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근대 한국 예술가의 삶을 다룬 책이 나왔을까?
근대(近代).
서양에서 산업혁명 이후인 18세기에서 제2차 세계대전(1945)까지를 가리키는 용어다. 동양에서는 나라마다 조금 다른 시기를 가리키는데, 국사편찬위원회의 분류에 따르면, 한국은 흥선대원군의 집권(1864)부터 광복(1945)까지라고 한다. 혼란과 격동의 시대인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해당한다. 게다가 이 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에게 붙여진 ‘친일파’ 혹은 ‘빨갱이’ 낙인은 그 혼란기를 버텨온 많은 예술가들의 상당수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게 만드는 원죄(原罪)였다.
한국 근대기의 수많은 예술가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각자의 시련을 딛고 내면을 벼리는 과정을 거쳐,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한 이들이었다. 세상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예술가끼리는 서로 자유롭게 연대하고 의지하며, 굶어 죽어도 ‘멋’을 유지했던 인간들이었다. 인간 본연의 순수함과 정직함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높은 가치였기 때문에, 세속의 무가치한 경쟁과 권력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대체로 속세와 동떨어진 나머지 살아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그림이나 조각을 팔지 못해 가난했으며, 심지어 죽고 나서 오늘날까지 많은 이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지금도 한국인 대부분이 이름을 알고 있는 근대미술가는 기껏해야 이중섭, 박수근 정도에 머물러 있지 않나. 외국 작가라면 훨씬 더 많은 이름을 나열할 수 있는 사람들도 한국 작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pp. 5~6]
최근 근대 경성(京城)의 예술가들의 삶을 다루는 기획이 몇 권 나왔다. 이 책, <살롱 드 경성>을 비롯해서 황정수의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서촌편>(2022)과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북촌편>(2022)는 아마도 이런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반성이 아닐까?
네 개의 틀로 분류한 예술가들의 삶
저자는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며 2012년부터 한국 근대작가들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작가들의 아카이브(편지, 일기, 사진, 노트 등)를 체계적으로 수집 및 구축하는 업무를 최초로 기획했다. 그리고, 이에 기반한 풍부한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이중섭: 백 년의 신화], [유영국: 절대와 자유] 등 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 작가의 개인전과 1930~40년 경성을 무대로 펼쳐진 미술과 문학의 상호관계를 보여주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를 기획했다고 한다. 나아가 이 전시를 계기로 신문에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을 연재했고, 이를 모아 이 책 <살롱 드 경성>을 출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서 전시회를 둘러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 책, <샬롱 드 경성>(2023)은 크게 4장으로 구성된다.
‘1장 화가와 시인의 우정’에서는 ‘문명개화(文明開化)’라는 이름으로 밀어닥친 신문물의 세례를 받으면서도 옛 문인(文人)처럼 화가와 시인, 소설가가 장르를 넘나드는 우정과 협업을 통해 서로의 예술 세계를 성장시키는 과정을 소개한다.
<오감도(烏瞰圖)> 등 초현실주의 시와 심리소설의 개척자로 알려진 이상(李箱, 1910~1937)과 그의 절친으로 유명한 한국 최고의 야수파 화가 서산(西山) 구본웅(具本雄, 1906~1952)의 우정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적 모더니즘의 완성자라는 시인 백석(白石, 1912~1996)과 삽화가로 명성을 떨친 정현웅(鄭玄雄, 1910~1976), 한국에 모더니즘을 소개한 김기림(金起林, 1908~?)과 <조선복식고(朝鮮服飾考)>를 통해 복식사(服飾史)를 개척한 청정(靑汀) 이여성(李如星, 1901~?) 등의 이야기는 낯설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재북(在北), 월북(越北), 납북(拉北) 등의 사유로 상당 기간 그들의 작품까지도 금기(禁忌)시 되었기 때문이다.
