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수술을 받게 되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투병에 관한 심경을 써놓았지만 경과가 안정되면서부터는 초등학생들처럼 일상적인 일들을 적었습니다. 우연히 프랑수와즈 사강의 <해독일기>을 읽으면서 일기쓰기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랑스와즈 사강은 1957년 여름에 교통사고를 당해 석 달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고 합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사고의 후유증으로 생긴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하여 875라고 하는 모르핀 대용약제 팔피움을 매일 처방받았다는 것입니다. 통증이 불쾌할 정도라고 적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했을 것입니다만, 뒤에는 견딜만했음에도 약을 요구했을 수도 있습니다. 석 달 뒤에는 약물중독 증세가 심해져서 전문의료시설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해독일기>는 이 기간에 썼던 것인데 뒷날 발견하고 출판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통사고로 입원했던 기간에도 일기를 썼을까요?
<해독일기>는 약물중독 치료시설에 입원한 다음날부터 쓰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날짜를 적은 것이 아니라 요일만 적었는데 가끔 건너 뛴 것을 보면 매일 적은 것은 아닌 듯합니다. 입원 이틀째인 일요일부터 시작하여 한 주일이 지난 월요일에 다음 날 퇴원한다고 적은 것을 보면 11일 동안 입원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첫날 ‘하늘은 파랗고, 포플러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지만 시골에 와 있다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는다’라고 적은 것으로 보아 요양시설이 시골에 있었던가 봅니다.
하지만 ‘끔찍한 밤’이라고 이어 적은 것을 보면 한밤에 간호사를 찾아 그것(앰플)을 받았다고 적었습니다. 약물을 달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통증에 시달렸다고 하소연 한 것 같고, 간호사는 약을 주기로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있을 테니 더는 이런 식으로 학대받고 싶지 않다. 통증은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그리고 두렵게 만든다”라고 일요일 밤 사건을 정리했습니다. 통증을 호소한 것은 마약을 우회적으로 요구한 것인데 마치 의료진이 주었다는 식으로 변명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입원하던 토요일 밤에 일어난 사건이었고, 월요일에는 약물 없이 13시간을 버텼다고 적었습니다. “흔히 말하듯 심장이 쿵쿵댄다. 속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려는 마음이 시작된다. 유일한 해결책은 정말 고통스러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19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마약중독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가 읽힙니다.
그리고 오로지 문학만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글쓰기도 중독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합니다. 그래도 “나는 글 쓰는 게 몹시 좋다(27쪽)”라고 이야기합니다. 화요일에도 발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약을 달라는 몸의 욕구와 이를 제지하려는 이성이 갈등하는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그런 자신이 끔찍했던 모양입니다.
마약에 중독된 자신을 한탄하면서 술 또한 마약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나의 주정뱅이 형제들, 파리의 밤을 함께 했던 사람 좋고 다정한 무리들이여, 이제는 더 이상 당신들을 이 바에서 저 바로, 이 자동차에서 저 자동차로 따라다니지 못하겠군요, 아니면 술을 조금도 마시지 않고 따라다니거나. 하지만 그건 안 될 듯해요. 그런 건 슬플 것 같거든요.(35쪽)”라면서...
목요일에는 절반의 약물로 욕구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고 결국은 퇴원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 하찮은 일기를 쓰는 것 말고 다른 방식으로 내 문학 활동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56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입원해있는 동안 그녀를 괴롭힌 것은 소설을 쓸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나는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65쪽)’라고 적었습니다.
열하루에 걸친 심경을 적은 일기는 책으로 묶어낼 정도의 분량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을 곁들인 그림일기를 만들었는데 다양한 모습의 여성의 알몸을 굵은 선으로 그려낸 그림이 글로 향하는 시선을 빼앗지만 그런 행동이 못내 민망해서 다시 글읽기로 돌아갑니다.
워낙 사강을 좋아해서 그녀가 쓴 거의 모든 글을 읽은 것 같다. 그러던 중 안온북스에서 사강의 책을 복간한 것이 새로 나온다기에 오래오래 기다려서 받았다! 생각보다 이렇게 얇을 줄 몰랐다. 펼쳐 보니 그림과 큰 글씨들로 여백을 채운 것이 절반이 넘는 듯. 너무 짧은 텍스트로 구성을 하려니 이렇게 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사강의 내면이 담긴 글을 기대했던 터라 아쉬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마음을 울리는 글귀들이 있었다. 한숨에 뚝딱 읽고 나니 조금 허망했던.
