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의 어느 술집. 친구인 두 남자가 내 삶이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라는 첫 문장에 홀려 읽은 책입니다.
불행한 출생이라는 주제로 두 남자가 실컷 떠들도록 놓아두고 있는 저자는 분노조차 쏟기 힘든 무감한 상태입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저자는 신체적 통증으로부터 분리되기 위해 만든 마음속 공간 ‘중립의 방’으로 숨어듭니다.
천골무형성증. 태어날 때부터 척추와 골반을 연결하는 뼈인 천골이 없습니다. 척추는 휘어 있어서 등이 앞으로 굽고, 고관절들이 서로 잘 맞지 않아 신체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깨어있는 모든 순간에 통증이 찾아옵니다.
장애인이자 엄마이자 여성인 철학 교수 클로이 쿠퍼 존스의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적 사유 <이지 뷰티>. 2022, 2023 연속 퓰리처상 회고록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은 책입니다. 정상, 아름다움에서 배제된 삶을 살아온 저자가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을 만나게 됩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객관적으로 아름답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예술, 철학, 과학 등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되어온 아름다움 외에도 직접적으로는 성형, 다이어트, 화장품, 패션 등 어떻게 하면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일상 속 모든 곳에 아름다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자는 장애를 지니고 태어났고, “인간은 새로운 것을 보면 흥분한다. 그리고 나는 항상 새로운 그 어떤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나를 빤히 쳐다본다.”처럼 복잡 미묘한 시선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이 사회가 말하는 아름다움 카테고리에서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황금비율을 찬미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몸은 균형, 비례, 계획의 서사에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도 타인의 시선과 분위기에 익숙해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익숙해졌다고 해서 기억의 흔적들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의 삶은 평생 마음의 상처를 무던히 하려고 애쓴 시간들의 연속입니다. 남들은 쉽게 말합니다. 그냥 무시해라. 그 정도는 웃어넘길 줄 알아야 한다. 너무 예민하다. 큰일은 아니네. 때로는 화내지 않는 걸 두고 왜 그렇게 담담하냐고도 묻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평범한 사람으로 두질 않습니다. 정상과 비정상 범주에서 언제나 그는 비정상인이었습니다. 보살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겐 미소를 띠고 그 친절을 받아들이는 식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몸을 응시하며 집중하는 관심을 조금이나마 빨리 떨쳐낼 수 있습니다.
장애가 있는 여성의 삶을 가로막은 개인적, 사회적 문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이지 뷰티>.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장애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 여정은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전복시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장애여성이 임신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일이라는 주장이 그토록 흔할 줄 생각도 못 했습니다. 유전이 아닌 장애가 어떻게 아이에게 이어질 수 있는지 의학적 이유를 제시하지도 않고 의사는 “이게 도덕적으로 맞는지 고민해보셨나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사회는 장애여성은 생명을 키우기에 부적합한 몸을 가졌다고 믿도록 했습니다.
영국 철학자 버나드 보샌켓은 '쉬운(가벼운) 아름다움'은 눈에 잘 띄고 편안한 반면 '어려운(깊은) 아름다움'은 복잡함, 긴장, 폭넓음을 만나기에 시간과 인내와 더 많은 집중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려운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는 쉽게 혐오와 증오로 빠져버립니다. 어려운 아름다움의 도전 앞에서 위축되고 구경꾼의 나약함 상태가 되는 겁니다. '뭔가 잘못됐다'라는 판단을 내리면 사람들은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자 역시 습관적인 시각과 알고 있던 세계를 깨뜨리지 않고 유지해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동안 무감각해진 덕분에 비장애인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방어적인 경계 태세로 살았고, 스스로 자기연민과 수치심을 느끼기도 했다는 걸 인정합니다.
장애, 모성, 아름다움이라는 꼬리표를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는 <이지 뷰티>. 스스로 합리화하며 설득해왔던 관찰자로서의 가짜 제약에서 벗어나 깊은 아름다움 속에서 해방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펼쳐집니다.