박완서(朴婉緖, 1931~2011)의 소설 <나목(裸木)>의 집필 계기가 된, 미석(美石) 박수근(朴壽根, 1914~1965)의 유작전(遺作展)은 인연이 가져다 준 또 다른 형태의 예술 세계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박완서’라는 소설가가 세상에 나오게 된 계기니까.
박수근은 1965년 5월 작고했는데, 같은 해 10월 유작전이 열렸다. 유작전이 열린다는 신문 기사를 접하고 전시회에 갔다가 박수근의 작품 앞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감동을 받은 이가 있었다. 바로 소설가 박완서(1931~2011)였다.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심정을 안고서, 박수근과의 인연을 소재로 한 소설 <나목>을 썼다. 그리고 이 소설이 1970년 <여성동아> 현상 공모에 당선되면서, 주부로 살아가던 박완서는 소설가로 등단하게 된다. 나이 39세가 될 때까지 주부였던 사람이 이런 훌륭한 소설을 썼을 리 없다며, 잡지사에서 집으로 찾아가 진짜 박완서가 쓴 것인지 증명해 보이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pp. 83~84]
‘2장 화가와 그의 아내’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들과 그들의 오늘이 있기까지 헌신적인 배우자이자 예술적 동지이며 후원자였던 아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우리는 화가는 알아도,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지 않는 한, 그들의 배우자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배우자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들의 예술세계가 성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와 그의 아내이자 수필가인 변동림(卞東琳) 아니 김향안(金鄕岸, 19116~2004)의 경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조혼 풍습으로 김환기가 일찍 결혼을 하고 딸을 셋 둔 채 이혼한 상태였으므로, 변동림에게 선뜻 고백할 처지가 못 되었다. 그런 그에게 변동림이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셋이 아니라) 열이면 어때? 데려다 잘 교육시키면 되지.” “대신 당신의 아호(어릴 때 부르던 이름)인 향안(鄕岸)을 내게 주세요.”
이렇게 해서 변동림은 김환기의 아호를 받아 김향안이 되었다. ‘같이 죽자’는 이상과의 사랑이 죽음을 맞은 후, 변동림은 김환기에게 ‘같이 살자’는 희망을 안겨주며, 김향안으로 다시 태어났다.
~ 중략 ~
김향안은 1944년 김환기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 후, 1974년 김환기가 뉴욕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30년간 그의 생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25 전쟁이 끝나고 자신의 예술이 세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고 싶어하는 김환기를 위해, 김향안은 1955년 홀로 프랑스 파리로 날아갔다. 김환기의 작품 슬라이드만 달랑 들고서! 그녀는 소르본대학과 에콜 드 루브르에 다니면서, 프랑스어와 미술사를 먼저 공부했다. 그리고 파리 화단의 주요 인사와 교제하여 김환기의 아틀리에를 구하고, 개인전 일정도 잡은 후에 김환기를 파리로 불러들였다.
~ 중략 ~
김향안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김환기를 위해, ‘화가의 아내’라는 일종의 직업 정신을 가지고 그의 성공을 지원했다. 뉴욕 체류 시절에는 백화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하고, 종일 글을 옮겨 적는 필사(筆寫)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지만, 그녀는 자신의 일을 내조라기보다 서로 돕는 일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이들의 관계는 부부임을 넘어 ‘동지(同志)’에 가까웠다. [pp. 158~160]
‘3장 화가와 그의 시대’에서는 야만의 시대를 버텨야 했던 화가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파란만장한 삶이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가 정월(晶月) 나혜석(羅蕙錫, 1896~1948)이다. 그녀는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혹은 신여성의 대표주자로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많은 이들이 그녀가 남긴 작품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도리어 파리에서의 최린(崔麟)과의 불륜 그리고 이에 따른 이혼으로 대표되는, 불꽃처럼 살다간 그녀의 삶 정도만 기억할 뿐이다. 그렇다면 예술가로서의 나혜석은 어떨까? 나혜석은 비슷한 시기에 도쿄의 여자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 후 한평생 거의 서양화를 손에서 놓지 않고 살았다. 학교 교사를 하면서도 그림을 그렸고, 남편을 따라 유럽과 미국을 돌아다닐 때에도 그림을 그렸고, 세상을 등지고 산중에 있을 때에도 그림을 그렸다. 그 무렵이 지금보다 더 여성이 사회적 활동을 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녀는 서슴없이 가시밭길을 걷는 선구자였다. 더구나 그녀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세상과 맞서며 여성으로서의 주체적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했다. 결국 이로 인해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지만 끝내 멈추지 않았다. 불행히도 1933년 화실의 화재로 그녀의 작품 대부분이 타버려서 현재 전하는 그녀의 작품은 10여 점에 불과하다. 이처럼 그녀는 온몸을 불태워 그 시대 여성에게 길을 제시하고 스스로 나아가다가 사그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길은 누군가 걸아 가야 생기는 것이므로…….
