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송승언 작가의 [덕후 일기]를 읽은 후 어느 것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다르게 보여지기 시작했다. 즉, 사는 동안 관심을 가진다는 게 놀랍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덕후를 가진 도서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 그것도 바로 공포(호러를 포함)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겁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 쓴다는 데 그 와중에 스릴를 느낀다는 거다. 난? 무섭다 보고나면 꼭 잠자리가 심난해서 안보는 데 보고나면 뭔가 모를 통쾌함(?)을 알기에 아주 가끔식 보게 되었다. <소름이 돋는다>는 저자가 그동안 접한 공포와 관련된 게임,영화를 소개하는 데 어떤 것이 있는 지에서 마무리 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사회의 다른 문제점을 콕 집어 말하기도 한다. 국내 공포하면 역시 '전설의 고향'을 떠올리게 된다. 어릴 적 이불을 뒤집어 쓰면서까지 자매끼리 보기도 했었는 데 저자가 지적하듯이 생각해보니 왜 '처녀귀신'이 많고 원한이 많은 귀신은 거의 여성이다.
그 중 경남 밀양 부사의 딸 아랑의 이야기는 억울하게 죽었음에도 외간 남자와 도망쳤다는 소문에 아버지마저 딸에게 실망하고 밀양을 떠난다. 그로부터 새로운 부사들은 이상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데 그건 아랑이 귀신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뒤에 내용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알 것이다. 그때는 그저 아랑이 억울하다, 여성이 약자였기에 당할 수밖에 없는 사연만 생각했는데, 저자는 여성의 위치를 약자와 억압을 처녀귀신을 통해 알려주었고 오락거리에 머물지 않고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아랑사또전> 드라마와 <아랑>를 통해 여성의 억울함 죽음을 풀어가는 데 마음이 무거웠다. 귀신이라는 존재가..어쩌면 인간의 의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 생각이 드니깐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귀신이 아닌 악령(?)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앞서 공포 그 자체를 안좋아하는 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컨저링>은 다른 공포물과 다르게 무섭지만 흥미를 끌었다. 이 영화 역시 저자가 소개하기도 하는 데 항상 왜 이런 종류의 영화는 집안에 지하실이 있는 것인가? 책을 읽다보면 국내 집은 대부분 지하실과 다락이란 것이 없다. 그런데, 꼭 공포물을 보면 장소가 지하실 또는 다락에서 알 수 없는 존재(?)가 등장한다는 것인데 두 공간은 왜 공포물의 대상이 되었을까?
그러나 그 무엇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다. 저자 역시 이를 강조한다. 소개 된 몇가지 괴담은 아무리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두려움을 겪기엔 충분했다. 차라리 귀신이라면 그래 원한을 들어주거나 풀어주면 되지만 인간이 인간을 해하는 것은 원인과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하니 극도의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인간은 익숙지 않는 것을 바라볼 때 가장 드는 감정은 바로 '공포'로 심리학에서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설명 할 때도 알지 못하기에 더 증폭되는 두려움이 있음을 말한다. 미화해서 공포라는 것을 이렇게 설명도 하지만 아마도 가장 인류가 겪고 싶지 않는 감정 중 하나가 공포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를 무서움이 아닌 하나의 오락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게임이나 영화로 등장하면서 시선이 달라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난 호러물이나 공포가 무섭다. 언제가 좋아할 날이? 전혀 생기지 않을테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공포가 주는 스릴을 느끼고 싶을 때 찾아볼 의향은 있다.
무(無)의 상태에서 갑자기 태어나는 괴담은 없다.
모든 괴담은 현실을 기반으로 창조되거나 재조립되며,
그 당시에 무엇이 화두에 올랐고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품었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끈적끈적한 여름, 서늘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바야흐로 공포를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일상 곳곳에 도사리는 공포를 피하는 대신 그걸 즐기며 소화한다. 공포, 스릴러, 호러는 더위를 날리는 여름에 국한된 장르가 아니라 인기 장르가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러 에세이 『소름이 돋는다』는 기발하고 신선하다. 어린 시절 귀신을 본 경험이나 담력 공포 체험은 익숙하다. 귀신의 실체 유무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할까.