죽은 철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에 위안 얻으며 중립의 방에 숨어들었던 선택에서 벗어나는 생생한 스토리 속에서 삶의 아름다운 가치를 만나게 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천골무형성증Sacral Agenesis’
다리의 무릎 아래 부분과 두 발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나머지 신체와 균형이 맞지 않는 몸 상태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척추와 골반을 연결하는 뼈인 천골이 없다. 그럼에도 선천성 장애를 지닌 여성 철학자의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관한 깊은 사유가 담겨있다.
세상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부정당하고 상처받으며 자신이 ‘장애인’임을 깨닫자 본능적으로 이를 외면합니다. 몸이 불편한 것은 삶이 불편한 것이지 삶의 전부가 나쁜건 아니다. 자신의 결여된 부분을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며 자신을 지키낸다. 여성,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그에 관한 완벽한 설명이 아니다. 장애인 여성의 삶은 그것들을 포함한 모든 요소와 시간의 연속이다. 저자는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철학적 사유로 풀어낸다.
우리는 장애 여성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장애는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 지는 것이라는 말 한마디에 우리 사회가 가진 장애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깨뜨려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장애와 여성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장애여성처럼 한 몸으로 생각해야 한다. 장애와 여성을 분리할 때 마치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여성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노화와 장애는 삶에 있어서 당연한 수순이며 수치러운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의료의 힘으로 얼마든지 노화를 늦출 수 있고 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듯 싶다. 장애에 대해 문제점만 부각시키려고 한다.
가끔 읽고 나면 마음속에서 한동안 끊임없이 잔물결 치는 이야기들이 있다.
기대를 크게 하지 않고 읽었던 <이지뷰티>가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은 장애인으로서, 여성으로서, 부인으로서, 엄마로서, 박사과정 강사로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이야기다.
주인공 클로이 쿠퍼 존스는 술집에서 친구였던 남성 둘과 대화를 하다 어떤 감정을 느끼고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녀는 박물관과 오페라 공연, 아름다운 자연들을 만끽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고관절이형성이라는 고관절들이 서로 잘 맞지 않아 불안정해 통증이 지속되는 병을 갖고있다. 또한 천골무형성증이라는, 척추와 골반을 연결하는 뼈인 천골이 없는 병을 앓고있다. 걷기 힘들고 작고 형편없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 장애는 태어날때부터 그녀와 함께하는 것이었다.
이런 그녀가 평생 마주했고 스스로도 되새겼던 질문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였다.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것인지 객관적인 것인지 그 둘 다 섞여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본 미술 작품은 대칭과 완벽을 구현했고, 그리스 철학과 미술은 완벽한 것을 추구했다. 그러나 장애인인 그녀의 삶은 균형이 맞지 않고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 삶이 그들 자신의 삶보다 원천적으로 가치가 낮다고 생각했을까?" (p.125)
장애인은 동정받는 삶이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먼저 제한을 두고 틀을 벗어나면 놀라는 방식이었다. 장애인이란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항상 그녀를 뒤따라다녔다. 동료 콜린과의 대화에서 장애인의 삶의 모든 부분은 부정적이며 장애인으로 태어나느니 비장애인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이 문제는 클로이가 가르치는 과목도 관련되어 있었다. 장애인 부모는 자식을 비장애인으로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 '장애인'은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서있고 실제로 어떤 상황에 마주하는가.
