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래서 삼키는 건지도 몰라
<아무튼, 영양제>를 읽고
"요즘 어떤 영양제 먹어요?" 주변 사람들의 물음에 지난해까지는 그걸 꼭 먹어야 할까요, 가 나의 대답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감기에 걸려도 최대한 병원에 가지 않고 최소한의 종합감기약과 내 몸 안에 깃든 자연 치유력에 대한 믿음으로 버텨온 나만의 오랜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해두자. 그러나 새해부턴 사정이 좀 달라졌다. 아침에 '종합 비타민' 한 알과 저녁에 '마그네슘' 한 알을 삼키고 있다. 평소 아이허브를 애용하는 아내의 진심 어린 (잔)소리에 두 귀를 기울여 내 심신과 가정의 건강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그럼 영양제를 먹으라는 거예요, 먹지 말라는 거예요?"(135쪽) 원고를 다 읽은 편집자의 질문이지만 독자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영양제에 관한 내 의(구)심을 신념으로 돌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아무튼, 영양제>를 집어(삼키듯)든다. 하루에 영양제를 50알이나 먹는다는 사람이 (구글 관계자이고) 저자는 아니고, 그에 버금가는 취향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를 영양제 괴짜이자 애호가로 부르는 그 역시 규칙적인 생활과 식사, 적절한 운동을 하면 영양제는 필요하지 않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다른 법이니 오늘도 아이허브 앱을 켜고 검색창에 증상을 적는다. 피로, 무기력, 불면, 소화불량, 면역, 항산화 등 어제보다 나은 오늘과 내일의 내 몸을 위한 영양제를 찾아 나서는 한 마리의 다람쥐처럼 말이다.
긴긴 겨울을 나는 데 필요한 영양제, 아니 도토리를 한가득 모아서 땅에 묻어둔 다람쥐를 상상해본다. 자연의 섭리나 다람쥐의 건망증 둘 중 어느 것이든지 깜빡하고 잊혀진 도토리는 참나무가 될 가능성을 품은 씨앗이 되어 이듬해 봄이 오면 새싹을 틔울 것이다. 저자도 그러하다. 한동안 모아둔 약병들 속 어떤 영양제는 유통기한이 지날 때도 있고 제품 광고에 혹해서 구했으나 영구 보관만 되는 영양제도 있는 까닭이다. 여기서 그는 '-수 있다'는 영양제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좋아질 '수 있는' 동시에 아무런 효과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영양제 섭취로 인한 부작용 예시 때문에 오히려 그 효능을 더 신뢰하게 된다는 그의 말에서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각양각색의 영양제가 든 약병들의 뚜껑을 하나씩 열어보기 전, 다음의 설명에 알맞은 영양제는 무엇일까? 최고의 항산화 성분, 간 해독 끝판왕,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다양한 효능, 독소 배출과 중금속 배출에 도움을 주는 바로 그 성분···(99쪽) 정답은 바로 ‘글루타치온’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만병통치약 같은 효능이 아닐 수 없는데, 하버드의 석학들은 영양제가 아닌 음식을 잘 챙겨 먹는 것이 가장 좋은 항산화 방법이라고 추천한다. 한두 가지 성분만 든 영양제보다 다양한 영양소가 서로의 흡수를 돕고 효과를 증폭시키는 음식의‘복합성’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또한 캬베진, 마누카꿀, 매스틱검은 위장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각광을 받고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영양제 세계의 절대 강자이자 전설이 되어버린 비타민C에 관한 이야기도 퍽 흥미롭다.
