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추억의 힘』, 탁현민 저, 메디치미디어, 2023년
이 책은 공연연출가이자 청와대 전 의전비서관인 탁현민의 삶과 추어에 관한 산문집이다. 저자는 2013년 프랑스 파리에서의 일상, 2014년 이후 제주의 서쪽에서의 삶, 그리고 청와대 의전비서관 생활을 마친 후 지난 1년 동안의 경험을 솔직하고 섬세하게 담아냈다. 저자는 자신을 변화시킨 것은 어마어마한 사건이나 사상이 아니라 여러 사소한 것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사소한 추억들이 결국은 개인과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한다고 믿는다.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고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사소한 추억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두 번째 부분에서는 파리에서의 흔들리며 흔들거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제주에서의 삶을 공유한다.
♡ 책 속으로
# 쓸모와 쓰임
...청와대에서 처음 일하게 되었을때 일의 고됨과 책임의 막중함을 자주 토로하기는 했지만 한참 징징거린 후에 돌아서서는 씩 웃기도 많이 웃었다. 한동안 쓰임이 없다가 모처럼 쓰이니 쓰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어진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쓰임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욕심이 나의 능력을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어떤 사람의 능력치가 100이라 할 때, 그 사람이 60이나 70 정도만 하면 되는 자리에 놓이면 어느 순간부터 욕심이 생긴다. 자신의 능력만큼, 아니 그 이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그러했다. 부여된 일보다 더 많은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더 많은 결정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권한이 부여되는 자리와 권한에 욕심을 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결국 그런 쓰임이 없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100퍼센트를 할 수 있는 사람이 100퍼센트를 요구받는 자리나 그 이상의 자리에 놓이면 능력치를 최대한 끌어 올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사고(사고)의 여유도 상상력도 발휘하고 힘들어 진다. 매번 최선을 다해 보아도 능력의 한계만 절감하게 된다. 짊어져야 할 책임은 무거워져 결국에는 자기 능력의 100퍼센트를 다 채우지도 못하게 된다.
하지만 능력이 100퍼센트라고 할 때 70퍼센트 정도만 해도 되는 자리에 놓이면 자신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아도 주변의 기대치를 손쉽게 채울 수 있다. 기대치를 채우는 것뿐 아니라 30퍼센트의 여유도 가지게 된다.
30퍼센트의 여유, 이것은 단지 슬렁슬렁 일해도 되니 다행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여기서 생긴 30퍼센트의 여유가 그렇게 간절했던 상상력이 되고,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가능하게끔 해준다. 여러 국가 행사를 기획하고 연출하면서 나름의 상상과 실험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았나 싶다. 좀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이 부여되었더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아쉬운 쓰임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여러 일을 성공적으로 무사히 치러낼 수 있었구나 싶다.
자기 쓰임이 불만족스럽다면 자신이 어느 정도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있는지, 그 자리에서 얼마나 여유를 가지고 일하고 있는지 돌아보길 권한다. 다들 70퍼센트만 해도 빛날 수 있는 자리에서 30퍼센트의 여유를 가지고 행복하게 일하시길 바란다.
# 나의 스승, 나의 친구
...언제나 그랬듯 내 말을 한참이나 들어주신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큰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 반드시 그만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작은 기쁨 하나가 큰 슬픔을 견디게 합니다. 우리는 작은 기쁨에 대해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큰 슬픔에 절망해서도 안 되고요.” 그 말씀은 그동안 들었던 어떤 말보다 따뜻하고 분명한 위로였으며, 격려였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울고 싶어졌지만 꾹 참았다.
어제가 불행한 사람은 십중팔구 오늘도 불행하고, 오늘이 불행한 사람은 십중팔구 내일도 불행합니다.
어제저녁에 덮고 잔 이불 속에서 오늘 아침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어제와 오늘 사이에는 ‘밤’이 있습니다.
이 밤의 역사는 불행의 연쇄를 끓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입니다.
밤의 한복판에서 잠들지 말아야 합니다.
새벽을 위하여 꼿꼿이 서서 밤을 이겨야 합니다.
저자가 자신의 삶과 추억을 솔직하고 섬세하게 담아낸 점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자신의 스승, 친구, 직장 상사 등과의 관계와 대화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과 태도를 보여준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수놓은 사소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들이 결국은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고 믿는다.
이 책을 통해서 나를 지탱해주는 사소한 나만의 추억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되었다. 피식 웃음이 나오는 기억부터 소소하지만 충만함을 느꼈던 기억까지 잊고 있었던 나만의 사소한 추억들이 나를 가득 채우고 있음을 기억해 냈다.
이 책은 문재인대통령 시절 대부분의 행사를
기획했던 탁현민의 산문집이다.
여러 행사를 감동적으로 보았기에
탁현민이라는 사람이 궁금하게 되었고
그가 쓴 책을 읽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내 머리 속의 '탁현민'과 글 속의
'탁현민'의 이미지가 달랐다.
화면을 통해서 본 그의 모습은
차갑고 냉철해 보였다.
그러나 책 속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감성이 풍부하고 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조금은 수줍음이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이 책은 저자가 여행을 하면서의
에피소드와 느낀것들을 편안하게 써내려 갔다.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신영복선생님과의 만남과 선생님의 말씀과
글들을 읽을 때면 뭔가 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신영복선생님의 책들을 읽고 싶어 졌다.
파리에서의 김어준, 영화배우 문성근,
정치인 양정철 등에 관한 에피소드는
도서관에서 웃음을 참아가며 읽었다.
저자가 다시 한 번 우리 대한민국의 행사를
기획하는 그 날이 오길 바란다.
탁현민은 문재인 정부에서 비서관과 행정관의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가 오래전 노무현 대통령 추모제와 나꼼수 콘서트 행사에 참여했던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가 연출한 행사를 본 것은 비교적 최근인 문재인 정부 때였다. 78년을 머나먼 이국 땅에 묻혀있던 항일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는 기념식이 특히 인상 깊었다. 장군의 유해를 실은 비행기가 드디어 대한민국의 영공에 진입했을 때, 공군 전투기 비행사의 무전을 통해 나오던 음성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홍범도 장군님의 귀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필승!" 뭔가 가슴 찡한 전율이 느껴졌다.
탁현민 이전에 국가의 공식 기념행사가 대중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광복절과 삼일절을 기념하고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마음이야 있겠지만, 국가의 행사라고 하면 따분하고 딱딱한 형식에 치우치던 게 과거의 모습이었다. 반면 탁현민의 연출은 인간적이고 따뜻한 느낌이 물씬 나는 그런 행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애국지사 오희옥 할머니가 그 시절 곡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던 모습, 37주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80년 5월 18일에 태어났던 김소형 씨가 그날 돌아가셨던 아버지에게 편지를 낭독하던 모습, 이후 대통령과 따뜻하게 포옹하던 연출되지 않은 감동과 여운이 탁현민의 작품에는 스며들어 있었다.
지식과 기술을 활용해서 어느 정도 괜찮은 연출과 멋진 작품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동을 주고 공감을 일으키는 작품은 거기에 더해 뭔가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이 탁현민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글이나 그림이나 영화와 마찬가지로 공연 연출도 그러하다. 만드는 사람이 풍부한 감성과 타인과 깊이 공감하는 마음, 가장 마지막까지 이해의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 이러한 것들이 작품에도 반영된다. 그리고, 탁현민은 어릴 적부터 시를 쓰던 작가 지망생이었다. 결국 그의 재능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 같지만 문학적 감수성은 그의 연출을 볼만한 작품으로 만드는 데 분명히 일조한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에게서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품이든 만든 이를 닮게 마련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