‘한국의 미켈란젤로’라고 불리었던 이쾌대(李快大, 1913~1965)은 일제의 잔재를 벗어난 한국적 리얼리즘 미술을 창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그가 더 나아갈 기회를 앗아갔다. 안 그래도 그의 형 이여성(李如星, 1901~?)이 몽양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조선인민당 등에서 활약하다가 월북했는데, 그 자신마저 인민군으로 오인되어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민족주의 좌파에 속하는, 그가 남쪽에 남을 기회를 사실상 박탈해버리는 결과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한국미술사에서 그의 이름 석자를 지우는데 충분했다.
향토적 서정주의를 추구하여 ‘한국의 고갱’이라는 평가도 있던 이인성(李仁星, 1912~1950)은 술 때문에 어이없이 목숨을 날려야 했다.
서울 북아현동에 살던 이인성은 이날도 술을 마시다가 치안대원과 시비가 붙었다. 늦은 시간도 아닌데 술 그만 마시고 집에 돌아가라며 자꾸 간섭해 대는 대원들에게 “내가 누군지 모르냐. 내가 이인성이다!”라며 큰소리를 쳤다. 그가 하도 당당하니까, 어쩌면 높은 사람인가 보다 하고 대원들이 이인성을 놓아주었다.
그런데 동네 사람에게 이인성이란 자가 누구냐고 물어보니, 권력자이기는커녕 그림 그리는 화가라고 하지 않는가. 화가 치민 치안대원들이 ‘환쟁이 주제에’ 하는 생각으로 이인성의 집을 찾아가 총을 겨누었다. 그리고 공포탄을 쏜다는 것이 그만 이인성의 머리에 적중하고 말았다. “오발이다!” 외마디를 남기고 대원들은 사라졌다. 무방비 상태의 이인성은 어린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튿날 숨을 거두었다. 향년 38세였다.
후에 소설가 최인호는 이인성의 어이없는 죽음을 두고, 절규에 가까운 글을 쏟아냈다. “누가 천재를 쏘았는가?” [pp. 249~250]
일제강점기에 마라톤의 손기정, 무용의 최승희와 더불어 일본인이 인정하는 3명의 조선인 가운데 하나였던 천재 예술가는 이렇게 주사(酒邪)로 인해 세상을 떠나야 했다.
‘4장 예술가로 살아갈 운명’은 고통과 방황을 거듭하면서도 오로지 예술을 통해 구원받을 수밖에 없었던 화가들의 짙고 깊은 ‘운명’을 이야기한다.
유아적이고 토속적인 감성을 추상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장욱진(張旭鎭, 1917~1990)의 삶은 예술가로 살아가야 할 운명을 가진 이를 보여준다.
