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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에 토카레프 l 브래디 미카코 장편소설 l 다다서재]
원제 : 兩手にトカレフ
“‘책’과 ‘다른 세계’는 이어져 있다.”
지금, 바로 여기 존재하는 사람이 100년 전의 사람과 연결돼 있다. 의문의 ‘파란 책’. 여기에는 100년 전 존재했던 아나키스트 기네코 후미코의 삶이 담겨 있다. 기네코 후미코는 실제로 무정부주의자였던 박열의 아내다.
<양손에 토카레프>는 영국 빈민가에서 부모로부터 방치된 미아가 100년 전 일본의 기네코 후미코의 삶을 우연히 읽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미아의 현실과 후미코가 놓였던 세상은 처참했고 가혹했다. 세상은 이들의 발이 땅에 닿지 못하게 끝없이 밀어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불안함 속에 숨 한번 편히 쉬는 것이 힘든 미아에게 기네코 후미코의 책은 작은 쉼터였으며, 모든 것이 막힌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미아가 유일하게 도망칠 수 있는 곳이었다.
이 소설은 현재의 인물 미아와 과거의 인물 후미코를 연결하게 하며 치밀한 입체적 구성 방식으로 전개해 내간다. 더불어 실존 인물이었던 후미코와 현재의 미아의 등장인물로 인해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이 책의 저자도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브래디 미카코는 팝 음악을 좋아했고, 아르바이트하며 영국 체류를 반복하다 현재는 영국에 거주한다. 그녀는 런던에서 보육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빈곤 지역의 탁아소에서 일하며 작가 활동을 하고 있다.
소설에는 저자의 모습이 조금씩 등장한다. 같은 반 친구 덕에 랩 가사를 쓰게 된 미아의 모습에서 저자는 팝을 좋아했고 글을 썼다. 미아를 돕던 소셜(자원봉사자) 레이철에서의 모습에서 그녀가 보육사 자격으로 빈곤 지역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어른이 어른답지 못했을 때, 망가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어른다워야 한다고, 그래야 아이들이 희망을 품으며 스스로 일어나는 힘을 기를 것이라고 말이다.
어른은 그런 눈으로 아이를 봐서는 안 된다. 아이가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그런 눈빛으로 쏘아본들, 이미 태어나버렸는데. 누군가 내가 없기를 바란들, 이미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데.
그 후, 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도 내가 없기를 바라지 않는 세계. 그 자리에 내가 있어도 되는 세계. (p.35)
나는 항상 누군가가 어딘가로 떠나가는 모습을 봐왔다. 아버지에게 가는 동생과 붉은 리본을 흔들며 학교에 가는 소녀들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보았다.
나는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무릎을 안고 엉엉 울었다.
어째서 나는 항상 남겨지는 걸까. (p.48)
쌩쌩 부는 바람에 어깨를 떨면서 나는 별이 전혀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몸이 전부 어두운 밤으로 빨려들 듯했다. 나는 내 어머니를 선택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데려오는 남자들 역시 나는 선택하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더 이상 슬프지는 않았다. 그저 나는 분했다. 내가 아이라는 사실이, 나는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했다. (p.61)
정말로 아이에게 책임이라는 개념을 가르칠 생각이라면, 아이의 행동을 어른이 정하고, 아이에게 그대로 따르겠다고 맹세를 받아서는 안 된다. 아이가 하는 행동의 책임은 아이 자신에게 있다. 그것을 앗아버리면 아이는 자신이 하는 행위의 주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자신이 누구로서 살아가는 것인지 모르게 된다. (p.155)
“...많은 것들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그랬겠지. 나는 젊은 사람들이 좀더 해방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으면 그 세계가 실현될 수 있거든. 모든 책이 그런 건 아닌 데, 몇몇 책은 그런 일에 도움이 돼. 후미코의 책은 그중 한 권이고.”(p.159)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고, 감싸고, 부드럽게 지켜주고 싶은 감정. 어른들이 내게 그런 감정을 준 적은 없었지만, 나 자신은 그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지나치게 많이 지니고 있었다. 감정을 쏟을 대상이 생기자 그 감정이 되살아났다. 사랑이 되살아나자, 나도 되살아났다. (p166)
아무리 울어도 벌벌 떨어도, 누구도 우리를 구해주지 않아. 또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찰 리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하려면, 도망칠 수밖에 없어. 더 이상 어른들이 우리를 맘대로 하게 두지 않아. (p.222)
나는 죽을 수 없다. 아직 모르는 수많은 것을 알 때까지,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과 만날 때까지, 살아내야만 한다. 지금 이 드넓은 하늘 아래에는 나처럼 울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 학대를 당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나는 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 이곳이 아닌 세계는 지금 여기에 있고, 여기부터 펼쳐진다고. 다른 세계는 존재한다. (p.249)
“이곳이 아닌 세계로 가고 싶었는데, 세계는 아직 여기서 계속되고 있어. 하지만 이곳은 예전과 달라졌어. 아마 세계는 이곳에서부터, 우리가 있는 이 자리부터 변해서 이곳이 아닌 세계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p.260)
<아이들의 계급투쟁>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를 읽고 팬이 된 작가의 새 책이 나왔다. 현실이 너무나도 버거운 두 소녀의 이야기가 서로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이어진다. 책을 통해서.
빈곤한 현실, 방치 속에서 학대받은 아이들이 꿈을 꾼다. 다른 세계가 있을거라고. 상처받은 아이의 내면 세계가 담담한 글로 표현된다. 나 또한 경험해 본 아픔이었기에 더 와 닿았다. 그때의 나를 토닥여주듯이. 꼭 닫아 놓은 벽장 문을 열 듯이 자꾸 열다 보면 언젠가는 편하게 마주하는 날이 올 거라 다독여 준다.
책 속 아이들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고,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제발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는다.
또한 우리 사회의 돌봄의 부재, 영 케어러, 사회의 계급 등 생각해 볼 묵직한 주제들을 던져주는 책이다.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이곳이 아니라 다른 세상을 꿈꿔야 하는 아이들, 혹은 어른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