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리(지음)/ 월북(펴냄)
쉼표 하나로 교수형을 당한 일이 있었다?!!!
국왕에 대한 반역 행위로 재판을 받은 로저 케이스먼트!! 1916년의 일이다. 쉼표 하나가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낳았기 때문이다.
펭귄출판사 하면? 나는 《펭귄클래식 에디션 레드 세트 시리즈》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떠오른다^^ 사춘기 시절 내가 읽은 첫 번째 19금 소설이 바로 이 작품!!! 아! 이 작품 하면 정말 할 말? 많은데 언젠가 리뷰에서 써 볼 생각^^
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펭귄 출판사, 무려 20년간 편집자로 일한 베테랑 편집장!! 책 하나가 우리 손에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 땀 어린 과정을 거치는지!!!
올봄 참여한 독자편집단 활동을 통해 대리 체험할 수 있었다. 나는 꼭 한 번 이런 체험을 해보고 싶었다.
가제본 상태로 온 원고를 읽고 내 의견을 첨부하여 다시 출판사로 보내는 일은 몇 번 참여한 적이 있는데 교정, 교열, 제목 선정, 부제 선정, 편집 방향, 표지 선택, 표지 디자인까지 전 과정에 해단 독자 활동은 처음이었다. 함께 활동하신 분들은 문학 전공이거나, 출판사 경험이 있는 쟁쟁한 분들이었다. 내 기억에 비전공자는 나뿐이었던 것 같다^^
원고가 이미 완성된 후에도 책이 출간되어 내 손에 오기까지 무려 여섯 달이 걸렸다. 물론 내 의견은 별로 반영되지 않았다 ㅋㅋㅋㅋ
그 이전에도 책을 좋아했지만. 특히 이번 봄 독자편집단 활동 이후에 책이 다시 보였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솔직히 언듭했듯이 유럽 중심의 세계관은 출판업에도 영향력이 크다. (영미권에서 출간되는 한국 문학은 1년에 채 10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저주 토끼》 번역자 안톤 허의 에세이를 통해 알고 있었다. ) K 팝, K 문화의 대대적인 해외 진출을 떠올려보면 왜 한국 문학을 찾는 영미권 독자는 적단 말인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가진 의문이었다.
일단, 글이 탄생했다면 어떻게 더 좋은 글로 만들 수 있을까? 글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한 권에 다 담은 책!! 실제 작품을 사례로 들어서 설명하니 더 매력적!!
편집장 출신인 저자의 표현이 넘 재밌었다. (역시 편집자는 글을 써도 남달랐어!!) 대부분 독자들은 후기를 마지막에 읽으신다는데 나는 서문이나 작가 후기나 역자의 후기를 먼저 읽는 편이다. (전지적 시점에서 소설을 읽고 싶은 내 취향이랄까?? 영화도 결말을 미리 알고 보는 편^^)
채 서른 페이지 읽기도 전에 이거다 싶은 소설이 있다. 예를 들면 올해 내 최고의 소설 존경하는 박경리 선생님의 《김약국의 딸들》과 같은 책!!! 수능 문학 지문이었는데 이 작품을 이제야 읽게 된 것이다^^ 책에 대한 최고의 찬사로 "문장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이 정도의 표현을 쓰는데 이 책은 말줄임표 하나도 허투루 쓰이지 않은!! 왜 이 작품이 노벨 문학상을 받지 않은 것인가? 자다 깨서 생각해 봐도 모를 일이다. 추석 연휴 이틀간 칩거하면서 이 미친 소설을 3독 했다. 광기 어린 독서였다!!! 읽어보면 왜 그렇게 빠질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된다.....
왜 쓰는가? 왜 읽는가에 대한 질문은 독서가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질문이다. 최근에 그 가치관이 또 바뀌었다.
진실이 주는 감동!! 최근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다.
사실만 나열한다고 좋은 작품이 아닐 것이다. 사실을 울림 있게 전달하는 힘!!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장면에서 느꼈다. 재미있고 솔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몸서리치게 책이 좋아서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서의 울림이 독자인 내게 전달되었다.
