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고통의 순간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질문을
담은 엔도 슈샤쿠의 『침묵』을
읽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가장 인자한 얼굴을 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찌나
섬찟하던지 아직도 그 느낌이 잊혀지지 않는다.
험악한
얼굴을 한 사람은 경계라도 하지만,
어떤 의도를
가진 사람이 인자한 얼굴에 따뜻한 말로 위로를 건내며 더욱이 신뢰까지 쌓는다면 그 수중에서 빠져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런 사람을
장르 불문 사기꾼이라 하는데,
그런
사람에게 걸리면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도리가 없다며,
심지어 자신
같은 사람도 걸리면 빠져나가지 못하니 제발 당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직업은
검사다.
검사라…우리 사회는
검사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검사를 단지
직업군의 하나로 보았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런 반응을 뒤집으면 그들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반증일 테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들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말일 테다.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검찰 수뇌부가 '뼈를 깍는
심정으로 새롭게 하겠다'는 말을
하도 많이 써서,
더 이상
깎을 뼈도 남아있지 않다는 어느 검사의 자조적인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웅도 일부 검사 때문에 싸잡아 욕 먹는 상황을 꽤 억울해 한다.
한데 참
재미있는 현상은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사람들이 검사가 글을 쓰면 읽어준다는 것이다.
그들만의
세상에 대한 궁금증의 발로는 아닐까 싶다.
그러면 나는
왜 읽었느냐,
소개 글 중
생활형 검사라는 말에 꽂혀서이다.
요즘 들어
새롭게 추가된 내 삶의 기준 중 하나가 재미인데,
『검사내전』은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충족시켜준 책이었다.
김웅은
자신을 가리켜 당청 꼴찌,
팔랑귀,
맹탕,
또라이라
칭하며 선배 검사에게 또라이에서 '집요한 또라이'로 승격되어 불렸다는 것도,
피의자에게
'의식없는 검사'라 불렸다는 것도 적는다.
자신의 수사
스타일을 보고 동료 검사가 '구걸수사의 달인'이라 불러주었다는 것도 서슴지 않는데,
이 뿐
아니다.
자신이
'알기는 칠월 귀뚜라미요,
안다니
똥파리'라는 우스꽝스러운 말도 능청스럽게 한다.
게다가
자신은 어릴 때부터 온갖 병을 두루 섭렵했으며,
백만 문청
중 하나라 출판사가 책을 내자는 제의를 했을 때 회가 동했음도 솔직히 고백한다.
김웅은
자신이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 직장 생활이 늘 순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검사를 하면서 별 탈이 없었던 것은,
검찰이라는
조직 문화가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유연하고 열려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김웅은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이 되어 자신이 맡은 임무를 다하겠다'는 선배
검사의 소박한 이야기를 가슴에 담은 듯 하였고,
그 또한
자신의 위치를 생활형 검사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생활형
검사는 형사부 소속의 검사들에게 주로 해당되는 말인듯 하다.
"검사는 남의
말을 들어주는 직업인데,
또 남의
말을 절대로 안 듣는 직업이기도 하다.
검사라는
직업이 참 맹랑한 게,
어서 말을
하라고 하고서 정작 말을 하면 거짓말한다고 윽박지르곤 한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 것이다.
늘 술래
역할만 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나는 수사
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남의 말을 잘 듣는 능력을 가졌다.
의심스럽겠지만
'경청하는
법'이라는
주제의 강의도 했다."
(138쪽)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경청이
중요하니 어쩌니 해도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검사실에서
하는 말들은 대부분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조사받는
피의자의 말도 거짓말이고,
돈을 바라고
고소한 것은
아니라는 고소인의 말도 거짓말이다.
조사하면 다
밝혀진다고 위협하는 검사의 말도 거짓말이다.
조사해서 다
밝혀질 거라면 굳이 사실을 실토하라고 수고롭게 설득할 리 없다.
그래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무렵 나는 사람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139~140쪽)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남의 말을 잘 믿고 잘 속는 나로 복귀했다.