“장 선생님은 도와드릴 건 아무것도 없어요. 혼자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실 수 있도록 내버려둔 것뿐이에요. 무엇보다 괴로울 때는, 그분이 작품이 안 되고 내부의 갈등이 심해지면 열흘이고 스무 날이고 꼬박 술만 드실 때입니다. 그때는 소금조차도 한 번 안 찍어 잡수시지요. 숫돌에 몸을 가는 것 같은 소모, 그 후에는 다시 캔버스에 밤낮없이 몰두하시지요. 옆에서 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숫돌에 몸을 가는 것 같은 소모”는 그의 삶뿐 아니라 작품에 철저하게 녹아 있다. 1958년에 그린〈까치〉라는 작품을 보자. 이중섭에게는 ‘황소’가 화가의 자화상과 같은 것이었다면, 장욱진에게는 ‘까치’가 그러했다. 장욱진은 마을 주변을 낮게 날며 세상 사람을 관찰하는 이 작고 영리한 새를 좋아했다. 그림 속 까치는 그믐날 깜깜한 밤에 홀로 나무 위에 앉아 있다. 일견 조형적으로 단순하고 귀여운 작품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자그마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가는 화면 전체를 밤의 어둠으로 새까맣게 뒤덮은 다음, 매우 가느다란 도구로 수천 수만 번의 손놀림을 통해 검은 물감을 ‘긁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앙증맞은 까치 한 마리를 남기기 위해, 도대체 화가는 얼마나 여러 번 화면을 긁고 또 긁었을까. 모두가 잠든 새벽에 작업하길 좋아했던 그는 이 작은 화면을 긁느라 얼마나 많은 새벽을 홀로 지냈을까. 작가의 철저한 고독과 치열한 내면세계가 전해져 내게 이 그림은 도무지 귀엽지가 않고, 도리어 아프고 처절해 보인다. [pp. 288~289]
나혜석처럼 ‘최초’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한국 최초의 여성 추상화가 일무(一無) 이성자(李聖子, 1918~2009)의 삶도 기구했다. 자식을 경성 최고의 사립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한 분가가 끝내 별거로 이어졌다. 남편이 서울 집에 있는 세 아들을 인천으로 데려가자 그녀는 아예 프랑스 파리로 떠나 버렸다. 예상밖에 그녀는 이곳에서 빠르게 성공을 거두었다. 심지어 그녀의 대표작 <내가 아는 어머니>가 1962년 파리 샤르팡티에 갤러리에서 열린 [에콜 드 파리]에 출품되어 파리 화단의 극찬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작품을 제작하면서 이성자는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고, 동시에 어머니인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세 아들을 생각했다. “내가 붓질을 한 번 하면서, 이건 내가 우리 아이들 밥 한술 떠먹이는 것이고, 이건 우리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이라고 여기며 그렸다”고 이성자는 말했다. 그녀는 자식을 키우던 모든 열정을 오롯이 작품을 생산하는 에너지로 변환시킨 것이다.
이성자는 진정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고향이 그립고 그래서 슬프지 않으냐는 파리 친구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슬프지 않다. 내가 서 있는 곳 발끝에 내 고향이 있다.”
그런 ‘초월’의 세계관이 그녀의 삶을 지탱했다. 그러나 막상 그녀의 세 아들은 어땠을까? 진짜 밥을 주는 대신, 밥 주듯이 그림을 그린 어머니를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반전은 여기서 일어난다. 결론적으로 세 아들은 진심으로 예술가로서의 이성자를 존경했다. 물론 성장기에는 고난이 있었겠지만, 세 아들은 결국 이성자를 지지하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자라났다. 1965년, 14년 만에 성공한 화가가 되어 귀국한 이성자의 귀국전을 열어 준 것도 첫째 아들 신용석(1941~ )이었다. [pp. 322~323]
나혜석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말을 보여준 셈이다.
마치 스토리텔링이 있는 전시회 네 개를 본 듯한 느낌이랄까? 전시회장에서 작품을 보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옆에서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해당 작품을 그린 이와 작품의 배경 등을 설명해주는 듯했다.