호러를 좋아하는 겁쟁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배예람의 『소름이 돋는다』는 밤마다 소파에 앉아 있는 귀신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영화, 책, 게임을 통해 공포와 호러를 일상과 접목시켜 들려준다. 귀신을 본 어린아이는 귀신이 무섭지 않아서 가만히 옆에 앉아보았다고 한다. 귀신을 보고도 동요하지 않은 어린아이가 결국엔 이런 에세이까지 쓰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름이면 생각나는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 속 귀신이나 흥행 소재로 등장한 좀비, 괴물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입체적으로 살아나지만 그 이야기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귀신의 경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영혼이 많고 좀비는 영생을 꿈꾸며 부활을 준비하는 인간이라 할 수 있다. 대표로 괴물이라 칭하는 존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확인물체가 아닐까 싶다.
저자가 소개하는 작품은 대부분 모르는 것이 많지만 귀신에 대한 생각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아랑 설화를 시작으로 영화 <아랑>과 드라마 <아랑 사또전>으로 이어지는 글은 처녀 귀신을 통해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잘 그려낸다. 억울했던 사연의 주인공에서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고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으로 시대에 따른 인식의 변화를 설명한다.
귀신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곧 현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뜻이다. 귀신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들이 결국 현실의 부조리함에 대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억압과 차별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귀신의 이야기는 곧 사회적 약자, 소수자 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이야기가 단순한 재미를 뛰어넘어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과 슬픔을 안겨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73쪽)
괴물을 현실 밀착형(돌연변이, 인간의 욕심으로 등장하는 괴물), 의심 유발형(어느 순간 괴물로 변하는 인간) 코스믹 호러형(인간이 대적할 수 없는 존재)로 분류하여 설명해 주는 부분은 나처럼 호러와 공포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이에게도 흥미롭고 유익하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으니까.
공포의 소재로 등장하는 집, 우주, 물을 소재로 한 영화는 직접 보지 않아도 공포를 어떻게 다루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꿈이었던 우주여행이 현실이 되었지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의심할 수밖에 없는 우주는 공포의 공간이라는 것, 더 이상 가장 안전한 곳이 아닌 집, 이렇게 쓰고 베란다 창고 속에서 뭔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무섭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건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스치고 지나는 사람들, 인사를 나누는 이웃들, 친근한 공간에서 그들이 때로 무서운 존재로 돌변하는 일은 뉴스 속에서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층간 소음, 주차 문제, 헤어진 연인이 스토커가 되어 괴롭히는 일. 사소하고 민감한 것 같지만 걷잡을 수 없는 공포로 돌변하는 일. 우리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공포다.
이상적이라는 건 알지만, 나는 그 모든 범죄와 사건이 그저 괴담으로 남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세상에서,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모두가 안전한 가운데 괴담을 읽으며 소름이 돋는 감각을 즐기고 싶다. (165쪽)
책을 읽으면서 귀신들의 눈에만 보이는 호텔 이야기 <호텔 델루나>,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시키는 좀비를 만나는 김중혁의 소설 <좀비들>, 최근 가장 즐겁게 시청하는 <악귀>가 떠올랐다. 호러를 좋아한다면, 괴담 게시판을 찾는 이라면 『소름이 돋는다』 란 친절한 호러 안내서가 더욱 반가울 것이다.
으스스한 괴담부터 눈부신 크리처들, 공포 영화와 게임까지
어느 겁쟁이 소설가가 써 내려간 호러 세계 안내서
정체 모를 검은 형체와 나란히 소파에 앉아 배시시 웃고 있는 듯한 소녀의 모습이 책 표지에 그려져 있다.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형체와 어울리지 않는 발랄해 보이는 소녀. 엄청난 겁쟁이이지만 동시에 공포물을 보며 즐거워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 겁이 많다고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게 많은 공포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었는지.. 나는 정말 궁금하기만 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공포물을 그다지 즐기지는 않는 편이다.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지 않기도 하고 설사 무서운 현상을 목격했다거나 무서운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배예람 작가가 표현한 것처럼 그 " 짜릿한 쾌감 " 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무섭기만 한 콘텐츠를 소비하고 나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기분이 나빠서 하루를 그냥 허투루 흘려보낸 적도 있기에 작가의 호러 예찬이 마냥 신선하게 느껴진다.
