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훌쩍 넘은 중년 아줌마의 손에 들린 책 한권...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
이게 얼마만인가...
풋풋했던 그 시절... 나름 시와 에세이를 즐겨 읽었던 감성소녀였었는데...
어느순간 육아책을 찾아보게 되고,
아이의 연령을 체크해 가며 함께 초딩시절을 보내고 있는 지금...
아직 내게도 소녀감성이 남아있는지
오랫만에 시집을 펼치니 기분이 묘하다.
1883년에 태어나 1931년에 생을 마감한 칼릴 지브란은
철학자이자 화가이며 레바논태생의 시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천재라 이야기하는 칼릴 지브란...
그의 러브레터 속으로 함께 녹아들어본다.
칼릴 지브란과 메리 해스켈의 러브레터와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엮은 시집...
시라는게 참 묘한 매력이 있다.
한페이지 한페이지 몇마디 안되는 문장 속에 담고 있는것들이 참 많다는거...
그리고 읽을때마다 그 속에 담겨 있는게 다르다는거...
때론 단숨에 읽어 내려가기도 하고
떄론 한페이지 한페이지가 참 더디게 넘겨지기도 하니 말이다.
" 우리의 영혼이 알고 있는 것을
우리들 스스로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무한히 더
위대한
존재들입니다. "
1915년 10월 6일의 메모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읽혀오면서 얼마나 많은 의미로 해석되었을지를 생각하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 글이 아닌가 싶다.
" 시란 무엇입니까?
꿈을 더 크게 키워 나가는 것.
그러면
음악이란 무엇입니까?
더 깊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
더 깊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힘!!
더 깊은 소리
더 깊은 소리
더 깊은 소리...
참 철학적인 이야기인듯 싶다.
오늘도 난 더 깊은 소리를 듣기 위하여 그 힘을 기른다.
음악을 통하여,
그림을 통하여,
글을 통하여...
그 내공이 쌓이면
조급해 하지도 않고,
불안해 하지도 않으려나?
음악, 글, 그림...
세개의 단어가 뫼비우스의 띠가 되어 더 깊은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부록으로 딸려온 필사노트!
이 안에 내 삶의 깊은 소리를 담아두고 싶다.
더, 더, 더, 깊은 소리를 듣기 위하여...
참으로 읽고 또 읽어도 감미로운 사랑의 이야기라 생각이 든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그뒤에 숨어 보이지 않는 위대함에 견주어 보면이라는 이글귀만으로
이시를 대변하지 않을까 한다
세월이 흘러도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싯구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칼릴지브란은 아주짧지만 강렬한 언어와 반박할수 없는 사랑의
단어들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존중하고,사랑해주는 이를 만난다면 자신의 전부를
맡길수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자유라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아름다울 뿐이다
참으로 힘든 여정이자 삶이지만 기꺼이 어깨를 내어줄 사람을 만난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이것이 사는 의미이자,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할수 있는것은 두사람의
사랑이다. 사랑은 언제나 그사람만 바라보고 있기에 말이다
모든 시편중에 가장 멋진 싯구가 나오는 장이다
바로 보여줄수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라는 시편입니다
얼마나 위대하고 큰사랑 이기에 보여주는 사랑보다 더 많은 사랑인지
아주 궁금해 진답니다
너무나 와닿는 싯구이자 깊은 생각을 할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말이다
사랑은 그런것이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보다 보여줄 수 없는 사랑의
위대함이란,,,,,,,
가늠할수 없음이다. 깊은 마음속에 내재되어있는 사랑을 보여
줄 수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렇기에 보여지는 사랑에 실망하기는 너무나 사람들의 마음이
가련하다.
안타깝지만 표현할수 없는 사랑에 대해서 말이다
연인의 사랑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지 않을까한다
작은 사랑이지만 더 큰 소중함이 담겨있음을 받아들여함이다.
사랑에는 작은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전해주는 사랑보다 더 큰마음의 소중함,그것으로 충분하니 말이다
칼릴지브란은 강조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구속하지말라고 말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아야
된다고..그저 사랑하는 사람 있는 그대로를 믿어주면 그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면 바라는 마음만큼 아픔이 더 많고 괴로움도
더 할테니 말입니다.