그저 버티기만 하는 것도 힘든 시대였기에 그들이 얼마나 많은 작품을 남겼고, 어떤 명성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남긴, 그리고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소중하고 빛나니까.
인간이라는 종(種)은 ‘기억(記憶)’이라는 방식으로 영생(永生)한다고 한다. 우리가 그들의 삶을, 작품을 기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지 않을까?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열연한 저격수 안옥윤이 남긴 명대사 “모르지. 그렇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처럼 그들의 신념(信念)을, 그들의 노력을 전달하기 위해 움직였던 것처럼.
호퍼, 자코메티, 피카소등 유명화가들이나 파리 오르세전, 영국 내셔널 갤러리전등 유명 미술관들의 전시회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최근에는 물론이고 그 전부터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전시를 보러간다. 나도 그 중 한명이다. 책에서만 보던 작품들을 내 눈으로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설레는 맘으로 전시회에 가고 그 감동은 오롯이 추억으로 저장되고 삶의 활력소가 된다. 하지만, 우리 미술에 대한 관심은 그만큼 높지는 않았다. 얼마 전, 이중섭의 편지화를 읽으면서도 생각한거지만 근대미술이라고 하면 왠지 피하고 싶은 맘이 은연중에 있었다. 어쩌면 그 보다 너무 무지했던 것이 더 크지 않았나싶은 맘이 들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런 예술가가 있었다고? 이런 작품들이 있었어? 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으니까. 모르니까 궁금하지 않았고, 궁금하지 않으니 찾지 않았던 거였다.
<살롱 드 경성>은 '경성'이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듯 우리 근대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있었다. 미술사가이며 전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을 맡고있었던 저자는 2021년에 1930~40년대 경성을 무대로 펼쳐진 미술과 문학의 상호관계를 보여주는 자료 기반의 전시인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때>를 기획했다. 이를 계기로 조선일보에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1장에서는 화가와 시인의 우정을, 2장에서는 남편을 열렬히 지지했던 아내와 화가를, 3장에서는 가혹한 세상에 맞서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웠던 화가를, 4장에서는 고통과 방황속에서 예술을 만남으로써 구원을 받았던 화가들의 이야기를, 총 4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화가로 성공한 김기창과 아내 박래현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김기창의 아내로서만이 아니라 한국화의 현대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박래현의 작품도 만날 수 있었는데, 함께 그렸다는 <봄, C> 에 자꾸 눈이 갔다. 이중섭과 이남덕, 김환기와 김향안의 스토리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1978년 출간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표지 그림을 그렸다는 화가 백영수를 만났다. 시인 천상병은 그의 그림을 보고 "세상에 잠시 나온 아이가 죄 없이 끄적여놓은 감상문"이라고 했단다. 많은 그림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그의 그림에서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해방과 전쟁기 한국 예술가의 생활을 담담하게 기록한 회고록 <성냥갑 속의 메시지>라는 책을 썼다고 했다. 이 책에서 만난 이들을 만날 수 있을듯해 읽어보고 싶은데 절판이었다. 도서관에도 없고.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읽어보고싶다.
1910~20년대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지나 6.25전쟁 시절을 관통하며 살아내어야 했던 예술가들.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로 이름을 알고 있는 문학가들, 민족의 얼을 담고 있다는 작품들로 만났던 미술가들, 교과서를 벗어나서는 그다지 만날 일이 없던 우리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러가지 맘들이 오갔다. 생존만 하기에도 힘이 들지 않았을까싶은데, 그런 시대에도 글로써. 그림으로써 스스로를 표현하고, 타인들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작품들을 남긴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웠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상대적으로 공부할 여건이라든지 분명 유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시대가 시대인만큼 예술에 대한 강한 의지가 없었다면 이뤄낼 수 없는 성취였다. 그리고, 왕성하게 활동을 하다가 사상적인 이유로든, 생존의 이유로든 북으로 간 예술가들이 많았는데, 그런 예술가들의 이후 작품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게도 다가왔다.