"사람들은 나를 불편해했고, 때로는 잔인하게 굴었지만, 대개의 경우 그저 나를 끼워주기가 어려우니 나를 가장자리 남겨두는 게 편하다고 느꼈다. 내 몸은 항상 눈에 보였지만, 내가 나의 '자아'라고 불렀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불가피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나 자신을 배제했다. 더 현실적인 삶, 사방에서 반짝이는 삶, 발곡 충만하고 접근 불가능한 삶의 흐름에서 밀려나기 전에 나만의 고독한 장소로 대피했다." (p.138)
"나는 고대 그리스 초기의 객관적이고 측정 가능한 아름다움이라는 이론을 좋아했던 적이 없고, 그런 아름다움이 진리나 정의와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미덕이라고 주장한 적도 없다. 나는 항상 '아름다움은 외적 속성들의 집합이 아니라 깊이 사색하는 마음 속에 존재한다'는 흄의 이론을 선호했다." (p.194)
그녀에겐 그녀만의 공간인 '중립의 방'이 필요했다. 마음이 요동치고 불안한 상황이 있으면 그녀만의 마음 속 공간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자신만의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갈망했다. '객관적이고 측정 가능한 아름다움'엔 장애인이 낄 공간이 없었다. 그녀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철학자들과 이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것이 스스로도 편한 일이었다. 서로가 불편한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 철학자들의 이론을 '절망에 대한 강력한 해독제'로 사용했다.
그녀는 이탈리아 여행을 다니며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을 보게되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이 내세우는 주관적 아름다움의 주장과 다르게 객관적인 아름다움이란 실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가 만난 많은 남자들은 그녀의 몸을 먼저 보고, 나중에 그녀의 다양한 특징을 보았다. 반대로 그의 남편 엔드류는 그저 복잡할 거 없이 그녀의 전부를 원했다. 그녀를 온전히 바라본 것이다. "그는 복잡할 것도 없이 나의 전부를 원했다." 어떤 장애인으로서의 편견은 물론, 기대도 없었다. "그와 함께하는 날들은 영화 같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펼쳐졌다."
클로이에게 출석 문제로 속을 썩인 학생 샤론이 어느날 그녀에게 다시 찾아와 사과하면서, 비욘세 콘서트를 간 이야기를 한다. 거기서 자신이 신적인 경험을 했다고 고백하며 꼭 가서 보라고 추천했다. 샤론은 비욘세를 보면서 "자기가 있을 곳을 정확히 아는 한 여성'을 보았고, 자신에게 질문했다고 말한다.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인가?나는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지금 이순간에 확신을 가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클로이는 그런 말을 비웃듯이 대했다. 자신의 취향과 지적 수준에는 그런 무대가 별로 끌리지 않을 것이라고. 그녀는 쉬운 아름다음과 어려운 아름다움을 구분했다. 쉬운 아름다움은 눈에 잘 띄고 편안한 것이고 어려운 아름다움은 시간과 인내와 더 많은 집중을 요구하는 것. 샤론의 이야기를 엔드류에게 말했는데, 엔드류는 클로이에게 오히려 비욘세 콘서트에 가고싶어하는 것 같다며 생일선물로 비욘세의 콘서트 티켓을 받는다.
힘겹게 콘서트장에서 비욘세를 본 저자는 샤론이 말했던 그 신적인 경험, 함께하는 경험을 느낀다. 사람들은 하나가 되었고 저자 또한 그 흐름의 일부였다. 비욘세는 현재의 절대성을 보여주고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상태에 진입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함께함을 느낀다.
중립의 방은 중립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 그녀는 선을 그었다. 그녀의 세상은 죽은 철학자들과의 대화였다. 아름다움은 한번에 뚜렷하게 나오는 게 아니라 조금씩 소화하는 것이었다.
클로이는 많은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꼈고, 특히 울프강을 낳았을 때 큰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엄마에게도 자신을 낳았을 때 두렵지 않았냐고 물어본다. 그녀의 엄마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히려 빛을 봤다고 말한다. 엄마는 빛나는 아기를 보고 있었다. 그곳에 아기와 함께 있었던 엄마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자신만의 세상에 빠지지 않고, 그저 함께 있었다.