작가가 소개한 많은 공포물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게 몇 가지 있다. 그중 첫 번째가 바로 [꼬마 펭귄 핑구]였다. 자고 있던 핑구의 단잠을 깨우고 공포로 몰아넣은 무시무시한 바다표범의 존재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침대의 다리가 뚝딱거리며 움직이고 이글루 바깥으로 나가는 등 핑구가 정신이 없는 가운데, 핑구의 약 100배 정도의 크기가 되는 듯한 바다표범이 흰 눈자위를 드러내며 비웃는 모습을 보니 어른인 나도 무서웠다. 아이들 애니메이션이 이래도 되나?
작가가 본 많은 작품들 중에서 내가 본 것은 얼마 안 되는데, 그중에서 [인셉션]과 [새벽의 저주]가 있었다. 인셉션은 평소에 내가 꾸는 자각몽이나 꿈속에서 꾸는 꿈 등등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흥미롭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그런 부분은 공포로 받아들이다니 시각차가 오히려 더 재미있었다. 반면에 [새벽의 저주]는 내 뇌리 속에 그야말로 " 공포 "의 대표 주자로 각인된 작품이다. 무슨 영화인지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친구들하고 덜렁덜렁 영화를 보러 갔다가 그야말로 기절할 뻔했었다. 자다가 꿈에 나올 것 같아서 정말 무서운 장면은 눈을 가리고 안 봤던 기억이 난다.
나 같은 겁쟁이가 세상에 많다는 걸 또 알게 되었다. 그러나 공포물에 대처하는 자세는 각자가 다르다는 걸 또 알게 되어서 흥미로웠다. 무서워하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공포심을 느끼는 그 순간을 순수하게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가 배예람씨가 즐겨봤던 여러 공포물 중에서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해서 감상해 볼 계획이다. 작가가 말하는 그 짜릿한 느낌? 척추를 타고 흐르는 쾌감? 그런 것들을 한번 느껴보고 싶다. 다양한 공포 콘텐츠 가운데서 아마도 나에게 맞는 게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겁쟁이들의 순수한 호러 예찬 [소름이 돋는다]
그 좁디좁은 길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앞사람을 꼭 안고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가던,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 그지없는 우리 모습도 ,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바닥에 처박은 채로 걸어가던 와중에 나는 용기를 냈다. 낸 돈이 있으니 누릴 건 충분히 누려랴 했다. 나는 열심히 사방을 살피며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눈이 마주쳤다. (-28-)
하지만 괴물들을 향한 나의 운명적인 사랑을 무사히 지켜나가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나의 취향에 공감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괴물을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은 항상 애매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77-)
단순히 쯔꾸르 공포 게임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이미지만 본다면 '이게 뭐가 무섭다는 거야?'라는 반응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픽셀로 이루어진 깜직한 캐릭터들과 맵을 본다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쯔꾸르 공포 게임의 진면목은 당연히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야 만 맛볼 수 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단순하기 그지 없는 움직임과 연출만으로도 우리가 충분히 겁에 질릴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141-)
그 소문들은 사실 괴담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사건 현장 근처에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진다거나, 목소리가 들린다거나, 누군가 보인다거나 하는 종류의 괴담들.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런 이야기들을 떠들어댔고 으스스하다며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호기심을 품고 사건 현장 근처를 찾아가는 아이들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163-)
겁쟁이 소설작가가 쓴 호러 세계안내서 『소름이 돋는다』는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에 있었다. 이 책을 읽는다면, 겁쟁이는 깊은 공감과 이해를 할 것이며, 내 주변에 내가 겁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얻지 못하는 깊은 위로와 치유를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겁쟁ㄴ이느 겁이 많다.무서운 이야기,좀비 이야기, 괴담 이야기를 멀리하고 있다. 그리고 겁쟁이느 소금꾸러 가는 일이 많았다.