40명 이상의 예술가를 언급하고 있었지만 이름 정도 알고 있는 사람까지 포함해도 반이 되지 않았다. 당연히 그들의 삶에 대해서도, 작품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아름다운 그림, 생각하게 하는 그림을 만났고, 당차게 살아나왔던 그들의 삶에 감동을 받기도 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듯한 느낌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한걸까? 이제부터는 우리 화가들의 그림에 눈을 돌리는 시간이 많아질 것같다. 전시회 소식에도 귀를 기울이고, 우리 그림 만날 기회를 많이 만들어봐야지. 궁금한 것이 많아져서 바빠질 것같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지금도 한국인 대부분이 이름을 알고 있는 근대미술가는 기껏해야 이중섭, 박수근 정도에 머물러 있지 않나. 외국 작가라면 훨씬 더 많은 이름을 나열할 수 있는 사람들도 한국 작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현실이 아타까울 따름이다. 이는 어찌 보면 나 자신을 포함한 전문가 집단의 직무 유기가 아니었을지.-p 5~6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내본다. '살롱 드 경성'이 아니었으면 들어도 보지 못했을, 세상에 존재하는 것조차 알지 못했을 우리의 근대 예술가들을 자주 만날 수 있도록.
화가하면 대부분 서양화가가 떠오르고 그동안 읽는 책 역시 그렇다. 작년 한국에 있는 미술관 관련 책을 읽으면서 국내에도 서양 못지 않게 천재 화가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익히 들어온 인물도 있었지만 근대사는 거의 모른 거나 마찬가지여서 미술관 책을 보면서 국내 화가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이 부끄러웠다. 한편으론 너무 유럽과 서양 화가와 작품에 익숙하다보니 때론 한국 작품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보니 더 접근성이 떨어지는 거 같은데 미술 작품을 볼 때 그저 색채와 묘사가 아닌 왜 그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알고나면 작품을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오늘 만난 [살롱 드 경성]은 전체 작품을 다 이해했다기 보단 화가와 생애 그리고 그가 남긴 작품을 통해 무엇이 있고 느껴야 하는지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책은 화가들 뿐만 아니라 시인도 같이 소개를 하는 데 시인 '이상'은 이름은 수없이 들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인물이다. 또한, 처음 듣는 화가들도 등장하는 데 안타까운 건 일제침략이 없었다면 국내 화가들이 흔적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고, 6.25 전쟁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소문도 없이 생을 마치지 않을 수도 있는 화가들로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 후 많은 지식인이 월북을 했고 남한에 남아있던 가족에게 유산을 남겨주어 그나마 화가의 유품이 남기도 했다. 사형과 숙청, 공장 노동자, 인쇄공, 고물상 등 정말 천재 화가들의 말년은 참혹했으며 문득 그들은 그 순간에 무엇을 생각했을까. 사람의 생명이 이렇게 한 순간에 흩어져 버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국 화가 하면 이중섭을 익히 들었고 그가 그린 소 그림은 여전히 봐도 쉽게 다가오지 않지만 그의 생애와 가족 사랑은 작품보다 더 많이 들었다. 이중섭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 백남순과 임용련 부부는 192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를 한 화가로 당시엔 화제였다. 나 역시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유럽을 가는 것 조차 힘들었을 테니깐 말이다. 한국의 아픈 역사 속에 있던 사람들 누군가는 생의 마지막을 모르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사는 동안 작품이 팔리고 이름을 남겨지기도 했다. 또한, 그의 자녀들이 화가의 기업(?)을 이어가듯 현재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뿌듯하지 않을까 하다. 더 나아가 남성 화가 뿐만 아니라 여성 화가 역시 기록에 남겨져 있는 데 운보 김기창의 아내이면서 화가인 박래현의 삶은 당차다. 1946년에 김기창과 박래현은 결혼을 했는데 당시 김기창은 청각장애를 앓고 있었다. 그럼에도 결혼을 선택한 것은 유학까지 다녀온 신여성으로 예술가와 결혼하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에 결혼했고 이 역시 조건에 걸었다. 이렇게 서로를 인정하고 화가로서 삶을 시작한 두 사람..