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난 그 당시 운영진으로 참여했던 사회문제에 관심있는 20대/30들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에서, 1박2일 일정으로 로컬 사례답사로 군산에 가 있었다. 함께 저녁도 먹고 파티도 한 참여자들이 즐겁게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밤 12시 정도부터 스탭 회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속보로 계속 업데이트되는, 이태원 관련 소식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 한 자리 수의 사망자와 수십 명의 심정지 정도로 보도되었을 때, 의무소방 출신이다보니 심정지의 대부분이 곧 사망자가 되리라는 가슴 아픈 예측을 할 수 있었기에 사망자가 곧 상당수 발생하겠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가 끝난 새벽 2시 즈음, 다시 뉴스를 보니 사망자는 100명 이상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식사 후 홀로 1시간 정도 군산앞바다를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참여자들의 모습에도 전날의 유쾌함이 남아있었지만, 마냥 신나 있을 수 만은 없는 분위기도 존재했다. 2014년 4월 16일 나의 하루가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처럼, 2022년 10월 29일과 10월 30일 군산에서 보낸 한순간한순간은 보통의 다른 날과는 다른 밀도로 나에게 기억되어 있다. 개인의 기억이지만, 집단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올 봄에 저자를 만났을 때,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책을 준비한다는 말을 들었고, 참사 후 1년이 지나 나온 출간된 책을 바로 구매했다. 이태원 참사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용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른 부분에 집중한 챕터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정부가 그리고 정치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근본과 도리를 나누고 싶어서 나눈 이야기가 아닐까. 물론 각론과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집단마다, 성향마다 다를 수 있다. 사람과 조직은 적지 않은 순간에 자기 중심적, 이기적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꼭 기억하고 지켜야 하는 부분도 있다. 원칙과 다정함은 공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책을 읽다가 띄지에 손가락을 살짝 베었다. 우스운 말일지도 모르지만 마치 이 책을 읽어야 하는 대가, 저자가 전하는 위로와 사과만큼은 아니더라도 더 큰 아픔을 지속적으로 겪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에 밴드를 붙이지 않고 작은 고통을 느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참사 후 1년이 지난 2023년 10월 29일 즈음에, 이태원 유족들이 포털과 언론사에 관련된 뉴스에 댓글창을 1주일 정도 닫아 달라고 요청했다. 익명성 속에 때로는 실명으로 달리는 그 악플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와 그룹이 생각하는 우선순위와 다를 수 있고, 그 가치를 향해 노력하는 모습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가 동시대인으로서 가져야 할 기준점은 공유해야 하고, 누군가를 악마화하거나 적대시하는 모습은 최소화되길 바란다.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저버리는 이야기와 행동이 집단을 이루어 나타나지는 않았으면 한다
정부가 없다. 아니, 없어졌다. 분명히 있었는데 어느 날 일어나 보니 없어졌다. 핼러윈 축제가 벌어진 이태원에서 159명이 인파에 깔려 죽었다는 후진국형 소식을 들었는데, 어떤 이들은 왜 하필 그날 그 자리에 놀러 갔다가 참변을 당했냐고 숨진 이들을 탓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이 참변을 어떻게 수습할지부터 얘기한다. 그런데 막상 이 참변을 진두지휘할 지휘 본부가 없고 이 참변에 대하여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거나 책임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꼭 누군가 책임을 지고 공무원이 옷을 벗는 모습을 보자는 게 아니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고 실제 정부는 그럴 능력도 있는데 두 손을 놓고 있었다. 운 좋게 죽지 않고 이런 소식을 접하는 이들의 머릿속에는 정부가 국민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각성과 함께 오로지 각자도생 네 글자만이 뚜렷이 남는다. 이런 난리를 겪은 지 벌써 1년인데 아직도 이 정부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 핼러윈 축제에 모일 인파를 모이지 못하게 하는게 전부였다. 너무 익숙하지 않나? 세월호 사건 때 해경이 부실했다며 해경을 해체시켰던 그림과 너무도 비슷하지 않나? 정부가 사라졌다. 사람 하나 잘못 뽑은 것뿐인데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안전이 뿌리째 흔들리는 느낌이다. 국민의 불안감은 사라질 줄 모른다. 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느 정부에서건 다수의 인명사고는 불시에 일어나곤 했다. 우리는 그걸 참사라고 부른다. 지하철에 불이 나고 건물이 주저앉고 다리가 끊어졌다. 미리 손을 써서 막을 수도 있었고 알았더라도 손을 못 쓰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지금처럼 무능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지침에 따라 뭐라도 했다. 지금은 지침 자체도 없는 것 같다. 노랑색 방제복을 멋대로 이상한 남색으로 바꾸는 데에 돈을 들였을 뿐, 옷 색깔이 바뀐다고 나아진 건 없다. 일방적으로 정부 탓을 하자는 게 아니다. 문제는 미리 막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일어난 이후에 정부가 대처하는 방식에 있다. 대체로 보수를 자처하는 정권일수록 더 많이 다치고 죽었다. 사람보다 이윤에 더 눈독을 들여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다. 오죽하면 특정 정당이 집권하면 사람이 더 많이 죽어 나간다는 연구도 있다. 이쯤 되면 정설이다. 하필 이번 정부는 자칭 보수에다가 검사들 판으로 깔린 정치 초짜들이 풍년이다. 재해를 지휘하거나 현장에 출동하여 보살피는 게 아니라 그 어느 해보다 재해 예방을 문자로 해결하고 있다. 책임지는 모습은 간데없고 해외 유람에 쓸 돈이 모자란다는 타령만 한다. 그리고 스스로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래서 이 책은 묻는다. 정부는 어디로 갔나? 이 질문과 함께 저자는 유능하고 일 잘하는 공무원들이 어째서 복지부동하는지 그 과정을 설명한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느라고 이전 정부에서 일하던 공무원들을 싹 물갈이하고 결국은 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 하게 되는 연유를 말한다. 결국은 최종 보스인 대통령의 세계관과 인식론이 공무원 사회에 영향을 주는 동력원이라 말한다.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세계관이 아닌 경우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우리는 지금 똑똑히 보고 있다. 거기다 더 큰 우려는 기왕에 망가진 공무원 시스템은 앞으로 누구 한 사람이 바뀐다고 변할 것 같지 않다는 전망이다. 우리는 앞서 정권에서부터 이미 그런 경험을 겪지 않았던가. 이 책이 주는 우울한 기대감은 바로 그런 전망을 가능케 한다.
대통령 선거 결과가 간발의 차이이든 박빙이든 간에 지금의 정부는 우리 다수가 선택한 결과이다. 물론 표면상으로야 승복은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기보다 정부 때문에 일상의 짜증만 더한다면 정부는 대체 왜 존재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뭔가를 지향하는 바도 없이 그냥 표류만 하는 것 같다. 영업사원 1호의 대활약으로 무역수지는 곤두박질치고 온갖 지표를 보아도 나라의 위상은 아닌말로 떡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우리가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정권만큼은 그럴 일 없겠지만 다정한 정부를 기대하고 있다. 모처럼 모은 365일의 기록이자 훌륭한 책인데 아쉽게도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기가 마뜩잖음을 발견한다. (2023-11-13)
이것은 헌법을 만들 때 이미 합의됐다고 봐야 합니다. - 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