그건 여느 사람들은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 부분에 대해서, 본인만 무서워한다고 생각될 때이다. 돌이켜 보면, 사람들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무서운 순간이 있다. 그렇다고, 무서움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기준이 똑같은 건 아니다. 괴담, 피, 시체,좀비,이러한 것들이 나의 무섬증을 배가시켜주고 있었으며, 어릴 적 본인만 무서워지는 악몽을 꾸어서, 실례를 한 이들은 어른이 되어서, 무서움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경우, 우리는 겁쟁이가, 괴물을 좋아하고, 괴담을 즐겨 듣는다고 말하며,시큰둥하게 되고, 어이가 없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이 책에서, 저자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깊이 공감하게 되고, 겁쟁이를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겁쟁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에 대한 시점과 코드는 읽을 수 있다. 누구나 겁은 가지고 있고, 컴컴한 어둠에서, 소름끼칠 때가 있다. 혼자서 어던 장소나 으슥한 곳, 좁은 골몰이아 길목에서 주저앉게 된다. 닭살이 돋는 것은 기본이다. 그래서, 겁쟁이들도 할말이 있다.
여름철 가장 인기 있는 소설이라면 누가 뭐래도 공포(호러) 소설이다. 물론 모든 독자들이 공포 소설을 다 읽는 것은 아니다. 공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일년 내내 공포 소설을 찾아 읽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외로 공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가 적었다. 때문에 공포 소설 작가도 많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탐정·추리·미스터리 소설 등도 분류상 공포 소설과 한 카테고리에 들어가겠지만 아무래도 결은 좀 다른 것 같다. 이 책 『소름이 돋는다』의 저자 배예람은 공포 소설 작가로서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고 한다. 독자도 공포 소설 작가라고 하니 저자의 이름을 들은 것 같다. 모 출판사에서 엔솔로지 소설집을 펴낼 때 배예람 작가가 글을 함께 실은 것 같다.
그런데 배예람 작가는 '겁이 많다'고 스스로 털어놓는다. 그런데 어떻게 공포 소설을 쓸 생각을 했고, 실제 공포 소설 작가가 되었을까? 혹시 엄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사실 저자는 출판 관계자 몇몇 사람으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공포 영화 좋아하시겠네요?" 저자는 늘 같은 대답으로 위기를 넘긴다고 한다. "좋아하긴 하는데, 겁이 많아서 잘 못 봐요." 당연히 웃음 섞인 답이 돌아온단다. 그럴 때마다 저자는 진지하게 자신이 겁이 얼마나 많은지, 그렇지만 공포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논리적으로 납득시키기에 애를 먹는다고 고백한다. 열변을 토하면 이야기가 점점 수렁으로 빠져 스스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독자들에게 되묻는다. '겁쟁이'와 '공포 애호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수식어인 걸까? 그렇지만 저자는 정말로 겁이 많고 또 호러라는 장르를 좋아한다고 한다. 양립할 수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아니다. 한 발 더 나아가 공포 소설을 쓰고 있으니 고개가 갸우뚱거린다는 말이다.
이 책은 공포 소설이 아니다. 공포 소설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과 경향, 그리고 공포 소설의 세계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주로 풀어 쓴 에세이다. 간혹 겁쟁이면서 공포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들에게 흔히 던지는 힐난조의 말 "모르는 사람들은 ‘어차피 눈 감고 있을 거면서 돈 아깝게 왜 자꾸 공포영화를 보고 싶어 하느냐." "그렇게 무서워할 거면 괴담을 읽지 마라." 핀잔을 준다. 힐난이든 핀잔이든 저자는 겁쟁이 호러 애호가 편에 선다. 겁쟁이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하고 대변도 한다. “겁이 없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저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오고 심장이 뜨거워지며 눈을 질끈 감게 되는 순간이 얼마나 짜릿하고 즐거운지 말이다.” 호러 장르를 좋아하는 겁쟁이의 삶이란 이토록 모순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할 필요가 없는 변명에 불과하다.