"나는 아름다움이 내 온몸을 뒤흔들며 관통하면서 두렷하게 부정할 수 없게 진실을 창조하고, 너무나 강렬한 광선을 발사해 내 삶 전체를 밝혀주는 단 하나의 순수한 느낌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를 찾아온 것은 자욱하게 떠다니는 무더기 같은 것이었고 거기에는 과제가 따라왔다. 뚜렷하게 보이는 것을 내가 볼 수 있을까? 모래로 떡칠된 울프강의 머리카락. 가볍게 떨리는 울프강의 자그마한 어깨. 울프강의 매끈하고 볼록한 선홍색 잇몸. 새로운 치아가 잇모을 꿇고 나오면서 팽팽한 긴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울프강의 빛나는 두 눈, 회색 눈동자. 내 손 안에 있는 울프강의 손. 우리는 완벽을 선물받지 않았고, 신성함도, 대칭도, 우아한 비례도, 나쁜 패도, 저주도 받지 않았다. 우리는 함게 보낼 한평생만을 선물받았다. 우리의 삶은 쉬운 삶도 아니고 고통 없는 삶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현실의 삶을 받았다. 무서울 정도로 일상적이면서도 숭고한 삶. 나는 더 이상 다른 삶을 염원하면서 그 삶의 아름다움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p.443
클로이는 브루클린 술집에서 링컨의 친구였던 카일을 만나 이야기를 한다. 이혼한 카일은 자신의 결혼생활에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러다 상대방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궁금해 하며 "선생님의 남편은 선생님의 몸이 부담스러울 때 어떻게 참아내는지 알고 싶은데요?" 라는 무례한 질문을 한다. 하지만 삶의 관점이 달라진 클로이는 이전과 다르게 생각한다.
"나의 경우 사람들이 항상 나를 두 번, 세 번 다시 생각해 주지는 않았고, 사람들이 항상 나를 온전한 조재로 봐주지도 않았다. 그건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카일 같은 사람들은 항상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카일을 온전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건 건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해서 내가 잃을 건 없다. 반대로 내가 사람들 앞에서 느끼곤 했던 그 모든 분노와 불안, 공포와 혐오는 나에게서 거의 모든 걸 앗아갔다."
원하지 않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장애라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들의 의식과는 다르게 클로이 그저 어딘가 부족하지 않은 그저'나'로서 살아갔다. 사람들은 그녀를 온전하지 않은 인격체로 바라보곤 했지만, 그런 시선에 의해 클로이는 방에 들어가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클로이는 아들 울프강과 마술공연을 보러간다. 울프강은 속임수를 눈치 채고 아는 척을 하며 마술이 재미 없다고 말하는데, 공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완벽하게 속아버리며 마술의 대단함을 느낀다. 그 모습을 보고 앤드류는 말한다 "그것 보렴! 이제부터는 너무 똑똑한 척 하지 마라, 요 시니컬한 녀석" 세상은 잘난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우린 잘난 나의 머리를 거세게 망치로 맞는 경험을 한다.
클로이는 철학자 아이리스 머독의 책을 읽는다. 머독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가짜 베일을 통해 사물을 보는데, 그 베일은 세상의 일부를 숨긴다"고. 클로이는 자신만이 만들어낸 가짜 베일을 통해 세상을 보고 가려냈다. 경험을 추상화해서 이론으로 만들며 우월감을 느꼈다. 같이하는 경험, 대중에 휩쓸리는 것을 깔보고 홀로 도피한 장소에서 철학 이론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현실의 경험은 그의 생각을 바꿨다.
