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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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뷰 총점 9.8 (5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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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중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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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책 이야기 <인생> 평점8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g*******1 | 2024.08.18 리뷰제목
위화 작가는 일명 중국의 선봉파라고 불리는 작가 중 한 명인데 우리가 아는 말로 바꾸면 실험적이고 거친 작품을 쓴다는 뜻이다. 그런데 <허삼관 매혈기>로 입문해서 <원청>, <인생>을 읽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그가 전위적인 작가라는 게 잘 와닿지가 않는다. 무슨 계기였는지는 모르지만 날카로운 문자를 치켜들고 세상의 부조리를 향해 달려나가는 선봉장에서 저 뒤의 지원 병
리뷰제목

위화 작가는 일명 중국의 선봉파라고 불리는 작가 중 한 명인데 우리가 아는 말로 바꾸면 실험적이고 거친 작품을 쓴다는 뜻이다. 그런데 <허삼관 매혈기>로 입문해서 <원청>, <인생>을 읽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그가 전위적인 작가라는 게 잘 와닿지가 않는다. 무슨 계기였는지는 모르지만 날카로운 문자를 치켜들고 세상의 부조리를 향해 달려나가는 선봉장에서 저 뒤의 지원 병과로 소속을 옮긴 모양이다. 다만 지원 병과라고 해서 하릴없이 놀고먹으면서 세금을 축내는 게으름뱅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전투 병과가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면 지원 병과는 싸울 수 있게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선봉파 작가로 유명할 때 혼자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면 <인생> 이후로 위화 작가는 자기만 싸우는 대신 모두가 함께 싸우도록 독려하는 기분이다.


<인생>을 읽으면서 들었던 두 가지 소감은 쉽고 감동적이라는 것이다. 쉽다는 건 어려운 단어나 문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 잘 아는 단어를 가지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을 만들어서 의식의 흐름에 충돌하지 않는 구조로 배치하는 걸 말한다. 요컨대 술술 읽힌다는 말이다. 이걸 한 단어로 말하면 가독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가독성은 실로 마법 같은 말이다. 왜냐하면 읽기란 근본적으로 힘든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도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읽으려고 마음 먹은 책이 아니라 지나가는 신문 기사나 칼럼 혹은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게시글 등은 읽기가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대각선으로 스르륵 내려오게 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글자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가로 읽기를 하게 만드는 가독성이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가독성에 대해서라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예전에 어떤 일간지의 신춘문예 심사평에서 한 심사위원이 수상작의 가독성을 칭찬하면서 “얼마나 읽고 썼는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요컨대 가독성은 노력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걸 그냥 노력이라고 하면 얼핏 와닿지가 않아서 그걸 부족한 내 머리로 고르고 골라 적당한 말을 찾아보면 바로 독자가 부담해야 하는 읽기의 고통을 작가가 가져가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읽고 쓰면서 독자가 느껴야 할 읽기의 고통을 작가가 미리 가져가 버린 것이다. 실제로 위화 작가의 에세이 중에는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이라는 책도 있다. 읽고 쓰는 일을 반복한다는 건 한 마디로 수감 생활과 같다는 얘기일 것이고 다르게 말하면 일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읽고 썼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런데 책은 분명 글자로 만드는 것이고 독자로 글자를 읽는 것이지만 작가도 글자를 쓴다고 생각하지 않고 독자도 글자를 읽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글자를 창작하는 게 아니라 인물과 사건을 창작하는 것이고 독자 역시 글자를 읽는 게 아니라 인물과 사건을 읽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가독성이란 글자를 선택하고 배치하는 능력이 아니라 사람과 세계에 대해 이해하는 능력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쓴다는 건 같은 맥락에서 많은 사람을 보고 상상하는 일이고 사람들이 겪는 일들을 무시하거나 흘려듣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건이 생겼을 때 그 사건이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끝났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의 고통과 행복은 또 어떤 식으로 교차했는지를 수없이 생각했을 때 비로소 작가는 독자에게 가로 읽기가 가능한 이야기를 꺼내줄 수 있다.