진로 지도를 하다 보면 직업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는다. 나는 내 일 외에 다른 영역을 잘 모른다. 출판에 관해 질문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이 책이 답이 되어 줄 것이다!!
글쓰기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타자기 앞에 앉아 피를 흘리는 수밖에 p.400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문장!!
덧. 나는 '말 줄임표' 중독자인데, 리뷰를 다 쓰고 나서 말 줄임표를 몇 개나 썼는지 확인하고 다 지웠다^^
( 글 쓸 때 본인만의 습관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독특한 언어습관?? 책 읽기 루틴??이 궁금합니다. 저는 말 줄임표를 많이 쓰는 습관이 있고 문장은 최대한 짧게 끊어 쓰려고 노력합니다. 책 읽기 루틴은 마치 내일은 없는? 사람처럼, 인생이 오늘뿐인 것처럼 그렇게 전투적으로 읽는 편입니다 ㅋㅋㅋ)
기억하고 싶은 문장 (너무 많은데 쓰다 보니 문단을 통으로 다 쓰게 될 것 같다^^)
좋은 글은 무엇보다 독창성, 창의성, 획기적인 새로운 문학적 장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문학은 실현성과 독창성을 기준으로 비평되고 평가받아 수상이 결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독서로 얻는 즐거움의 큰 부분은 익숙함을 느끼고, 위안을 받고, 기대가 충족되는 데서 온다. 이런 글을 흥분과 미스터리가 가득하니 계속해서 페이지가 넘어갈 수밖에 없다. P83
책은 다 쓰이고 난 뒤에는 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할 말이 있다면 책이 알아서 독자를 찾겠죠. 아니면 말 것이고요. 저는 옛날 책과 요즘 책을 가리지 않고 늘 한결같이 강렬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저자 미상의 신비로운 책들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런 책들은 한밤의 기적처럼 보이지요. P51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문장이다^^ 역시 내 작가 페란테답다)
교열 편집자가 말하는 문장도 인상적!!
저는 제2의 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새로운 눈으로 원고를 보면서 저자와 기획 편집자가 여러 번 읽다 보니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된 것을 보는 사람이죠. 소설 작업을 할 때는 플롯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그게 최선인지 확인하고, 논픽션 작업을 할 때는 일반 독자가 논쟁의 맥락이나 서사를 따라갈 수 있는지 점검해요.
중략
제가 싫어하는 건 천편일률적인 역사 배경이에요. 이를테면 이런 거죠. "때는 1960년대였다. 여자들은 모두 미니 스커트를 입었고 비틀스가 차트를 휩쓸고 있었다." P107
각주는 서로 다른 종교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한 페이지에서 논쟁하는 도구로 시작되었다. 글에 단검을 쥐여주고 서로 결투를 벌이는 방식. 날카로운 단검 모양인 것도 의견 대립을 강조하는데 효과적이라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각주로 문제의 핵심을 꿰뚫은 뒤, 작은 단검의 도움을 받아 상대에게 직격탄을 날리는 기분은 정말 짜릿했을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각주는 점차 싸움을 덜 걸었고, 이제는 학문적 철저함을 나타내는 영광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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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일을 하다 보면 만나는 모든 사람이 책을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책을 쓰지 않는다면 쓰는 방법이나 어떻게 하면 책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할 수도 있고, 한발 나아가 당신에게 책을 쓸 생각이 있는지 물어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덕에 구텐베르크 은하계는 오늘도 돌아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작가는 엄밀히 말하면 한 사람이 아니다. 괜찮은 작가라면 그는 한 사람이 되고자 애쓰느느 수많은 사람일 것이다" 라고 쓴 바 있다. 그 '한 사람'은 작가가 보여주기로 선택한 것을 통해서만 우리를 찾아온다. 그를 찾을 단서란 작가가 사용한 모든 단어와 그 단어의 탄생에 얽힌 뒷이야기뿐이다. P.29
글자가 단어가 되고, 단어가 문장이 되고, 문장이 글이 되고, 글이 책이 된다. 우리가 읽고 있는 책 속 단어들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날것의 단어들은 어떻게 합쳐져 문장이 되고, 문단을 이루고, 페이지를 채우게 된 걸까. 영국 펭귄 출판사의 편집장인 리베카 리는 20년 동안 수백 권의 도서를 편집해왔다. 그는 이 책에서 그간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작가의 손을 떠난 글이 어떤 식으로 독자를 만나게 되는지, 책의 겉과 속이 하나로 완성되고, 편집되지 않은 날것의 텍스트가 매끄럽게 잘 읽히는 글로 변화하게 되는 신비를 풀어낸다. 기획, 교정과 교열, 팩트 체크, 윤문, 색인 작업, 번역과 표지 디자인, 인쇄를 거쳐 하나의 책이 만들어 지는 과정은 책의 세계라는 마법을 보다 현실적이고, 다채롭게 보여준다.