만일 하루에 단 한 알의 영양제만 먹을 수 있다면 저자는 주저없이 ‘유산균’이라고 외친다. 어려서부터 장 활동이 원활하지 않았던 그는 엄마표 요거트에서부터 파스퇴르사의 쾌변, 메치니코프, 불가리스, 닥터캡슐에 대한 추억을 소환한다. 여기에 나열된 것들은 나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은 제품들로 그렇게 많이 마셔서 장 운동이 활발했던 건지, 원래 활발한 체질임에도 예방 차원에서 학창시절 내내 장기 복용한 것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른이 된 이후 유산균 영양제로 갈아탄 그에 따르면 많은 유산균 상품소개에서 코팅 기술력을 자랑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유산균 코팅이 중요하다. 유산균을 뜻하는 '프로'바이오틱스와 유산균이 먹는 밥에 해당하는 '프리'바이오틱스가 안전하게 장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데 관여한다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에 장내 유산균이 활약하여 우울증에도 좋다는 논문까지 나온 터라 그는 힘주어 말한다. 유산균은 절대 살려야 한다고!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사실은 테아닌이 혼자 하는 일이 아닌, 녹차 안에 든 어쩌구와 저쩌구와, 무엇보다 녹차를 마시는 시간의 고유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위타노사이드가 아닌, 아슈와간다(일명 인도인삼)에 든 다른 물질과 할아버지가 손녀를 생각하며 아슈와간다를 짓이겨 정성껏 빚어 만든 환약이, 그리고 손녀가 자기 전에 그걸 머리 맡에 둔 마음이 손녀를 푹 자게 도운 것이 아닐까.
(46쪽, 「스트레스 완화 영양제의 세계」)
저자가 깔아놓은 영양제로 뒤덮인 책길을 걷다 보면 영양제 그 자체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나아가 영양제를 먹는 행위와 마음, 그리고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는 책임을 알게 된다. 아스피린과 바이엘로 유명한 독일에서 ‘세상에서 항생제 제일 많이 쓰게’ 생긴 의사가 의외로 허브차를 처방하는 사례를 들어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우리나라와 다른 삶, 즉 병으로 휴가를 내도 눈치 보이지 않고 일찍 정시 퇴근해도 푹 쉴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중년이 많이 찾는 비타민B의 경우, 너무 많이 쌓인 피로가 더 이상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한국 제품명은 액티넘이라 불리는 아리나민은 과로로 1, 2위를 다투는 나라 일본과 한국에서 60년간 팔리고 있는 영양제라는 점을 상기시켜 볼 필요도 있겠다.
특히 마오리족에게 관절염이 없는 이유가 '초록홍합' 때문이라는 광고 카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엄마가 실제 효과는 차치하더라도 플라시보 효과로나마 무릎 통증을 덜 느끼고 친구들 앞에서 엄마의 기를 살려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직구에 임하는 그를 보면서 문득 지난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군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느날 갑자기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무릎이 아파서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 혀를 차며 어쩌다 무릎 연골이 다 찢어진거냐고 걱정 반 격정 반으로 물어온 의사선생님에게 몇 달간 치료를 받으면서, 밥은 걸러도 지금의 초록홍합처럼 당시 인기를 모았던 '글루코사민만큼'은 꽤 오랫동안 챙겨 먹었더랬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영양제를 처음부터 거부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난다.
약병의 뚜껑을 돌려 닫으며 영양제를 추천하거나 추천해달라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어진다. 건강에 관한 정보나 깨달음을 전하는 책들이 무수하지만, '영양제를 먹는 마음' 혹은 '영양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한 번쯤 헤아려 본다면 어떨까해서다. 인제 저녁이 되었으니 마그네슘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물 한 모금 속에 오늘도 고된 하루를 살아내느라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켜주고 어지러워진 정신을 차분하게 만들어 숙면에 들도록 도와주리라는 '믿음' 한 줌과 나름 애썼다는 '다독임' 한 줌을 마그네슘 한 알과 함께 넣어 삼킨다. 또 날이 밝으면 종합 비타민 한 알에 하루를 여는 마음을 다져 넣으리라.
정화수에 치성을 드리는 사람에게 정화수나 장독대가 핵심이 아니듯 나에게도 비타민D의 효능이 핵심이 아니다. 그 마음이 이뤄내는 것들과, 마음에게 영향받은 나의 선택들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내가 영양제를 먹는 마음이다.
(137쪽, 「영양제를 먹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