그러니 결국 가독성이란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다. 자기 외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가독성의 전제 조건이다. <인생>은 쉽다 못해 허술하게 쓰인 책처럼 보일 정도인데 그것은 작가가 보고 싶은 세상 혹은 보여주고 싶은 세상으로 책을 채우는 대신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책을 채웠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이 소설의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대신 지면을 몽땅 푸구이에게 내어주듯이. 물론 화자나 푸구이나 작가가 창조한 인물이므로 이 책의 이야기는 곧 작가의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작가의 목소리를 거의 듣지 못한다. 아마 그 이유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말했듯이 작가가 이야기를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판단한다는 것은 결론을 낸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책 속에 주제라는 것이 생겨버린다. 독자는 그 주제를 찾고 나면 그 책이 몇 페이지든 몇 권이든 간에 한 줄의 주제로 요약할 수가 있다. 그리고 주제를 찾아낸 사람은 한 명만이 아닐 것이므로 주제가 있는 책은 몇 사람이 읽든 하나의 주제로 귀결되는 이야기가 된다. 이것은 좋은 책이 비록 한 권일지라도 읽은 사람의 수만큼 불어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인생>에서 푸구이 노인은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결론, 인생에 대한 철학 같은 것도 내비친다. 그러나 그 말은 이야기의 의미를 결정짓는 결론이 아니라 그저 이제 이 이야기가 끝났다는 신호일 뿐이다. 적어도 내게는 <인생>의 이야기가 결론이 있는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게는 이 이야기가 전화위복에 대한 이야기로 들린다. 살다보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서 들어오는 거라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생은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지 않고 운명 같은 초월적인 힘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 같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숱한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 마지막에는 욕심이나 후회도 없이 인생을 관조하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할 거라는 말처럼도 들린다. 초년에 유흥을 즐긴 사람은 노년에 고생한다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구성원 중 하나가 가족을 힘들게 해도 가족 자체가 흩어지지 않으면 어떻게든 뭉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얘기 같기도 하다. <인생>은 아마 이 모두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재미있다. 인생은 정말 그렇지 않은가. 한 사람 속에 들어있는 서로 다른 많은 이야기의 집합이 인생이다.



2024년 8월 15일부터 2024년 8월 18일까지


읽고

생각하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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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서평] 인생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s*******4 | 2024.05.19 리뷰제목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가"위화의 <인생> 을 읽고"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거대한 질문에 맞서 세계적인 거장 위화가휴머니즘과 해학으로 써 내려간 대답- 인생이란 무엇일까? '인생은 드라마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실제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해서 막장보다 더 막장인 드라마 같다는
리뷰제목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가"

위화의 <인생> 을 읽고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거대한 질문에 맞서 세계적인 거장 위화가
휴머니즘과 해학으로 써 내려간 대답-

 


인생이란 무엇일까? '인생은 드라마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실제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해서 막장보다 더 막장인 드라마 같다는 말이 있다. 드라마에는 기-승-전-결의  4단계 구조처럼 단계가 있는데, 우리 인생에서는 왜 한없이 비극이고 왜 항상 위기인 것만 같을까? 우리 인생 또한 드라마처럼 각 단계가 있고, 예측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 『인생』에서 보여주는 주인공의 삶은 '이보다 더 비극적일 수는 없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극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인생에는 희노애락이 존재하는데, 주인공 푸구이의 삶은 애, 즉 슬픔만 존재하는 것 같다. 이것이 우리 인생 라고 한다면 얼마나 비참하고 우울한가! 정말 말 그대로 살 맛이 안 날 것 같다. 하지만, 푸구이는 이런 비참한 삶, 온통 슬픔과 상실만이 존재하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나간다. 그 혼자 살아남아 증인처럼 또는 생존자처럼, 마치 죽어간 사람들의 삶을 증명하듯이 말이다. 



곁에 있던 가족들이 모두 죽고, 이제 그의 곁에는 '푸구이'라는 이름의 늙은 소만 남아 있을 뿐이다. 과연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그만 혼자 살아남은 것일까? 그런 궁금증과 함께 시작된 그의 삶은 정말 한 마디로 비참함 그 자체였다. 어쩌면 그는 끝까지 살아남았기에 운이 좋았던 것이라 말할 수도 있을까?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그로 인한 슬픔을 극복하는 것 또한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가!