잘 믿고 잘
속는 것은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지만,
비웃었던
남의 말이 진실이었다는 게 밝혀지면 많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말도 많은 편이지만 어떤 사람의 말도 잘 들어주고 맞장구도 잘 쳐준다."
(140쪽)
잘 읽히는
책이다.
편하게
읽히기도 하고,
주의 깊게
읽으면 더 좋은 곳도 꽤 많다.
읽다보니
검사직의 애환도 조금 알겠다.
조직이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 만드는 건데,
김웅 같은
사람이 그 자리에 있다면 억울하게 해를 입은 사람들은 위로를 받겠다 싶다.
물론 안
마주치는 게 좋겠지만 말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하지않는가.
그런데 그
자리는 지푸라기가 아니라 어느 한 사람의 사회적 생존권을 쥐고 있는 자리 아닌가.
나는 사람이
답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이
재앙인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사람이 답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답이다.
이렇게
사람이 넘쳐나는데도 늘 사람을 찾는
걸 보면 좋은 사람 만나는 게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서두에
말했듯 인상 좋고 원하는 것을 다해줄 것처럼 말 풍년인 사람을 나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좋은 자리에 있음에도 자신의 별 볼 일 없음을 편히 말하는 사람이 좋다.
그렇게
말한다고 그를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겠는가.
세상 물정
모르고,
실속
없기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나지만 자신을 소탈하게 말했다고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조차 모르진 않는다.
"나는 그녀의
어리석음에 왈칵 짜증이 났지만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그녀의 진심에 그만 부끄러워졌다.
자신에게
죄를 덮어씌운 사람임에도 그녀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녀에게 "아이고
죽네,
죽어"라고 말했던
경박함이 부끄러워진다.
어릴 때
동네 아이들로부터 따돌림 당한 기억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무작정 흉내내보려 하다 보니 점점 경박해졌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혹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나 반응을 보이더라도 내 얕은 수준에서 쉽게 판단하기보다 좀 더 기다려보고 존중하는,
성숙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남의
말을 잘 믿어주는 것과 달리 그 꿈은 결국 이루지 못했다."
(165쪽)
김웅만
그렇겠는가.
누구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겠는가.
이제 나도
마무리를 해야겠다.
김웅이
그다운 말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으니,
나는 기가
막히게 내 마음을 표현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이며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김민섭의 글로 대신하련다.
"아,
역시 잘하는
놈들은…"
이 책 저자인 검사님 글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마치 무협지를 읽는 듯하다. 검사 생활동안 겪은 사건과 에피소드를 유머러스한 필치로 소개한다. 책을 읽으면 울다가 웃다가 비장해지다가 분노하다가 결국 우리사회를 생각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게 된다. 다양한 사건 속에서 피해를 당한 선량한 이웃들을 만나고, 이들을 이용해 먹는 범죄자들을 만나고, 이들 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검사의 애환을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실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고, 검사가 가운데에서 사실을 파헤쳐 정의를 구현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사건들을 들어보면 인생의 사연들이 그렇게 직선적이고 단편적이지만은 않다. 그 사건 안에는 우리들의 지나친 욕망이 꿈틀거린다. 때로는 이타적 목적의 선행이 잘못 매도되기도 한다. 선악이나 미추가 그리 단순하게 구별되지 않는 것이 우리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사기공화국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의 삶과 욕망의 드라마를 많이 그리고 있다. 금전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약자의 약한 부문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기꾼의 본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저자의 결론은 사기 사건의 대부분은 범죄자의 욕망과 피해자의 욕망이 결합해 만들어낸 화학작용이라는 것이다. 또한 범인을 검거해도 대부분의 사기 피해는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기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허황된 꿈을 꾸는 것부터 없애야 한다고 지적한다.