여기서 주목할 것은 박래현은 확실히 남편 내조를 하면서 저녁엔 작품 활동을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너무 열심히 살았던 것일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결국 과로사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김기창에게 박래현은 단순히 아내가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을 주면서까지 아내를 살리고 싶었던 그 마음이 책 속에서 간절하게 느껴지는 데 아내가 떠난 후 전시회를 열면서 그녀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했다. 책 속에서 소개된 작품은 한국적이면서도 아닌 듯해 독특하기만 하다. 어릴 적 부터 그림 재주가 뛰어났지만 화가의 길 대신 법대를 선택했던 이대원. 그가 열두 살 때 그린 유화 그림은 어린아이가 그린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세계대전이 극에 달할 때 학도병으로 끌려갔고 해방 후엔 6.25전쟁을 겪게 되면서 점점 황폐해지면 자살까지 갔었지만 '그림'으로 다시 힘을 얻어 84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예술가로서 사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살롱 드 경성]을 읽으면서 미술이 무엇인가...곰곰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고 동시에 서양 못지 않게 국내에도 오랫동안 남겨질 미술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부분이 뿌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미술 작품에 대해선 문외한인데 이건 관심이 차이다. 그동안 너무 국외 작품만(책을 통해) 접했는 데 이제는 국내 작품을 찾아서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다방 제비는 그저 다방이 아니었다. 미술관도 음악당도 거의 없던 시절,
경성의 다방은 대로 음악회가 열리고 미술 전시회도 열리는 장소였다.
이 책은 흡인력이 있다. 일단 펼쳐들면 상세히 다 읽게 만든다.
예술가들의 삶을 눈앞에서 바라보는 듯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미술교양 미술사에 관한 책을 찾는다면 재미있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이 책 『살롱 드 경성』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조선일보』 화제의 연재 칼럼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을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 근대사를 수놓은 천재 화가들의 삶과 작품을 만나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의 저자는 김인혜.
미술사가, 전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1930년대 중국 목판화 운동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처음엔 서양미술사를 전공하여 약 3년간 독일에서 유학했으나 2002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며 아시아 미술에 집중했다. <아시아 큐비즘>, <아시아리얼리즘과 같은 전시를 공동기획하며 중국과 일본은 물론,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역사와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
2012년 박사학위를 마친 후, 본격적으로 한국 근대미술을 연구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 작가들의 아카이브(편지,일기, 사진, 노트 등)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는 업무를 처음 기획했고, 과천관 미술연구센터 및 서울관 디지털정보실 개설 업무를 맡았다. 이후 충분한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풍부한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전시가 가능해졌다. 이중섭, 유영국, 윤형근 등 주요 한국 작가들의 개인전이 대표적인 예이다.
2021년 기획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 또한, 1930~40년대 경성을 무대로 펼쳐진 미술과 문학의 상호관계를 보여주는 자료 기반의 전시였다. 이를 계기로 조선일보에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 연재를 시작했다. 이러한 큐레이터로서의 역할을 인정받아 2022년 월간미술대상, 2023년 정진기언론문화상등을 수상했다.
2023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근대미술팀장으로 일했으며, 앞으로도 한국 근대 예술가들의 삶과 철학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일에 기여하고자 한다. (책날개 중에서)
이 책은 2021년 3월부터 2023년 4월까지 『조선일보』 주말판에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을 모아서 펴낸 것이다. (7쪽)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된다. 1장 '화가와 시인의 우정: 미술과 문학이 만났을 때', 2장 '화가와 그의 아내: 뜨겁게 사랑하고 열렬히 지지했다', 3장 '화가와 그의 시대: 가혹한 세상을 온몸으로 관통하며', 4장 '예술가로 살아갈 운명: 고통과 방황 속에서 만난 구원'으로 나뉜다.