과연 누구의 삶이 더 비참한가 내기라도 하듯이, 가족들 각자의 삶은 너무나 비참하고 그들의 죽음은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다. 젊었을 땐 한량처럼 빈둥거리다 갑자기 집안 형편이 안 좋아져서 가난 속에 허덕이고 가족들의 죽음을 지켜 봐야 했던 푸구이 노인일까? 아니면 가난한 집안에 시집 와서  고생 고생하며 살다가 가난 때문에 자식들까지 먼저 보내고 결국 자신도 병에 걸려 마지막까지 고생만 하다 죽은 자전인가?  아니면 가난해서 남의 집에 팔렸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 이후 청각 장애인이 되어 고생하다가 결혼해서 출산 중에 결국 죽은 푸구이의 딸 펑샤인가? 아니면 학교도 다니고 양도 키우며 집안 일을 돕다가 헌혈 하다가 피가 몽땅 뽑혀 어이없게 죽은 유칭인가? 
푸구이를 제외한 그의 아내인 자전, 딸 펑샤, 아들 유칭의 삶과 죽음을 보면서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운명이고,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의 삶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삶 또한 다르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들에게는 오직 살아가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극심한 가난에 허덕이며 먹고 살아야 했기에, 그들은 가족의 죽음으로 힘들어하고 방황할 시간도 없었다. 남아 있는 그들이라도 살아야 했기에 가족의 죽음에 깊은 애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는 너무나 순응적이고, 체념적으로 보인다. 어떤 이유로 죽든 간에 이미 죽음은 일어난 것이고, 그 죽음은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절망 때문에 주저앉을 수도 없다. 당장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들은 생계 나아가서는 목숨조차 이어나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극한 상황 속에서 우리 또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전쟁의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남았고, 가족들 모두 죽는 상황 속에서도 결국 끝까지 살아남은 푸구이 노인에게 과연 인생은 어떤 의미였을까?


어쩌면 인간의 생명이 위협 받아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선택은 단 한 가지일 지 모른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 이것이야말로 궁극적인 삶의 목표일지 모른다.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삶의 위기와 고난을 주는 일들이 발생한다. 그런 일들 중에서 가족의 죽음, 즉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만큼 슬픔과 고통을  주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의 잇따른 죽음은 정말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든다. 
이 책 속 푸구이의 삶을 통해 작가는 사람이 어떻게 엄청난 고난을 견뎌 내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읽는 것만으로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우울한데, 하물며 삶 속에서 진짜 그런 고난이 연이어 발생한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상상도 가지 않을 정도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처럼, 살아있는 자체가 축복이다. 전쟁 상황 속에서도,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 속에서도 푸구이만 살아남은 것, 어쩌면 푸구이에게는 삶에서 진정한 승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살아있어야 행복을 추구할 수도 있고, 좋은 날도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푸구이 노인의 삶의 태도를 통해 아무리 힘들고 견딜 수 없는 고난이 오더라도, 참고 견디는 것,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바로 인생을 사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아.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지. 아버지는 내가 가문을 빛내기를 바라셨지만, 당신은 사람을 잘못 보신 게야. 나는 말일세. 바로 이런 운명이었던 거라네. 젊었을 때는 조상님이 물려준 재산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살았고, 그 뒤로는 볼품없어졌지. 나는 그런 삶이 오히려 괜찮았다고 생각하네. 내 주변 사람들을 보게나. 룽얼과 춘성, 그들은 한바탕 위세를 떨치기는 했지만 제 명에 못 죽었지 않은가. 
사람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게 좋은 거야. 아웅다웅해봐야 자기 목숨이나 내놓게 될 뿐이라네. 나를 보게나. 말로 하자면 점점 꼴이 우스워졌지만 명줄은 얼마나 질기냐 말이야.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나가 죽으면 또 하나가 죽고 그렇게 다 떠나갔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지 않은가.
-p. 284


