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이 오면, 그 동안 눈도 돌리지 않았던 시집 코너에 눈이 간다.
십대에 만났던 시들을 생각하며 딱히 마음에 두고 집는 책은 아님에도, 시집 한 권을 꺼내 넘겨 보게 된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하고 있는 지금, 나를 위로 해 줄 책을 찾아 그 동안 찾지 않던 '시집'에 손을 건내본다.
몇 해 전, 복고 열풍으로 만났던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후 잊고 있던 '칼릴 지브란'.
그의 또 다른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모래. 물거품>
'모래'도 '물거품'도 왠지 금방 허물어질 것만 같은 위태로움이 들게 하는 단어들이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와는 많이 다른 책이란 생각을 하고 보게 되긴 했지만,
약간의 당혹스러움이 들 정도로 내가 생각했던 내용은 아니었다.
'모든 고독과 불안은 내 안에서 나온다'
철학적인 내용을 가득 담고 있을 것 같다고 해야할까?
<모래. 물거품>은 폭넓은 철학의 세계를 지닌
시인 칼릴 지브란의 깊은 정신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
자아와 세계, 神 그리고 아름다움과 죄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간들이 세상 속에서 만나게 되는
숱한 삶의 모습들을
깊은 성찰과 사랑의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 <영원성, 그 무한의 세계> 중에서 -
옮긴이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아, 세계, 신, 아름다움과 죄 등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삶의 모습들을
'칼릴 지브란'만의 시선으로 담담히 내뱉는 독백 같은 글들이
철학적인 내용을 담뿍 담고 있다.
짧은 문장 몇 줄로..
칼릴 지브란의 생각을 녹여내고,
그 녹여낸 생각들로 글을 보는 이들의 공감을 만나게 하는 책.
감성을 풍부하게 해 주는 책은 아니지만,
깊은 생각과 사고를 통해,
나를 한 번 돌아보고,
내 주변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책이었다.
짧은 문장도, 긴 문장도
결코 허투로 넘길 수 없었기에,
책 장 한 장을 넘기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기에, 더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인간의 의미는
그가 성취한 것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가 그토록
성취하고자 하는 열망 속에 있습니다.
- p. 26 중에서 -
아이들에게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도고 이야기하면서도
난 그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무엇인가 이루고자 노력했던 시간들.
보잘 것 없는 결과를 두고 눈물을 흘렸던 시간들도 있었다.
결과가 좋지 않았기에, 그 과정도 잊고자 했던 시간들이었는데..
그 시간들이 나를 만들었다.
<모래. 물거품>은 펼쳐지는 페이지마다 담고 있는 내용들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 했다.
갓 대학생이 되어, 멋모르면서도 선배들을 따라 최루가스 난무한 곳에 서 있기도 하고, 친구들과 모여 학사주점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떠들썩하게 놀던 그때가 생각난다. 아무리 ‘응답하라 1988’ 외쳐도 응답하지 않는, 이젠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들. 그 당시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남들이 읽기에 따라 읽었던 책들 가운데 하나가 칼릴 지브란의 책들이 아닐까 싶다. <응답하라 1988>에서 살짝 등장했던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를 시작으로 하여, 칼릴 지브란의 불세출의 명작 『예언자』, 그리고 『모래 ․ 물거품』 등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젊은이들이 끼고 다니던 그때 그 시절의 책들이 당시 그 모습 그대로 금번 진선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이렇게 나온 『모래 ․ 물거품』을 만나보니 어쩐지 그 시절이 응답하는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든다. 무엇보다 표지가 그 당시 그대로여서 추억에 젖게 만들기도 하고,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기도 하다.
칼릴 지브란의 『모래 ․ 물거품』는 1926년에 출간된 책으로 저자의 수많은 경구와 우화, 비유와 잠언 등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위대한 시인이자 철학자인 칼릴 지브란의 지혜가 담겨진 잠언들이니만큼 하나하나가 힘이 있다.
표지는 당시 그대로지만, 30년 가까이 지난 뒤에 다시 읽는 『모래 ․ 물거품』 속에 담겨진 수많은 지혜, 그 경구들은 새롭기만 하다. 그래, 칼릴 지브란의 글들이 이런 느낌이었지 싶은 글들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 이런 글도 있었구나 싶은 내용들도 많다.