그녀가 평생 질문하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 또 이상적인 세상을 추구하는 문제는 세상을 멀리서 바라보며 평가하면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머독은 말한다. 우리는 이상적인 것에 이끌려서 변화하지 않으며,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 바깥의 세계에 주의를 기울인다고. 때때로 우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현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그 아름다움은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 대상의 진실된 모습을 볼 기회를 준다. 그렇게 아름다움을 경험하다 보면 세상이 달라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통해 '살찐 고집쟁이 자아'로부터 잠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잊을'수 있고, 그러면 우리의 의식의 질이 향상된다"
p.489
세상은 맞딱뜨려야 하고, 우린 거기서 아름다움을 얻는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한겨레 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나를 둘러싼 어휘들이 점점 줄어들고 축소되는 것들을 느끼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연습을 자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많은 다짐들이 으레 그러듯, 해야겠다고 생각한 만큼에 비하면 턱 없이 작은 시도들이긴 했지만, 단순히 ‘좋다’라는 말을 어떻게 풍성하게 펼칠까를 고민하는 시간은 단 1초도 아깝지 않았다. 말에 촘촘한 결을 더하는 일은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대상 뿐만 아니라, 그 대상을 설명하기 위해 떠올린 단어 하나하나를 몇번이고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는 물론, 좁고 납작해서 우리를 거부하고 상처주는 많은 단어들에게 풍성한 의미를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탈리아의 미술관, 밀라노의 비욘세 콘서트장, 프놈펜의 킬링필드를 거닐면서 작가는 장애인이자, 어머니이자, 여성인 자신의 여러 ‘속성’을 향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유와 질문,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걸어온 삶의 궤적을 나침반 삼아 점점 더 다가간다. 자기도 모르는 새 내재화했던 외부인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판단하지 않으려 하면서.
덤덤한 작가의 글을 읽는 동안 나는 감정적으로 읽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감정 이입과 공감 보다는 우리 사회가 이런 글을, 이런 작가를 필요로 하는 이유, 우리가 더 많이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 시끄럽고 부지런한 혐오에 맞서 공론장에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 등등에 대해 더 초점을 맞추기 위해 감정적으로 무뎌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역겹게도 선의와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합의한 상식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타인의 ‘악의 없는’ 말과 행동들에 (도대체 어떻게 우생학이 좋은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누군가의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계속 화가 나거나 눈물이 나거나 아님 화를 내면서 눈물을 흘릴 만큼, 오히려 작가의 글이 퍼석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입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이입한 바람에 책의 무게와 두께에 살짝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리만큼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빨랐다.
많은 포스트잇과 그보다 더 많은 생각과 질문들을 남기면서, 삶이 본의 아니게 투쟁 그 자체인 사람의 이야기가 항상 그렇듯이.
저자가 자신의 삶으로서 치열하게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한 것과 정반대로, 아니 어쩌면 바로 그만큼, 아름다움(Beauty)이라는 단어는 쉽다(Easy).
시대에 따라 미의 기준이 바뀌는 걸 보면 절대적이지도 않고, 평가의 대상이 되는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는 데도, 누구도 그 단어를 펼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모두가 그 좁고 고루한 틈에 우리를 끼워넣으려고 한다.
어떤 것을 보고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을 하는지, 그 좁은 정의에 배제되거나 혹은 상처 받는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꼼꼼하게 살피고 치밀하게 토론했으면 한다. 언어가 단순한 의사전달의 도구가 아닌, 의사 ‘소통’의 도구로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모두의 사전을 입체적으로 다시 써야 한다.
개별 단어의 풍성한 의미는 곧 더 두터운 상상력과 더 많은 가능성, 그리고 더 작은 여집합을 의미하리라.
우리 모두가 어느 교집합에서는 작은 목소리의 소수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내가 ‘아름다움’의 정의에 추가하고 싶은 것이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 받아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이지뷰티, #클로이쿠퍼존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7기
책 제목이 이지 뷰티, 쉬운 아름다움이다. 그렇다면 어려운 아름다움도 있을까? 생각이 먼저 들었다. 철학 교수인 저자는 영국의 철학자 버나드 보샌켓이 주장한 '쉬운 아름다움'과 '어려운 아름다움'을 통해 자신의 미학, 아름다움에 대한 견해, 삶을 대하는 자세 등 자신을 성찰한다. 1여 년의 시간에 걸쳐 아름다움에 관하여 생각하고 나약한 구경꾼이었던 스스로를 벗어나려는 시도와 의지를 기록한 작품이다.