사랑도 욕심이 지나치면 모든것을 잃을테니깐요.
사랑에도 시련이 있기 마련인데. 그시련만큼 사랑도 깊어지지 않을까요?
뒤늦게야 깨달은 사랑은 언제나 자신속에서 숨어있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말이에요 사랑은 부딪치고 깨어져야만 비로소 알수있는
무수한 모래알처럼 말입니다.
잔잔한 파도가 아닌 거친 파도속에서도 부스러지지 않는 강함이
바로 사랑임을 말이에요
보여줄수없는 사랑에 대한 기대감보다 보여줄수 있는 사랑에도 감사하고
고마움을 느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요?
무척이나 오랜만에 칼릴지브란의 시집을 읽게되어 너무 행복한 시간
이었습니다. 지나친 감정보단 이해하는 감정을 먼저 배우게 합니다
사랑,,,,그 하나만으로도 행복함을 전할수 있다면 말입니다
행복한 시간을 뒤로한채 도한번 읽게 만듭니다
2015년의 말미를 뜨겁게 장식했던 응답하라 1988, 그 속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었던
이 얇고 작은 시집이 눈에 들어왔었더랬죠. 그 시절 저는 유치원에 갈 나이도 아닌
그런 작은 아이였기에 그 시절의 감성을 알기가 어려웠었습니다. 하지만 그 드라마를
통해서 그 시절의 배경을 어렴풋이 기억해내고 그 때 유행하던 노래를 듣고 그 가사를
음미하면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기도 했었습니다. 적어도 그 시대에는
요즘과 같이 빠르고 쉽게 사그라드는 사랑을 쉽게 보지는 못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다시 인쇄되어 나온 이 책은 오롯이 표지부터 옛 시절의
감성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칼릴 지브란을 알게 된 것은 몇 해전 예언자라는 책을 통해서 입니다.
그 책을 통해 조금은 어렸던 저는 인생에 대한 것을 조금이나마 미리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여하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칼릴 지브란의 작품 그 많은 작품들 중
시로서 다가온 칼릴 지브란을 만난 것은 사랑에 대한 보다 성숙한 마음가짐을
갖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표지의 글 처럼 사랑은 그 속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짝사랑이건 이미 사귀고 있는 사이건 간에 남녀가 서로에게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수많은 생각과 서로를 배려하여 만들어진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잠언처럼 들리는 칼릴 지브란과 메리 해스켈의 이야기는 두 사람의 생각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두 사람의 생각으로 들리면서도 묘하게 하나의
화성을 이루듯 다가옵니다. 주거니 받거니 이어지는 그들의 속삭임 속에서
사랑에 대한 것과 자아에 대한 것과 주변의 것을 통해 무엇인가를 느끼는 것 까지도
생각해보게 만드는 시집이라기에는 보다 그들이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느꼈던 것을
하루의 마무리를 하면서 적어 놓은 일기장 같은 느낌이 드는 책입니다.
이 책의 한 페이지가 생각납니다. 따스함을 받아들이려면 천둥과 번개와 같은
시련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사랑도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사랑은
늘 달콤하고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 그 착각으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면
금방 헤어져버리게 되는 흔한 사랑이 많아진 요즘 세상에서 큰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비단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말이든 행동이든
그 뒤의 의미를 알아가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그런 깨달음과 함께.
작게 삶으로 018 편지
《그대 타오르는 불꽃이여》
칼릴 지브란 글
김한 옮김
고려원
1979.2.20.
(책이 없어서 공저 책을 올립니다.)
《그대 타오르는 불꽃이여》는 벌써 마흔 해가 넘어가는 빛바랜 책이다. 칼릴 지브란 님하고 메리 헤스켈 님이 주고받은 글을 묶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메리 헤스켈 님 이름이 지은이 이름으로 안 들어갔다. 세로쓰기인 묵은 책이고, 종이를 넘기려고 집으면 으스러진다. 불에 타다 만 종이 같고, 둘레가 나무빛깔처럼 짙다. 헌책집을 숱하게 들락거렸을는지 모른다.