검사생활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기회도 제공한다. 어느 조직이나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물이 존재하고 저마다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며 생활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자신의 검사생활이란 삶을 이렇게 정리한다. “세상을 속이는 권모술수로 승자처럼 권세를 부리거나 각광을 훔치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지만, 하루하루 촌로처럼 혹은 청소부처럼 생활로서 검사 일을 하는 검사들도 있다. 세상의 비난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늘 보람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생활형 검사로 살아봤는데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383쪽)"
얼마전에 판사 생활의 실상을 보여주는 <판사유감>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법조계의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는 검찰의 이야기이다. 요즘 검찰개혁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로서는 검찰 내부에서 일어나는 세부적 사실을 알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민낯을 보여주는 이런 종류의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드라마나 뉴스에 비치는 검찰의 모습과 진짜 현실과의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영화에《검사외전》이 있다면 책에는『검사내전』이 있다. 인천지검에서 공안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웅 검사의 기록이다. 별명이 ‘또라이’, 더 나아가 ‘집요한 또라이’였다고 하는데, 뭔가 독특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그 시작부터 남다른데, ‘사기 공화국 풍경’부터 보여 준다. 이런 사기가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조언 같다.(사기는 각자가 알아서 피해야 한다며 매정하게 말하고 있다) 김웅 검사에 따르면 사기의 공식이 있다. 사기의 첫 번째 공식은 피해자의 욕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보이스 피싱처럼 불안감으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사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기는 피해자의 욕심을 이용한다. 사기꾼들의 속임수란 것은 실상 제비가 물어온 박씨에서 고대광실 기와집이 나온다는 것만큼 허무맹랑하다. 맨 정신으로 들으면 누구나 말도 안 되는 사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배운 논리와 이성을 조금만 사용하면 손쉽게 물리칠 수 있다.(p. 62) 사기꾼은 없는 사람, 약한 사람, 힘든 사람, 타인의 선의를 근거 없이 믿는 사람들을 노린다. 이것이 사기의 서글픈 두 번째 공식이다. 그러니 설마 자기같이 어려운 사람을 등쳐먹겠느냐고 안심하지 마시라.(p. 86) 어설프게 아는 것은 사기당하는 지름길이다. 사기의 세 번째 공식이다. 나름대로 알아보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주변의 지인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정보는 없느니만 못하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대신 해주는 것은 없다. 대신해주겠다는 사람은 대개 브로커다. 뭐든 새로운 일을 하려면 그곳에서 직접 6개월 이상 일해보고 나서 결정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냥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은 모조리 거짓말이다. 좋은 것을 굳이 광고까지 해서 당신에게 알려주는 선의란 없으며, 만약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절대 당신의 순번까지 돌아오지는 않는다.(p. 97) 이 공식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범죄 피해자가 되는 것은 큰 위기이기 때문이다.
재산을 비롯한 물리적인 피해를 당할 뿐만 아니라 커다란 정신적 상처를 입는다. 더욱이 사람과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도 잃는다. 살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다. 흔히 사람들은 위기가 기회라고 설교한다. 정말 그럴까? 주변에서 그런 사례를 직접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듯 위기는 위기다. 그것이 기회라고 말하는 사람은 위기를 겪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위기가 진짜 기회라면 위기를 만들어주는 컨설팅 회사가 있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해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들을 잘 들어보면 사실 위기가 아니었던 경우가 더 많다. 단순한 순환 과정에서의 일시적인 부침에 불과한 것을 크나큰 위기였던 것처럼 호들갑 떠는 이유는 자신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포장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심각한 타격을 주지 않는 것은 위기가 아니다. 위기란 대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게다가 막 걸음을 떼는 영민 씨 같은 청년들에게 닥치는 위기는 재기 불능의 타격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위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위기는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예방하고 피해야 하는 것이다. (p. 103)
영민 씨의 사연을 잠깐 이야기하자면 35억 원의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전세 계약을 한다. 어쩔 수 없었다. 그곳이 강인하며 신실한 청년이 머물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었기 때문이다.(p. 100) 사기의 서글픈 두 번째 공식은 알면서도 당하게 만든다. 김웅 검사는 사기 공화국 풍경을 통해 결국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이어서 ‘사람들,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진다. 여기서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데, ‘산도박장 박 여사’가 인상적이다. 말발에 놀라게 하더니 마지막에는 울게 만든다.