삶의 지혜를 이야기하는 잠언 경구들이니만큼 빠른 속도로 읽어나가기 보다는 한 구절 한 구절을 깊이 묵상하면 더 큰 힘으로 되돌아올 그런 내용들이다. 한 구절 한 구절 곱씹어야 할 내용들임을 생각할 때, 책은 비록 얇디얇지만, 그 지혜의 두께만큼은 결코 얇지 않은 책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만약 그대가 아름다움을 노래한다면 비록 사막 한가운데 홀로 있다 하여도 들어주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40쪽)
그대는 식욕이 당기는 이상으로 먹어서는 아니 됩니다. 빵의 나머지 반쪽은 타인의 것입니다. 또한 우연히 찾아들지 모르는 낯모를 손님을 위해서도 조그마한 빵 한 덩어리는 남겨 놓아야 합니다.(52쪽)
그대가 베풀 때, 그대의 모습은 진정 자비롭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무언가 베풀 때면 얼굴을 돌리십시오. 그대의 눈에 받는 이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비춰지지 않도록.(53쪽)
어쩐지 지키기 힘겨운 삶의 당위성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당시 이런 글귀를 보며, 그래,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했던 생각들이 떠오른다. 한편으론 과연 얼마나 그런 모습으로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되고. 위대한 철학자인 칼릴 지브란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고 살아간다면, 그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만 간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게 분명한 잠언들. 역시 칼릴 지브란의 책을 다시 책장 잘 보이는 곳, 손이 쉽게 가는 곳에 꽂아 둬야겠다.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말이다.
<모래. 물거품>
칼릴 지브란 지음.
정은하 옮김.
진선books
그의 든든하고 따뜻한 후원자, 메리 헤스켈의 후원으로 프랑스에서 그림공부를 하게 되었지요.
"이상한 일입니다.우리 모두가 잘못을 변명할 때에옳은 일을 할 때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거북이는 토끼보다길에 대하여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내가 하는 말의 반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무의미하지 않은 그 나머지 반을
그대에게 전하고자
의미롭지 못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p 28
칼릴 지브란...
그를 어떤 수식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칼릴 지브란의 작품, 어느 것이든 읽다보면 그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을 만큼
삶과 지혜, 종교와 철학 그리고 평화를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더더욱 칼릴 지브란의 작품에 대해 말하기란 어려운 일이 된다.
<모래 · 물거품>을 옮긴 정은하님은 이 작품을 이렇게 말한다.
칼릴 지브란의 지혜와 철학이 빛나고 있는 영원성의 세계 <모래 ·물거품>은 우리에게 참된 삶의 의미와 진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그렇다 <모래 · 물거품>은 한편의 이야기가 아닌 짧은 글들, 혹은 시라고 할 수 있는 칼릴 지브란의 글들의 모음으로 격언, 명언이라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을 듯 싶다.
그대는 결코 그대가 아는 지식을 넘어서
어떤 사람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대가 가진 지식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입니까? p73
칼릴 지브란의 글은 깊이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읽자마자 무언가 깨달은 것 같기도 하지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게 된다.
나를 돌아보게 하고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기게 만드는 깊이가 있다.
알듯 하면서도 모호하기도 하고, 모호하기도 하면서 마음을 후벼파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내가 하는 말의 반은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무의미하지 않은 것을 전달하기 위해 무의미한 말들을 하게 된다.
수없이 많은 말을 주고 받으면서 우리는 얼마나 의미있는 말을 잘 전달하고 있을까?
아니..어쩌면 무의미한 말로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의미한 말을 하지말고 내 진짜 의미를 상대방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의미있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모래 · 물거품>을 읽다보니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이며, 이중적이고 위선적이며, 자기중심적인지가를 보게 되는 것 같다.
칼릴 지브란이 살던 시대에도 그랬고 지금을 사는 사람들도 그렇다. 인간이란 존재는 변하지 않는 것일까?
나 역시도 그런 인간 중에 하나라는 사실이 슬프면서도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언제나 기회라는 것이 있고, 선택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변화의 기회와 선택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것이 칼릴 지브란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깊이 있는 화두를 던져주는 칼릴 지브란의 <모래 · 물거품>
영혼을 울리는 위대한 정신가, 위대한 시인, 위대한 철학자 그리고 예술가, 칼릴 지브란의 <모래 · 물거품>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