내가 모아 놓은 글월을 떠올려 본다. 고등학교 때부터 큰아이를 낳아 기를 적에 쓴 글월을 그대로 두었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때에는 좋아하는 동무한테 보내고, 크리스마스나 생일에 맞추어 서로 글월을 주고받았다.
묵은 책 못지않게 묵은 내 글월을 헤아리는데, 이 글월꾸러미 가운데 우리 짝하고 주고받은 글월이 있다. 내가 짝한테 보낼 적에는 공책에 먼저 써서 옮겨적었다. 까맣게 지우고 쓴 글월이 있고, 짝한테서 받은 글월이 다섯 자락이고, 꽃다발에 넣어 준 엽서가 둘 있다. “표현을 못하는 것이 안타깝소 … 나의 앞으로도 변함없는 사랑 보내오!!! 여보!!!” 예전에 받은 엽서는 짝을 맺고서 받았는데, 이제 와 다시 보니 웃음이 난다.
짝하고 쉰두 달을 사귀는 동안 주고받은 글월은 고작 다섯이다. “타인의 인생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어려운 일이나 좋은 일은 항상 함께 했으면 좋을 것 같구나 … 첫 편지 사연이 밝고 즐거운 내용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 편지 받아 보고 나의 성의가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나쁜 평가 할까 봐 걱정이구나 … 좋은 평을 부탁한다 … 미미한 글 여기서 줄일까 한다. 1988.4.12.” 짝은 이 첫 글월처럼 데면데면 썼다. 글을 써서 띄우기보다 낮 2시에 꼭 전화를 했다. 딱히 할 말도 없이 걸었고, 전화를 끊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마음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글길이었고, 서로를 북돋우는 말을 그무렵에는 할 줄 몰랐다.
칼릴 지브란 님은 《방랑자》를 쓰고서 삶을 내려놓을 때까지 메리 헤스켈 님과 주고받은 글월이 오백 자락이 넘는단다. 《그대 타오르는 불꽃이여》에는 백하고 예순 꼭지가 실렸다. 두 사람은 ‘교장’과 ‘학생’이라는 자리가 있고, 서른한 살과 스물한 살이라는 나이가 있다. 칼릴 지브란 님은 한집을 이루기를 바라지만 메리 헤스켈 님은 손사래친다. 끝까지 틈을 두기로 하였고, 언제나 칼릴 지브란 님을 곁에서 돕는 마음을 이으려고 했다. 둘은 마음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사랑하면서, 마음으로 삶을 짓는 길을 함께했다.
둘 사이에는 감출 일이 없은 듯하다. ‘바람과 햇빛과 들판’이 서로 홀가분하게 키운다고 여긴다. 칼릴 지브란 님은 “이성과 열정이란 바다 위를 달리는 영혼의 닻과 키로 돛과 키를 내팽계친다면 표류”한다고 말한다. 마침내 삶을 내려놓을 즈음에 이르러, 앞으로 거둘 글삯(저작권)을 고스란히 메리 헤스켈 님한테 남긴다.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겨 담듯 생은 자리만 바꿀 뿐”이라는 말을 돌아본다. 서로 살리고 북돋우는 말이나 글이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본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목숨을 잇는다고 여기지만, 정작 마음을 푸르고 환하며 밝게 이어가는 사랑은 잊거나 등진 하루이지는 않을까. 밥을 잘 먹고, 옷도 멋지게 입고, 집도 크게 짓고, 자동차도 굴리고, 이래저래 겉모습은 번들거리지만, 막상 마음에는 사랑이 없이 겉치레만 하는 굴레이지는 않을까.
“장례식을 올리지 말아 달라 … 화장 후 부디 재를 줍지 말아 달라” 같은 말을 되새긴다. 사랑으로 살아가면, 사랑으로 죽음을 맞이하겠구나. 사랑으로 살지 않기에, 죽음을 앞두고 허울만 높이겠구나.
2023.8.17.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