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동절에는 쉬었다. 쉬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쉬게 되어 정말 좋았다. 쓰고 보니 초등학생이 쓴 일기의 마지막 문장 같다. 쉬어서 좋았다는 문장이면 다 일 것 같다. 다른 이유가 무엇 있을까 싶다. 직장인 열 명 중에 세 명은 노동절에도 일을 한다는 통계를 알려주는 뉴스를 보았다. 쉬는 7인에 속하는 나는 운이 좋은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다지 운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일 년에 넉 달은 제외하고(왜 넉 달이냐면 중간/기말고사가 있는 달) 주말과 공휴일에는 쉬었다. 추석이나 설에도 쉴 수 있었다. 이건 운 좋은 일.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당연히 4대보험도 들지 않았다. 2년 후에는 월급을 올려줄 거라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초과근무수당은 받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보면서도 임금 계산법을 몰라 그러려니 했다. 정말 바보같이 일했다. 이건 운 나쁜 일. 포악하게 굴지도 정색하지도 않기에 계속 다녔다. 나중에야 알았다. 법을 지키지 않는 이 모든 일이 포악하게 군 것이라는걸.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이 바닥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44인이 지은 『일복 같은 소리』는 프리랜서, 무기계약직, 기간제, 촉탁직, 파트 타이머라고 불리는 이름만 다르게 불리는 비정규직인들의 현장 노동 기록을 담은 책이다. 알라딘 독자 북펀드에 참여한 계기는 책의 목차 때문이었다. 목차는 일하는 공간별로 구분되어 있었다. '가로수길, 가습기 공장, 고용센터' 등으로 말이다. 내가 일했던 곳도 있었고 일하진 않았지만 현장이 궁금한 곳도 있었다. 놀라운 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느 공간에나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놀라운 일이 아닌 건가. 노동부가 운영하는 고용센터에도 비정규직이 있었다. 내일배움채움카드를 신청하고 일자리 상담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상담사는 자꾸 교육 신청을 하지 말라는 쪽으로 유도했다. 왜 그랬는지 『일복 같은 소리』를 읽으니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차도 없고 전문적인 기술이 없는지라 지금 일하는 곳에서 그만두면 나 역시도 비정규직의 세계로 들어가는 건 자명한 일이다. 최대한 집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데 그런 곳은 거의 파트 직원을 뽑는다.
평화시장의 전태일 열사는 분신하기 전 일기장에 자신에게도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근로기준법에는 한문이 많고 내용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8시간 근무에는 한 시간의 휴게 시간이 법적으로 주어지고 휴일에 일을 시킬 시 초과 수당을 줘야 하며 노동자는 단체행동권, 교섭권, 의결권을 가질 수 있다는 법 조항을 공부를 많이 한 대학생 친구와 이야기하고 싶었던 전태일 열사의 소망이었다. 그 대학생 친구들은 이제 법을 알면서도 법에 이용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대학을 나온 게 오히려 죄가 되는 세상이다.
『일복 같은 소리』에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학 졸업 후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일단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주 5일이라고 했지만 가게 스케줄 때문에 근무 시간은 불규칙하고 한 달짜리 근로계약서를 쓰며 초단기 계약으로 불안정한 고용 환경에서 일을 한다.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몰라 불안하다. 일 년이 지나면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고 해서 자격증을 따며 근무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정규직 티오가 없다는 말이었다. 좌절의 언어가 『일복 같은 소리』에 산재해있다.
나이가 들어도 일하고 싶다는 건 나이가 들어도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한탄이 깃든 소망의 말이다. 어른들은 말했다. 지 먹을 복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이 말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무수저들은 지 일할 복은 가지고 태어난다고로. 먹을 복 대신에 일복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에게 제대로 된 일복이 주어지기를. 다치지 않고 화장실을 자유롭게 가고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는 똑같이 커피를 타 먹을 수 있는 그나마의 정상의 일복을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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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한국 사회를 뒤집어 놓은 IMF 사태는 극히 불량한 고용형태를 상감해놓았다. 당시에도 여러 전문가들이 이걸 놓고 최소 20년 동안은 한국에서 고용문제가 어두운 그림자로 남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는데 그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해소될 기미는커녕 점점 더 문제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쉽게 쓰고 쉽게 자른다에 방점이 찍힌 고용문제. 정부와 언론에선 고용의 유연화라고 포장을 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떻게 될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이 되었고 그 예상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극히 부정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의 절반 이상은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한다. 그렇게나 많이라고 물어볼 텐데 거리를 다녀보면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럼 정규직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이마에다 나는 정규직, 너는 비정규직이라고 강시처럼 부적을 붙이고 다는 것도 아닌데 어찌 아나 싶겠지만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방식은 너무나도 비열하게 작동되고 있고 대부분은 암묵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당장 굶어죽지 않으려면 수용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놓았다.