가끔 누군가 법이 무엇이냐고 꾸짖듯이 물어보면 박여사와 그 딸아이가 생각난다. 그렇다고 내가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화두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그저 검사란 사람 공부하기 좋은 자리이구나라는 생각 정도를 하게 되었다. 검사실은, 학구적인 분위기도 없고, 과거에만 천착하지만, 법이 우리 사회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는 자리다. 뭐랄까,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사회 현실과 요청에 기초한 법철학을 시작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과 이상, 법의 지배와 실제적인 정의, 법적 안정성과 현실적인 법 감정 사이의 대립과 긴장을 직접 마주하고,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요구들과 그것들이 어떻게 법으로 반영되는지, 또 어떻게 왜곡되며 법 실무가들에 의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경험할 수 있다. 입법 절차에서 표출된 국민들의 요구와 감정, 정상배들의 불온하고 무책임한 책동들, 그 사이에서 절차적 정당성과 중용을 지키려는 노력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점철되어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형식적인 법률들, 그것들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p. 220~ 221)
김웅 검사는 자신이 본 것을 독자들에게도 보여 준다. 자신의 사생활까지 드러낸다.(그의 별명이 왜 ‘또라이’, 더 나아가 ‘집요한 또라이’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 ‘법의 본질’을 통해서는 법이 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형사처벌 편의주의를 경계하기도 한다. 되도록 법과 엮이지 않고 사는 게 좋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다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실망하기는 이르다. 국민들에게는 재판할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언젠가는 사법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때는 법이 제발 약한 사람들의 편이었으면 좋겠다. 김웅 검사의 표현대로 이 책이 검사라는 직업의 이면이나 실상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p. 383) 대신 검사와 엮인 사람들의 실상을 알려주고 있다. 수사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남의 말을 잘 듣는 능력을 가졌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p. 138) 그 남의 말이 빛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책이다.
현직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쓴 [개인주의자 선언]과 [판사유감]을 읽고 나니, 이번에는 현직 부장검사의 책이 손에 들리게 되었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현직 판사의 글이 전혀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읽힌다는 점에 놀라게 되었는데, 이제는 현직 검사의 책이라니. 다음에는 변호사의 책을 읽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법연수원 성적으로는 단연 판사가 검사보다 뛰어나겠지만, 이 책 [검사내전]을 통해 만나게 되는 검사를 직업으로 가진 저자의 글은 얼마전에 읽었던 현직 판사의 글에 비해 상당히 인상적이다. 전에 읽었던 책을 떠올리자면, 김 훈의 [라면을 끓이며]가 떠오를 정도로 치밀하고 탁월한 묘사와 표현은 읽는 내내 밑줄을 치게 만든다. ‘필사라도 해서 이런 표현을 내 것으로만 만들 수 있다면’ 하는 바램이 들 정도로.
전에 상영되었던 영화 [더 킹]에서 나오는 검사들의 힘(?)과 ‘가오’는 온데간데 없고, 그저 [생활형 검사]의 사람과 세상 공부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소박한 직업인으로서의 검사를 재미있게 소개한다. 4대 권력기관에 속하는 검찰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을 깨는 일종의 폭로(?)일지도 모르는 글에서 저자의 인간적인 품격과 소신이 느껴진다. 저자에 따르면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검사의 모습과 현실 사이에는 ‘항공모함 서너 개는 교행할 수 있을’ 만한 간격이 있다고 한다. 그런 검사들의 실제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일독의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법의 수호자로서, 범죄를 단죄하는 심판자로서의 직업적 소명을 가지면서도 사람에 대한 애정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저자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진하게 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철학이 몸에 밴 까닭일까. 아니면 범죄로부터 정신적 물질적 신체적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모습에 동정과 연민을 느끼게 되어서일까.