아는 작품이 나오면 더 반갑고, 거기에 심취되어 읽어나간다. 모르는 작품이 나와도 관심 있게 집중하게 된다.
특히 잘 몰랐던 뒷이야기가 시선을 잡아끌며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지나간 세월의 사람들이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현실감 있게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는 듯 묘사해나가서, 그 시대의 낭만을 새롭게 맛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화가들의 일상과 삶을 언뜻 언뜻 비춰주는데, 신빙성 있고 철학적인 면모가 있어서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와 작품을 중간중간 함께 소개해주니 시선을 끈다.
시대를 앞서가는 상상력에 놀라운 면도 많았다.
그들의 예술성에 감탄하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예술이 삶이 되고 삶이 예술이 되다!
척박한 땅 위에 문학과 예술을 꽃피운
천재들의 삶과 작품에 관한 감동의 기록 (책날개 중에서)
글도 맛깔스럽게 담겨 있고, 사진과 그림 자료가 풍부하게 곳곳에 담겨 있어서 전체적인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저자에 의해 생생하게 살아난 이야기들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예술가들의 삶과 그들의 낭만을 맘껏 둘러보았다.
섬세함과 날카로운 필치를 통해 저자의 노고를 책 곳곳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한국 근대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과 낭만이 가득 담겨 있어서 시대를 뛰어넘는 예술혼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어느 곳을 펼쳐 읽어도 완성도 높은 글과 예술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추천하고 싶은 미술교양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술] 살롱 드 경성
-한국 근대사를 수놓은 천재 화가들-
김인혜 저 | 해냄 | 2023년 08월 25일
제목부터 레트로 감성이 넘치는 <살롱 드 경성>은 조선왕조의 붕괴가 눈앞으로 닥쳐 혼란스러웠던 개화기부터 서울이 경성으로 불리던 시기 즉, 제국주의 일본의 강제병합으로 인한 암흑기를 거쳐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북한의 야욕으로 인한 한국전쟁과 분단이 고착화되는 격동의 시기에 희망의 불빛을 밝힌 천재적인 화가들의 삶을 담은 책이다.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 김인혜 박사는 오랜 기간 동안 국립현대미술관(MMCA)에서 우리 작가들의 사적이고 소중한 일기, 사진, 노트 등의 아카이브(archive)를 수집·관리하고 정리하여 체계적인 자료화 업무를 주도하면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이중섭 백년의 신화>, <내가 사랑한 미술관>, <윤형근> 등의 한국 근대미술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대형전시회를 주관하였다.
미술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지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작품의 거래도 대폭 증가하고 있으며 ‘프리즈 서울’같은 세계적인 아트페어에 인파가 몰리면서 한국미술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근대화가에 대한 일반인의 지식은 아직 미흡한 수준에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발전을 통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살면서 예술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변화하고 있고 우리 미술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지고 즈음에 <살롱 드 경성>은 한국현대미술의 토대가 되는 근대미술과 그 시대의 천재적인 작가들의 삶과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마치 전시회에 작품 도슨트를 듣는 느낌으로 책을 읽어 나갈 수 있다. 우리 미술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일반인 입장에서 화가들의 개인적인 삶이 담긴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작품을 폭넓게 이해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4개의 장으로 구성된 <살롱 드 경성>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화가들마다 충실한 도판과 자료가 수록되어 있어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내용을 파악할 수 있어 한국근대미술을 이해하는데 있어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목차
1장 화가와 시인의 우정
-화가와 시인의 우정 미술과 문학이 났을 때-
2장 화가와 그의 아내
-뜨겁게 사랑하고 열렬히 지지했다-
3장 화가와 그의 시대
-가혹한 세상을 온몸으로 관통하며-
4장 예술가로 살아갈 운명
-고통과 방황 속에서 만난 구원-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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