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마유코의 『한국 병합』은 일본의 젊은 역사가가 대한제국(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과정을 어떻게 보는지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저자는 일본의 역사가이면서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기도 하였으므로 한국의 입장을 보다 전향적으로 이해할 만한 위치에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감정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서 사료를 통해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도 하다.
역사가, 혹은 역사 서술이 객관적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분명 순진한 생각이다. 특히 한일 병합(일본에서 학문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라고 한다. 책 제목도 그러하니 여기서도 그렇게 쓴다)의 역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명확해서 그걸 객관화해서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래도 역사 인식의 문제에서 서로 공유하는 지점을 찾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래도 최대한 객관화하려 노력하는 필요하다고 본다. 모리 마유코의 『한국 병합』은 바로 그런 노력의 산물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원래 일본의 대학생을 주요 독자로 상정하고 쓴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으면, 일본의 의식 있는 청년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인식의 수준과 어느 정도나 한일 관계를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 보인다. 말하자면 우리(일본인)가 무조건 잘못 했으니 무조건 빌고 사죄해야 한다는 식이라기보다는 어떤 지점에서 잘못 되었고, 인식의 차이점이 있으니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인식의 차이점을 가장 요약하고 있는 것은 책의 다음과 같은 마지막 부분이다.
사실에 대한 이해는 결코 하나가 아니다. 그것 때문에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입장이 성립한다.
다만 그와 같은 가운데서도 대한제국의 사료에서 추출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많은 한국인이 일본의 지배에 합의하지 않았고 환영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편 작은 부분까지 순차적으로 서술되는 일본 사료에서 추출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일본이 한국인으로부터 통치에 대한 <합의>와 <정당성>을 무리하게 얻으려고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병합이 아니었을까?
사실 이 글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일제 강점기를 바라보는 시각차를 알 수 있는데, 방금 내가 적었듯이 우리는 그것을 ‘강점’, 즉 강제 점령이라고 보는 데 반해 일본에서는 ‘통치’로 본다는(혹은 보려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도 이런 책을 읽지 않으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인식하게 되는 것은 ‘대한제국’의 존재다. 우리는 흔히 ‘조선의 멸망’을 얘기하지만, 엄밀하게는 ‘대한제국’의 종말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대한제국이 성립하게 되었는지(여기서는 고종의 열망을 많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대한제국이 어떤 과제를 추진했고, 어떤 한계에서 실패했는지 등등이 식민지로의 전락에서 주요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을 가지게 된다.
모처럼 흥분하지 않고, 조선 말(혹은 대한제국 시기)에 관한 역사를 읽었다.
한국 병합, 을사조약이나 을사늑약이라고도 한다. 병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뭐라 부르건 일본 제국에 의해 대한 제국이 병합된 사건이다. 한국 근대사를 전공한 일본 학자 '모리 마유코' 교수가 이 책 '한국 병합'을 썼다.
일본은 역사에 대해 많이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역사, 특히 근대사를 잘 모르는 일본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일본 제국은 왜 한국을 병합했는가 또는 한국은 왜 일본에게 병합되었는지를 일본 젊은이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학술적 자료를 기반으로 저술했지만 학술 논문처럼 쓰기 보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한다.그런 저자 의도 때문인지 어려운 내용은 없고 읽기 수월했다.
블로그에서 몇번 쓴 것처럼 나는 '왜 조선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나' 늘 궁금했다. 그래서 관련 서적들을 읽었고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이 쓴 책이나 일본인이 쓴 책이나 대부분 자신이 바라보는 시각에서 책을 써서 양쪽의 시각을 골고루 살핀 책들은 많이 볼 수 없었다.
한국사를 전공한 일본 사학자가 쓴 이 책은 대한제국이 왜 개혁에 실패했는지, 고종과 당시 정치인들이 외세를 못 읽고 무능했는지, 헤이그 밀사들은 왜 무시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 독립협회는 어떤 성격의 단체였는지 등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학자가 쓴 책이라서 그런지 새로운 입장과 시각들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읽고 나니 한국 근대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특히 마지막 종장 '한국 병합을 둘러싼 논쟁'에서 국제법과 역사학의 입장에서 살펴 본 한국 병합 과정에 대한 해석은 이 책의 백미다. 아래 마지막 문단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실에 대한 이해는 결코 하나가 아니다. 그것 때문에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입장이 성립한다. 다만 그와 같은 가운데서도 대한제국의 사료에서 추출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많은 한국인이 일본의 지배에 합의하지 않았고 환영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편 작은 부분까지 순차적으로 서술되는 일본 사료에서 추출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일본이 한국인으로부터 통치에 대한 <합의>와 <정당성>을 무리하게 얻으려고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병합이 아니었을까?
한미일중 국제 정세에 관심이 있는 요즘 좋은 책 한권을 읽게 되어 좋았다. 한국 근대사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