저자의 겁쟁이의 삶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오래전 일이라고 한다. 어렸을 적 집 거실에 밤마다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 정체 모를 형체의 첫 발견자였다고 한다. 편의상 '귀신'이라고 한다며 경험을 이야기한다. 이에 따르면 초등학생 때 귀신을 처음 만났다.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달빛이 희미하게 내려앉은 거실에서, 소파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검은 그림자를 똑똑히 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소파가 움푹 들어간 자리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것뿐이며, 내일이면 소파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겁에 질린 가운데서도 뇌가 의외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했던 듯하다. 하지만 다음 날 밤에도 귀신은 그 소파에 앉아 있었다. 저자에게는 그 모습이 성인 여성이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얌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주일이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를 밤마다 화장실에 가는 저자를 쳐다보곤 했다.
그 뒤로 일어난 일은 설명할 것도 없이 허무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학에 갈 때까지 그 집에서 자랐다. 귀신은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밤늦게 화장실에 가다 말고 이유 모를 충동에 이끌려 거실을 돌아본 적도 종종 있었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여전히 저자는 그가 정말 귀신이었는지 어둠에 겁먹은 초등학생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은 저자가 인생 처음으로 '진짜' 공포를 마주한 순간이었지만, 당시 단순한 공포를 뛰어넘어 다양한 감정을 맛보았다고 밝힌다. 자신이 보고 있는 존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호기심과 진짜 귀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바람. 하필 왜 자신의 집에 나타난 건지, 왜 항상 움직이지 않고 소파에 앉아만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고도 한다. 용기 내서 귀신 옆에 앉은 건 나름의 소통을 해보려는 시도였다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겁쟁이는 아닌 듯하지만. 아쉽게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저자는 공포 추억 하나를 더 풀어놓는다. "공포를 느끼고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순간을 미묘하게 즐겼던 기억은 이뿐만 아니다. '소파 귀신'을 만나기 전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아동용 애니메이션 〈꼬마 펭귄 핑구〉를 보았을 때라고 한다. 〈꼬마 펭귄 핑구〉는 귀엽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팽귄 '핑구'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글루에 사는 핑구 가족의 일상을 다룬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이란다. 독자는 본 적이 없지만. 푹신해 보이는 클레이의 질감과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목소리가 일품이라고 저자는 소개한다. 그 당시 저자 또래 친구들은 모두 핑구를 보았고, 저자 역시 핑구의 열렬한 애청자 중 한 명이었다고. 그중에서도 저자가 가장 좋아했고 여러 번 돌려본 에피소드는 '핑구의 악몽' 편이라고 한다.
저자가 당시 '핑구의 악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어린아이 중 하나였다. 소소하고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한 일상을 보내던 핑구의 꿈속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나다니! 일일이 저자의 말을 전부 여기에 적을 수 없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압축해 보면 어린 시절 즐겨 보던 애니메이선에서 주인공이 꿈을 꾸었는데 포식자로서 바다표범이 보여준 짙은 갈색 피부 위에서 번득이는 거대한 눈, 빗자루처럼 꽂힌 수염 아래로 빼곡히 자리 잡은 이빨들이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 기억이 너무 선명하해 아마 저자의 기억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등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이처럼 어린 시절 한밤중에 거실 소파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검은 형체, 오프라인 공포 체험에서 나를 소스라치게 했던 귀신(?) 등 일상 속에서 소름 돋는 감각을 느꼈던 경험을 이 책에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2000년대 초 우리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빨간 마스크 괴담도 어김없이 저자의 기억속에 각인돼 있고. 그즈음 ‘엽기’라는 타이틀을 달고 쏟아져 나왔던 공포 플래시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독자도 향수가 느껴진다.