아주 잠시 우린 일하는 것에 대해 희망을 가져본 기억이 있다. 시간당 급여가 1만 원은 될 거라고 했고 비정규직이 점차 정규직화될 거라고 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이 줄어들 거라 했다. 또 노동과 관련된 각종 법규가 손질되어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될 거라 했다. 특히 비정규직이 주로 일하는 현장에서의 산업재해와 관련해서도 피해를 줄일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지지부진하다 못해 퇴행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면 온갖 험담이 다 쏟아져 나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이간이 오고 간다. 노동자들끼리 싸움을 붙이며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그저 일하러 나왔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다반사고 이를 옆에서 지켜보며 항의를 하면 사회에 불만이 많은 인간으로 낙인을 찍어버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작업 환경에 노출된 그들은 수십 년 전 전태일 열사가 일했던 청계천 피복공장과 뭐가 다르냐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44인의 수기를 읽으며 내가 일했던 시절의 에피소드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여러 군데 직장에서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좋은 일보다 그렇지 못한 일들이 더 먼저 기억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정규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았기에 덜 분노스러웠던 걸까 아니면 비정규직이었던 시절, 그래도 관리자들이 쉽게 뭐라고 할 수 없는 일을 했기에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이 책엔 주점, 공장, 공공기관, 공사장, 학교, 급식실, 대리운전, 마트, 물류센터, 방송국, 병원, TM, 식당, 요양원, 잡지사, 카페, 퀵, 편의점, 도서관 등의 공간에서 단기 노동자, 아르바이트,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느꼈던 소회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그들 44명의 감정은 다양했다. 분노, 허탈, 억울, 체념 등 인간의 온갖 감정이 다 드러나 있고 기술 시점이 10년도 넘은 이야기들이 마치 현재 진행형처럼 느껴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나만 대우받지 못해 억울하다는 건 아니었다. 같은 공간에서 그들보다 더 일하는 것 같은데도 온갖 차별을 직시하고 수용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남는 건 해고뿐이었다. 같은 잘못을 했어도 그들은 정규직인지라 가벼운 질책 정도로 끝나지만 비정규직인 그만두도록 강요당했다. 그러고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정부가 나서준다고 하지만 그들 역시 비정규직인 건 마찬가지였다.
문제가 남는다. 노동에 대한 차별이 한국 사회의 병폐가 될 것이라고 20여 년 전 지적했지만 우리 사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그걸 논의하고 해결하는 주체가 정규직인 탓에 비정규직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채 사장되기 일쑤였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손을 잡고 한데 뭉쳐보기도 했지만 지금의 상황에선 "억울하면 니네들도 정규직 하지 그동안 뭐 했냐"라고 오히려 타박한다.
고용의 형태가 다르다고 정당한 노동의 댓가가 부정당하고 그런 차별이 당연시되는 사회적 분위기, 그걸 교묘하게 악용하면서 한쪽 편을 들어주려는 당국, 어렵고 힘든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부족하다며 외국인 노동력을 가져다 쓰자면서도 자국 노동자들에겐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는 자. 자신도 5년짜리 비정규직이면서도 거들먹거리는 꼴이 가관이다.
워낙 많은 사연들이 나오고 집필한 저자가 많아 기술(記述)의 편차가 있지만 그 짧은 문장 안에서 노동의 가치를 배웠다. 또 낯선 직업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힘들었다는 말 사이에서도 잠시 함께 일했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나오기도 했다. 어려웠던 시절, 자신의 손을 잡아준 동료를 어찌 잊겠는가. 특히 만두를 판 이야기가 담긴 마트 편과 인공지능개발사 편, 자동차 대리점 편, 그리고 여의도 카페 편이 기억에 남는다. 사회 진출을 목전에 둔 젊은 친구들에게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