
인생에서 꽃을 피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구체적인 목표를 이루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일 수도 있기에 하나의 의미는 아닐 거예요. 자신만의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누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요.
푸릇푸릇한 책표지가 참 마음에 드는 책이다.
긴 겨울을 지나서인지 초록초록이 그리웠나보다.
앞으로 만날 초록이들을 생각하며 이 책을 읽은 것 같다.
숲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해서 숲해설을 직접 듣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런 숲에 대한 해설이 담긴 책을 좋아하기도 한다.
다른 숲에 대한 이야기보다 이렇게 전문가들로 부터 듣는 숲에 대한 이야기가 참 좋다.
또한 숲 해설가분들께서는 오랜시간 숲과 함께하신 만큼 숲 속의 다양한 정보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숲으로 부터 깨달은 것들, 숲으로 부터 얻은 것들이 전해주시는데
참 배울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늘 자극이 된다.
<숲이 내게 걸어온 말들>의 저자도 20년동안 숲 해설을 하신 만큼
그 동안의 다양한 이야기가 책에 녹아있다.
숲에서 만날 수 있는 많은 식물과 동물들.
역시나 몬스테라, 개미, 배롱나무, 해바라기, 청설모와 같이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신선하기에 숲은 알면 알수록 참 매력적이다.
또한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더라도 오랜시간 숲에서 지내신만큼
깨달음의 깊이가 달라 책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게 한다.
저자는 "숲은 늘 거기 있고, 항상 열려 있다."라는 말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숲과 같이 한결같이 우리를 품어주는 존재가 또 있을까.
숲에 있는 동물과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 숲을 오래도록 잘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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