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송은정, 서수연, 고운, 휘리, 박세미, 신지혜, 신예희, 이소영, 무루.열 명의 작가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건축 이야기를 하고 옷을 만들고 독서 모임을 하고 개랑 산책하고 고양이와 함께 살며 자기의 방을 채워 나가는 여성들이다. 서재 혹은 작업실이라 부를 수도 있는 자기만의 방에서 내면의 호출에 응하며 자기만의 시간을 만들고 누리며 나아가려는 시도와 여정을 담
리뷰제목
안희연, 송은정, 서수연, 고운, 휘리, 박세미, 신지혜, 신예희, 이소영, 무루.
열 명의 작가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건축 이야기를 하고 옷을 만들고 독서 모임을 하고 개랑 산책하고 고양이와 함께 살며 자기의 방을 채워 나가는 여성들이다. 서재 혹은 작업실이라 부를 수도 있는 자기만의 방에서 내면의 호출에 응하며 자기만의 시간을 만들고 누리며 나아가려는 시도와 여정을 담은 이야기들이다.
<돌봄과 작업> 아직 안 읽었지만 비슷한 책일 듯하다. 다만 이 책은 누구의 엄마, 딸로서의 돌봄 이야기보다는 '자기만의 방'을 갖기까지의 애씀과 내 방이 주는 안온함, 그 안에서 창작하는 '나'를 더 비중있게 그렸다. 혼자라면 혼자라서 누군가와 함께 살게될 때는 함께라서 '자기만의 방'을 갖기 어려운 여성들. 쓰고 그리고 구상하고 만드는 작업을 위해 자기만의 방이 필수인 이들은 절실해서 애틋하기까지 하다. 뷰가 좋은, 부동산 가치가 높은, 넓고 반짝이는 집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작업에 집중할 내 방 한칸, 책상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라 가슴 졸이며 지켜보게 된다. 책의 초대를 받아 그들의 방과 책상을 한껏 구경한 기분이다.
우리 내면의 무언가가 말할 때, 내가 아니라 그것이 나의 몸을 빌려 더듬거리며 말할 때, 나는 그것을 받아 적는 사람이다. 입 없는 존재들의 몸짓을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이 모든 일은 책상에서 이루어진다. 백지는 끊임없이 열리고 닫힌다. 비록 나는 좁은 방안에 갇힌 면벽의 유령이지만 책상만 있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안희연, 우리 내면의 무언가가 말할 때
하지만 현명한 어른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낸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지혜를 궁리하고, 때로는 에라 모르겠다의 심정으로 몸을 던져보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어른은 글을 쓴다. 씀으로써 돌파한다. 거기에는 질문 이 있고, 질문을 기다리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글이 나만의 어디로든 문이 되길 고대하고 있다.
-송은정, 단 한 사람을 위한 책상
애쓰지 않으면 어딘가로 휩쓸려 가버릴 것 같았다. 나는 우리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동안에도 이따금 그 지하 방을 그리워했다. 혼자 있을 틈 없는 긴 하루, 오늘 이 끝나기 전에 시작되는 내일을 억울해하면서 캄캄한 새벽에 혼자 깨어나 서성이는 날들이 있었다.
이 집에 나는 없어, 온통 우리뿐이야.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될 때 나는 두려워 벌벌 떨면서도 기어이 문을 열어보게 된다. 안 해보면 모르는 거야. 문운 닫는 건 열어본 뒤에야 할 수 있다. 열지도 않은 문을 닫을 순 없으니까.
-서수연, 열병합 방식으로 그리는 일
혼자 있을 때조차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지나치게 눈치를 살피고, 나와 마주하기를 두려워하는 내가.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하면서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늘었고, 평생 불편할 것만 같던 그 일이 그럭저럭 할 만한 일이 되었다. 내가 만든 옷을 입은 나는 편안한 얼굴이었다.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잘 맞는 옷을 입는 것만으로 나로 살아가는 일이 한결 수월해진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예전에는 깊이 생각해 보 지 않았던 것들을, 옷을 짓고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차츰 알아가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 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의 고유함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나를 존중하는 일로,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로 이어졌다. 우리는 모두 고유한 존재들이므로.
내 방은,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그 공간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의 양과 질에 있어서도 모두 투쟁으로 얻은 것이다. 가족들에게 사랑과 이해와 도움을 구하면서. 간절함으로.
불확실함과 어긋남 속에서도 좋아하는 마음 하나 여기까지 왔으니까. 다행히도 이 세상엔 아직 좋아할 만한 것들이 많이 있고 내겐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 그러니 알 수 없는 미래에 무엇이 될지 고민 는 일은 조금 미뤄두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고운, 가장 작은 방에서 짓는 것들
유난히 필사가 길어지는 게 이 책을 알게 된 게 양장점 리틀스티치를 운영하는 고운님 덕분이라서다. 신유진 작가님 책 읽고 인스타 찾아보다가 고운님을 알게 되었고 리틀스티치 옷을 알게 되고 이 책에 글을 쓴 것도 알게 되었다. 우연한 (랜선) 마주침이 물어다준 책이다. 신유진 작가님도 입는다는 리틀스티치의 이야기 담긴 옷에 나도 마음 한켠 내어주고 있다.