도서관에서 가면 특유의 냄새가 있다. 오래된 종이의 냄새, 책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만 맡을 수 있는 그런 냄새를 좋아한다. 아마도 아주 어릴 때부터 책과 함께 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종이의 냄새에 반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책의 물성을 좋아하기 때문에 종이책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을 사랑한다. 종이를 한장 넘길 때의 그 소리와 촉감, 냄새를 사랑하고, 책이라는 물건이 지니고 있는 무게와 품격, 그리고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 있을 때의 그 존재감까지 모두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수록된 모든 이야기들이 너무도 매혹적이라, 도무지 페이지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파피루스에서 구텐베르크의 활자를 지나 전자책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책이라는 매체에 얽힌 역사적 흐름과 번역과 교정 전후로 글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 또 어둠 속에 가려져 있는 유령 작가들의 실체와 잃어버린 글들의 리스트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하루하루만 보면 여기가 출판계의 가장 우울한 면을 보여주는 곳일 겁니다. 책이 잘 팔리기만 할 거란 생각은 허상에 가까워요. 출판 사업의 기초는 판매와 반품이에요. 요즘 펭귄 출판사는 예전보다 반품률이 낮아요... 진짜 문제는 이 책이 읽을 만한가, 가치 있는가, 좋은 책인가 하는 것입니다. 책이 구간이든 신간이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당신이 그 책을 안 읽었다면 구간이더라도 사실은 신간인 셈입니다. 책은 읽히기 전까지 다 신간인 거죠.
그렇다. 오래된 글은 새로운 독자를 만날 때마다 새 생명을 얻는다. p.362~363
출판사에 원고가 도착하기 전에 저자와 그들의 에이전트와 기획 편집자는 글을 생각해내고, 편집하고, 재편집하고, 초고를 완성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진행한다. 마침내 완성된 글은 출판사에 도착해 편집자, 교열자, 색인 작성자, 교정자같이 그림자처럼 일하는 전문 글쟁이들을 만나고, 이후에는 디자이너와 조판자와 인쇄업자의 손을 거치며 계속해서 다듬어진다. 하나의 글이 독자들의 손으로 향하기까지의 여정은 모두 이렇게 기나긴 과정을 거쳐서야 끝이 나는 것이다. 글의 세계에서 도처에 존재하는 유령 작가들과 디자이너, 번역가, 인쇄업자, 에이전트를 비롯해 함께 책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목소리 또한 좋은 글을 만들기 위해, 더 좋아지고 자유로워지도록 도와주기 위해 존재한다. 베테랑 편집자가 들려주는 활자와 편집의 세계는 가슴을 뛰게 하는 만세의 순간이 깃들어 있어 더욱 특별하다.
이 책은 모든 책 뒤에는 좋은 글을 더 좋고 자유롭게 만들고자 애쓰는 고쳐쓰기 부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편집자든 에이전트든 색인가든 조판자든 인쇄업자든 디자이너든, 모두 좋은 글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리고 그 글을 더 좋은 글로 만들기 위해 무대 뒤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최종적으로 책을 집어든 독자의 눈에 띄지는 않겠지만, 실은 이 숨겨진 인력들이 뒤편에서 글에 의미와 의의를 부여하고 있으니 말이다. 출판이란 공동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 그들은 오늘도 100퍼센트라는 완벽의 세계에 가닿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만들어 준 책이었다. 한 권의 책을 둘러싼 출판과 편집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좋은 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탐색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