언젠가는 꼭 읽어야지 하는 리스트에 프랑수아즈 사강은 늘 있었다. 뭔가 자유분방하고 젊고 세련되고 멋진 작가일것 같은데 책과의 인연이 닿지 않아 이번에야 처음으로 사강의 글을 읽게 되었다. 투병기간에 쓴 짧은 일기여서인지 글이 많지 않았으나 자신을 잃치 않으려는 투병기간의 내적 투쟁이 잘 드러나 있었고 무엇보다도 베르나르 뷔페의 날선 삽화가 글과 어우러져 읽는 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여러 의미로). 그래서 사강이 더 궁금해졌는가? 물론이다. 한가지 더! 이책은 책으로서의 물성이 줄 수 있는 매력이 한 가득이다. 서효인시인이 대표로 있는 안온북스에서 출판하고 백수린작가가 번역했으며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과 함께 예쁜 빨간 하드커버의 표지와 책의 세련됨이 감탄스럽다. (또는 사강스럽다) 책장에 계속 소장하고 싶은 책으로 남아있을것 같다. (편집자의 안목과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해독일기』
프랑수아즈 사강
베르나르 뷔페 그림
백수린 옮김
안온북스 출판
인간의 고독과 사랑의 본질을 그려낸 사강의 작품들은 자유로운 감성과 세심한 관찰력, 담담한 문체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해독일기>는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자동차 전복 사고로 마약성 진통제 모르핀에 중독된 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쓴 소설로 백수린 작가의 번역했다.
책의 장마다 있는 베르나르 뷔페의 흑백 그림이 그 불안을 잘 보여주는 듯했는데 여자 나체 그림들이 치료제로 인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잠을 자거나 바닥에 느러져 있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왜 나는 모든 이들이 감각적이라 말하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글이 난해한건지ㅠㅠ 다른 책을 읽지 않고 해독일기만 읽은터라 일기 내용이 너무 짧기도 했고,, 그 짧은 내용들도 중독 치료 과정동안의 불안들만 보였다.
--○ 책 속 밑줄 긋기
화요일.
아마 더 힘들어질 모양이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아침부터 숨이 차다. 그래도 포기하면 안 되는가 보다.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기분이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수화기를 들고, 담대한 모습을 유지하며,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차분하게 설명하면, 그들은 무언가를 해줄 것이다. 내가 떠날 순간을 늦출 그 무언가를. 나를 위해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나에게 반대로 작용한다. 그것은 꽤 끔찍한 일이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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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 베르나르 뷔페 그림 백수린 옮김
"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슬픔이여 안녕》의 저자인 프랑수아즈 사강이 자동차 전복 사고를 당한 후 마약성 진통제로
모르핀에 중독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 쓴 일기를 출간한 게
《해독 일기》입니다.
사강의 입원 기간은 비교적 짧았지만 고통 속에서 글쓰기를 통해 그녀의 내면의 괴로움과 고통에서
점점 삶에 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입원 이틀째 몽롱한 상태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상태에서 견딜 만해지고
점점 약 없이 견디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녀는 끊임없이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고통과 불안,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 점점 퇴원이 가까워지면서 삶에 의지를 드려내면서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라며 그녀는 다시 단편소설을 쓸 것이며
본격적인 삶을 살아가고 글을 쓰기를 다짐하며
고통, 불안, 죽음에 대한 공포 혹은 두려움을 이겨내며 과거의 자신에게 말하듯
"나는 나에게 말한다. 잘 가."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한 기간 동안 힘겹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나라면
버티기도 힘들었을 텐데 그런 상황 속에서 일기를 쓸 수 있었을까?
너무 어려울 것 같은데 사강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셀린과 프루스트, 아폴리네르와 랭보의 책을 읽고 일기까지 쓰면서 버티고 치유해나갔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도 사강의 말처럼 저도 더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를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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