이 작은 방을 하나의 세계라고 말해도 괜찮을까? 그렇다면 열어둔 문틈은 누군가와 통하는 길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종이컵에 실을 달아 만들었던 전화기처럼, 간단하고 연약해 보이지만 확실한 자기만의 연결. 여전히 한 뼘 열린 문틈, 그 방 안에서 나는 매일 무언가를 지켜내고 잃어버리며 살아간다.
-휘리, 열린 문, 한 뼘의 틈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면 그 존재에 대해 골똘해지 곤 한다. 사보이 꽃병의 물기를 닦으며 나는 생각한다. 유리 유에 유리 리. 앞뒤가 다 유리라니··· 그렇게 투명하니까 자기모순도 생기는 거다. 경계를 지으면서도, 통하는 것. 물리적으로 막혀 있지만, 시각적으로 뚫려 있는 것. 다 알게 하지만, 훼손할 수 없게 하는 것. 때로는 우리를 속이고, 날카롭게 부서지는 것.
-박세미, 나를 구축하는 질료들
창문 앞에는 책상과 의자를 두었다. 날씨가 좋은 날 창문을 열고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다 보면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이곳에 영원히 앉아 책만 읽으며 살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신지혜, 세 개의 집, 두 권의 책
영원히 포근하고 완벽히 안전하길 바라지 않는다. 그런 공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 그저 나는 매번 약간의 돈과 시간과 노력을 더해 공간을 다듬으려 노력한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최선을 다해 쾌적하게 만들고, 그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기려고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잘 채워 나가는 것, 그게 바로 잘 사는 거겠지.
-신예희, 내가 있는 곳 어디든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작업실 밖으로 자주 나선다. 자 립하기 위해 운전을 시작했다면 바깥으로 나서는 일은 고립되지 않기 위함이다. 작업실에서 내가 주로 하는 일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식물 공부를 하는 것이지만, 책에 매몰되고 지식에 연연하고 편협해지는 것을 경계한다. 돌아보면 내가 도시 바깥, 경기도 외곽에 자리 잡은 것 또한 고립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생존력이란 생존하는 데에 필요한 힘 이전에 스스로 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다. 이 사랑에 의해 생물은 본능적으로 생존할 만한 길을 선택하고 행동한다. 시련을 이겨낸 이들이 흔히 말하는 '죽으란 법은 없다'는 세상의 법칙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부른 생존력의 힘에 관한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투명하고, 솔직하고, 편견 없는 마음을 사랑하게 된다. 그냥 좋다는 감각, 그냥 신나는 감각 이런 원초적인 감각의 가치를 떠올린다. 어린이들이 놀이터에서 처음 본 친구와 신나게 놀고 아쉬움 없이 헤어지는 풍경 속에 깃든 무엇. 그 바탕에는 열린 마음으로 관계를 받아들이는 포용력, 상대에 대한 편견 없는 마음이 잠재해 있을 것이다.
-이소영,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이상한 말이지만 혼자인 사람에게는 스스로를 너무 싫어하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채워나가기 때문이다. 혼자인 사람은 자기 안에 갇히기 쉽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으로부터 지나치게 영향받는다. 그런 조건 속에서 스스로를 싫어하게 되면 사는 일이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덜 싫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애초에 살아보지 않은 시간을 사는 일에 답이 있을 리가. 다만 삶의 감각이 형식으로부터 얻어진다는 것만은 알겠다. 의식보다 행위를, 일회적인 감동보다는 차곡차곡 쌓아서 얻은 실감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도. 한 사람을 규정할 수 있는 실체는 결국 반복되는 행위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단출해진 중년의 삶이란 어쩌면 형식을 만들어보기 딱 좋지 않은가.
-무루, 나에게로 이르는 길
지난여름 도서전에서 만나 인사했던 안희연 시인의 글로 시작하는 책이라 좋았고 자기만의 방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라 연대의 마음으로 읽었다. 간절함으로 방을 만들고 책상을 들이고 작업에 골똘해지는 그들의 굽은 어깨와 등을 토닥이고 싶다. 고립되지 않기 위해 방을 벗어나 걷고 뛰고 운전하는 시간도 응원한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오기 전 세상을 뜬 작가가 있다. 건축을 주제로 집에 대한 책을 쓰던 신지혜 작가님은 재작년 5월 유명을 달리했다는데 아프셨을까, 사고였을까.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곳에서도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시길.
창문과 책과 춤을 좋아한다던 신지혜님 책 <0, 0, 0>과 <최초의 집>을 찾아 읽어야겠다.
자기만의 방이 간절한, 그 안에서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닫힌 공간에서 고독을 즐기고 열린 문 너머로 세계를 확장하려는, 갇히는 대신 한발짝 나아가려는 이들에게 권하고픈 책이다. 타인의 방과 세계가 궁금한 이들에게도. 열 번의 방들이 집들이 초대장인 셈이니 이 책을 이웃님 책상에 먼저 들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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