이 책을 통해 위화 작가는 우리에게 '인생을 왜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준다. 당신의 삶이 힘들고,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를 때, 삶의 밑바닥, 인생의 민낯까지 다 보여준 소설인 이 책 『인생』을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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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인생>에 대하여... 평점10점 | h********9 | 2024.05.08 리뷰제목
한 사람의, 한 가족의 중국 대약진 운동 시기 전,후의 기구하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 주인공 푸구이의 서술로 시작하는 읽기에 편하고 가독성이 좋아서 읽다가 덮어 놓았다가도 빨리 다시 펼쳐보고 싶어서 빨리 읽어버리자 해버린 근래에 만난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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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한 가족의 중국 대약진 운동 시기 전,후의 기구하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 주인공 푸구이의 서술로 시작하는 읽기에 편하고 가독성이 좋아서 읽다가 덮어 놓았다가도 빨리 다시 펼쳐보고 싶어서 빨리 읽어버리자 해버린 근래에 만난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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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인생 평점10점 | e********l | 2024.02.16 리뷰제목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아.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지. 아버지는 내가 가문을 빛내기를 바라셨지만, 당신은 사람을 잘못 보신 게야. 나는 말일세. 바로 이런 운명이었던 거라네. 젊었을 때는 조상님이 물려준 재산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살았고, 그 뒤로는 점점 볼품 없어졌지. 나는 그런 삶이 오히려 괜찮았다고 생각하네. ▶ 작가 소개/위화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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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아.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지. 아버지는 내가 가문을 빛내기를 바라셨지만, 당신은 사람을 잘못 보신 게야. 나는 말일세. 바로 이런 운명이었던 거라네. 젊었을 때는 조상님이 물려준 재산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살았고, 그 뒤로는 점점 볼품 없어졌지. 나는 그런 삶이 오히려 괜찮았다고 생각하네.

▶ 작가 소개/위화

1960년 중국 항저우에서 태어났다. 1983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피와 폭력, 죽음에 천착한 실험성 강한 중단편을 발표하며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위화의 소설이 유명세를 탄 후 중국 비평가들은 그의 간결한 글을 칭찬했는데 위화는 어릴 적에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해 아는 한자가 많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답했다. 1993년에 발표한 장편 「인생」은 장이모우 감독이 영화화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위화 현상’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대표작으로 「허삼관 매혈기」, 「첫 번째 기숙사」등이 있다.

 

인물 소개

푸구이 노인-몰락 지주에서 농민으로 다시 태어나는 인물. 젊은 시절 문란한 생활을 일삼다 가문의 재산을 모두 탕진한다. 중국의 내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전쟁터에 끌려갔지만 살아돌아왔고 해방 후 푸구이의 전 재산을 갈취해 간 룽얼이 총살당하자 자신이 살 운명임을 느낀다. 농민으로서의 가난한 삶을 헤쳐 나가던 푸구이는 많은 죽음을 목도하며 운명은 피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자전-푸구이의 아내. 성안 부유한 미곡상의 딸이었으나 푸구이와 결혼한 후 마음고생을 겪는다. 푸구이 집안의 몰락으로 친정아버지를 따라 성안에 들어갔지만 둘째 유칭을 낳고 다시 푸구이에게 돌아온다. 이후 평생을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푸구이와 가족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펑샤-푸구이와 자전의 딸. 푸구이가 전쟁에 끌려간 사이 큰 병을 앓은 후 말을 못 하게 되었다. 예쁜 외모에 착한 심성을 지녔다. 얼시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는데 아이를 낳다 죽는다.

유칭- 푸구이와 자전의 외아들. 양들한테 풀을 먹이기 위해 학교와 집을 오가며 오십 리가 넘는 길을 뛰어다니다 달리기를 잘하게 되었다. 학교 교장의 출산 과정에서 수혈을 해주다 온몸의 피를 모조리 뽑힌 채 죽고 만다.

쿠건-펑샤와 얼시의 아들. 펑사가 죽고 얼시마저 사고로 목숨을 잃자 푸구이 노인과 함께 살게 된다.

▶ 소감

  1. 한 노인의 인생 여정

<인생>은 사람과 그 운명에 관한 이야기로 변화하는 역사 속에서 개인과 그 가족, 지기들이 겪어야 하는 치열한 삶을 그리고 있다. 푸구이 노인의 40여 년 세월은 시간을 압축해 놓은 듯 빠르게 지나간다. 그가 덤덤하게 들려주는 이야기속에는 생을 살아오면서 느꼈던 죄책감, 분노, 두려움, 절망, 좌절, 희망, 기쁨, 용서, 후회, 슬픔 등 수많은 감정이 녹아 있었다. 한편 세상 모든 이치를 통달한 것 같은 여유가 묻어났다.