저자는 검사라는 직업을 통해 많은 사건을 접하면서 특히 사기공화국이 된 우리나라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사기 피해자 뿐 아니라 죄를 짓게 된 사람들의 사연과 이야기들도 풀어 나간다. 사기를 저질러서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해 재수(?)없이 걸려서 받는 법적 처벌이 크지 않다는 가성비의 논리가 사기범이 범람하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내용에서는 분노를 넘어 허탈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검사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된 범죄의 단면과 속성을 자세히 설명한다. 국민들이 어떤 범죄에 쉽게 노출되는지를 통계적 숫자를 통해 알려주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심리와 범행동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독자들에게 그것과 연관되는 방어기제를 제공한다. 법을 집행하는 일의 특성상 범죄자와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에 있겠지만, 중립적인 관점에서 범죄자의 모습과 삶, 그리고 범죄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동시에 지켜보면서 느끼는 인간적인 고뇌를 엿보게 된다. 휴머니스트라고 해야할까? 이런 고민의 흔적에서 냉철한 이성과 판단으로 단죄하는 검찰의 모습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면서 얻게 되는 압박감과 고민을 공감하게 된다.
검사의 사생활과 검찰청 내부에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는 현실 속의 검사의 모습을 독자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재미를 자아낸다. 나름 성실하지만 일만 하는 것을 불신하고 늘 게으른 것을 동경한다는 저자 김 웅. 저자는 고백하기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없지만 싫어하는 것은 명확해서 [떼로 하는 것]은 거의 다 싫어한다면서 밥도 구내식당에서 혼자, 술도 혼술, 등산도 혼자한다는 일종의 ‘독고다이(?)’체질인 듯 하다. 그런 성향의 검사가 폐쇄적이면서도 위계질서가 명확한 검찰조직에서 좌충우돌하며 겪게 된 체험기를 들려주면서, 자신이 이룬 검찰 조직에서 대형 사고(?)를 친 전설적인 일화도 소개한다. 성장과정에서의 일화, 검찰이라는 조직내에서 생긴 에피소드는 읽는 내내 웃음과 공감을 동시에 얻게 되는 재미있는 대목들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법의 본질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검찰의 일이 많다고 하지만 결국 우리 사법 제도의 핵심이자 대들보는 법원이라고 단정한다. 아무리 큰 보름달이라도 흐린 해보다 밝을 수는 없다면서, 검찰의 업무가 형사 사건에 국한된다면 법원은 민사, 형사, 행정, 특허, 가사, 소년 사건 등을 모두 담당한다는 것이다. 법원에 대한 존중과 그 지위를 인정하는 것 같았지만,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 형님이 먼저 본을 보여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우리나라 사법 제도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법원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며 사법 제도 개혁의 핵심은 법원의 개혁이라 강조한다. 대들보 썩어 가는데 마루만 바꾼다고 새 집이 되는 건 아니라면서.
법원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한 이유로 법원의 순혈주의와 무오주의를 꼽으면서, 특히 우리나라 재벌의 횡포가 이렇게 극에 달하게 된 데에는 법조계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최근 10여년 동안 10대 재벌 그룹의 총수 중 7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실형을 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모두 집행유예로 나왔고, 더욱 놀라운 것은 재벌들 모두 법원에 가기 전에는 대부분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중병이 들었는데, 재판이 끝난 후 집행유예가 선고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멀쩡해졌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전에 상영된 영화 [내부자들]에서 휠체어 탄 재벌 총수의 모습이 떠오르게 된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법원은 앉은뱅이도 일으켜 세운 예수님과 동급이라고 돌직구를 날린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국민들 사이에서 의심이나 확증이 아닌, 당연한 것으로 체념의 단계까지 이르면 그 사회는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공정하지 않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는 반칙과 편법이 무언가를 이루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고, 강자만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정글과도 같은 사회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사회는 대중의 분노를 견디지 못할 것이고, 결국 그 사회는 위태롭고 존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저자 김웅 검사의 견해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정치적 신조를 국민앞에 약속하지 않았나 싶다. 중요한 가치이자 건전한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열심히 밑줄을 친 이유는 공감하는 대목만이 아니라, 나중에 꼭 한번 참고해 써볼만한 기발한 표현과 비유, 적절한 묘사가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교본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유려한 문장들이 매우 많다. 표현의 미학을 넘어 묵직한 임팩트가 실린 저자의 글은 공감과 재미,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검사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걷어버리게 되고,생각해 볼만한 현실 속의 주제에 대한 비평적 시선을 갖게 해주며, 참신한 표현에 미소지으며 저자의 가치관에 수긍하게 되는 의미있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