철학 교수이자 프리랜스 저널리스트인 저자 클로이 쿠퍼 존스는 선천성 희귀질환인 천골무형성증을 지니고 태어났다. 몸집이 왜소하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그녀를 대하는 타인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반응과 견해, 시선을 담고 있다. 대부분 클로이의 본질이 아닌 외면, 장애에 머무르는 편협하거나 왜곡된 시선이었다. 친절이나 배려 또한 그녀를 배제한 자신의 세상에 머무른 것들이라 그녀는 존중받았다는 느낌보다는 부정당했다는 느낌을 토로했다.
읽는 내내 잘게 쪼개지고 부서지다가 클로이에 의해 다시 모아지고 아름다움에 의해 다시 뭉쳐지고 나를 사랑하는 자신에 의해 온전한 나로 다시 빚어지는, 황홀한 경험을 했다.
"다른 장소에 다른 식으로 존재하고 싶은 갈망이 느껴졌다."
철학과 동료인 제이와 가진 술자리에서 그녀를 앞에 두고 벌인 충격적인 토론에서 시작된 책은 1여 년 후 친구 링컨의 생일파티에서 카일의 무례한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저자는 이 기간 동안 여행을 반복하면서 아름다움에 관한 생각에 몰두한다.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떠난 공간에서 만난 낯선 이들과의 예상치 못한 접촉과 교류는 클로이를 뒤흔든다.
갈등이 있던 늦깎이 제자가 권했던 비욘세 콘서트를 보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꺼이 보내주었던 밀라노행. 구상했던 여행과는 다른 여정이었지만, 기존의 자신을 부수는 계기가 되어준 여행이었다. 쉬운 아름다움이라 치부했던 아름다움이 어려운 아름다움으로 현재의 절대성을 보여주고 '지금 여기에 있는' 상태로 끌어당기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방어적인 태도로 안전지대에서 과거에 머물러 있던 그녀가 현재를 인식하게 된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우리는 실제 생활에서 인간의 고통을 마주하기를 원치 않으면서
왜 예술 작품에서 인간의 고통을 마주할 때는 미학적 즐거움을 얻는가? "
박사논문 작성을 위한 캄보디아행.
클로이는 평생 남들처럼 진짜가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기에 현실 경계선 바깥에 있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툭툭 기사 체트라에게 깊은 상처를 입히게 되면서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체트라가 자신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고 필요한 게 뭔지 물어보는 진정 어린 배려를 보여주었기에 더 뼈아픈 경험이었으리라. 하지만 이를 통해 과거에서 탈피하여 움츠렸던 날개를 펼치려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클로이의 가족들. 부모님, 남편 앤드류와 아들 울프강. 클로이와 너무 닮은 아빠와 클로이를 현실 세계에 자리 잡게 양육해 준 엄마와 클로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남편 그리고 클로이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리하고 따뜻하고 섬세한 아들.
클로이 곁에 이런 가족들이 있어주었기에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영혼을 짓누르는 현실에서 탈출구를 찾을 때 너는 어디로 가니?"
탈출구를 술이나 다른 여자에게서 찾은 아빠를 보고 자란 그녀는 '중립의 방'으로 들어간다. 고통을 가라앉힐 수 있는 곳이지만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침잠할 수 있기에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녀가 일상에서 겪는 부당한 대우와 차별, 모욕을 떠올려보면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현재 속에서 진실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
이토록 영민하고 똑똑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움츠려들 수밖에 없게 만든 주변에 대한 안타까움을 넘어 아름다움을 갈구하여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고 쉼 없이 살피는 각고의 노력에 감탄하였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오면 기꺼이 도전하는 그녀의 용기가 부러웠다. 눈에 보이는 장애로 콜린이나 카일처럼 무례하고 잔인하게 대하는 타인들을 만나는 일이 있지만, 어느새 단단해진 그녀의 내면은 자신을 억누르거나 탓하지 않고 현재를 당당하게 마주 보고 있었다.
날카로운 펜으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면서 아름다움에 관해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는 철학자이자 이야기꾼인 클로이 쿠퍼 존스의 <이지 뷰티>를 만나 아름답고 충만한 삶을 선물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