집안의 몰락 이후 푸구이는 소위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인물들의 고난은 푸구이로부터 시작되었다 봐도 무방하다. 임신 중인 자전을 때릴 때, 아버지가 죽었을 때, 푸구이가 유칭을 모질게 대할 때, 가난 때문에 펑샤를 남의 집에 보냈을 때 나는 여러 장면에서 푸구이를 원망했다. 이 모든 일들을 담담하게 말하는 그가 뻔뻔하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 막바지에 이르면 노인의 인생이 안타까움을 넘어 경건함을 느끼게 했다.

삶과 죽음. 만약 나에게 어느 쪽을 택할거냐 묻는다면 살아가기를 택할 것이다. 이왕 산다면 더 잘 살고 싶고 후회없이 살고 싶은 마음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인생이 그저 살아간다는 것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길에 가시밭이 있어도 헤쳐나가야 하고 사나운 동물을 피해 잠시 숨더라도 어쨌든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2. 중국 여성의 삶, 희생과 인내의 아이콘 자전

자전은 좋은 여자였어. 나 같은 놈이 그처럼 어질고 지혜로운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던 건 전생에 개 노릇을 하며 팔자를 고치게 해달라고 짖어댔기 때문이라네. 자전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다 참아냈어. 내가 밖에서 터무니없는 짓을 하고 다녀도 속으로 가슴을 칠 뿐, 나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자전은 그런 여자였어. 속으로 불만이 많아도 얼굴에는 티를 내지 않았고, 예봉을 감추고 에두르는 말로 나를 일깨웠지. 그러나 난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말을 듣지 않았어. 아버지의 신발도, 자전의 요리도 내 발목을 붙잡지는 못했다네.

“내 한평생도 이제 다 끝나가네요. 당신이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니, 나도 마음이 흡족해요. 나는 당신을 위해 두 아이를 낳았어요. 당신에 대한 보답인 셈이죠. 다음 생에서도 우리 같이 살아요.”

푸구이의 눈에 비친 자전은 이토록 지혜롭고 헌신적인 사람이다. 자전은 푸구이를 떠날 기회가 있었음에도 스스로 고단한 삶에 다시 발을 디딘다. 푸구이가 살아 돌아와 함께 지내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자전의 마음을 나는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자전은 작가 위화가 바라는 지고지순한 여성, 그의 이상향이었을까? 아니면 과거 시대가 여성에게 요구했던 희생과 인내를 갖춘 여인을 담아낸 것일까?

펑샤는 엄마를 그대로 닮았다. 자전과 펑샤의 인생이중국 여성의 보편적인 삶이었다면 세상은 여성에게 참 가혹한 것 같다. 나는 〈인생〉을 읽고 난 후 푸구이의 아내 자전과 딸 펑샤의 삶이 너무 애달파 한동안 마음이 아팠다.

3. 중국의 현대 역사, 변화의 물결에서 인간의 삶이란?

대지주였던 쉬씨 가문이 몰락하고 푸구이는 다섯묘의 소작농이 되었다. 해방군과 국민당이 내전을 벌이던 막바지에 전쟁터에 끌려간 푸구이는 구사일생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해방군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고 세상은 공산당의 차지가 되었다.

인민공사가 생기고 모든 토지는 국가 소유가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푸구이는 손바닥만 한 자유 경작지를 받게 된다. 이제 사람들은 매일 새벽 일을 배정받고 공동작업을 한다.

한편 유칭이 돌보던 양과 다른 양들을 모두 한곳에 모아 놓았는데 돌보는 사람이 없어 양들은 굶기 일쑤였다. 수많은 가축들이 식량으로 사라지고 이내 먹을 것이 부족해진다.

중국 역사에 문외한인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국민당과 해방군이 싸우던 시기를 찾아보다 이 책의 배경이 1930년에서 1960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산당 집권 후 사유재산이 몰수되고 토지가 재분배되는 과정이 푸구이의 삶 속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세상이 거친 파도처럼 요동칠 때도 바닷속은 한없이 고요하다. 물고기들이 물살에 몸을 맡긴채 흘러가는 것처럼 푸구이를 비롯한 사람들은 역사속에 포함되어 평범하게 살아간다.

