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대를 돕고 그대가 나를 돕는다. 내가 그대를 치유하고 그대가 나를 치유한다.
내가 그대를 살리고 그대가 나를 살린다.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 위에는 의사도 환자도 없다.
이 고통의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돕는, 사람과 사람의 동행이 있을 뿐이다. 아홉 명의 정신과 의사가 모여서
우리가 우리를 구하는 이야기를 펴낸다.
나에게 병원은 어렵고 무섭고 겁이 나는 곳이다. 이렇게 쓰고 병원이 좋은 사람이 어디있을까 생각해본다.
평생 몸으로 노동을 하고 살아온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때부터 아픈 곳이 많으셨다. 섬에서 육지에 있는 병원에
진료를 보고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하는 과정은 녹록지않았다. 의사의 소견을 듣기위해 쉼없는 기다림과 짧은 만남.
허무했다가 답답했다가 그래도 수술결과가 괜찮으면 만족해야했던 시간이었다.
큰 병원 의사선생님은 다정하지 않은 사무적인 사람들이었는데 책 속에서 만난 아홉명의 정신과 의사들은 모두가
따듯한 느낌이었다. 정신과 의사라는 굳이 세분화하자면 사람의 마음과 말을 듣고 치유해주는 사람들이라서 그런가
싶기도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의사선생님이라면, 내 마음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진실된 마음이 닿아 치유라는
처방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해본다.
책을 읽으면서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놀랐다.
작년연말즈음 갑자기 우리집에도 아픈사람이 생겼다. 갑자기 숨쉬기가 어려워진 아버님이 동네 내과를 찾으셨는데
폐소리를 들어본 의사가 당장 큰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보시라고 했단다. 대학병원 진료를 위해 대기하면서 또 느꼈다.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걸.
가족 중에 어느 하나가 아프면 다른 가족들도 아프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병은 시간이 약이라고 말할테지만
가족 구성원 중에서 아픈 사람이 있다는건 모두에게 슬프고 인내하는 시간을 갖게한다.
책에서 아들을 잃은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남들과 조금 다른 아들, 가족이 힘을 합쳐 살았고 길러낸 아들의 죽음은
황망했고 남은 가족들을 병들게했을테다. 남겨진 가족들의 곁에서 충분히 공감하고 위로하고 있을 의사선생님의 글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늘 마지막처럼
나는 재난 경험자와 유가족들을 통해 어떻게 트라우마를 극복하는지 배우고 나의 상실을 위로받았다. 유가족들을 만나다 보면
평범한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깨닫는다. 바로 오늘이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마지막 하루일지 모른다.
지금 그 사람과 주고받는 대화가 마지막 말이 될 수도 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의 표정이 마지막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다.
이 문장을 몇번이나 다시 보았다. 그리고 꽤 많은 울음을 쏟아내었다.
학창시절 열심히 풀던 문제집에서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를 풀라는 글을 수도 없이 마주했었다. 주어진 시간. 개당 1분 내외로
생각하고 풀면 어느 정도 시간이 맞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주어진 시간이 삶에도 적용해야만 하는 날이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두렵다. 언젠가 끝이 있을거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끝이 너무 빨리 내 앞에 당도했다.
사람은 누군가의 불행으로 내 하루를 위로 받고 안도한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지만 사실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 같다.
정신의학과 의사도 재난 경험자와 유가족들이 어떻게 트라우마를 극복하는지 배우고 나의 상실을 위로받았다고 하니,
우리의 오늘을 조금 더 단단하고 즐겁게 보내야함은 나의 의무다.
사실 나는 정신의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어느정도의 우울함은 누구에게나 있고, 나의 우울은 평범한 것일거라 스스로 판단했다.
갑작스런 가족의 부재는 예고가 없어서 남겨진 사람을 아프게 한다. 실제로 얼마 전에도 축제를 보러 갔다가 말도 안되는 이유로
죽음을 당한 젊은 청춘들이 있었고, 수학여행길에서 사고로 떠난 내 큰아이 또래의 아이들도 있고, 자살로 영영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으니.
여러가지 이유로 슬픈 날들이 이어진다. 책을 읽는 것도 사치인가 싶어서 한참만에야 꺼내든 책은 사람들의 마음을 여러분야에서
다루는 의사선생님들의 눈과 귀의 경험치로 우울의 깊이와 위로를 담아내었다.