이 책은 으스스하고 음산한 소리를 흘리며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괴담들과 호러 문학, 공포영화, 공포 게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호러 콘텐츠를 나름의 기준으로 정리해 나간다. 하우스 호러, 각종 괴생명체가 등장하는 크리처물과 좀비물, 고어 호러, 스페이스 호러, 시선과 물의 이미지를 활용한 공포 콘텐츠 등 주제별로 세분하여 분석하고 있어 호러 장르 입문서로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비교적 새로이 등장한 규칙 괴담이라는 장르를 다루는 편에서는 호러 소설가인 작가가 직접 쓴 규칙 괴담도 에피소드처럼 한 편 담겨 있다. 관심 독자는 놓치지 말고 읽어보길 먼저 읽은 독자로서 권유한다. 많은 영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저자가 소설가라서 그런지 스토리텔링이 굉장하다는 느낌을 독자는 받는다. 처음 소개한 '소파 귀신'부터 예사롭지 않더니 이후 호러를 분류하는 데서도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단어들도 많은데 저자는 누구나 잘 아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을 동원해 대입시켜 설명한다. 흥미롭고 이해가 제대로 된다. 독자들이 책을 덮을 때쯤에는 읽고 싶은 호러 소설, 보고 싶은 공포영화, 플레이하고 싶은 공포 게임 등 각종 호러 콘텐츠 위시 리스트가 마음속에 가득 쌓일 것으로 믿는다. 놀이공원 귀신의 집에 들어갈 때마다 소리를 꽥꽥 질러서 함께 간 친구가 다른 손님들에게 사과하게 만들지만, 팔다리 수십 개 달린 괴물 앞에서는 두 손을 마주 잡고 탄성을 지른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아아, 너무 멋지다!”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군말 없이 또 가서 즐긴다. 놀라움과 소름이 돋고, 숨도 헉헉거리게 되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우리의 그런 모순적인 모습을 타박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호러 마니아’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다. 좋아하는 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부정해서도 안 된다.
무서워 죽을 지경이었다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괴물의 위용이 얼마나 멋졌는지 신나게 이야기하는 저자의 모습은 조금 버릇없는 표현이지만 귀엽다. 그러면서도 호러 장르를 진지한 자세로 대하는 모습은 그 좋아하는 감정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고 책을 쓰게 된 원동력이 됐다고 독자는 감히 추정한다. 억울하게 죽임당하고 누명까지 쓴 여성이 원귀가 되어 사또에게 해원(解?)을 부탁하였다는 아랑 설화. 이 이야기는 시대를 거듭하며 변천했고 그때마다 그 메시지 또한 변화하였다. 이 책은 아랑 설화의 변천을 되짚어가며 왜 귀신은 항상 여자였을지 궁금해하며 우리가 무서워하는 대상에 대하여 고민한다. 어린 시절 친구의 죽음 이후 또래 사이에 돌았던 괴담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깊이 반성하며 진지하게 질문한다.
‘우리가 진정 무서워해야 할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당연한 일이다. 사랑에는 언제나 책임감이 따르는 법이니까.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좋아하는 마음의 또 다른 형태를 발견하고 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상적이라는 건 알지만, 나는 그 모든 범죄와 사건이 그저 괴담으로 남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세상에서,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모두가 안전한 가운데 괴담을 읽으며 소름이 돋는 감각을 즐기고 싶다. 늦은 밤에 아무 걱정 없이 거리를 거닐고, 뒤따라오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으며 걷고, 편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다. 뉴스에서 끔찍한 범죄 소식이 흘러나올 때마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기를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괴담을 읽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두려워하고 겁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괴담 속 일들이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 채로 덜덜 떨 수 있었으면 좋겠다.(p.165) - 「10. 사실은 사람이 제일 무서워」 중에서
저자 : 배예람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즐겨 쓴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 내일 무엇을 쓸지 상상만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지독한 게으름뱅이. 게으름을 이겨 내고 한 줄이라도 쓰는 것이 매일매일의 목표. 2019년 안전가옥 앤솔로지 『대스타』에 수록된 「스타 이즈 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안온북스 ‘내러티브온’ 소설 편 『왜가리 클럽』에 수록된 「인어의 시간」을, 안전가옥 앤솔로지 『호러』에 수록된 「엔조이 시티전(傳)」을 썼다. 오래오래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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