우리는 평범한 백성들이었지. 나라 일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다네. 우리는 모두 대장의 말을 들었고, 대장은 상부의 말을 들었지. 상부에서 뭐라고 말을 하면, 우리는 그런가 보다 하고 그렇게 행동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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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당신의 인생에도 푸구이가 있다면, 위화의 <인생>을 읽고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i*******n | 2025.04.11 리뷰제목
한줄평 : 평범한 한 인간의 평범하지 않은 삶을 통해 우리는 자신만의 인생을 만난다.내 나이 어느새 육십하나. 돌아보면 모든 게 휘리릭 지나가버린 듯하다. 앞으로 10년, 20년쯤 후, 나 역시 지금의 부모님처럼 늙어 있겠지. 아니면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거대한 화두 앞에 위화는 자그마한 노인 하나를 앞으로 내보낸다. 여기 당신이 있습니다.그러나 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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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 평범한 한 인간의 평범하지 않은 삶을 통해 우리는 자신만의 인생을 만난다.

내 나이 어느새 육십하나. 돌아보면 모든 게 휘리릭 지나가버린 듯하다. 앞으로 10년, 20년쯤 후, 나 역시 지금의 부모님처럼 늙어 있겠지. 아니면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거대한 화두 앞에 위화는 자그마한 노인 하나를 앞으로 내보낸다. 여기 당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푸구이 노인처럼 잊히지 않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을 그처럼 또렷하게, 또 그처럼 멋들어지게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말고는 또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제대로 불 수 있는 사람이었고, 자기가 젊었을 때 살았던 방식뿐만 아니라 어떻게 늙어가는지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63)

오래된 노래나 민요를 수집하는 '나'는 어느 시골 마을에서 푸구이 노인을 만나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한 소절 쯤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겠거니 생각했지만 책은 마지막까지 푸구이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결국 누군지 모르는 이 화자는 푸구이의 삶을 책 한 권에 다 옮겨 전하며, 평범하게 사는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삶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거칠고 험악한 일인지, 죽기보다 살기가 더 힘들고 어려운 이 운명 같은 삶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깨달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거울을 비춰준다.

1994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영화의 원작, 위화라는 작가를 세계적인 작가로 올려놓은 명작, 위화의 <인생>은 지극히 평범한 한 노인의 기구한 삶을 통해, 삶과 죽음을 관통하며 인생이란 결국 어떻게 살아내는 것인가, 인생이란 결국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까 하는 것임을 말한다. 사는 것이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고, 죽는 것이 삶을 향한 지난한 투쟁이라는 것을 우리는 위화의 <인생>을 읽으며 깨닫는다. 푸구이라는 한 노인이 걸어온 삶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내 인생의 종착지에 다다르게 된다.

롱얼이 그렇게 죽고 나니,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뒷목이 서늘하더군. 생각하면 할수록 아찔한 기분이었다네. 옛날에 아버지와 내가 집안을 말아먹지 않았다면 그날 사형당할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니었겠나. 문득 내 얼굴을 문질러보고 팔도 만져보았지. 다행히 그대로더군. 정작 죽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다른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난 전쟁터에서 목숨을 건졌고, 집에 돌아와서는 룽얼이 나 대신 죽었으니 말일세. (111)

부자였던 주인공 푸구이는 도박으로 돈을 다 잃는다. 롱얼은 타짜같이 편을 짜고 푸구이를 속여 푸구이의 전 재산을 가로채고 지주가 되어 '마님' 소리를 듣는다. 푸구이는 그에게 논마지기 다섯 뙈기를 얻어 소작농이 되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전쟁이 일어나고 약을 사러 읍내에 간 푸구이는 그만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포를 끄는 포병으로 선발되어 길거리에서 군인이 되고 만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쩜 그런 억울한 인생이 있을까 싶다. 길 가다가 갑자기 그렇게 끌려가는 인생이라니.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하는 당사자는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우연 같은 운명적인 삶이 푸구이에게 계속 벌어진다.