평범한 것도 같았고 따듯하기도 했고, 어렵고 딱딱한 의사선생님의 말이 아니라서 좋았다. 마음이 힘들고 마음이 힘들었던 사람들과
함께 읽고싶은 책이다.
그대의 마음에 닿았습니다.
9인의정신과의사 지음
플로어웍스
단숨에 읽을 수 없는 책이었다. 순간순간 먹먹해지는 마음 진정시키느라. 읽기 전에 마음의 준비 단단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무게가 이랬구나 싶어서 한 챕터 한 챕터 시작할 때마다 마음을 리프레시해야 했다.
또한 내 이야기 같았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내게도 일어났던 일들, 내게도 일어날 것 같은 일들이었다. 9명의 정신과 의사들이 한 편씩 소개한 9개의 이야기들은 2장으로 나뉘어져 1장은 <그대의 마음에 나의 공감을 보냅니다> 2장은 <그대의 상처에 우리의 위로를 보냅니다>로 나뉘어져있는데, 1장의 이야기들은 내 이야기로 느껴질 정도로 제목처럼 ‘공감’가는 이야기였다. 나 또한 1장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사례들을 비슷하게나마 겪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와 닿았고, 위로가 되었다.
특히 더 위로가 되었던 것은 글을 써 내려간 작가님들. 즉, 정신과 의사선생님들 또한 환자들과 비슷하게 겪었던 일들이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회복하고, 환자들에게 공감하고 위로를 주고, 또 받으며, 그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책이 널리 읽혔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것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 이어서다. 비슷하게나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인데, 누구는 약해빠져서 마음의 병이 생기고, 누구는 강철 멘탈이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 사회를 더 병들게 한다.
‘우울증’만 생각해보더라도.
“우울한 감정은 죄가 없다. 우울은 정상적 감정이다. 우울은 상실과 실패를 경험할 때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준비하는 동력이 된다.”
이렇듯 우울은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인데, ‘감정의 작동 균형이 깨지는 순간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상담할 때 금기어에 속하는 말 중에는 ‘그나마 이래서 다행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당사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태도가 아닐뿐더러 상담자 자신의 선입관과 편견이 담긴 성급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용기내어 담담히 힘들다 말할 때, 별거 아니라는 듯 ‘원래 그런'거라는 대답은 비수같이 박혀왔다. 정말이지 단 한명-엄마의 위로조차 없었다면 나또한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힘들다고 엉엉 울며 난 딸로서 엄마에게 가슴 찢어지는 비수를 날린 것 같지만, 다른 누구에게 기대지 못하고 홀로 버텨내는 성격이었던 내게는, 가장 편한 존재인 엄마에게조차 엄청난 용기를 냈던, 살고자하는 몸부림에서였다.
내게는 단 한명의 지지자, 동행자, 러닝메이트가 엄마였던 것이고,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에서는 용기를 낸 환자들을 환대(hospitality)해주었던 의사들이 그렇다.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가진 한 사람만 있어도 삶은 다시 시작된다.
“마음은 무한하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모르는 마음이 있고, 그 모르는 마음이 훨씬 넓고 깊다.”
내 마음도 다 모르는데, 남의 마음은 어떻게 다 이해를 하랴.
그러니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고통을 제거할 수 있겠는가? 그저 듣고 또 듣는 것, 그래서 마음이 제 갈 길을 찾아가도록 그 곁에서 함께 헤매고 함께 경험하는 동행일 뿐이다.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야 살아갈 수 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지닌 사람을 돕는 유일한 길은 공감이며 공감은 경청에서 시작된다.’ 그저 들어주는 것. 그것이 동행이고 지지이고 환대인 것이다.
“부정적인 것이라고 회피하거나 덮어두려 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보인다고 이것만을 쫓거나 따라가지도 말자. 성공과 실패의 외적인 삶뿐만 아니라, 밝고 어두운 마음 등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험은 하나도 버릴 것 없이 나의 고유한 삶을 만들어 스스로를 특별하고 의미 있게 할 것이다. 이 여정에 나도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 그들이 자신의 아름다움과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자신의 어둠과 밝음 모두를 수용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가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비춰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병원(hospital)과 환대(hospitality)의 어원이 같다고 한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는 사회'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사회'를 꿈꾸었던, 환자를 너무나 사랑했던 돌아가신 임세원 교수님의 소망을 나또한 꿈꾸며,
어느 누군가의 어둠과 밝은 마음 모두를 진정으로 환대(hospitality)하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