날이 어두워지자 눈까지 내렸어. 그리고 꽤 오랫동안 포성이 멎었지. 우리는 참호 바깥에 누워 있는 부상자 수천 명의 비명을 듣고 있었는데,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햇다네. 어쨌거나 그건 고통에 겨워 내는 소리였지. 나는 그 후로 두 번 다시 사람을 그토록 두려움에 떨게 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네. 그 소리는 커다랗게 용솟음치는 밀물처럼 우리 몸 위로 사정없이 밀려왔어. 그 와중에 눈꽃이 떨어졌지만, 하늘이 너무 어두워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 그저 몸이 얼었다 축축해졌다 하고, 또 손 위에 보드라운 솜조각 같은 게 앉았다가 천천히 녹아내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두꺼운 눈꽃 층이 쌓이는 걸 느낄 뿐이었다네. (95)

책을 다 읽고 나면 참으로 할 말이 많아진다. 그러다 종내는 입을 다물고 만다. 그 할 말이란 게 결국 다 부질없는 것임을 스스로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아내와 자식, 모든 가족을 다 잃고 혼자가 되어 늙은 소 한 마리를 끌고 농사일을 하는 늙은 노인 푸구이.

그가 생각해낸 어머니의 말씀이 있다. 그가 가산을 탕진하고 비참한 몰골을 하고 있을 때였다.

며칠 동안 어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네.
"사람은 즐겁게 살 수만 있으면 가난 따위는 두렵지 않은 법이란다." (57)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즐거울 일은 없을 듯 했다. 곧 그의 아내는 장인어른이 와서 가마에 태워 돌아가버린다. 그는 아내도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때 펑샤가 뛰어와 눈을 크게 뜨고는 나에게 말했다네.
"아빠, 엄마가 가마 타고 갔어요."
펑샤의 들떠 있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아이를 불렀지.
"펑샤, 이리 온."
곁으로 온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네.
"펑샤, 내가 네 아빠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펑샤는 그 말을 듣자 깔깔 웃으며 말했어.
"아빠도 제가 펑샤라는 걸 잊지 마세요."

푸구이 노인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나를 보며 허허 웃었다. (61)

나중에 둘째를 낳고 몸을 다 풀고 나서 아내 자전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푸구이와 함께 산다. 그녀는 책 속에서 처음에는 불행한 인생 같아 보였지만, 다시 태어나도 푸구이와 결혼하겠다는 사랑의 말을 하며 죽는다. 푸구이 같은 사람이 그런 말을 듣다니, 아내 복은 제대로 받은 사람이다. 푸구이도 행복하고 아내 자전도 행복해 보인다. 갖은 고생 다하고 자녀를 다 잃은 이들은 행복이 무엇인지, 사랑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았다. 그건 크고 화려하지 않았다. 반드시 부자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당신 신발을 새로 만들어 줄 수만 있다면 나는 행복해요. 행복의 기준은 아주 작았지만, 매우 위대했다.
"저는 복 같은 거 바라지 않아요. 해마다 당신한테 새 신발을 지어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됐어요." (111)

"푸구이. 유칭과 펑샤는 당신이 장례를 치러줬죠. 나도 당신 손에 묻힐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놓여요." (255)

"내 한 평생도 이제 다 끝나가네요. 당신이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니, 나도 마음이 흡족해요. 나는 당신을 위해 두 아이를 낳았어요. 당신에 대한 보답인 셈이죠. 다음 생에서도 우리 같이 살아요."
다음 생에서도 내 아내가 되고 싶다는 말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지. (256)

이렇게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는 모든 가족을 잃었지만 인생의 참 행복을 맛본 사람이다. 혼자가 되어 늙은 소를 몰고 가지만, 그는 이미 참된 행복, 참된 인생의 맛을 보았기에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었다. 더 뛰어날 필요도 없고, 더 빨리 갈 필요도 없다. 빨리 가려다 죽은 아들 유칭은 얼마나 허망한 죽음인가. 삶은 콩을 많이 먹으려다 죽은 쿠건은 또 얼마나 이해하지 못할 죽음인가. 죽음은 우리 도처에 숨어 있다가 생각지 못한 곳에서 불쑥 튀어 나온다. 순서 없이 데려간다. 그러니 우리는 그 죽음을 목도하거나 인지하며 늘 산다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아웅다웅 해봐야 목숨만 내놓는 것이다.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게 좋다는 푸구이의 인생 철학 한 줄이 오늘따라 다른 어떤 말보다 더 가슴에 와서 박힌다.

사람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게 좋은 거야. 아옹다옹해봐야 자기 목숨이나 내놓게 될 뿐이라네.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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